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고해성사 - 1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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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라는 말이 있다.
너무나 통속적인 말이라 우습게 들렸다.
내 스물 다섯의 그 늦봄.
상미를 내 가슴에서 떼어내는 것으로 나는
통속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내 생애를 통틀어서
내 와이프 다음으로 내가 사랑했던 여자는 바로 그 상미였다.
내가 조금만 더 자신이 있었더라면
그 자신감으로 상미를 붙들었을지 모른다.
상미가 대구로 날 보러 왔던,
내 스물 다섯의 그 늦봄.
그때...
서울까지 데려다 주고 대구로 내려와 하숙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씻지도 않고 상미의 체취가 남아있던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위를 했다.
저수지에서의 키스를 생각하면서,
지난밤의 키스를 생각하면서 고속버스에서의 키스를 떠올리면서...
그렇게 내 욕정을 쏟아냈다.
...
그리고 10여 년 뒤,
중년의 권태와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그때...
내 서른 후반의 광주에서도 상미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안에서 나는 상미의 체취를 느끼며,
내 손가락에 묻어있던 상미의 애액 냄새를 맡으며 자위를 했다.
엄청난 양의 정액이 분출하여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자동차 시트에 묻기도 했다.
그 비릿한 냄새,
그리고,
사정 후 일시에 밀려드는 허탈감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그 비릿함을 상미의 몸 속에 쏟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참지 못하고 상미를 내가 가졌더라면,
상미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그 비릿함을 떠올리며 얼마나 난감해 했을까.
나아가서 나는 또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상미에게 집착을 했을까.
한 번 열고 나면 또 열고 싶을 게 뻔한데 집착은 집착을 낳을 테고 결국 병적으로...
곪을 게 뻔한데.
지금도 생각하면 백 번 천 번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랬으므로 상미는 늘 내 가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
그렇다.
상미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길고 긴 지독한 방황 끝에도 불쑥 찾아가서
지친 내 심신을 뉘일 수 있는 고향.
비록 만날 수는 없지만,
언제나 내 가슴 안에 살아남아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내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아아,
내 그리운 상미.
아직도 하양나비로 살고 있어야 할 텐데...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
다시 대학시절로 돌아가서.
그래, 그때.
내 스물 다섯의 그 봄날...
상미가 내려와서 너무나 행복했지만
그 끝은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역시 상미를 애인이 아니라 그저 친 여동생으로만 받아들여야 했으므로,
그 5월은 혼란스러웠다.
욕심을 버려야 했으므로 힘들었다.
그런 5월이 가고 6월에 나는 화실을 얻었다.
고모님이 돈을 마련해 주셔서 성당시장 부근 골목의 사거리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가게를 얻었다.
야채 가게나 구멍가게를 하던 자리였다.
약 10평 정도였고 안에 화장실도 달려있어서 좋았다.
합판으로 타원형 파렛트 모양의 간판을 만들어서,
위에는 영어로 ,
그 아래에는 한글로 <해거름 화실> 이라고 써서 내걸었다.
처음 복덕방 아저씨를 따라 거길 갔을 때
마침 저녁 햇살을 가득 받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서쪽방향으로 앉은 귀퉁이라 아침해보다는 저녁 해를 가득 받는 가게였다. 그래서 화실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실내에는, 대충 앵글을 짜서
그 위에 합판을 올려 침대를 만들고 중고 오디오를 구비하고
몇 가지 살림을 사서 자취방 겸 화실로 꾸몄다.
꾸미고 나니 아늑했다.
하숙집은 역시 불편했었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걸 좋아했는데 큰소리로 부를 수도 없었고 음악도 크게 쾅쾅 들을 수가 없었으므로.
그리고 안방의 외대생 미연이 와도 헤어져야 했으므로...
미연은 더 만날 수도 있었지만
상미가 다녀간 뒤 어느 날부터 그냥, 어쩌다 하숙집에서 부딪혀도 괜히 거북스러웠다.
사실은 별 애틋함 없이 섹스를 위해 만나려 했지만 그건 싫다고 했다.
그래서 미연 때문에라도 화실을 못 얻었으면 하숙집이라도 옮기려고 했었다.
거기다 2학년이 되어 전공으로 들어가면 그림을 많이 그려야 하므로 화실은 있어야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화실로 오는 길인데 정희가 날 불렀다.
그 동안 나를 피해 열심히 도망 다니더니...
"형! 작업실 냈다면서예?"
"응! 그래, 얼마 안됐어 지난주에..."
"어디쯤?"
"성당시장 근처야"
"지금 가는 길이라예? 그럼 나 구경시켜 줄래예?"
"...."
"다음에 가도 되고예"
"아냐, 지금 가자... 집들이하지 뭐."
