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마을 - 4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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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부
포목점 아낙의 말이 현우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저녁무렵 한 무리의 왈패들에게 치도곤을 당하고는 여인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고 한다.
장난스레 사람을 괴롭히고 가끔씩 시장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난봉꾼들이 심심풀이 대상이라도 된 듯 헐벗고 굶주린 두 모녀를 결국은 죽음으로 몰아가 버렸다고 했다.
멍한 표정의 현우에게서 미미한 떨림이 일었다.
진작 막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고 자괴심이 뇌리를 스치며 마음속으로 알수 없는 통증을 가져다 주었다.
풀려버린 현우의 눈을 바라보던 아낙이 측은 한 듯 이마를 모으고는
“돈 없고 뒷줄 없으면…..여기선 죽어도 찍소리를 못해요…..”
“……………..”
“하루에도 몇 명이나 험한 꼴을 당하고 죽는지…..원…..휴 우…”
신세 한탄처럼 생존의 어려움을 탄식처럼 토해내지만 현우는 아낙의 말을 이해 할 수가 있었다.
법이 있었겠지만 아직 정비되지도 못한 채 군인들의 통제 하에 아직도 제약이 많았고 약육강식의 원칙만이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법이자 통제수단이었기에 돈과 힘이 없으면 언제나 누구에게나 고통의 마수는 뻗칠 수 있는 게 도시의 생활이었다.
“참…..그 어린애는 아직…..살아있어요….여기서 두 마장만 가면 조그만 통제소가 나온다오…저녁에 군인 몇 명이 …그녀를 데리고 갔어요……..”
풀렸던 현우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며 그녀가 가르치는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햇빛이 건물 사이로 강한 빛을 뿌리며 시선을 가로 막았지만 현우는 아무 느낌이 없는지
방향을 주시하다 몸을 틀고는 뛰어가기 시작했다.
“여 봐요…..거긴…..에구….괜히 얘기를 했나..??….그놈들도 다 한통속인데….”
“이봐…쌍둥이네….가게 안 열거야….??….”
“아이고….내 정신 좀 봐…….아유…열어요….성님…일찍 나왔네요….”
금새 잊어버린 듯 아낙이 호들갑스런 몸짓으로 웃음을 지으며 가게 앞으로 걸음을 옮겨가고
아침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시장 안을 메워가며 시장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철모의 턱끈을 덜렁이며 구석으로 달려간 대식은 바지를 푸르고는 시원스레 물줄기를 뿌려대며 몸을 떨어댄다.
“으…..시원타…….”
간밤에 과음을 한 탓인지 머리가 아프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마음이 들면서 얼굴위로 흐물스런 미소를 지워 올린다.
“흐흐…고년….참..”
전쟁통이라 군인들의 힘은 어떤 권력보다 우선하면서 언제부터인가 통제 될 수 없는 부조리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 였지만 대식의 속한 부대는 재수가 좋았는지 피튀기는 전쟁터나 열악한 전방에서의 주둔이 아닌 도심의 중간에서 치안유지에 주력을 하고 있었고 덕분에 대식도 불편하지 않은 생활로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었다.
어제 밤도 그랬다.
시장 안에서 거지로 보이는 여자가 시체로 발견 되었지만 평소에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시장의 주변에서 돈을 좀 만지는 왈패들에게서 밤새 음주가무를 대접 받고는 그 일은 금새 잊어 버리고 있었다.
아침까지 끼고 있던 여자를 생각하며 대식은 아직도 미련이 남는지 풀리는 눈동자를 게슴츠레 뜬 채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동안을 서 있었다.
“말 좀 물읍시다……”
뜬금 없는 목소리에 즐거웠던 상상이 깨져버리고 작지않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대식은 화가 치솟음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리며
“뭐야…….어떤 새끼가……..??…”
제법 단단해 보이는 몸매에 차가운 듯한 인상을 가진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부터 자신의 상상을 깨뜨리며 기분나쁘게 자신을 불러댄 사내에게 대식은
“뭐야….??……뭔데 아침부터 지랄이야….??…..”
“…..말조심해라……”
대식은 기가 죽을 것 같았던 사내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반문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늘해 지는 감정을 느꼈다.
무슨 배짱으로 자신에게 반말을 하면서 당당하게 나오는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뭐야…??…..이 자식이….??…..”
“**** 유격대라고 들어봤나….??….”
“****유격대….??…”
“긴 말을 않겠다…..어제 밤 당신들이 데려간 어린소녀를 찾고 있다……시장에서 데려간…”
대식은 마른침을 삼키며 한 동안 사내를 바라보고는
“…….잠시만 기다리슈……”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백평 남짓한 목조건물로 대식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고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풀어 헤쳐진 복장의 남자와 두어명의 군인들이 나오는게 보였다.
