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 1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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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
제 16 부 : 꼬리밟기
전화를 끊고, 황망하게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진검사는 등줄기로 심한 한기를 느꼈다. 미주는 이미 온 전신이 만신창이 된 듯, 엎드려 몸을 일으켜 세울 줄도 모르고, 쿨럭대고 있었고, 두 녀석은 진검사의 눈치를 보아가며, 바닥에 흐트러져 있던 옷가지를 집어, 슬금대며, 방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내가, 내가…..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진검사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있을, 미주 남편의 전화 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인의 자세를 잃어버리고, 섹스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 하며, 그 통화속에, 지금껏 남의 아내를 강제로 덮치고 있다는 걸 알려준 것 등이, 자신을 못내 치를 떨게 하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하니 속이 시원해? 좋아? 이제 원 풀었어? 개새끼…내 예전부터 알아봤어. 너 같은 새끼가 판사에다, 검사 할애비 된대도 나 눈 하나 깜짝 않해, 알아?’
‘…….’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꿈에도 그리워하던 미주의 몸을 가질 수 있었건만, 미주의 마음은 예전보다 더 멀리 달아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는데……그게….그게….’
‘또 더듬어? 그래, 할 말만 막히면 그 잘난 혓바닥, 얼어 붙지…..이제 어떡 헐테야? 남편도 내가 걸레 같은 년인지, 다 알게 된 이 마당에, 어떡 하냐구? 나 이혼은 한다 해도, 너 같은 쇄끼랑 살아볼 생각, 추호도 없어.’
‘왜? 왜 난 안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구? 내가 순순히 너 보내준 게, 그리도 잘못한 거냐구? 그 사이에 니 보지랑 똥꾸녕, 수술할 정도로 찢어 놓고, 헤벌레 하게 닳게 했다고 너 그러는 거야? 그래, 넌 싫어서 끔찍한데, 나랑 들러 붙어서 씹빠빠 했니? 누구한테 자랑 할려고 쑝쑝하러 다녔냐구? 아니야? 내 말이 틀려? 너나 나나 서로 좋아서 들러붙고 그랬는데, 왜 나만 상처받고, 왜 나만 절름발이 인생을 살아가야 허느냐구? 너도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입이 두개라서 어디로 내 뱉을 지, 감이 않서? 그런거야?’
‘누가 상처 받으래? 서로 쿨하게 빠이빠이 했음 됐지, 내가 그렇다고, 보지 수술 했다고 너 보고 돈을 달래디? 옛날 보지 돌리도 하면서 매달리기를 허디? 니가 니 스스로 단도리질 못한 니 심사, 나 더러 어쩌라구?’
진검사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없이 깨끗이 정리하고, 단칼에 잊었다는 말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미주야, 나 그동안 선도 많이 보고, 여자들 많이도 품어봤다. 근데, 너를 따라갈 수 있는 여자 없더라구. 너 떠나고 나 1년 넘게 좇이 서지도 않더라. 꿈속에서, 너라도 나와, 몽정이라도 할 때 이외에는, 좇이 죽어 버려서…..화가 뻗치고, 울화가 치미는 걸, 엉뚱하게 일에다 퍼부을 수 밖에 없었지. 내 손에 걸린 새끼들, 이렇게 독종이 있나 싶을 정도로 혀를 내둘렀을 거야. 다 그게, 사명감으로 덤빈것이 아니고, 다 너에 대한 그리움이 변해서, 내 울분이 된 거드라구.’
‘왜 보내야 할때, 버려야 할때, 잊어야 할때를 그렇게나 몰라? 빙신같이……내깟년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잊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잖니? 잊어. 그냥….나처럼….기억속에서 지워지질 않으면, 나처럼 사내 새끼들 불러다 진탕 즐감하면서, 한 세월 보내보는 거야…..뭐 나라고 깨끗이 잊었겠니?....그러니, 이렇게 허전한 보짓속 일일이 채워가며, 이게 인생 이겠거니 하면서 보내보는 거지. 누군 사는 게 행복순으로 살아대는 줄 알아?’
‘미주야…..헤어지고 이렇게 사는 동안 한번이라도, 날 잊지 않고 찾아만 와 줬어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덤비진 않았을 거다. 널, 용서할 수 있는 기회를 니가 차 버린거지.’
