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 2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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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부 : 흰눈이 오면
진검사가 미주의 집으로 도착한 시각은 늦은 저녁이었다. 추적추적 겨울을 부르는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마음은 더욱 심란 했고, 밖의 기온은 빗속에서 점차 떨어지고 있는 듯, 입밖으로 훅훅대는 입김이 허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검사는 가는 도중에도, 혹여 죽지는 않았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있을 뿐이었다.
‘띵동….띵동…..띵동….왜 아무 소리가 없어?’
진검사의 급한 맘은 빨리 대답을 하질 않고 안에서 뜸을 들이고 있는 정형사의 태도도 성가셔 보이게 했다.
‘누굽니꺼?....검사님 이라예?’
정형사는 문을 잠그고 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응, 나야, 이 형사도 같이 왔어. 어서 문 열라구. 감식반 아직 않 왔지?’
문을 열면서도, 진검사는 긴가민가한 상태 였다. 실내는 약간 어두운 상태 였고, 어디에선가 틀어 놓은 음악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거실로 걸어가는 정형사의 뒤통수에다 대고,
‘정형사, 정신 시끄러운데, 저 음악 쫌 꺼. 다리가 떨려서 제대루 서 있지도 못하겠다는 인간이 뭔 여유가 있어서 음악은 틀고 있대? 아니, 그 나이 처먹고도 무서울 때마다 혼자 노래 부르는 초등학생도 아니구설랑….’
‘지도 끄고 싶었는데예, 스위치고, 전축이고 간에 보여야 말이지예?, 어데서 흘러 나오는지도 모르겠쓰예…돈 많은 인간들은 음악또 안보이게 어데 짱박아 놓고 듣는 모양입니더. 지는 몬하겠쓰예…..지송함니더….’
‘검사님..이거, 이거….보이세여?’
‘이형사, 니 밥 무긋나? 안 묵었스믄 보지 말그래이.’
아직까지 총을 빼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정형사의 커다랗게 떠진 두 눈이 상황의 대강을 설명하고는 있었다. 음악을 끄지도 못한 상황에서, 세 사람은 눈 앞의 커다란 덩어리에 시선이 머물고야 만다.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거실에는 왠 바위덩어리 같은 대형 알 같은 물체가 놓여 있었고, 별다른 흔적은 보이질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이소.’
정형사가 가리키는 곳을 주저 앉아서 살펴보는 순간,
‘헉! 미주?…..’
하면서 진검사도 그 자리에서 주저 앉고 말았다. 그건 눈을 흡부릅뜬 채로, 현석의 것으로 보이는 좇대가 입안에 가득찬 채로 무언가를 토해내면서, 얼핏 보기에 똥과 오줌이 뒤섞여, 숨이 멎어 있는 미주의 공포스런 얼굴 이었다. 그 알처럼 생긴 둥근 모양은 바로 현석과 미주를 발가벗긴 채, 69의 섹스자세처럼 만들어 놓고 결박한 뒤에, 랩으로 칭칭 감아 놓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딴딴하게 감겨 있는 랩으로 인해 두 사람은 질식사를 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을 풀 수도 없었다. 이미 사망한 것이 분명한 모습 이었고, 임의로 건드렸다가 초동수사의 맥을 검사 자신이 흐트려놓았다는 얘기를 들을까 우려 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아시는 분입니까? 반대편에 있는 시체는 선우팀장인 거 같은데….선우 팀장은 내일 아침, 검찰로 출두하기로 되어있질 않았습니까? 누구죠? 대체 이렇게 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이?’
그건 정말 이름하야 엽기적인 살인 현장이었다.
‘내 살다살다, 이리 숭악한 꼴은 첨 본데이. 이기 사람이 할 짓이가?, 으이?’
‘나 바람 쫌 쐬고….’
진검사는 갑자기 치미는 어지러움과 동시에 구토가 밀려왔다. 아무리 끔찍한 사체의 부검도 아무런 감정없이 목도했던 자신인데, 가까운 지인의 그런 모습은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바라보기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우엑…..우엑….’
‘등 쫌 뚜드려 드릴까예?’
‘흡….쯥..아니야…됐어. 담배 쫌 가진 거 있나?’
‘여, 있심더. 실내에서는 피지 마이소. 감식반 아그들이 뭐라 할꺼라예. 베란다로 나가시소.’
‘드르륵….’
베란다를 열자, 바람이 밀쳐 들어왔다. 진검사는 정형사가 붙여준 담배를 깊이 빨아 마셨다.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시는 분입니꺼?’
‘…….’
‘마, 맨 정신으로 보기도 끔찍한데, 더구나 아는 분이라카면 더하지예. 지도 그렇다 아입니꺼? 마, 이자뿌소. 그기 상책임니더.’
‘감식반이 지지래 하기전에 어서 연고자에게 연락이나 해 둬….’
‘어디다 하까예?’
‘재성케미칼의 외동따님 이니까, 회사 비서실 쪽으로 하면 될꺼야.’
‘알겠심더.’
진검사는 전화를 걸고 있는 정형사에게 담배를 두어개피 더 빌려서는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 보면서 계속 줄담배를 태웠다. 그건 비명에 간 미주에 대한 향불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실내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은 계속되고 있어서, 진검사의 심사를 더욱 괴롭히고 있기도 했다.
‘이형사, 전축 쫌 제발 꺼라. 안되면 부셔 버리던가….’
‘저도 계속 찾고는 있는데, 이거 쉽사리 건드리기도 그렇고…..’
‘손뼉 같은 거 한번 쳐봐. 그렇게 쌩뚱맞은 방법으로 가전기기를 코딩해 놓은 치들 요즘 많잖아?’
‘그러까여? 짝짝…..짝짝…..별 소용 없는데여? 그럼 뭐지?’
그때 진검사는 미주와의 작은 기억이 떠 올랐다. 언제나 만날때면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소리를 내보라고 하면서, 자신을 재촉하던 그 동작….가수들이 나와서 흥을 맞추기 위해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 하다며, 언제고 자신도 그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그녀와의 기억….진검사는 거실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음악은 신기하리만치 동시에 멈추고 말았다.
‘히야..어떻게 아셨대여?’
이 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열린 창밖으로 싸이렌 소리가 가까워 지고 있어서, 음산한 가을비는 더욱 사람의 마음을 초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검사님, 비가 진눈깨비가 되지 싶은데여?’
‘감식반이 올려는 모양이네. 이 형사, 어서 나가서 갸들 이 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차량의 경광등 끄고, 얌전히 주차 시키고 들어오라구 해. 입조심들 시키고….’
‘네.’
이형사를 따라 정형사까지 나가고, 둥그런 알처럼 거실에 버티고 있는 두 사람의 시신을 내려다 보고 있자니, 진검사의 가슴에서는 울컥하는 것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제서야, 진검사는 그 랩으로 싸인 안쪽에 한때나마 사랑했던 미주가 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미쳐 손에 낀 고무장갑 채, 69의 자세로 랩에 돌돌 싸인 그 몸을 만져 보았다. 아직까지 랩의 탄력을 지나쳐 살의 뭉글거림이 느껴지는 그 끔찍스러움…..
