❤나이 서른에 러브 스토리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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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야설 작성일 24-11-17 18:47 조회 4 댓글 0본문
은진은 자기 옆에 나란히 걷고있는 성철을 눈동자만 힐끔 돌려 살펴보았다. 성철은 그녀처럼 생각할 것이 많은 듯 멍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 자신이 선택했던 일을 후회했다.
"미쳤어, 성철이한테 고백을 해버리다니…"
서러움과 원망. 그동안 성철에게 느낀 감정이였다. 사실 은진도 성철을 좋아하고 있었다. 명훈과 성철 그리고 은진. 셋이서 가까이 지내다보니 성철이 편했고 그래서 좋았다.
그녀는 자신이 성철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그저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호감이 느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은 더욱 아련해져갔고 마음을 전하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녀는 알았다. 내가 성철이를 사랑하는구나. 성철이 자신을 겁탈했을 때 그런 식으로 거칠게 처녀를 빼앗겼다는 상실감 때문에 마음이 아팠었다. 강간을 당했다는 그 자체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대했다는 것에 대해서 실망한 것이다.
몇 번이나 성철에게 애원도 해봤지만 성철은 막무가내로 자신의 몸을 즐길 뿐이였고… 그럴수록 그녀는 심적으로 너무나 괴로웠다. 차라리 그와 사귀는 사이였으면 조금은 이른 성적 행위도 은진은 받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사귀는 사이도 아니였으며 더군다나 은진은 협박까지 당했다.
그래도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그것 자체도 정말 아픈 기억이였지만 그녀와 관계를 가졌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학을 진학하겠답시고 은진에게 말 한 마디 없이 서울로 상경했을 땐 자살 충동까지 느낄 정도였다. 실컷 가지고 놀다가 버림받은 기분. 그녀는 그 때 지독히도 울었다.
성철이 자기에게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그저 몸을 즐기는 것 뿐인지 그것만 알 수 있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성철은 몇 차례 그녀를 안고 훌쩍 떠났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까지 연락도 한번 없었고 얼굴도 한번 없었다.
그녀는 성철이 자신에게 코 꿰이기 싫어서 의도적이라고 피하는 것이라 느꼈다. 돈과 사회적 지위를 동시에 쥔 성철. 은진은 자신이 옛 과거를 들먹이며 성철에게 달라붙으려 할까봐 성철이 자신을 피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삼십대 중반에 접어든다.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 노처녀도 이런 노처녀가 없었다. 그녀가 알기로는 성철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고 했다. 거짓말은 거의 하지 않지만 허풍과 과장된 표현을 즐기는 명훈이 성철이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고 침을 튀기며 은진에게 말해주어서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보다 어리고 예쁜 여자들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성철이 아닌가? 그 생각만 하면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졌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늘이 되어서야 자신을 불러 그녀를 설레이게 할 수밖에 없는 말을 줄울히 늘어놓았다. 성철이 젊었을 때 자신을 좋아했다는 말, 그리고 아직도 자기보고 아름답다고 한 말. 그 말은 그녀에게 한 줄기 빛 같았다. 그냥 내뱉은 말 일수도 있다고 생각 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가슴이 설레였다.
"분위기에 취해서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다니… 내 까짓게. 내 까짓게… 성철이가 얼마나 우습고 가소롭게 생각할까. 나이든 노처녀가 자신을 넘본다며 속으로 비웃을 게 분명해."
그녀는 객관적으로 볼 때 그렇게 늙지도 않았으며 충분히 매력 있었지만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동안 성철의 소식이 궁금하고 또 얼굴도 한번 보고 싶었지만 성철 앞에 나서면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해질까봐 그를 찾지 않았다.
"누나 다 왔어. 들어가 봐…"
성철의 말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상념에서 깨어났다.
"응… 추운데 밤길 조심해서 가."
"누나, 잠깐!"
은진이 돌아서려던 찰나에 성철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응?"
"날 좋아했었다는 말, 이젠 안 아니란 얘기겠지……?"
"그, 그건 아냐!"
자신도 모르게 손사레까지 치며 부정 했다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은진. 성철의 얼굴에 일말의 망설임이 떠올랐으나 이내 은진을 가볍게 감싸앉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험험, 그럼 나 가볼께."
멋쩍은 듯 성철은 도망가듯 사라져버렸고 은진은 초점없는 멍한 눈으로 돌아서더니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입가에 언뜻 미소가 스친듯도 했다.
성철은 드라마를 찍고 있는 연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극중 연아의 캐릭터는 완전 청순가련. 친척네 집에 놀러오면서도 팬들이 알아보면 피곤하고 곤란하다며 모자와 선그라스를 끼던 시건방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참 이중적인 여자구만."
그는 지루하다는 듯 하품하며 연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손을 쓰윽 올려서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은진 누나에게 사과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런 스킨쉽을…"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은진의 입술을 덥친 건 이틀 전 일 이였다.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연아의 매니저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저 맹랑한 계집이 어찌나 유별나게 굴던지, 피곤하고 힘들어서 은진과의 일을 떠올릴 틈도 없었다.
그것이 이제서야 기억의 틈새를 비집고 머릿속에 떠 오른 것이다.