아마도 밤새 술을 쏟아 부었는지 충혈된 눈동자와 풍겨오는 냄새에 사내의 얼굴은 금새 찌푸려지고 사내의 앞으로 다가온 군인이
“어린소녀를 찾는다고 했나…??….”
“그렇소….”
“뭣 때문에 ….그 애를 찾는가….??..”
“……먼 친척이요……”
“****유격대 출신인가…??….”
사내에게 시선을 모은 군인의 입에서 지독한 주향이 풍기며 현우의 위 아래를 훑어본다.
“……….그렇소…”
“거의 죽은것으로 알고 있는데…..??…..어떻게….”
감정 없던 사내의 얼굴 위로 분노의 표정이 떠 오르고
“입 다물어라….너희 같은 막 되 먹은 놈들 입에 함부로 올려질 이름이 아니다…”
“뭐…??….이런 놈이……..허억….”
막 사내에게 화를 내던 군인의 앞으로 사내가 바짝 다가섰다.
군인은 사내의 눈빛에서 피 비린내 나는 살기를 느꼈다.
아마 처절한 환경에서 극한 상황을 경험 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살기였다.
사내의 입에서 나온 부대는 자신도 수없이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으로 전세를 역전을 이룬 커다란 전투였고 그 후유증으로 대부분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의 앞에 선 사내의 입에서 그 이름이 거론되었고 자신이 보기에도 허언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런 그 사내가 부대내에 수용되어 있는 어린소녀를 찾아왔다는 게 꺼림직 하게 생각되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들의 부대앞에서는 기가 죽어서 설설 기어야 하건만 유독히 이 사내는 당당하면서도 알수 없는 두려움을 가지게 만들고 있었다.
“야….김일병….가서 그 꼬마를 데려와라….”
“예….알겠습니다….”
김일병이라는 군인이 부대안으로 사라지자 사내의 입이 열리며 앞에선 군인을 바라다 본다.
“그 소녀의 모친은 어떻게 죽었나….??…”
“……….??…….”
“나 역시 그대들과 똑 같은 군인이었다……….다시 한번 묻겠다….어떻게 죽었는지 설명을 해주기 바란다……”
질문을 던지는 사내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뭐라고 설명할 지 난감도 했지만 괜시리 마음 한쪽이 두근거리며 군인은
“우…우리도 자세한 것은…..잘 모른다….다만…타살의 흔적이 있고…..현재 조사중이다….”
사내의 눈동자에서 분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잘못 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군인은 더 이상 아무런 애기를 할 수가 없었다.
소녀를 데리러 갔던 군인이 넝마조각 처럼 다 헤어진 꾀죄죄한 모습의 소녀를 데리고 나오는 게 보였다.
두려운 듯 군인들을 바라보며 움츠러든 모습의 소녀가 사내와 군인의 사이로 끌려오 듯 다가오고는 사내를 알아 보고 커다랗게 눈을 떠가며
“아….아저씨……..아저씨….”
사내의 얼굴에서 억지로 피어 올리는 미소가 보여지며
“그래….이리 오거라…….”
군인의 손을 떠난 소녀가 안기다시피 사내의 품으로 뛰어 들었고 마치 가족이라도 만난 듯
사내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자그맣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엄마가….엄마가……엉…엉엉…..”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소녀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고 사내는 소녀가 무슨 말을 할려는 지를 알겠다는 듯 자그마한 어깨를 보듬으고는 조심스럽게 도닥이기 시작했다.
한 동안 소녀를 달래어 가던 사내가 고개를 들어 군인들을 바라보고
“이 애 모친의 시신은 어디에 있나…??….”
“가매장 상태로 ….장소는 두레골에 묻었다……..”
고개를 끄떡인 사내가 군인들을 한 사람씩 천천히 바라 보고는 등을 돌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짝 붙어선 소녀가 떨어지기 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날 듯 사내에게 밀착된 채 부대를 떠나기 시작하고 몇 명의 군인들은 멍하니 선 채 그들의 모습만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현우가 집을 나선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것에 혜숙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무슨일이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말을 안한 탓에 영문도 몰랐지만
혹시라도 마음을 바꾼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불안한 마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아무런 답변도 없이 집을 나서고는 함흥차사인 양 소식 없음에 마당을 서성이며 마음을 졸일 때 헐거운 듯한 대문이 열리면 현우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혀….현우야…….어디가서 이제…..”