‘어쩌다가….어쩌다가….불쌍한 것 같으니라구…..’
‘덜컥…..’
‘안됩니더. 이리 막무가내로 들어가시면, 안됩니더……’
밖으로 가다말고, 누군가 밀치고 들어오는 서슬에 몸쌈이 벌어진 모양 이었다. 열린 문틈으로 보인 사람은 미주의 아버님 이었다.
‘들어 오시게 하지. 보호자 분이신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뵙는 거이 아닌 줄은 압니다만,…’
별 상관 없다는 듯이, 앞에 버티고 있는 진검사를 밀치고, 거실로 향하는 미주의 부친…벌써부터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고,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랩에 싸인 딸의 시신조차 만지질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서있는 초로의 노인…..이제 세상살이가 어느정도 만만한 나이라, 그 어떤 것에도 놀라고 흥분할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자식을 먼저, 그것도 이다지도 처참한 비명속에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은 물어보질 않아도 곁에서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진검사 였다.
‘자네가 검사가 되었다는 소식….미주를 통해 듣기는 했네만….’
‘죄송합니다. 제 발로 찾아가 뵈었어야 했는데…..’
‘그래, 이 지경이 되도록 자넨 아무것도 몰랐단 말인가? 그러고도 자네가 검산가, 무언가라구 내 앞에서 거들먹 댈텐가?’
‘저도 연락을 받고 온지, 얼마 안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저도 미처…..’
‘앞으로 시신은 어찌 할텐가? 우리가 데리고 가려고 해도 저렇게 꽁꽁 싸여 있으니….저 인간은 죽어서까지 우리 미주를 괴롭히면서 가는구만….저걸 사위라고 내가 여태까지 보고 있었으니….흑흑……’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아버님, 이 자리에서 시신을 인수 하시기는 어렵겠습니다. 부검을 원치 않으시면 몰라도…..’
‘부검은 해서 뭘 하겠나? 저렇게 죽어 자빠진 걸, 지 에미가 보면, 줄초상이 뻔할텐데….죽은 애를 두번 죽이고 싶은 맘 없네……부검은 됐네. 어서 시신이나 인수해 갈 수 있도록 힘이나 써 주게. 옛정이 조금치라도 남아 있다면….’
‘알겠습니다. 일단 사건으로 접수는 해야 하기에, 감식반이 도착해서 기초적인 검사와 뒤처리를 한 후에 병원으로 시신을 안치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시지요. 아직 사위 되시는 분, 보호자가 오질 않아서, 곧바로 움직이기는 그렇습니다. 이해 하시져?’
‘알겠네. 그 놈의 사돈이란 인간들이랑 얼굴 마주치기도 몸서리 치네. 그럼 집에서 연락 기다리겠네. 병원으로 안치되기 전에 연락이나 주게나…’
미주의 부친은 명함을 건네고, 자리를 떠버렸다. 곧 이어 도착할 사돈과의 조우가 죽기보다 싫었을 그 심정이 수긍이 가는 진검사였다. 이해관계와 복잡한 사연이 연결되어 있는듯한 두 집안의 다물어지지도 않을 균열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결코 외부의 눈과 시선들로 인해, 안으로 썩어 들어가면서도, 행복한 양, 문제 없는 것처럼 살아대던 두 사람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았던 눈치였다. 곧 이어, 퉁퉁 뿔은 표정의 감식반 인원들이 들어왔다. 들어서는 인원들 마다, 입들을 쩍쩍 벌리면서, 희한하게 벌어진 엽기적 살해 현장에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할까여? 여기서 분리 하기도 그렇고, 들고 나가기도 그 부피가 커서….저렇게 성인 남녀가 엉겨서 죽으면, 실어 내가기도 정말 힘든데…...이거 복상삽니까, 뭡니까?’
‘자넨 복상사 허면서, 지 스스로 질식해서 뒤지는 거 봤나? 겉에 감긴 저 랩이 뭔 이불처럼 보이나, 자네 눈엔?.........할 수 없지, 뭐, 주변 사진이나 자세히 각도에 유념해서 잘 찍어두고, 시체만 들고 나가야 쥐. 지문 채취나 잘 쫌 부탁해. 주변에 체모나 뭐 떨어진 것들 있으면 죄다 잘 모아 놓고….그리구, 얼결에 묻힌 나랑 이형사, 정형사 지문이 곳곳에 있을 꺼야. 응급차는 불렀나? 정형사, 바깥이 왜 이리 시끄러워?’
아니나 다를까 선우 팀장의 식구들이 달겨들어 바깥은 벌써부터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겨우 식구들을 진정시켜, 집으로 돌려 보내는 데만도 1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중이었다. 다행히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따라 붙지는 않고 있어서, 복잡함은 덜했다.
‘누군지, 정말 대단하네. 한 사람이 이 짓을 하기엔 두 사람이 너무 무거웠을 텐데…..한 놈이 아니라면, 정신병자가 쌍으루?…이거야, 원…. 이 정도 정신 상태라면, 지문이따나 남겼을까 싶네.’
진검사는 숨이 답답함을 느꼈다. 그토록 애타게 보고 싶었고, 그렇듯 차갑게 관계가, 심정이 정리되기도 전에, 죽음으로, 이런 난리통으로 서로에게 마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죽기보담 치가 떨리고 있었다.
‘이형사와 정형사는 시신이 안전하게 실려 나갈 때까지, 보안 철저히 유지하는 거 하며, 동네 소문 나지 않도록……. 특히나 기자들 눈에 띄질 않게 하구….감식반 사람들 철수하기 전까지 현장 보존에 신경 쫌 쓰구 말이야.’
‘그래두 위에 보고는…..’
‘그거야 내 몫이지 뭐. 두 사람은 현장 수습하고 복귀해. 난 부검 하는 곳으로 따라 붙을 테니…..’
‘아니, 보호자 분이 원치 않으시는 거 같던데…..’
‘말이 그렇지, 저렇게 시신이 랩에 싸여 뒤엉킨 채, 통째로다가니 병원으로 안치시켰다가 무슨 치도곤을 들으려구? 이미 사망한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사망한 정황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고 시신을 보호자에게 인도해야 될 거 아냐? 혹시라도 단서가 될만한 게 나올지, 어떻게 알겠나 말이야.’
진검사는 시신 덩어리 위에 침대 시트를 덮고, 나가는 뒤를 따라, 때마침 도착한 응급차에 같이 동승을 했다.
‘검사님, 어떻게 할까여?’
