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흔한일 - 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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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우고 싶지 않어?"
민규가 오랫동안 담배를 끊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황망한 때는 무엇이든 생각을 정리할 도구가 필요할 것 같아서 권해본다. 물론 남자 두 사람만이 시신이 방치된 채 있기도 어색해서 분위기를 바꿔볼 생각도 있었고 담배를 끊으라고 악을 쓰는 마누라를 무시하며 줄담배를 즐기던 버릇을 한참동안 참은 탓도 있었다.
"한 대 주세요."
민규는 망설임 없이 담배 한개피를 받아 입에 물었다.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그런 민규의 담배에 불을 붙히며 나도 한 개피 피워 물었다. 작은 방안은 금새 담배연기로 채워지고 있다.
"이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갈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껄 그랬어요." 민규가 깊게 들이킨 담배를 뱉어내며 넋두리 처럼 말했다.
"자네들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무료함을 달랠 생각으로 혹시라도 끊어질 대화를 잇는 기분으로 물었다.
"아뇨, 경미는 결혼해선 한번도 의심스러운 일이 없었지만 신혼초의 일로 몇번 싸운 적이 있었어요."
"신혼초엔 원래 기싸움이 심하잖나. 그런 일이야 다반산데 마음에 둘 필욘 없겠지."
"형님이 경미를 소개시켜줬잖아요.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골인했구요."
"그랬었지."
"신혼 첫날밤에 의심이 가더라구요. 너무 능숙했거든요."
"요즘은 처녀들이 더 난리친다잖아. 자넬 좋아해서 몸이 따랐겠지."
"저도 평소엔 첫날밤 신부가 처녀이길 바라는 바보는 되지말자고 숱하게 저 자신을 세뇌시켰지만 막상 경미을 보곤 의문이 솟구치더라구요."
"그래서?"
"해서는 안될 말을 해 버렸지요. 그 일로 죽는 날까지 맘 고생하겠다 싶었구요."
"뭐라했는데?"
"그냥, 몇놈이랑 했냐구..."
"어휴, 바보탱이. 그걸 물었단말야?"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척 사랑했었거든요. 내 여잔 내 품안에서만 놀아야 한다는 평소와 다른 강박관념이 생겼었나봐요."
"경미씨는 뭐라했는데?"
"첨 이래요.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며 그날은 악을 쓰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죠."
"그랬을꺼야. 경미랑 언니는 내 주변에서만 맴돌았는데 언제 남자를 만날 시간이 있었을라구."
"할말은 아니지만, 사실 형님을 좀 의심했었거든요."
"예끼 이사람아, 내가 아무리 짐승만도 못하더라도 동시에 두 여자를 농락하겠나?"
"저야 형님을 믿었으니까 말을 질러놓곤 잘못했다고 백배 사과했지만 가끔가다 싸울 때면 그 일을 꺼내곤 했죠."
"그렇게 맘에 부담이 되서 지금 그 말을 하는건가?"
"애를 낳고 나선 섹스를 더 밝히는 것 같던데 제 몸이 안따라줘서 슬금 피한 적도 많아요."
"원래 애를 낳은 여자는 비로소 섹스의 참맛을 안다잖아. 몸이 망가질 나이도 아닌데 신경좀 써주지 그랬어."
"그래야 겠다 싶다가도 신혼 첫날밤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서 몸이 자꾸 움추러들더라구요."
"남자는 좆 힘이 쎄긴쎄야 하나봐. 자기 여자하날 간수 못할 형편이 되면 여간 맘 고생이 심한게 아니니까."
마누라를 만날 때 마다 경미가 따라 붙었다. 두 사람만 있을 수 있다면 고즈녁한 구석에 쳐 박혀서 손목도 만져보고 입술도 훔쳐보고 가슴살에도 손을 대 볼만한데 세사람이 함께 다니는 일이 많다보니 도통 짬이 나질 않았다. 어느 여름엔가 두 사람만 바닷가에 놀러가야겠다 싶어서 은근히 마누라될 언니에게만 삼박사일로 여행을 가자고 했었다. 여행을 결심하기까진 한참을 망설이던 마누라는 평소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 자신이 차표를 마련하겠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나와 몇년동안 사귀면서도 한번도 손끝 조차 잡히지 않던 여자가 웬일로 차표까지 끊겠다고 나서는지 아리송 했지만 몇일동안 들뜬 기분으로 여행 준비를 하고 고속버스터미널엘 나갔었다. 아직 오지 않은 그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차안에서 먹을 오징어며 김밥을 챙기고 신문 한장을 사서 대합실 의자에 고개를 박고 있을 때 왁자지껄한 소리 속에 그 사람과 경미의 목소리를 구별해 낼 수가 있었다. 단 둘이 호젓한 바닷가에서 음험한 짓거리를 꿈꾸던 내 망상이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오빠, 빨리 차 타자." 경미가 나를 발견하곤 손목을 잡아 끌었다.
"어, 넌 웬일이야? 어딜 가는데?"
"어머, 세명이 여행가자고 그랬다면서."
