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고해성사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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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년시절.
그 시절 내 정신세계를 지배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 칼릴 지브란.
화가이자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
우습게도 미술학도인 내가 칼릴 지브란을 알게 된 것은 대학의 철학시간이었다.
인간 내면의 순수한 영혼을 찬양한 지브란.
.... 헤르만 헷세.
난 <데미안>을 세 번이나 읽었다.
처음 고 2 때쯤, 읽고서 그때부터 헤르만 헷세를 숭배했다.
그 뒤로 대학 때 한번 더 읽었고, 군대서 한번 더 읽었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는 나는 꼭 <데미안>이라고 했다.
....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는 수필집,
한 지식인의 고뇌와 감수성이 가슴에 와 닿았다.
...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 등.
나는 가끔,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같은 자전적 소설을 쓰고 싶었다.
싱클레어랑 동일시했으므로.
하지만, 난...
소설 쓰는 공부를 못했을 뿐 만 아니라
.... ... 결정적으로 내 삶이 순결하지 못했으므로,
즉,
청년시절 이후로 나는 늘
..... 순수와 순결보다는...
뒤틀린 욕망과
수채구덩이 같은 욕정에 빠져 허우적거렸으므로,
그래서 그건 한낱
잘못된 엉터리 꿈일 수밖에 없었다.
.... 소설가가 되거나 시인이 되려면 적어도
더러운 욕정은 다스릴 줄 아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설가가 매일 밤 섹스를 한다는 것은
.....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시인이 매일 밤 여자나 껴안고 있어서 되겠는가.
........... 결국 나는,
내 스스로 자격미달이었다.
...
몇 년 전, 90년대 중반,
우연히 신경숙의 <외딴 방>을 읽었다.
그 시절 나는 제법 잘나가던 CF 감독이었다.
해외촬영이 잦았는데,
언젠가 유럽으로 떠나면서 공항의 간이서점에서 그 책이 눈에 띄었다.
나는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쉬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나니 겨우 시베리아 상공을 날고 있었다.
2편을 마저 사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그렇게까지 나를 사로잡을 책이라는 것을 짐작 못했으므로,
2편을 사지 않았던 것이다.
20 여일 간의 출장동안 <외딴 방>은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름답고 간결한 문체의 자전적 소설,
마치 수 십 년 간 내뱉고 싶던 言語를 참고 참으면서
정제하였다가 꺼내놓은 듯한 言語...
자기 내면의 앙금들.
거기다 그 소설 속에 나오는,
작가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나 칼릴 지브란, 헤르만 헷세 등...
바로 내 청년시절에 내게도 감동을 주던 바로 그 책들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외딴 방> 첫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 1 장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오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 잘 그르니에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
..
바로 그 순간,
그래,
그렇다.
문득 그렇게 나도 내 젊은 시절의 그 방황을...
<외딴 방>처럼 나와 내 가족 얘기들을 테마로 하여 자전적 소설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신경숙 작가가 나 보다 다섯 살 아래였으므로 따져보면 사회적 배경도
내가 더 소설적일 수도 있다.
나 역시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쯤 되는 글로써...
그러나
마음 뿐 이었다.
CF 만드는 일로 정신없이 바빴고,
더구나 내게 있어서 가족사는 서로가 할퀴어 댄 상처투성이로 인해,
그 부스럼 자리가 군데군데 박혀있어서,
공개할 수가 없었다.
..... 내 가족들이 살아있는 한, 나는 내 얘길 쓸 수가 없었다.
단지, 딱 한가지.
내 청년시절,
나를 그렇게 옥죄던 나의 <性>을 떠올렸다.
내가 태어난 곳이 어머니의 자궁이고,
그래서 그 소중한 모태를..... 내가 숭앙한다면.
내 아버지가 종족보호본능으로,
나를 생산하기 위해 내 어머니의 자궁을 빌어
..... 나를 잉태시킨 행위를 내가 존중해야 한다면.
나도,
내 종족을 생산할 때만 그 행위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나 나는 종족보호본능과는 상관없이
왜 그렇게 많은 여자의 자궁을 유린하려고 했는지.
왜 그 충동을 억제치 못했는지에 대한
고해성사를 해보고 싶었다.
요즈음 시간이 남아 돌아가기 때문에... 그래서 쓴다.
신경숙이 <외딴 방>에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노트에 베껴가면서
문학공부를 했듯이 나는 <외딴 방>을 표절하면서... 쓴다.