‘어떻게 하긴, 사망이 확실한 거 같은데, 부검보다 시신을 떼어놓고 쫌 보통의 모습으로 병원에 안치시키는 방향으로 처치를 해야지, 별 수 있겠어? 보호자들도 구지 부검을 원치 않으니……’
진검사는 차를 타고 가면서, 차의 진동에 따라 조금씩 흔들거리는 그 랩 덩어리를 물끄러미 쳐다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누가 민윤서와 도주하던 선우팀장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사실을 알았을까? 단지 이형사에게 말했을 뿐이고, 내가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두 사람 멀쩡하게 살아 있었는데….그리고나서, 채 5시간도 되질 않아서 저렇게 죽었다? 그리고, 선우 팀장의 호언장담처럼, 사건의 핵심이 될만한 물건을 쥐고 있다고 했는데, 그걸 뻔히 아는 녀석들이 팀장을 살려 놔도 모지랄 판에 깨끗이 죽여 없애? 그것도 마누라까지? 미주야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어째서 죽인거지? 미주의 작은 아버지가 황성의 회장이라서? 그럼 죽인 녀석은 황성측과 등을 돌리겠단 얘긴가? 아님, 자신들을 갖고 놀 수 있는 선우팀장과 황성측에 대한 쌍방 경고? 아니야. 경고라면 미주까지 따라 죽일 이유가 없잖아?....”
진검사는 차를 타고 가면서 이리저리 정리를 하려고 해도, 두 사람을 저지경으로 만든 세력이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저런 일을 저질렀는지 감이 안서고 있었다. 흡사 초등학교 운동회날 굴려대는 공만한 시체 덩어리를 싣고 들어가니, 모두의 시선을 모으는 것은 당연했다.
‘허이구 이거, 요즈음 맥없이 뜨는 스타, 진검사님 아니신가?’
‘안녕하셨는지여?’
‘아니, 숨은 돈만 쫓아 다니시느라, 손가락에 지폐 잉크가 마를 날 없으실 분이, 어떻게 이렇게 시체와 동승까정?’
‘김박사님, 저라고 뭐 살인사건 맡지마란 법 있습니까? 이게 쫌 그렇습니다.’
‘보기에도 그렇긴 허네만….당연히 긴급 이겠지?’
‘그래서 형사들 대신 제가 왔습니다.’
‘그래? 이건 특별 케이스 구만. 그래, 허는 일은 되는대로 막가고 있구?’
대기업의 돈쭐이나 긁어 대면서 마냥 드세다고 소문난 진검사가 머리를 조아리고, 직접 내방했다는 사실이, 그것도 수하 형사도 없이 왔다는 것만 가지고도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 있었다. 랩으로 싸인 덩어리를 검시대에 올려 놓는 데에만도 장정 네 사람이 소모된 큰 작업 이었다. 동글동글 어디하나 붙들 곳도 없이, 랩으로 칭칭 감아버린 두 시신은 그냥 번쩍 들지 않고서는 이동이 불가능 했기 때문이었다.
‘진검사…..이거 랩을 뜯어 재끼자면, 보통 일이 아닐텐데, 그냥 자르까?’
‘그러면, 혹여라도, 그 안에 남아 있을 지문이 동강날 수도 있질 않겠습니까? 보호자들이 부검은 원치를 않네요. 사건 보고상 챙길 수 있는 사진이나 기록 정도를 남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검을 원치 않는다!....흠….사인을 밝히길 원칠 않는다?…..이 정도 정성으로 시체를 쌀 때에는 지문 걱정할 정신빠진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아마 증거로 삼을만한 것은 이렇게 죽어서 알떵어리처럼 엉겨버린 시신 사진 뿐일걸세.’
‘그런가여? 그래도 뭐 할 수 없져. 보호자들이 워낙 완강하게 요구하고 있어서….’
‘게다가 아까 봐서 알겠지만, 밖에서 어렴풋하게 봐도, 쉽사리 끝날 일은 아닌 거 같거덩? 그저 사진이나 몇 장 박고 속성으로 병원으로 안치시키기는 어렵겠어. 시신의 손과 발이 타이밴드로 꽁꽁 결박된 거 자네도 보이지? 한 녀석이서 제압하고, 묶고, 랩으로 포장? 동시에 헐 수는 없었을 거야. 이런 공동작업을 했을 때에는 준비철저가 생명 아닐까? 저 랩이야, 찢어 발기던, 칼로 째건, 별 영양가 있는 내용은 나오지 않을테구…...’
‘그럼, 박사님 뜻대로 진행 하시져.’
‘그럴까?’
바쁜 와중에도 김박사에게 부탁을 한 진검사의 의도는 특히나 엽기적인 사체에 대한 부검에 있어서 독보적인 판단과 손끝을 지니고 있다는 명성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과시성이 농후한 사체를 진검사 자신도 보질 못했을뿐더러, 현재 키를 쥐고 있었던 선우 팀장의 사인을 뚜렷이 밝힘과 동시에, 미주의 혼을 어서 빨리 위로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이상 시신에 칼을 대면서 까지 비명에 간 두 사람을 다시금 괴롭히는 일만은 하고 싶질 않다는 보호자의 여망이 가슴 한켠에 걸리기는 했다.
‘자네, 눈빛이 많이 흔들리는구만. 이 사람들과 무슨 관계가 있었나?’
‘아녀…..뭐 꼭 그렇다기 보담은….’
‘글쎄, 아니면 뭐라고 꼬치꼬치 캐물을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해도, 자네 눈빛이 그냥 살해된 사체를 대하는 눈빛이 아니라서….’
‘그런가여?......여기 이 앞에 죽어 있는 여자……오래전 알던 제 옛 친구라서 그런 모양 입니다.’
진검사는 아주 솔직하게 밝히고 넘어갔다.
‘친구? 남녀 사이에 친구 어쩌고 하는 걸 보니, 자네도 쑥맥인가 보구만? 자네 소문 보담 사람 됨됨이가 되먹었는 걸! 망자 앞에서 솔직한 사람은 악인이 아닌 법이거덩. 어디 그럼 볼까?’
‘쫘….악’
단번에 메스로 틈을 내자 마자, 랩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좌우로 좌악 갈라졌다.
‘슈욱…’
내부와 통기가 되는 순간, 랩을 뚫고 들리는 그 소리…..소름이 돋고 있었다.
‘아마도 사인은 질식사 일 게야. 얼굴만 랩으로 싸서 피 한방울 흘리질 않고, 숨막히게 해서죽여버리는 것들도 있으니 말일세. 근데 자세 참, 묘하구만…..꼭 남자, 여자가 죽기전까지 서로의 성기를 죽도록 빠는 모습으로 묶어 놓은 거 하며…..’