‘내가 너에게 용서를 받을 일이 또 뭐래? 섹스 하면서, 그깟 사랑한단 말 쫌 둘러댔다구? 영원히 쑤셔달라고 주절댄거 가지고? 너, 해도해도 너무 기대만빵에 산다….보지에 불난년, 무슨 얘긴들 못허니? 사랑 어쩌구, 미련 어쩌구…그런 거, 내 보지에 줄창 쏴대고, 질질 흘러 나오던 니 좇물처럼 다 시간속에 흘려 버렸어, 알어? 우린 누가 뭐래도 시간속에, 세월속에 잊혀진 사람들이야. 연인이었다고 이름 붙일 수 없을 만큼, 잡을 수도 없이, 지나가 버린…’
그녀가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 위에 주져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허공으로 퍼지는 파란 연기가 두 사람의 알싸한 가슴 만큼 매마른 느낌이었다. 서로에게 남아 있는 것은 질척대면서도 아스라한 미련 쪼가리 뿐이었다.
‘미주야. 니 남편은 그렇다 치자, 내가 전화로 그렇게까지 한 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여기까지 올동안의 내 심정,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니? 내가 이 나이 되도록 뭐가 아쉬워서, 첩도 아니고설랑, 창녀 점찍어 놓고 들락였겠느냐구?’
‘누가 그러래? 난 이제 별 볼일 없으니, 그 창녀 년한테나 가 봐. 내 역할을 아주 잘허는가 봐? 보지도 맛이 비슷할라나? 내가 지나가는 개한 테 떤져 줬으면 줬지, 니 새끼 한테는 이제 공씹이락두 주고 싶은 맘 없다. 지난 밤에 만났을 때는 혹여, 손이락두 벌리면, 한 큐 대 줘야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젠 아니야. 우리 그이한테 개쪽 다까고, 씨부럴 년에다, 개 좇보지 다 됐는데, 뭣허러 너 한테 조아리고 지랄 떨까? 일 없다. 어여 가. 남편 새끼라고, 있는 게, 좇대가리 후두를 쭐밖에 모르지, 오랜 친구 새끼라고 찾아 와서는 남의 가정 쪽박깨질 않나….나도 왜 사는가 싶다….잡아서 회를 쳐먹든, 아님, 아작을 내서 그 좇대가리 불에 꾸어 먹든 맘대로 허셈….난 상관 없으니…….’
‘너 정말 끝까지 이럴래? 우리가 이렇게 또다시 찬물 끼얹고 끝날 사이니?’
‘안 그러면, 어쩔껀데? 이제 또다시 만나서, 남편새끼 한테, 보지 벌창나, 남친새끼 한테, 똥꾸녕 씹창나? 듀엣으로 찌질거리고 다니라구? 개쇄끼…..기껏 오랫만에 만나서, 강제로 남의 여편네 보지에다, 구녕이란 구녕, 게다가 존심까지 개떡을 맹글어 놓은 주제비에…. 내가 미친년이지, 이런 새끼를 뭐가 좋다고 헤헤거리고 벌려 줬는지…..’
진검사를 쳐다 보지도 않고, 허공에 외쳐대는 미주의 탄식은 모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진검사의 가슴패기를 난도질 하고 있었다. 진검사가 옷을 주어 입고, 문을 쾅 닫고 나가자, 미주는 그제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침대에 엎어졌다.
‘이 새끼야…..왜 그렇게 대가리가 돌대가리니? 나라고 널 잊을 수 있었겠니? 흑흑..흑흑…..하루도 허전하고 못내 미칠 것 같아서 이 좇대가리, 저 떼씹에 몸을 굴리면서도, 니 새끼 못잊어서 울고 지낸 게 얼마나 많은 날밤인지, 알고나 있니? 쿨하게 빠이빠이? 그렇게 죄지은 놈들 거짓말은 번개같이 알아채도, 내가 하는 뜻없는 이바구, 그렇게도 구분할 머리가 없다니? 이 새끼야….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섹스하나만 갖고 살아가라고 했더라도, 난 널 택했을텐데…..시험만 제꺼덕 붙었어도, 이 지경까지는 아니었는데…..그렇게 출세할 값이면, 쫌 어릴 때, 이 미친년 위해서 정신 쫌 바짝 차리지…..’
미주는 그 와중에도 진검사를 아쉬워 하는 자신의 구석이 죽도록 밉기만 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전철에서 내려 공중전화를 걸던 현석의 굳어진 얼굴 때문에 윤서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니 얼굴에 죄다 써 있는데 뭘? 그 난쟁이 똥짜루만한 검사가 미주씨 더러, 너 찾아내라고 들들 볶는데? 그런 거야?’
‘…….아니…’
‘그럼?’
‘지금 집에 와 있다나봐.’
‘별일이야 있을라구? 미주씨야 아무 것도 모르는데…..’
‘지금 진검사가 미주를 덮치고…..있대!’
‘덮쳐? 뭘? 누굴? 그럼 잡아갔단 얘기야? 답답해 미치겠네. 속시원히 얘기해 쫌 해봐.’