<외딴 방>처럼 아름답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으로 쓸 능력은 안되지만,
그래도 <외설>이 아닌 <인간적인 고뇌가 담긴 고백록>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나는 그렇게 바라고 있다.
..
참,
서설이 길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방황.
방황은 계속되었다.
방황한다는 것.
내가 끌어안고 버틸 진실의 기둥을 잃어버렸다는 것.
정희를 떠나보낸 뒤 그 가슴앓이, 힘들었다.
어디 멀리 간 것도 아니고
....매일 내 앞줄에 앉아 있는데,
출석을 부르면 바로 내 다음다음으로 그녀가 대답하는데.
"네" 라고.
열세 살 여자아이 목소리로.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었던 아이.
같은 방에서 오붓하게 있었어도 키스 한 번 안 했고
숲 속 오솔길을 같이 걸으면서도 손만 잡았고
밤 깊은 앞산 공원 벤치에서도 어깨만 껴안았다.
그것도 춥다고 해서.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
겨우 뺨에 뽀뽀 한 번 해본 것밖에 없었다.
정희는 그렇게 지켜줬으면서
손 하사는 그렇게 겁탈해 버리다니,
제발 좀 참아보라던 그녀의 입을 막고... 그랬다니...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괴감에 빠져 며칠 지냈다.
손 하사랑 그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할 일없이 나는 대구 중앙통에 나가서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도깨비 시장에 있는 보세 옷가게를 지나게 되었는데
옷이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보세 옷을 좋아했었다.
체크무늬 남방을 하나 샀다.
옷가게 주인 여자.
내 또래나 되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녀에게 뭔가 끌리는 게 있었다.
유혹하고 싶었다.
나는 쓸데없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시간을 끌었고
그녀도 잘 맞장구를 쳐주었다.
점원이 아니라 주인이었다.
나는 불쑥 용기 있게 끝나는 시간을 물었고,
그녀도 싫지 않은 듯 했다.
이따가 마치고 차나 한 잔 하기로 했다.
밤 9시쯤에 그녀가 기다리라고 한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장사만 해와서 그런지 오히려 나보다 뭐랄까,
노숙했다고 할까, 누나 같았다고 할까.
그 당시에 인기 있던 가수 <나미>랑 닮은 얼굴이었다.
그녀도 주위에서 다들 그런 말을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어서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길 했다.
서울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서 물건 떼 오는 얘기
장사하면서 스트레스 받은 얘기를 한참이고 했다.
재미있었다.
자정을 넘어서 우리는 레스토랑을 나왔다.
5월의 밤 공기가 좋았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우리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한 번 가봤는데 좋았다며.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학교로 갔다.
밤에도 우리학교는 역시 아름다웠다.
군데군데 켜진 가로등이
아름다운 이오니아식 건물들을 더 운치 있게 비춰주고 있었다.
숲들도 그 불빛으로 아늑해 보였다.
그 밤에도 몇몇의 청춘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었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노천강당 계단에서 잠시 앉아서 쉬기로 했다.
5월의 한밤중...
별빛이 교교히 내려앉은 시멘트 계단들에도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묘한 정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숲의 싱그러움도 가슴에 싸하게 와 닿았다.
얼마 전에 정희랑은 저만치 어디에 앉았었는데,
그 생각으로 뭔가가 울컥, 설움처럼 가슴으로 차왔다.
그랬다.
설움이었는지 분노였는지,
아니면 자괴지심이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서 나는 잠시동안 멍하니
얼마간 그렇게 아무 말 않고 있었다.
문득 그때 그녀가 내게 기대왔다.
아니, 내가 먼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을 거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처음 만난 나에게.
그녀도 나만큼 누군가의 <속박>을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사랑하는 이에게 <구속> 당하는 것을 그리워하고,
그래서 한없는 <자유>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그렇게 복잡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계속 서로 엉키고 있었다.
텅 빈 한밤중의 노천강당 한가운데서
사랑한 여자의 추억을 머리 속에 그렁그렁 담고서.
처음 만난 여자와 별빛 아래 앉아 있음을
어떤 형언으로 표현해야 할까.
...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고혹적이었다.
불끈... 뭔가가 치밀었다.
뭔지 모를 복잡한 심경 속에서는 그 욕정도 함께 섞여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녀의 입술을 찾아 키스를 했다.
달콤했다.
남방 안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가슴을 한줌으로 만졌다.
키스를 하면서...
그녀를 시멘트 바닥으로 뉘면서 청바지 앞 자크를 내렸다.
잠시 그녀의 손이 파고드는 내 손을 잡았다.
그녀가 입술을 떼면서 그랬다.
"여기서...