김박사는 현석과 미주의 나신이 얽혀진 모습을 계속 사진으로 찍도록 어시스트 요원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음부에 입을 대고는 있는데, 현재 결박된 상태를 풀지 않고 보이는 바에 의하면, 일부 구토의 흔적도 보이고 있고, 질식의 과정에서 여성의 음순을 물어 재낀 것 같이 출혈도 되고 있구 말이야. 여성 측도 마찬가지이긴 하구만. 이미 범인들이 남자의 성기를 입안 가득히 물려놓은 상태에서 결박을 해서 인지, 여성도, 구토물로 보이는…이건 구토물에 다가니.., 정액 처럼 보이기도 하는구만. 성분을 분석해 봐야 알겠지만…양쪽 다 배뇨, 배변을 한 걸로 보아, 악을 쓰긴 썼는 모냥이네…’
‘아니, 정액 이라녀? 그럼 섹스를 하다가 저렇게 묶였다는 건가여?’
‘그렇게 볼 순 없지. 자네 사형수의 사망확인을 할 때, 의사들이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아나?’
‘글쎄여. 참관은 하고, 최종 사망확인까지 있어는 봤는데….’
‘그게 바로 사정일세. 죽는 순간, 그 숨이 깔딱 깔딱 넘어가는 순간, 최고의 오르가즘이 덮쳐 온다는 게야. 그와 동시에 숨을 놓고, 그때까지 무의식적으로 붙들고 있던 오줌과 똥을 싸게 되지. 똥오줌이야, 이해가 되지만, 내가 죽어보질 않았으니, 그 현상이 배뇨나 배변 같은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님, 진짜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오르가즘에 의한 최후의 사정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지. 저 두 사람의 경우, 숨이 끊어지는 와중에 그 밀폐된 공간에서 눈 앞으로 상대의 똥이며, 오줌, 여자의 입으로는 남자의 정액까지 터져 나왔을 테니, 아마 죽으면서도 기분이 꽤나 더러웠을 거야. 이건 시신의 혼령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고 볼 수도 있구…..’
‘저 타이밴드는 좀 큰 것 같지 않습니까?’
‘보통 전기선을 고를 때 쓰는 타이밴드는 길이가 평균 한뼘 정도 되는데, 저건 아주 길고 굵지? 아마도 특수한 용도에 쓰이는 것일게야. 쉽사리 자르기가 영 그렇네. 근데 저 자세로 사람을 죽여서야…..쯧쯧…죽을때까지, 저 짓거리나 하다가 죽으란 의민지…참, 범인의 의도를 알다가도 모르겠네……보고 있는 자네도 가슴이 무척 쓰리겠구만…..그래도 어쩌겠나? 어여 분리해서 부검을 해야 할텐데…... 아마도 숨이 찬 와중에 마구 잡이로 들이킨 분뇨가 이미 폐속으로 밀쳐 들어가 부패하고 있을 타이밍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뱃속에 있으나, 바깥으로 나오나, 대장균이 균인 건 확실하거덩? 부패의 밑거름이지….뭐 보호자가 원치 않는다고 하니, 자세나 잡아서 병원으로 안치시킬 밖에…..’
‘그렇게 하시져.’
김박사는 손목과 발목에 묶여 있던 타이밴드를 절단하고, 시신의 69자세를 유지시키던 몸을 감고 있던 얇은 끈도 떼어내어 증거물로 분류해 놓았다. 그리고, 시반의 상태를 사진증거로 남기고, 서로의 입주변에 남아있는 분비물들도 깨끗이 수거해서 따로 보관을 시켰다.
‘이제 대충 끝났구만. 자 이제 자세만 잡아주면, 침대에 올려 놔도 별 무리는 없겠구만. 뭐, 남자든 여자든, 죽기전에 발버둥 치면서, 본능적으로 한 행동들 때문에 서로의 성기부위에 손상이 가 있기는 하지만, 어쩌겠나? 가족들이 알아서 하겠지. 자, 내 임무는 여기까지 일세. 수거한 증거물에 대한 분석은 시간을 두고 해줌세. 나도 바쁜 일이 많아서……’
‘괜찮습니다. 천천히 해 주셔도…..’
진검사는 김박사를 뒤로 하고, 돌아 나오면서, 미주의 부친에게 전화를 넣었다. 시신을 수습해서 한, 두 시간내에 병원으로 안치하겠다는 연락이었다. 대강의 상황을 정리하고서 올려다 본 하늘에서는 이 형사의 말대로 이미 비가 진눈깨비로 바뀌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디로 모실깝셔?’
‘글쎄여…..’
‘캬, 눈발은 날리는데, 갈 곳을 모르는 손님이라, 요럴때 택시 모는 맛이 난다니깐여?’
진검사는 윤택의 집으로 가려다 그만 행선지를 말하는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다.
‘척 보아하니, 가슴이 횡하시구만여. 자, 노래나 들으시면서, 어디로 갈건지, 맴을 결정허쇼. 돌아봐야 얼마나 되겠수? 내가 아까 그 CD를 어따 뒀더라?’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던 진검사의 귓가에 어디선가 익히 들어 본 노래가 들리고 있었다.
‘이거 누구 노랩니까?’
‘듣기 좋져? 저도 이 나이가 되서 택시를 몰면서도, 오늘처럼 이렇게 눈빨 날리는 꿀꿀한 날에 이 노랠 틀면, 콧등이 다 시큰해 진다우. 이 여자 가수, 평소 노래가 짱꼴라들 음조라서 잘 안들었는데, 이 노랜 정말 좋거덩여? 손님처럼 얼굴에 많은 얘기를 담고 있는 사람들이야, 더 하겠지만서도….’
‘좀 크게 틀어 주실래여?’
‘그럽시다.’
‘…..얼마나
널 사랑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제와
널 잊으라하면 넌 잊을 수 있니?
내색조차 할 수 없었던,
내 무던한 사랑에
밤새워 울며 슬퍼했어.
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어둠의 추억 때문에,
아침은 맞을수도 없어…..’
진검사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 내리고 있었다. 창밖의 눈발은 점점 굵어지기만 했다.
‘…오, 이제와
너의 사랑을 기대하기엔
너무 늦은 이별 앞에서,
느껴지지 않는
너의 작은 입술이 그리울 거야.
노을지는 창가에 앉아
함께 바라본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어.
꿈을 꾸듯 사랑할때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우리는 행복했으니까?’
백밀러를 통해 틀어진 수도꼭지처럼 울먹이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려대는 진검사를 훔쳐보던 운전기사도 이제는 흥얼거림조차 멈추고 있었다. 그건 미처 흘릴 새가 없던 진검사의 때 늦은 슬픔이었다.
‘….오, 이제와
너의 사랑을 기대하기엔
너무 늦은 이별 앞에서
그래 널 잊겠다고
더 말할 수 있어.
맘에 없는 몹쓸 그 말들….
단 한번 맺은
사랑만으로 살아가는 난
널 잊고 말거야.
그땐 나의 사랑도
또 나의 기대도,
끄때쯤 잊혀지겠지.