‘나 대신에 미주를 쑤시고 있대, 그것도 우리 집에서 남자 둘이랑 더해서…..합이 셋이네….참….’
윤서의 눈이 똥그래 졌다.
‘미안해…모두 나 때문에….’
‘아냐! 그 두 녀석이야 내가 전부터 알던 수영 코치 놈들인데, 뭐…... 내가 밖으로 나 도는 게 눈치가 보여서, 그렇게나 평소에 허전해 하는 미주 보지, 달래주는 겸해서 눈 딱 감고 있던 거, 아마 미주도 알고는 있었을 거야.’
‘근데, 진검사는 또 무슨 이유로? 그 사람 검사 맞어? 아니 어느 세상 천지에 검사가 용의자 마누라 쑤시는 놈이 어디 있다니? 제정신이래?’
‘제 정신이지…..옛 애인의 남편이라고 봐주려고 했는데, 집사람에다, 나까지 물을 먹였으니, 가만 있었겠어? 나라도 덮쳐서 혼꾸녕을 내 줬을텐데. 혼꾸녕이 아니라, 마누라 구녕을 벌창을 내 놨다니, 별로 할말은 없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그럼 두 사람이 혼전에 아는 사이?’
‘그렇게 된 거 같아. 내가 척 보기에 여간 깊은 사이가 아니었던 가 싶어. 섹스 좋아하는 미주를 그렇게 살게 만든 위인이 그 진검산데, 오죽 했을라구? 아마 나랑하는 섹스는 그 반에 반도 못 미쳤을꺼야.’
‘아무래도, 넌 다시 돌아가야 할 꺼 같아. 이렇게 나랑 다니다가 너마저 진창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면 어쩌니?’
‘죽기야 하겠어? 그렇다고 미주가 그 진검사에게 돌아갈 위인은 또 못되요. 아무리 진검사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해도, 미주가 지금의 생활을 포기할 만큼 감상적이진 못해. 사랑은 사랑이고, 섹스는 섹스고, 생활은 생활이라고 칼같이 못 박는 미주거든. 자기가 태어나서 이제까지 누려온 부의 가치에 대해서, 누구보다 현실감각이 뛰어난 미주 인데, 그것들을 모두 버리고, 맨땅에 헤띵하는 삶을 찾아, 현재의 주변상황을 모두 버린다구? 절대 그럴 리는 없지. 그럴려면 나를 선택했을 미주가 아니야.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던 진검사 곁에서 머물러 있었을 미주야. 그런데, 어떻디? 미주는 깨끗이 손 탁탁 털고, 선보기 무섭게 나보다 먼저 결혼하자고 덤볐거든. 미주는 그런 여자야. 돈의 힘을, 그 윤택함을 누구보담 잘 아는 여잔데, 이런 지경이라고 할지라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싶게, 벌떡 일어나 배시시 웃을 여자라구. 걱정마. 우리 앞길이나 걱정하자, 이제 어떡헌다?’
‘자기, 괜찮겠어? 집으로 안 돌아가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멋모르고 나를 빼 줬다고 하고, 그 진검사에게 가서 비는 편이 낫질 않을까? 그 사람도 공직자의 입장으로 부적절한 관계에 빠진 빌미로 자기의 잘못을 시시콜콜이 들추어 내지는 못할 거 아냐? 지금 이라도 늦진 않았어. 돌아가. 이제 한시름 돌렸으니, 나대로 살 길을 찾아보지 뭐.’
‘괜찮아. 걱정 붙들어 매셔. 지금 자기 코가 석잔데, 누굴 걱정하고 있냐? 우선 머물 곳을 생각해 보자, 너 현찰 얼마나 있니?’
전철역에 앉아, 현석과 윤서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현찰을 가늠해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버틸 수 있을런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시작했다.
‘카드는 이제 무용지물 이겠지? 돈을 찾으려 해도, 기계 앞에 서면 보안 카메라에 찍힐 것은 뻔하고, 그 즉시로 주변 수색에 들어가, 또 꼼짝없이 걸릴 꺼고….’
‘우린 이제 차도, 핸폰도 없잖아?’
두 사람은 막막하기만 했다.
‘민기씨는 어떻게 됐을까? 자기 혹시 들은 거 있어?’
‘글쎄, 아마도 우리와 비슷한 지경이 아닐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근데, 아까 회사에서 묻고 싶었는데…그 청소복, 누구 꺼라고?’
‘그건 나중에….복잡한 일들 다 가시고 나면 얘기해 줄께. 그럴 날이 올까 싶기는 해도….’
두 사람의 앞에는 오늘 있었던 황성그룹의 수색작전이 TV뉴스로 방영되고 있었다. 역내의 대형 TV화면에는 부산한 모습으로 소리를 치고 있는 진검사와 수색조들의 모습이 녹화되어 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고 있었다.