이러는 거
싫어..."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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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었을까.
.... 칼릴 지브란.
화가이자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
우습게도 미술학도인 내가 칼릴 지브란을 알게 된 것은 대학의 철학시간이었다.
인간 내면의 순수한 영혼을 찬양한 지브란.
.... 헤르만 헷세.
난 <데미안>을 세 번이나 읽었다.
처음 고 2 때쯤, 읽고서 그때부터 헤르만 헷세를 숭배했다.
그 뒤로 대학 때 한번 더 읽었고, 군대서 한번 더 읽었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는 나는 꼭 <데미안>이라고 했다.
....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는 수필집,
한 지식인의 고뇌와 감수성이 가슴에 와 닿았다.
...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 등.
나는 가끔,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같은 자전적 소설을 쓰고 싶었다.
싱클레어랑 동일시했으므로.
하지만, 난...
소설 쓰는 공부를 못했을 뿐 만 아니라
.... ... 결정적으로 내 삶이 순결하지 못했으므로,
즉,
청년시절 이후로 나는 늘
..... 순수와 순결보다는...
뒤틀린 욕망과
수채구덩이 같은 욕정에 빠져 허우적거렸으므로,
그래서 그건 한낱
잘못된 엉터리 꿈일 수밖에 없었다.
.... 소설가가 되거나 시인이 되려면 적어도
더러운 욕정은 다스릴 줄 아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설가가 매일 밤 섹스를 한다는 것은
.....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시인이 매일 밤 여자나 껴안고 있어서 되겠는가.
........... 결국 나는,
내 스스로 자격미달이었다.
...
몇 년 전, 90년대 중반,
우연히 신경숙의 <외딴 방>을 읽었다.
그 시절 나는 제법 잘나가던 CF 감독이었다.
해외촬영이 잦았는데,
언젠가 유럽으로 떠나면서 공항의 간이서점에서 그 책이 눈에 띄었다.
나는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쉬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나니 겨우 시베리아 상공을 날고 있었다.
2편을 마저 사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그렇게까지 나를 사로잡을 책이라는 것을 짐작 못했으므로,
2편을 사지 않았던 것이다.
20 여일 간의 출장동안 <외딴 방>은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름답고 간결한 문체의 자전적 소설,
마치 수 십 년 간 내뱉고 싶던 言語를 참고 참으면서
정제하였다가 꺼내놓은 듯한 言語...
자기 내면의 앙금들.
거기다 그 소설 속에 나오는,
작가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나 칼릴 지브란, 헤르만 헷세 등...
바로 내 청년시절에 내게도 감동을 주던 바로 그 책들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외딴 방> 첫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 1 장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오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 잘 그르니에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
..
바로 그 순간,
그래,
그렇다.
문득 그렇게 나도 내 젊은 시절의 그 방황을...
<외딴 방>처럼 나와 내 가족 얘기들을 테마로 하여 자전적 소설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신경숙 작가가 나 보다 다섯 살 아래였으므로 따져보면 사회적 배경도
내가 더 소설적일 수도 있다.
나 역시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쯤 되는 글로써...
그러나
마음 뿐 이었다.
CF 만드는 일로 정신없이 바빴고,
더구나 내게 있어서 가족사는 서로가 할퀴어 댄 상처투성이로 인해,
그 부스럼 자리가 군데군데 박혀있어서,
공개할 수가 없었다.
..... 내 가족들이 살아있는 한, 나는 내 얘길 쓸 수가 없었다.
단지, 딱 한가지.
내 청년시절,
나를 그렇게 옥죄던 나의 <性>을 떠올렸다.
내가 태어난 곳이 어머니의 자궁이고,
그래서 그 소중한 모태를..... 내가 숭앙한다면.
내 아버지가 종족보호본능으로,
나를 생산하기 위해 내 어머니의 자궁을 빌어
..... 나를 잉태시킨 행위를 내가 존중해야 한다면.
나도,
내 종족을 생산할 때만 그 행위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나 나는 종족보호본능과는 상관없이
왜 그렇게 많은 여자의 자궁을 유린하려고 했는지.
왜 그 충동을 억제치 못했는지에 대한
고해성사를 해보고 싶었다.
요즈음 시간이 남아 돌아가기 때문에... 그래서 쓴다.
신경숙이 <외딴 방>에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노트에 베껴가면서
문학공부를 했듯이 나는 <외딴 방>을 표절하면서... 쓴다.
<외딴 방>처럼 아름답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으로 쓸 능력은 안되지만,
그래도 <외설>이 아닌 <인간적인 고뇌가 담긴 고백록>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나는 그렇게 바라고 있다.