흰눈이 오면…..’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면서, 진검사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그 눈송이가 마냥 흐려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노래는 그녀가 죽어가던 그 곳에서 진검사를 기다리며, 진검사의 손을 통해 멈추어 질 때까지 흐르던 바로 그 노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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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부 : 흰눈이 오면
진검사가 미주의 집으로 도착한 시각은 늦은 저녁이었다. 추적추적 겨울을 부르는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마음은 더욱 심란 했고, 밖의 기온은 빗속에서 점차 떨어지고 있는 듯, 입밖으로 훅훅대는 입김이 허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검사는 가는 도중에도, 혹여 죽지는 않았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있을 뿐이었다.
‘띵동….띵동…..띵동….왜 아무 소리가 없어?’
진검사의 급한 맘은 빨리 대답을 하질 않고 안에서 뜸을 들이고 있는 정형사의 태도도 성가셔 보이게 했다.
‘누굽니꺼?....검사님 이라예?’
정형사는 문을 잠그고 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응, 나야, 이 형사도 같이 왔어. 어서 문 열라구. 감식반 아직 않 왔지?’
문을 열면서도, 진검사는 긴가민가한 상태 였다. 실내는 약간 어두운 상태 였고, 어디에선가 틀어 놓은 음악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거실로 걸어가는 정형사의 뒤통수에다 대고,
‘정형사, 정신 시끄러운데, 저 음악 쫌 꺼. 다리가 떨려서 제대루 서 있지도 못하겠다는 인간이 뭔 여유가 있어서 음악은 틀고 있대? 아니, 그 나이 처먹고도 무서울 때마다 혼자 노래 부르는 초등학생도 아니구설랑….’
‘지도 끄고 싶었는데예, 스위치고, 전축이고 간에 보여야 말이지예?, 어데서 흘러 나오는지도 모르겠쓰예…돈 많은 인간들은 음악또 안보이게 어데 짱박아 놓고 듣는 모양입니더. 지는 몬하겠쓰예…..지송함니더….’
‘검사님..이거, 이거….보이세여?’
‘이형사, 니 밥 무긋나? 안 묵었스믄 보지 말그래이.’
아직까지 총을 빼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정형사의 커다랗게 떠진 두 눈이 상황의 대강을 설명하고는 있었다. 음악을 끄지도 못한 상황에서, 세 사람은 눈 앞의 커다란 덩어리에 시선이 머물고야 만다.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거실에는 왠 바위덩어리 같은 대형 알 같은 물체가 놓여 있었고, 별다른 흔적은 보이질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이소.’
정형사가 가리키는 곳을 주저 앉아서 살펴보는 순간,
‘헉! 미주?…..’
하면서 진검사도 그 자리에서 주저 앉고 말았다. 그건 눈을 흡부릅뜬 채로, 현석의 것으로 보이는 좇대가 입안에 가득찬 채로 무언가를 토해내면서, 얼핏 보기에 똥과 오줌이 뒤섞여, 숨이 멎어 있는 미주의 공포스런 얼굴 이었다. 그 알처럼 생긴 둥근 모양은 바로 현석과 미주를 발가벗긴 채, 69의 섹스자세처럼 만들어 놓고 결박한 뒤에, 랩으로 칭칭 감아 놓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딴딴하게 감겨 있는 랩으로 인해 두 사람은 질식사를 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을 풀 수도 없었다. 이미 사망한 것이 분명한 모습 이었고, 임의로 건드렸다가 초동수사의 맥을 검사 자신이 흐트려놓았다는 얘기를 들을까 우려 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아시는 분입니까? 반대편에 있는 시체는 선우팀장인 거 같은데….선우 팀장은 내일 아침, 검찰로 출두하기로 되어있질 않았습니까? 누구죠? 대체 이렇게 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이?’
그건 정말 이름하야 엽기적인 살인 현장이었다.
‘내 살다살다, 이리 숭악한 꼴은 첨 본데이. 이기 사람이 할 짓이가?, 으이?’
‘나 바람 쫌 쐬고….’
진검사는 갑자기 치미는 어지러움과 동시에 구토가 밀려왔다. 아무리 끔찍한 사체의 부검도 아무런 감정없이 목도했던 자신인데, 가까운 지인의 그런 모습은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바라보기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우엑…..우엑….’
‘등 쫌 뚜드려 드릴까예?’
‘흡….쯥..아니야…됐어. 담배 쫌 가진 거 있나?’
‘여, 있심더. 실내에서는 피지 마이소. 감식반 아그들이 뭐라 할꺼라예. 베란다로 나가시소.’
‘드르륵….’
베란다를 열자, 바람이 밀쳐 들어왔다. 진검사는 정형사가 붙여준 담배를 깊이 빨아 마셨다.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시는 분입니꺼?’
‘…….’
‘마, 맨 정신으로 보기도 끔찍한데, 더구나 아는 분이라카면 더하지예. 지도 그렇다 아입니꺼? 마, 이자뿌소. 그기 상책임니더.’
‘감식반이 지지래 하기전에 어서 연고자에게 연락이나 해 둬….’
‘어디다 하까예?’
‘재성케미칼의 외동따님 이니까, 회사 비서실 쪽으로 하면 될꺼야.’
‘알겠심더.’
진검사는 전화를 걸고 있는 정형사에게 담배를 두어개피 더 빌려서는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 보면서 계속 줄담배를 태웠다. 그건 비명에 간 미주에 대한 향불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실내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은 계속되고 있어서, 진검사의 심사를 더욱 괴롭히고 있기도 했다.
‘이형사, 전축 쫌 제발 꺼라. 안되면 부셔 버리던가….’
‘저도 계속 찾고는 있는데, 이거 쉽사리 건드리기도 그렇고…..’
‘손뼉 같은 거 한번 쳐봐. 그렇게 쌩뚱맞은 방법으로 가전기기를 코딩해 놓은 치들 요즘 많잖아?’
‘그러까여? 짝짝…..짝짝…..별 소용 없는데여? 그럼 뭐지?’
그때 진검사는 미주와의 작은 기억이 떠 올랐다. 언제나 만날때면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소리를 내보라고 하면서, 자신을 재촉하던 그 동작….가수들이 나와서 흥을 맞추기 위해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 하다며, 언제고 자신도 그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그녀와의 기억….진검사는 거실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음악은 신기하리만치 동시에 멈추고 말았다.
‘히야..어떻게 아셨대여?’
이 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열린 창밖으로 싸이렌 소리가 가까워 지고 있어서, 음산한 가을비는 더욱 사람의 마음을 초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검사님, 비가 진눈깨비가 되지 싶은데여?’
‘감식반이 올려는 모양이네. 이 형사, 어서 나가서 갸들 이 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차량의 경광등 끄고, 얌전히 주차 시키고 들어오라구 해. 입조심들 시키고….’
‘네.’
이형사를 따라 정형사까지 나가고, 둥그런 알처럼 거실에 버티고 있는 두 사람의 시신을 내려다 보고 있자니, 진검사의 가슴에서는 울컥하는 것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제서야, 진검사는 그 랩으로 싸인 안쪽에 한때나마 사랑했던 미주가 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미쳐 손에 낀 고무장갑 채, 69의 자세로 랩에 돌돌 싸인 그 몸을 만져 보았다. 아직까지 랩의 탄력을 지나쳐 살의 뭉글거림이 느껴지는 그 끔찍스러움…..