현우를 나무라기라도 하는 듯 입을 열던 혜숙이 현우의 뒤를 따라 들어서는 꾀죄죄한 모습의 소녀를 보고는 말을 끊어가고
무슨 영문이냐는 듯 현우의 얼굴을 바라보기만을 한다.
“나중에 설명을 드릴께요….이 애를 잠시만 맡아 주시고…..좀 씻겨 주세요….”
낮선 환경에 두려운 듯 현우의 등뒤로 몸을 숨기던 소녀가 고개를 내밀고는 혜숙과 인화를 바라보다 다시금 현우의 등뒤로 모습을 감췄다.
한 동안 현우와 어린 소녀를 응시하던 혜숙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떡인다.
아마도 현우에게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은 현우를 믿을 수가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옳지 않은 일을 할 것으로 생각은 안들었고
나이어린 소녀를 데리고 왔다는 건 아마도 어떠한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판단에 현우의 뒤에 서있는 소녀에게
“잠깐…이리 올래….??….아가야….??..”
주춤거리는 행동끝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소녀가 현우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혜숙에게 다가가고 조금은 두려운 듯한 눈빛으로 혜숙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초라하고 피폐한 모습에 혜숙은 당황 스러웠다.
아마도 진우 또래의 소녀인데 굶주림 때문인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 혜숙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혜숙이 소녀를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현우가 한숨을 뱉어내고는 하늘을 바라 보았다.
어느새 중천으로 떠오른 햇살이 따스하게 마당안을 비추며 현우를 감싸기 시작한다.
저녁이 되면서 상주댁이 시장에서 돌아오고 혜숙과 인화가 방안에 모여 있었다.
세 여인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채 현우만을 바라보았고 방안 구석에 천진난만하게 잠든 소녀를 바라보던 현우가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대충의 내용은 얘기를 한 상태였지만 소녀에 대해 어떻게 할 것 인지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 그들의 궁금증은 깊어져 있었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두 눈이 커지는 혜숙은 현우의 대답에 말문이 막히며 혼란스러운 감정이 몰려든다.
생면부지의 어린소녀를 왜 현우가 책임을 지려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소녀의 처지가 어렵고 돌봐 줄 일가 친척이 없어서 막막한 사정인 것은 알겠지만 그걸 왜 현우가 책임을 지려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현우야….아무리 그래도…..”
“아니요….어쩌면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또…알면서도 이 어린애를 다시 내 팽개친다면 아마 평생을 죄책감에 괴로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난처한 듯 상주댁이 자리를 뜨고 인화도 어색해지는 자리가 곤란한 지 상주댁을 따라 방을 나가 버린다.
굳어버린 얼굴의 혜숙과 현우가 희미한 불빛아래 침묵을 이어가며 한 동안을 보내고
현우가 무릎 걸음으로 혜숙에게 다가 앉으며 입을 열어간다.
“숙모…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하지만 도저히 저 어린 것을 구걸과 뭇 남자들의 노리개로 여기에 남겨두고 싶지 않아요…차마…차마 그 짓은 못하겠어요….”
“저 아이를 데려가도 여건은 별로 달라지지는 않아… 누군가가 보살피기는 하겠지만 앞으로도 힘든 여정을 해야 하는데…….다시 한번 생각하면 안되겠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우의 모습에 측은한 마음이 들면서도 혜숙은 현실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마을까지 갈려면 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이고 마을에서의 생활도 배타적인 성격 때문에 어린소녀가 상처 받을거란 생각에 혜숙은 현우에게 재고할 것을 권유했다.
“저 애를 데리러 가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내가 죽을 고비를 수없이 겪으면서도..항상 마음속에 간직했던 생각은…내 가족을 위해서 어떠한 위험도 이겨내야 겠다는 인내였어요….하지만 전쟁 후의 상황은…. 어른인 우리보다 저렇게 어린 애들에게 치명적인 위험과 약자로서의 피해밖에는 없었어요…전쟁보다는 이기적인 어른들에 의해서 죽어가는 애들이 더 많은 것에 ….도저히 저 애를 내 버려 둘 수가 없어요….저 아이 모친은….”
“알았다……휴우….그만 하자꾸나……”
“………..”
“대신 저 아이에 대한 책임은 니가 져야 하고….부모로서의 역할도 해줘야 함을 잊지는 말아라…..”
말을 마친 혜숙이 불편한 듯 자리를 비켜 일어서고는 방을 나가고 바위처럼 굳어진 채 현우는 방안에 남아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기 전 깊어진 가을의 어느날 밤.
현우의 부대는 사흘 밤 낮의 악전고투를 치루고서 어느 이름모를 고지를 점령하고는 휴식에 들어갔다.