"그래? 난 널 모르는데..."
"아잉, 언니가 혼자가면 잡아먹겠다며 날 꼭 데려오라고 했다면서."
"내가?"
"나를 빼고 갈꺼야?"
"아냐, 아냐. 같이 가자."
어차피 마누라는 단 둘이 갈 생각을 하지도 않은 듯 했다. 단 둘이 낯선 곳에서 도착해서 삼박사일동안 시달리는 것보다는 단짝인 트리오 삼총사가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 맘 편하다 싶어 계획했을텐데 이번 여름도 여자 살맛 보긴 글렀구나 하는 포기의 심정으로 얼른 버스에 올라탔다. 마누라와 경미가 함께 타고 나는 두 사람이 앉은 앞자석에 덩그런히 혼자 앉아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마누라와 함께 앉으면 가끔은 졸린 얼굴을 어깨에 묻어 올 수도 있다. 좁은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부딪히는 살결을 느낄 수도 있다. 신문을 펼쳐 보는 척하며 그 밑으로 그 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오물오물 만져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서진 꿈이 되어 현실은 냉엄하게도 혼자 앉아 있어야 했다. 차가 출발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을 때 세명의 여자가 황급히 버스에 올라탔다. 두 사람이 함께 앉고 나머지 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엘 앉아야 했다. 나는 불행 중 다행이다 싶어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버스가 한 참을 달릴때 미리 사둔 오징어를 반쪽으로 잘라 뒷자석으로 넘기고 나머지 반을 또 잘라 옆좌석의 여자에게 건넸다. 낯선 남자와 스킨쉽을 하며 먼 여행을 떠나며 약간 불편해 하던 옆좌석 여자는 오징어를 받아들며 무척 기분좋은 얼굴을 해 보이더니 그 옆좌석에 앉은 친구들에게 오징어를 보란 듯이 자랑했다. 여름에 마른 오징어 냄새는 마치 신발속에 파뭍혀 있던 발을 꺼낸 듯이 꼬랑내처럼 차 안을 퍼져나간다.
"오빠, 웃긴다 그치?" 경미는 내가 오징어를 나눠주고 먹으면서 차안 공기를 심하게 오염 시킨 것에 대해 한 마디 빼지 않았다.
"글쎄말야. 옆좌석 여자한텐 왜 준데?" 언니도 신경이 쓰이는지 투덜거렸다.
"언니, 자리 바꿔볼까?" 경미는 언니의 불편한 마음을 읽었는지 옆좌석의 여자가 눈에 가시같았는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까? 젠 안돼겠지?" 언니도 지지 않고 얼른 내 자리로 옮기려고 엉덩이를 들었다.
"언닌 안쪽이니까 불편하잖아. 내가 오빠 옆자리에 앉을께."
"니가?"
"응. 내가."
"알았어." 마누라는 차마 자기가 내 옆자리로 오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어서 포기하듯 말했다.
"저, 자리 좀 바꿔 앉을래요?" 경미가 앞좌석의 여자에게 조용히 제의를 했다.
"싫어요. 난 이자리가 좋아요." 옆좌석의 여자는 냉정하게 한마디로 거절해 버렸다.
"왜요? 우리 오빠 옆에 제가 앉으면 안되요?" 경미도 지지 않고 옆자리의 여자에게 물러날 것을 강하게 밀어 붙힌다.
"그럴꺼면 처음부터 그렇게 앉지 그랬어요. 난 지금이 좋으니까 끌어내든 말든 맘대로 해요."
경미는 완강한 옆자리의 여자 때문에 맘이 상했는지 한 동안 아무말이 없었지만 언니는 쿡쿡대며 웃기만 했다.
"경미야, 이거 먹고 기운차려." 분위기를 바꿔줘야 겠다는 생각에 아까 사놓은 김밥을 꺼내서 뒷좌석으로 넘기며 말했다.
두 사람이 나를 공유하기는 싫고 남에게 스킨쉽을 시키기도 싫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작은 질투를 유발시킴으로써 아직 결혼 상대자로 누굴 딱 찝지 않은 두 사람에게 은근한 경쟁으로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자꾸 가벼워졌다.
"언니, 오빤 참 이상하지?"
"뭐가?"
"낯선 여자랑 앉아서 불편할텐데도 자꾸 실실 쪼개며 웃는것 말야."
"샘나니?"
"그렇다기 보다는 저 여자가 왜 저런데?"
"그랬잖아. 첨 부터 같이 앉던지 아니었으면 포기하던지 그러라고."
"어쩔껀데?"
"뭘 어쩌라구. 버스에서 내리면 저 여잔 빠이빠이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의 인연은 끝났다. 그 여잔 한번 뒤돌아보며 웃기만 할 뿐 말 없이 세사람이 뭉쳐서 어디론가 다른 여행지로 떠나 버렸다. 나는 마누라가 예상한대로 그냥 두 여자 앞에 혼자 서 있을 뿐이었다. 마누라는 예전에 가족끼리 몇번 다녀 본 듯 수월하게 버스를 골라내곤 몇개의 고개를 넘어 아득하게 수평선이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민박을 구하고 짐을 풀고 물에 들어가도 될 만한 복장으로 갈아 입고 세 사람은 바닷가에 다시 모였다.