‘어쩌다가….어쩌다가….불쌍한 것 같으니라구…..’
‘덜컥…..’
‘안됩니더. 이리 막무가내로 들어가시면, 안됩니더……’
밖으로 가다말고, 누군가 밀치고 들어오는 서슬에 몸쌈이 벌어진 모양 이었다. 열린 문틈으로 보인 사람은 미주의 아버님 이었다.
‘들어 오시게 하지. 보호자 분이신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뵙는 거이 아닌 줄은 압니다만,…’
별 상관 없다는 듯이, 앞에 버티고 있는 진검사를 밀치고, 거실로 향하는 미주의 부친…벌써부터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고,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랩에 싸인 딸의 시신조차 만지질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서있는 초로의 노인…..이제 세상살이가 어느정도 만만한 나이라, 그 어떤 것에도 놀라고 흥분할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자식을 먼저, 그것도 이다지도 처참한 비명속에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은 물어보질 않아도 곁에서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진검사 였다.
‘자네가 검사가 되었다는 소식….미주를 통해 듣기는 했네만….’
‘죄송합니다. 제 발로 찾아가 뵈었어야 했는데…..’
‘그래, 이 지경이 되도록 자넨 아무것도 몰랐단 말인가? 그러고도 자네가 검산가, 무언가라구 내 앞에서 거들먹 댈텐가?’
‘저도 연락을 받고 온지, 얼마 안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저도 미처…..’
‘앞으로 시신은 어찌 할텐가? 우리가 데리고 가려고 해도 저렇게 꽁꽁 싸여 있으니….저 인간은 죽어서까지 우리 미주를 괴롭히면서 가는구만….저걸 사위라고 내가 여태까지 보고 있었으니….흑흑……’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아버님, 이 자리에서 시신을 인수 하시기는 어렵겠습니다. 부검을 원치 않으시면 몰라도…..’
‘부검은 해서 뭘 하겠나? 저렇게 죽어 자빠진 걸, 지 에미가 보면, 줄초상이 뻔할텐데….죽은 애를 두번 죽이고 싶은 맘 없네……부검은 됐네. 어서 시신이나 인수해 갈 수 있도록 힘이나 써 주게. 옛정이 조금치라도 남아 있다면….’
‘알겠습니다. 일단 사건으로 접수는 해야 하기에, 감식반이 도착해서 기초적인 검사와 뒤처리를 한 후에 병원으로 시신을 안치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시지요. 아직 사위 되시는 분, 보호자가 오질 않아서, 곧바로 움직이기는 그렇습니다. 이해 하시져?’
‘알겠네. 그 놈의 사돈이란 인간들이랑 얼굴 마주치기도 몸서리 치네. 그럼 집에서 연락 기다리겠네. 병원으로 안치되기 전에 연락이나 주게나…’
미주의 부친은 명함을 건네고, 자리를 떠버렸다. 곧 이어 도착할 사돈과의 조우가 죽기보다 싫었을 그 심정이 수긍이 가는 진검사였다. 이해관계와 복잡한 사연이 연결되어 있는듯한 두 집안의 다물어지지도 않을 균열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결코 외부의 눈과 시선들로 인해, 안으로 썩어 들어가면서도, 행복한 양, 문제 없는 것처럼 살아대던 두 사람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았던 눈치였다. 곧 이어, 퉁퉁 뿔은 표정의 감식반 인원들이 들어왔다. 들어서는 인원들 마다, 입들을 쩍쩍 벌리면서, 희한하게 벌어진 엽기적 살해 현장에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할까여? 여기서 분리 하기도 그렇고, 들고 나가기도 그 부피가 커서….저렇게 성인 남녀가 엉겨서 죽으면, 실어 내가기도 정말 힘든데…...이거 복상삽니까, 뭡니까?’
‘자넨 복상사 허면서, 지 스스로 질식해서 뒤지는 거 봤나? 겉에 감긴 저 랩이 뭔 이불처럼 보이나, 자네 눈엔?.........할 수 없지, 뭐, 주변 사진이나 자세히 각도에 유념해서 잘 찍어두고, 시체만 들고 나가야 쥐. 지문 채취나 잘 쫌 부탁해. 주변에 체모나 뭐 떨어진 것들 있으면 죄다 잘 모아 놓고….그리구, 얼결에 묻힌 나랑 이형사, 정형사 지문이 곳곳에 있을 꺼야. 응급차는 불렀나? 정형사, 바깥이 왜 이리 시끄러워?’
아니나 다를까 선우 팀장의 식구들이 달겨들어 바깥은 벌써부터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겨우 식구들을 진정시켜, 집으로 돌려 보내는 데만도 1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중이었다. 다행히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따라 붙지는 않고 있어서, 복잡함은 덜했다.
‘누군지, 정말 대단하네. 한 사람이 이 짓을 하기엔 두 사람이 너무 무거웠을 텐데…..한 놈이 아니라면, 정신병자가 쌍으루?…이거야, 원…. 이 정도 정신 상태라면, 지문이따나 남겼을까 싶네.’
진검사는 숨이 답답함을 느꼈다. 그토록 애타게 보고 싶었고, 그렇듯 차갑게 관계가, 심정이 정리되기도 전에, 죽음으로, 이런 난리통으로 서로에게 마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죽기보담 치가 떨리고 있었다.
‘이형사와 정형사는 시신이 안전하게 실려 나갈 때까지, 보안 철저히 유지하는 거 하며, 동네 소문 나지 않도록……. 특히나 기자들 눈에 띄질 않게 하구….감식반 사람들 철수하기 전까지 현장 보존에 신경 쫌 쓰구 말이야.’
‘그래두 위에 보고는…..’
‘그거야 내 몫이지 뭐. 두 사람은 현장 수습하고 복귀해. 난 부검 하는 곳으로 따라 붙을 테니…..’
‘아니, 보호자 분이 원치 않으시는 거 같던데…..’
‘말이 그렇지, 저렇게 시신이 랩에 싸여 뒤엉킨 채, 통째로다가니 병원으로 안치시켰다가 무슨 치도곤을 들으려구? 이미 사망한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사망한 정황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고 시신을 보호자에게 인도해야 될 거 아냐? 혹시라도 단서가 될만한 게 나올지, 어떻게 알겠나 말이야.’
진검사는 시신 덩어리 위에 침대 시트를 덮고, 나가는 뒤를 따라, 때마침 도착한 응급차에 같이 동승을 했다.
‘검사님, 어떻게 할까여?’