300명의 인원이 전투에 투입되었지만 고지에서 휴식을 취해가는 인원은 고작 50여명 남짓의 병력이 대부분이었고 그 나마 식량과 탄약등 보급품의 부족은 지쳐있는 그들에게 적지않은 부담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지원병력이 온다고 했지만 사흘 동안 그들에게 다가온 건 수천은 되어보이는 적군 뿐이었고 생사를 알 수 없는 많은 전우들은 허기와 부상으로 계속 생사를 달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우는 소대를 책임진 배중사와 나란히 진지에 앉은 채 깊어진 하늘에 유독히도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배중사의 상의엔 언제나 전쟁 전에 찍어둔 가족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 속엔 차분한 듯한 여인과 웃고있는 예쁜 두 딸의 단란한 모습이 있었고 힘들고 지칠때면 항상 사진을 꺼내보며 웃음을 머금고는
“내가 싸우는 이유는 이 녀석들과 아내를 위해서야….허허허…이렇게 이쁜 녀석들에게 어두운 미래를 준다는 건 참을 수가 없어…..자넨 어떤가…..??…”
“글쎄요….저도 배중사님 처럼 가족이 희망없이 사는 건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원산만이 바라다 보이는 조그만 섬에 갖혀 지낼때도 가끔씩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보기보다는 생각이 깊은 것 같고 상황 판단이 빨라서 작전중에 항상 앞장을 서던 배중사에게 현우는 늘 경외의 시선을 보냈지만 그의 가슴엔 언제나 가족이 있었고 따스함이 있었던 것 같았다.
배중사의 소망은 단 하나였다.
전쟁이 끝나면 예전처럼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가 비록 단칸방일지라도 애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어쩌면 대부분이 가진 소박한 꿈일 수도 있겠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컸고 그들의 빈자리는 가족들에게 커다란 위험을 안겨준 채 절망으로 바뀐 게 현실이었다.
현우의 귓가로 아직도 배중사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자신을 던져 전우들을 구하고는 장렬히 산화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했다.
만약 배중사가 살았더라면 자신의 처한 상황을 어떻게 처리 했을까 하는 생각에 현우는 쓴 웃음을 지어 올렸다.
자신이 어린소녀를 데리고 간다는 판단이 섰을 때 현우의 뇌리 속에 문뜩 배중사의 영상이 떠 오른 건 무슨 까닭인지 의문이 들면서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차가워진 밤바람이 방문 틈으로 스며들며 밤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어린소녀가 잠든 것을 바라보던 현우가 고개를 돌리고는 자리를 일어섰다.
왠지 굳어진 듯한 현우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감돌고 평상시 없던 차가운 눈빛엔 무언가 알수 없는 섬뜩함이 보여진다.
방문을 나서고 신발을 신은 현우가 조심스런 발길로 대문 앞으로 다가가고
열려지는 대문을 타고 차가워진 바람이 얼굴을 할퀴며 현우의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삐그덕 거리며 문이 닫히며 집안은 고요에 잠겨가고
현우는 한 동안을 대문앞에 선채로 어둠에 잠긴 강을 바라보다 어둠속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현우의 등뒤로
“현우야….안돼……현우야….안돼…..제발..현우야….”
여인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치며 밤하늘을 찢어 놓았다.
현우의 등이 미미하게 떨리며 천천히 등을 돌리고는 시선을 모아가고
방금 자신이 빠져 나온 대문 앞엔 언제부터 있었는지 가슴에 두 손을 모은 혜숙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초록마을이 자꾸 이상한 쪽으로 흐른다고 하시는 분이 있어서 조금의 해설을 남깁니다.
설정상 분명히 현우는 서울태생의 학생이었고 전쟁을 겪은 군인으로 묘사 되었습니다.
어두웠던 과거의 시절에 타의에 의해 억압 받았던 우울했던 시대적인 상황을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구상하면서
서울로의(고향) 여정이 있었으며 초록마을 내에서의 단조로움보다는 색다른 배경을 가미하면서 조금은 다양한 구성을 첨가했습니다.
귀향은 예정된 수순이지만 그 과정 역시도 기존과 같은 수는 없을 것이고
내용중에는 인간미가 흐르는 주인공을 만들려고 미화한 부분은 있습니다만
글을 쓰는 사람의 의도는 헤피엔딩이기에 주인공 역시 그 기준에 맞췄을 뿐입니다.
50년대 초의 배경엔 부족한 점이 있을테지만 전문 소설가가 아니라서 자료는 충분치 못했읍니다.
아마 70부 정도로만 예상했던 글이기에 심도있는 표현과 시대적인 설명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소설이 아닌 야설을 쓴거로 알아 주시고 이해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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