..
참,
서설이 길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방황.
방황은 계속되었다.
방황한다는 것.
내가 끌어안고 버틸 진실의 기둥을 잃어버렸다는 것.
정희를 떠나보낸 뒤 그 가슴앓이, 힘들었다.
어디 멀리 간 것도 아니고
....매일 내 앞줄에 앉아 있는데,
출석을 부르면 바로 내 다음다음으로 그녀가 대답하는데.
"네" 라고.
열세 살 여자아이 목소리로.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었던 아이.
같은 방에서 오붓하게 있었어도 키스 한 번 안 했고
숲 속 오솔길을 같이 걸으면서도 손만 잡았고
밤 깊은 앞산 공원 벤치에서도 어깨만 껴안았다.
그것도 춥다고 해서.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
겨우 뺨에 뽀뽀 한 번 해본 것밖에 없었다.
정희는 그렇게 지켜줬으면서
손 하사는 그렇게 겁탈해 버리다니,
제발 좀 참아보라던 그녀의 입을 막고... 그랬다니...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괴감에 빠져 며칠 지냈다.
손 하사랑 그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할 일없이 나는 대구 중앙통에 나가서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도깨비 시장에 있는 보세 옷가게를 지나게 되었는데
옷이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보세 옷을 좋아했었다.
체크무늬 남방을 하나 샀다.
옷가게 주인 여자.
내 또래나 되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녀에게 뭔가 끌리는 게 있었다.
유혹하고 싶었다.
나는 쓸데없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시간을 끌었고
그녀도 잘 맞장구를 쳐주었다.
점원이 아니라 주인이었다.
나는 불쑥 용기 있게 끝나는 시간을 물었고,
그녀도 싫지 않은 듯 했다.
이따가 마치고 차나 한 잔 하기로 했다.
밤 9시쯤에 그녀가 기다리라고 한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장사만 해와서 그런지 오히려 나보다 뭐랄까,
노숙했다고 할까, 누나 같았다고 할까.
그 당시에 인기 있던 가수 <나미>랑 닮은 얼굴이었다.
그녀도 주위에서 다들 그런 말을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어서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길 했다.
서울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서 물건 떼 오는 얘기
장사하면서 스트레스 받은 얘기를 한참이고 했다.
재미있었다.
자정을 넘어서 우리는 레스토랑을 나왔다.
5월의 밤 공기가 좋았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우리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한 번 가봤는데 좋았다며.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학교로 갔다.
밤에도 우리학교는 역시 아름다웠다.
군데군데 켜진 가로등이
아름다운 이오니아식 건물들을 더 운치 있게 비춰주고 있었다.
숲들도 그 불빛으로 아늑해 보였다.
그 밤에도 몇몇의 청춘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었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노천강당 계단에서 잠시 앉아서 쉬기로 했다.
5월의 한밤중...
별빛이 교교히 내려앉은 시멘트 계단들에도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묘한 정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숲의 싱그러움도 가슴에 싸하게 와 닿았다.
얼마 전에 정희랑은 저만치 어디에 앉았었는데,
그 생각으로 뭔가가 울컥, 설움처럼 가슴으로 차왔다.
그랬다.
설움이었는지 분노였는지,
아니면 자괴지심이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서 나는 잠시동안 멍하니
얼마간 그렇게 아무 말 않고 있었다.
문득 그때 그녀가 내게 기대왔다.
아니, 내가 먼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을 거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처음 만난 나에게.
그녀도 나만큼 누군가의 <속박>을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사랑하는 이에게 <구속> 당하는 것을 그리워하고,
그래서 한없는 <자유>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그렇게 복잡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계속 서로 엉키고 있었다.
텅 빈 한밤중의 노천강당 한가운데서
사랑한 여자의 추억을 머리 속에 그렁그렁 담고서.
처음 만난 여자와 별빛 아래 앉아 있음을
어떤 형언으로 표현해야 할까.
...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고혹적이었다.
불끈... 뭔가가 치밀었다.
뭔지 모를 복잡한 심경 속에서는 그 욕정도 함께 섞여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녀의 입술을 찾아 키스를 했다.
달콤했다.
남방 안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가슴을 한줌으로 만졌다.
키스를 하면서...
그녀를 시멘트 바닥으로 뉘면서 청바지 앞 자크를 내렸다.
잠시 그녀의 손이 파고드는 내 손을 잡았다.
그녀가 입술을 떼면서 그랬다.
"여기서...
이러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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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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