‘어떻게 하긴, 사망이 확실한 거 같은데, 부검보다 시신을 떼어놓고 쫌 보통의 모습으로 병원에 안치시키는 방향으로 처치를 해야지, 별 수 있겠어? 보호자들도 구지 부검을 원치 않으니……’
진검사는 차를 타고 가면서, 차의 진동에 따라 조금씩 흔들거리는 그 랩 덩어리를 물끄러미 쳐다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누가 민윤서와 도주하던 선우팀장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사실을 알았을까? 단지 이형사에게 말했을 뿐이고, 내가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두 사람 멀쩡하게 살아 있었는데….그리고나서, 채 5시간도 되질 않아서 저렇게 죽었다? 그리고, 선우 팀장의 호언장담처럼, 사건의 핵심이 될만한 물건을 쥐고 있다고 했는데, 그걸 뻔히 아는 녀석들이 팀장을 살려 놔도 모지랄 판에 깨끗이 죽여 없애? 그것도 마누라까지? 미주야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어째서 죽인거지? 미주의 작은 아버지가 황성의 회장이라서? 그럼 죽인 녀석은 황성측과 등을 돌리겠단 얘긴가? 아님, 자신들을 갖고 놀 수 있는 선우팀장과 황성측에 대한 쌍방 경고? 아니야. 경고라면 미주까지 따라 죽일 이유가 없잖아?....”
진검사는 차를 타고 가면서 이리저리 정리를 하려고 해도, 두 사람을 저지경으로 만든 세력이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저런 일을 저질렀는지 감이 안서고 있었다. 흡사 초등학교 운동회날 굴려대는 공만한 시체 덩어리를 싣고 들어가니, 모두의 시선을 모으는 것은 당연했다.
‘허이구 이거, 요즈음 맥없이 뜨는 스타, 진검사님 아니신가?’
‘안녕하셨는지여?’
‘아니, 숨은 돈만 쫓아 다니시느라, 손가락에 지폐 잉크가 마를 날 없으실 분이, 어떻게 이렇게 시체와 동승까정?’
‘김박사님, 저라고 뭐 살인사건 맡지마란 법 있습니까? 이게 쫌 그렇습니다.’
‘보기에도 그렇긴 허네만….당연히 긴급 이겠지?’
‘그래서 형사들 대신 제가 왔습니다.’
‘그래? 이건 특별 케이스 구만. 그래, 허는 일은 되는대로 막가고 있구?’
대기업의 돈쭐이나 긁어 대면서 마냥 드세다고 소문난 진검사가 머리를 조아리고, 직접 내방했다는 사실이, 그것도 수하 형사도 없이 왔다는 것만 가지고도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 있었다. 랩으로 싸인 덩어리를 검시대에 올려 놓는 데에만도 장정 네 사람이 소모된 큰 작업 이었다. 동글동글 어디하나 붙들 곳도 없이, 랩으로 칭칭 감아버린 두 시신은 그냥 번쩍 들지 않고서는 이동이 불가능 했기 때문이었다.
‘진검사…..이거 랩을 뜯어 재끼자면, 보통 일이 아닐텐데, 그냥 자르까?’
‘그러면, 혹여라도, 그 안에 남아 있을 지문이 동강날 수도 있질 않겠습니까? 보호자들이 부검은 원치를 않네요. 사건 보고상 챙길 수 있는 사진이나 기록 정도를 남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검을 원치 않는다!....흠….사인을 밝히길 원칠 않는다?…..이 정도 정성으로 시체를 쌀 때에는 지문 걱정할 정신빠진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아마 증거로 삼을만한 것은 이렇게 죽어서 알떵어리처럼 엉겨버린 시신 사진 뿐일걸세.’
‘그런가여? 그래도 뭐 할 수 없져. 보호자들이 워낙 완강하게 요구하고 있어서….’
‘게다가 아까 봐서 알겠지만, 밖에서 어렴풋하게 봐도, 쉽사리 끝날 일은 아닌 거 같거덩? 그저 사진이나 몇 장 박고 속성으로 병원으로 안치시키기는 어렵겠어. 시신의 손과 발이 타이밴드로 꽁꽁 결박된 거 자네도 보이지? 한 녀석이서 제압하고, 묶고, 랩으로 포장? 동시에 헐 수는 없었을 거야. 이런 공동작업을 했을 때에는 준비철저가 생명 아닐까? 저 랩이야, 찢어 발기던, 칼로 째건, 별 영양가 있는 내용은 나오지 않을테구…...’
‘그럼, 박사님 뜻대로 진행 하시져.’
‘그럴까?’
바쁜 와중에도 김박사에게 부탁을 한 진검사의 의도는 특히나 엽기적인 사체에 대한 부검에 있어서 독보적인 판단과 손끝을 지니고 있다는 명성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과시성이 농후한 사체를 진검사 자신도 보질 못했을뿐더러, 현재 키를 쥐고 있었던 선우 팀장의 사인을 뚜렷이 밝힘과 동시에, 미주의 혼을 어서 빨리 위로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이상 시신에 칼을 대면서 까지 비명에 간 두 사람을 다시금 괴롭히는 일만은 하고 싶질 않다는 보호자의 여망이 가슴 한켠에 걸리기는 했다.
‘자네, 눈빛이 많이 흔들리는구만. 이 사람들과 무슨 관계가 있었나?’
‘아녀…..뭐 꼭 그렇다기 보담은….’
‘글쎄, 아니면 뭐라고 꼬치꼬치 캐물을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해도, 자네 눈빛이 그냥 살해된 사체를 대하는 눈빛이 아니라서….’
‘그런가여?......여기 이 앞에 죽어 있는 여자……오래전 알던 제 옛 친구라서 그런 모양 입니다.’
진검사는 아주 솔직하게 밝히고 넘어갔다.
‘친구? 남녀 사이에 친구 어쩌고 하는 걸 보니, 자네도 쑥맥인가 보구만? 자네 소문 보담 사람 됨됨이가 되먹었는 걸! 망자 앞에서 솔직한 사람은 악인이 아닌 법이거덩. 어디 그럼 볼까?’
‘쫘….악’
단번에 메스로 틈을 내자 마자, 랩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좌우로 좌악 갈라졌다.
‘슈욱…’
내부와 통기가 되는 순간, 랩을 뚫고 들리는 그 소리…..소름이 돋고 있었다.
‘아마도 사인은 질식사 일 게야. 얼굴만 랩으로 싸서 피 한방울 흘리질 않고, 숨막히게 해서죽여버리는 것들도 있으니 말일세. 근데 자세 참, 묘하구만…..꼭 남자, 여자가 죽기전까지 서로의 성기를 죽도록 빠는 모습으로 묶어 놓은 거 하며…..’