"언니, 저 수평선 위에 갈매기 좀 봐봐!!"
파란 하늘엔 구름 한점이 없었다. 그래서 더 높아 보이는 하늘 끝에선 몇마리의 갈매기가 먹이를 찾아 수면위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해변가 모래밭에서 부터 깊어 보이는 퍼런 물때까지 가득차 있다.
"오늘은 늦어서 수영하긴 글렀어. 괜히 물 뭍히지 말고 저녁에 뭘 해먹을까 장이나 봐야겠다."
"언니, 저녁엔 뭘 먹을껀데?"
"바닷가니까 싱싱한 물고기랑 조개랑 넣고 매운탕 끓이면 맛있겠지?"
"우와, 그거 서울에서 먹으려면 엄청 비싸겠다."
"영철씨, 우린 장보고 들어갈테니까 두시간 이내에 민박집으로 돌아와."
"그래, 맛있는 거 많이 해줘. 난 바람 좀 쐬고 들어갈께."
두 사람의 등을 돌려 걷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여름이 왔고 해변가에 왔다.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홀딱 벗어 노출시킬 수 있는 합법적이고 합문화적인 공간인 바닷가에 드디어 오고 말았다. 나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빠지는 작은 파도가 있는 백사장을 걸으며 낭만을 즐길 여자 사냥을 하고 있었다. 벗어제낀 속 살 속에서 또 다른 속살을 찾는 일은 마치 사막에서 바늘찾기 처럼 어지럽기만 한 일인지도 모른다. 찾는 다는 것이 뭘 찾는다는 것인지 알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열달을 감춰버렸던 말랑한 속살들이 너무 많이 전시되어 있다. 툭툭 차며 걷는 모래밭 밑에 누군가의 정사 흔적이 흩어진 듯 콘돔 몇개가 밟혔다. 시리고 아름다운 사랑앞에 짖밟히는 육체의 향연을 두려워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렇게 모래밭에서 정사를 벌였던 남녀는 어떤 사람들일까? 무심히 걸어가며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멀리 부표가 떠 있고 오리배가 둥실 그 위에 떠 있는데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저 사람은 무슨 심정으로 혼자 놀이배를 탔을까 하며 배 주변의 부표를 살펴보니 또 한사람이 부표에 메달려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각자의 즐거움을 위해 먼 발치에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오리락 내리락 하는 머리통을 봐선 바닷물을 한껏 먹은 상태처럼 보였다. 오리배에 타고 있는 사람이 부표에 메달린 사람을 끌어 올리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지만 역부족으로 보였다. 가뭇 거리를 계산해 보니 삼백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데 바다를 지키는 수상요원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물로 뛰어 들어 힘차게 부표까지 헤엄치기 시작했다. 먼저 오리배를 타고 있는 사람에게 도달하여 한 숨돌리며 일행인가를 물어보니 함께 여행온 일행인데 장난치다가 미끄러져서 물에 빠진 상태라고 했다. 나는 오리배를 부표까지 끌듯 밀듯하며 옮긴 후 부표에 메달린 사람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거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지 흰자위가 많이 드러나있었다. 오리배에 실신한 여자를 다시 싣기는 불가능해 보였으므로 나는 여자의 목덜미에 한쪽 팔을 걸고 또 다른 팔은 오리배에 메달린 채로 배를 모래밭쪽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오리에 탄 여자가 힘껏 발로 노를 저었지만 백사장은 멀게만 느껴지며 자꾸만 한쪽 어깨가 빠질 듯이 맥없이 풀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 고마워요." 오리배에서 내리며 아가씨가 울듯이 말했다.
"이 사람에게 당장 인공호흡을 해야 할텐데 자리 좀 봐줘요."
나는 탈진한 상태에서 물에 빠진 여자를 번쩍 들어올려 누일만한 자리를 확보하곤 그 여자를 눞혔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다. 머뭇거림 없이 한 손으로 여자의 입을 활짝 벌려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곤 또 다른 손과 무릎으로 여자의 배를 힘껏 눌러 마셔댄 바닷물을 뿜어내게 했다. 응급조치가 끝날 때 쯤에야 사고를 눈치챈 수상안전요원이 현장에 나타났고 나는 그 여자를 뒤로 한 채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아저써, 연락처 좀 알려 주세요." 오리배에 타고 있던 여자가 물었다.
"됐어요. 급한 조치만 한것이니까 한동안 안정시켜야 할꺼에요."
"그래두, 나중에 은혜를 갚아야 되잖아요."
"은혜라뇨. 누구나 그런 일은 해야하는거잖아요."
"그럼 어디 살아요?"
"서울."
일행이 저녁을 해 놓고 돌아오지 않는 나 때문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정할 것이 걱정되어 총총히 민박집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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