그렇게 해서 지난 몇 달 간 나를 아프게 하던 정희가
내 sunset 화실의 첫 손님이 되었다.
< 다음에 걔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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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통속적인 말이라 우습게 들렸다.
내 스물 다섯의 그 늦봄.
상미를 내 가슴에서 떼어내는 것으로 나는
통속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내 생애를 통틀어서
내 와이프 다음으로 내가 사랑했던 여자는 바로 그 상미였다.
내가 조금만 더 자신이 있었더라면
그 자신감으로 상미를 붙들었을지 모른다.
상미가 대구로 날 보러 왔던,
내 스물 다섯의 그 늦봄.
그때...
서울까지 데려다 주고 대구로 내려와 하숙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씻지도 않고 상미의 체취가 남아있던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위를 했다.
저수지에서의 키스를 생각하면서,
지난밤의 키스를 생각하면서 고속버스에서의 키스를 떠올리면서...
그렇게 내 욕정을 쏟아냈다.
...
그리고 10여 년 뒤,
중년의 권태와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그때...
내 서른 후반의 광주에서도 상미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안에서 나는 상미의 체취를 느끼며,
내 손가락에 묻어있던 상미의 애액 냄새를 맡으며 자위를 했다.
엄청난 양의 정액이 분출하여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자동차 시트에 묻기도 했다.
그 비릿한 냄새,
그리고,
사정 후 일시에 밀려드는 허탈감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그 비릿함을 상미의 몸 속에 쏟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참지 못하고 상미를 내가 가졌더라면,
상미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그 비릿함을 떠올리며 얼마나 난감해 했을까.
나아가서 나는 또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상미에게 집착을 했을까.
한 번 열고 나면 또 열고 싶을 게 뻔한데 집착은 집착을 낳을 테고 결국 병적으로...
곪을 게 뻔한데.
지금도 생각하면 백 번 천 번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랬으므로 상미는 늘 내 가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
그렇다.
상미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길고 긴 지독한 방황 끝에도 불쑥 찾아가서
지친 내 심신을 뉘일 수 있는 고향.
비록 만날 수는 없지만,
언제나 내 가슴 안에 살아남아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내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아아,
내 그리운 상미.
아직도 하양나비로 살고 있어야 할 텐데...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
다시 대학시절로 돌아가서.
그래, 그때.
내 스물 다섯의 그 봄날...
상미가 내려와서 너무나 행복했지만
그 끝은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역시 상미를 애인이 아니라 그저 친 여동생으로만 받아들여야 했으므로,
그 5월은 혼란스러웠다.
욕심을 버려야 했으므로 힘들었다.
그런 5월이 가고 6월에 나는 화실을 얻었다.
고모님이 돈을 마련해 주셔서 성당시장 부근 골목의 사거리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가게를 얻었다.
야채 가게나 구멍가게를 하던 자리였다.
약 10평 정도였고 안에 화장실도 달려있어서 좋았다.
합판으로 타원형 파렛트 모양의 간판을 만들어서,
위에는 영어로 ,
그 아래에는 한글로 <해거름 화실> 이라고 써서 내걸었다.
처음 복덕방 아저씨를 따라 거길 갔을 때
마침 저녁 햇살을 가득 받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서쪽방향으로 앉은 귀퉁이라 아침해보다는 저녁 해를 가득 받는 가게였다. 그래서 화실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실내에는, 대충 앵글을 짜서
그 위에 합판을 올려 침대를 만들고 중고 오디오를 구비하고
몇 가지 살림을 사서 자취방 겸 화실로 꾸몄다.
꾸미고 나니 아늑했다.
하숙집은 역시 불편했었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걸 좋아했는데 큰소리로 부를 수도 없었고 음악도 크게 쾅쾅 들을 수가 없었으므로.
그리고 안방의 외대생 미연이 와도 헤어져야 했으므로...
미연은 더 만날 수도 있었지만
상미가 다녀간 뒤 어느 날부터 그냥, 어쩌다 하숙집에서 부딪혀도 괜히 거북스러웠다.
사실은 별 애틋함 없이 섹스를 위해 만나려 했지만 그건 싫다고 했다.
그래서 미연 때문에라도 화실을 못 얻었으면 하숙집이라도 옮기려고 했었다.
거기다 2학년이 되어 전공으로 들어가면 그림을 많이 그려야 하므로 화실은 있어야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화실로 오는 길인데 정희가 날 불렀다.
그 동안 나를 피해 열심히 도망 다니더니...
"형! 작업실 냈다면서예?"
"응! 그래, 얼마 안됐어 지난주에..."
"어디쯤?"
"성당시장 근처야"
"지금 가는 길이라예? 그럼 나 구경시켜 줄래예?"
"...."
"다음에 가도 되고예"
"아냐, 지금 가자... 집들이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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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sunset 화실의 첫 손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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