김박사는 현석과 미주의 나신이 얽혀진 모습을 계속 사진으로 찍도록 어시스트 요원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음부에 입을 대고는 있는데, 현재 결박된 상태를 풀지 않고 보이는 바에 의하면, 일부 구토의 흔적도 보이고 있고, 질식의 과정에서 여성의 음순을 물어 재낀 것 같이 출혈도 되고 있구 말이야. 여성 측도 마찬가지이긴 하구만. 이미 범인들이 남자의 성기를 입안 가득히 물려놓은 상태에서 결박을 해서 인지, 여성도, 구토물로 보이는…이건 구토물에 다가니.., 정액 처럼 보이기도 하는구만. 성분을 분석해 봐야 알겠지만…양쪽 다 배뇨, 배변을 한 걸로 보아, 악을 쓰긴 썼는 모냥이네…’
‘아니, 정액 이라녀? 그럼 섹스를 하다가 저렇게 묶였다는 건가여?’
‘그렇게 볼 순 없지. 자네 사형수의 사망확인을 할 때, 의사들이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아나?’
‘글쎄여. 참관은 하고, 최종 사망확인까지 있어는 봤는데….’
‘그게 바로 사정일세. 죽는 순간, 그 숨이 깔딱 깔딱 넘어가는 순간, 최고의 오르가즘이 덮쳐 온다는 게야. 그와 동시에 숨을 놓고, 그때까지 무의식적으로 붙들고 있던 오줌과 똥을 싸게 되지. 똥오줌이야, 이해가 되지만, 내가 죽어보질 않았으니, 그 현상이 배뇨나 배변 같은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님, 진짜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오르가즘에 의한 최후의 사정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지. 저 두 사람의 경우, 숨이 끊어지는 와중에 그 밀폐된 공간에서 눈 앞으로 상대의 똥이며, 오줌, 여자의 입으로는 남자의 정액까지 터져 나왔을 테니, 아마 죽으면서도 기분이 꽤나 더러웠을 거야. 이건 시신의 혼령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고 볼 수도 있구…..’
‘저 타이밴드는 좀 큰 것 같지 않습니까?’
‘보통 전기선을 고를 때 쓰는 타이밴드는 길이가 평균 한뼘 정도 되는데, 저건 아주 길고 굵지? 아마도 특수한 용도에 쓰이는 것일게야. 쉽사리 자르기가 영 그렇네. 근데 저 자세로 사람을 죽여서야…..쯧쯧…죽을때까지, 저 짓거리나 하다가 죽으란 의민지…참, 범인의 의도를 알다가도 모르겠네……보고 있는 자네도 가슴이 무척 쓰리겠구만…..그래도 어쩌겠나? 어여 분리해서 부검을 해야 할텐데…... 아마도 숨이 찬 와중에 마구 잡이로 들이킨 분뇨가 이미 폐속으로 밀쳐 들어가 부패하고 있을 타이밍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뱃속에 있으나, 바깥으로 나오나, 대장균이 균인 건 확실하거덩? 부패의 밑거름이지….뭐 보호자가 원치 않는다고 하니, 자세나 잡아서 병원으로 안치시킬 밖에…..’
‘그렇게 하시져.’
김박사는 손목과 발목에 묶여 있던 타이밴드를 절단하고, 시신의 69자세를 유지시키던 몸을 감고 있던 얇은 끈도 떼어내어 증거물로 분류해 놓았다. 그리고, 시반의 상태를 사진증거로 남기고, 서로의 입주변에 남아있는 분비물들도 깨끗이 수거해서 따로 보관을 시켰다.
‘이제 대충 끝났구만. 자 이제 자세만 잡아주면, 침대에 올려 놔도 별 무리는 없겠구만. 뭐, 남자든 여자든, 죽기전에 발버둥 치면서, 본능적으로 한 행동들 때문에 서로의 성기부위에 손상이 가 있기는 하지만, 어쩌겠나? 가족들이 알아서 하겠지. 자, 내 임무는 여기까지 일세. 수거한 증거물에 대한 분석은 시간을 두고 해줌세. 나도 바쁜 일이 많아서……’
‘괜찮습니다. 천천히 해 주셔도…..’
진검사는 김박사를 뒤로 하고, 돌아 나오면서, 미주의 부친에게 전화를 넣었다. 시신을 수습해서 한, 두 시간내에 병원으로 안치하겠다는 연락이었다. 대강의 상황을 정리하고서 올려다 본 하늘에서는 이 형사의 말대로 이미 비가 진눈깨비로 바뀌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디로 모실깝셔?’
‘글쎄여…..’
‘캬, 눈발은 날리는데, 갈 곳을 모르는 손님이라, 요럴때 택시 모는 맛이 난다니깐여?’
진검사는 윤택의 집으로 가려다 그만 행선지를 말하는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다.
‘척 보아하니, 가슴이 횡하시구만여. 자, 노래나 들으시면서, 어디로 갈건지, 맴을 결정허쇼. 돌아봐야 얼마나 되겠수? 내가 아까 그 CD를 어따 뒀더라?’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던 진검사의 귓가에 어디선가 익히 들어 본 노래가 들리고 있었다.
‘이거 누구 노랩니까?’
‘듣기 좋져? 저도 이 나이가 되서 택시를 몰면서도, 오늘처럼 이렇게 눈빨 날리는 꿀꿀한 날에 이 노랠 틀면, 콧등이 다 시큰해 진다우. 이 여자 가수, 평소 노래가 짱꼴라들 음조라서 잘 안들었는데, 이 노랜 정말 좋거덩여? 손님처럼 얼굴에 많은 얘기를 담고 있는 사람들이야, 더 하겠지만서도….’
‘좀 크게 틀어 주실래여?’
‘그럽시다.’
‘…..얼마나
널 사랑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제와
널 잊으라하면 넌 잊을 수 있니?
내색조차 할 수 없었던,
내 무던한 사랑에
밤새워 울며 슬퍼했어.
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어둠의 추억 때문에,
아침은 맞을수도 없어…..’
진검사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 내리고 있었다. 창밖의 눈발은 점점 굵어지기만 했다.
‘…오, 이제와
너의 사랑을 기대하기엔
너무 늦은 이별 앞에서,
느껴지지 않는
너의 작은 입술이 그리울 거야.
노을지는 창가에 앉아
함께 바라본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어.
꿈을 꾸듯 사랑할때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우리는 행복했으니까?’
백밀러를 통해 틀어진 수도꼭지처럼 울먹이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려대는 진검사를 훔쳐보던 운전기사도 이제는 흥얼거림조차 멈추고 있었다. 그건 미처 흘릴 새가 없던 진검사의 때 늦은 슬픔이었다.
‘….오, 이제와
너의 사랑을 기대하기엔
너무 늦은 이별 앞에서
그래 널 잊겠다고
더 말할 수 있어.
맘에 없는 몹쓸 그 말들….
단 한번 맺은
사랑만으로 살아가는 난
널 잊고 말거야.
그땐 나의 사랑도
또 나의 기대도,
끄때쯤 잊혀지겠지.
흰눈이 오면…..’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면서, 진검사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그 눈송이가 마냥 흐려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노래는 그녀가 죽어가던 그 곳에서 진검사를 기다리며, 진검사의 손을 통해 멈추어 질 때까지 흐르던 바로 그 노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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