그는 눈물을 줄줄히 흘리는 열연을 하고 있는 연아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녀의 입술이 너무나 먹음직스러웠고, 또 그 순간 젊을 적, 은진이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살아났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충동적인 행동을 했으면 안되었는데…
어제, 오늘 그녀는 그의 핸드폰으로 애정이 가득 넘치는 문자 메시지를 수없이 보내왔다. 그에겐 그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은진이 마음에 차지 않거나 특별히 싫은 이유도 없지만 이미 사랑이란 감정을 버려버린 그에게 있어서 여자라는 존재는 특별할 게 못 되었고 은진도 예외는 아니였다. 물론 은진에 대한 향수가 조금은 남아있지만.
게다가 그녀와의 관계를 진전 시키려면 단순히 여자친구나 애인 삼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나이이니 약혼을 하건, 아니면 식을 치루건 무언가 조속한 대처가 필요했다. 사회적인 성공과 부의 축척이라는 목적을 아직 다 성취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에게 있어서 은진은 너무나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은진 누나에 대한 감정을 다 지워버린 건 아니지만 이미 난 세상에 찌든 속물. 내 성공과 진로에 있어서 무언가 방해될 게 있다면 나는 가차없이 버려야 해. 특히 여자는 그런 내게 있어서 너무나 위험한 존재야."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그냥 다른 여자들과는 조금 다른 존재였기에 스스로의 감정을 칼로 자르듯 끊어버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성격이 딱 부러졌다고 생각하는 성철에겐 어색한 갈등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과거에 지은 죄도 있는데다가 그녀가 오해하도록 행동을 했으니 더더욱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기도 힘들어졌다.
"아아, 이 미친놈아. 거기서 키스는 왜 해?"
스스로를 비하하며 입술을 찰싹찰싹 때리는 성철에게 앙칼진 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욧!"
그리고보니 다른 연애인들은 벌써 매니저가 와서 모포, 잠바 등등을 입혀주고 있었다. 오늘 연아는 겨울 바다에서 남자에게 버림받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촬영 했는데 날씨가 꽤나 추웠다. 그는 서둘러서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연아에게 입혀주고 불을 피워놓은 곳으로 그녀를 데리고 왔다. 그제야 연아의 표정이 많이 누그러들었지만 그래도 셀쭉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성철은 마음 같아선 확 한 대 때려주고만 싶었다.
"이봐요! 당신은 내 매니저라구요. 매.니.저. 여태까지 명훈 오빠가 잘 아는 사람이라 봐줬지만 앞으로 한번만 이러면 확 잘라 버릴거에요!"
연아의 말에 성철은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까지 내버려두고 그녀의 매니저일을 하고 있는데 잘라버리겠다니 한 순간 그의 목소리가 쫙 가라앉았다.
"너, 자꾸 그렇게 버릇없이 날 뛸래?"
"뭐, 뭐라구요… 그렇게 목소리 깔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요! 자꾸 이러면 나 정말 당신 잘라 버릴거에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명훈 형님의 얼굴을 봐서 그동안 참았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 나 이제 너 매니저 안 할테니까 새 매니저 구하다가 또 옷 벗겨지던지, 겁탈을 당하던지, 네 맘대로 해."
나지막히 말하고는 멀어져가는 성철을 바라보던 연아는 한 순간 멍해졌다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전 매니저에게 당한일로 그녀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가득찼다. 그나마 명훈이랑 잘 아는 성철이 믿을만한 사람이였는데 저렇게 가버리다니.
"이, 이 봐요!"
자신의 말을 못 들은 척 하고 휘적휘적 자신의 차량을 향해 걸어가는 성철을 보며 연아는 안전부절 못하다가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폴짝폴짝 뛰어가서 그의 앞을 막아섰다. 양 팔을 좌우로 벌려서 "멈추시오"하는 듯한 자세를 한 그녀는 말했다.
"가지마요…"
"비켜."
"미안해요…"
"비키라니깐."
"미,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흑흑… 엄마아아…"
성철이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며 말하자 그녀는 결국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어대기 시작한다. 저 쪽에서 카메라감독, 조명감독 등등 몇몇 스테프가 이리로 다가오고 있었고 성철은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알았다."
"……?"
"알았다니까. 매니저 한다고. 그만 울어."
"진짜요?"
"오냐."
그녀는 그제서야 퉁퉁 부운 눈을 부비면서 폴짝폴짝 뛰어가서 스테프들 사이에 끼어 점심밥을 먹었다. 언제 울었냐는 듯 헤헤 웃는 그녀를 보며 그는 인상을 팍 썼다.
"아, 정말 골치 아파. 스물을 훨씬 넘은 계집애가 왜 울고 지랄이야."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때 그의 핸드폰에서 문자 메시지가 도착 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
그가 핸드폰을 위로 확 젖혀 메시의 내용을 확인하자 그의 표정은 더더욱 굳어졌다.
-성철아, 나 은진인데, 내일 토요일이니까 시간내서 만났으면 해-
"후, 이걸 어쩐다."
요즘 스트레스 받을 일이 너무나 많은 성철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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