‘뭔 죽을 죄를 저질렀길래, 저 야단 들이래?’
‘황성 그룹이야, 잘못할 게 없는데, 왜 저렇게 뒤지고 난리래?’
‘아니, 괜히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그럴까 봐? 혹시 그 도망친 직원이 무슨 기업의 감춰진 비밀 같은 걸 갖고 있는 거 아냐? 대개 그렇잖수? 비밀이 새어나갈 바에야 기냥 죽여 없앨 수도 있다는, 뭐 그런 스토리….’
‘그렇다고 버젓이 기업이라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런 무모한 짓을 했을라구? 기냥 살살 돈다발로 달랬으면 달랬지, 조폭도 아니고설랑…으름짱에, 살인까정? 그건 해도 너무 오바다.’
저마다 당사자를 떡 하니 옆에 두고, 이바구를 날리는 것을 듣고 있자니, 두 사람도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가자, 여기서 더 있다간….’
팔을 잡아끄는대로 윤서도 막막하긴 했지만, 계획이 없더라도 그 자리를 피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탕!’
진검사는 검찰로 들어와 있었다.
‘자네 그걸 보고라고 하고 있나?’
탁자를 내리치는 부장 검사의 화가 머리 끝까지 뻗치고 있었다.
‘그리고, 도주 차량을 먼저 덮친 자들이 있다는 보고는 또 뭬이야? 아니, 내노라 하는 대한민국 검사를 따돌릴 정도로 능수능란한 도주범의 할애비? 이건 무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구? 내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왜 이렇게 허는 일이 티미해? 내가 자네에게 이 일 맡기면서 얘기 했나, 안했나? 위에서 지켜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라구 말이야. 누구에게 빌 붙어서 수사를 하라는 얘기가 아냐. 소신을 갖고 밀어 부치라고 했지, 그렇게 얼빵하게 당하라고 한 얘기가 아니었다, 이 말이네.’
그러나, 진 검사는 차마 제보자의 얘기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라인으로 보고 받은 바에 의하면, 자네, 민윤서의 가족상황에 대해서 조사는 했나?’
‘미처, 그것 까지는…민윤서와 강민기에 촛점을 맞추다 보니…..’
‘아니, 자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용의자의 주변 친인척을 수사 대상에 올려 놓는 것은 기본 아닌가, 기본?’
‘요원을 급파해서 민윤서의 홀어머니 소재를 파악하고 확보하라고 지시는 내려놓은 상태 입니다.’
‘지시만 허면 뭐하나? 민윤서가 잠적한 다음 날부터, 그 에미 되는 여자도 같이 행방이 묘연헌데, 자네가 그걸 보고라도 받았다면 모를까?’
‘네?’
‘자네 아직 몰랐나?’
‘모르다녀?’
‘민윤서의 모친이 가명으로 그 회사의 청소부로 재직하고 있었던 거 말일세. 그러니, 딸의 도주를 위해서 복장을 빌려주고, 대신 회사에 잠입할 수 있도록 자취를 감춘 걸, 그림을 그려보지 않고도 눈치챘을 줄 알고 있었는데, 일일이 말을 해줘야 아나? 자네 그 정도야?’
진검사는 눈 앞이 아득해져 왔다.
‘그리고, 자네, 지금까지 어디를 돌다 왔나? 시험 망쳤다고 한강변에 나가 소주 깔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상황이 이 지경이면, 회사내부에서 민윤서의 변장과 잠적을 눈 감아준 인물들을 몽조리 잡아다가 족쳐도 모지랄 판에, 어디서 뭘하고 자빠져 있었던 게야?’
‘아니, 그게…..’
‘자네, 그 사이에 제보자도 있었지?’
‘아니, 그걸 어떻게?’
‘나라고, 그 자가 제보 않했겠나? 자네, 민윤서와 내연의 관계에 있다가 동반 도주한 선우현석 팀장의 집에 갔다 왔다며? 아니야? 맞어? 틀려?’
‘…….’
‘누구 예전에 눈물나는 러브 스토리 한자락 꿰차고 있지 않은 판검사 있으믄 나와 보라구 해. 사정이야 어찌 되었던 간에, 잊을 껀 잊어야지, 사건으로 인해 어찌 하다보니, 다시 재회했다고 그렇게 내둘르고 걸구쳤다가 나중에 자네 어쩌려고 그러나? 내 이번 한번만 눈 감아 주지만, 더 이상 똥플레이 했다간 좌천이 아니라, 그 옷 벗을 각오 하는게 좋아. 나가 봐!’
진검사는 방을 나오면서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어쩌지 못했다. 도망친 민윤서나 팀장이나 간에 가슴 뜨끔한 실수 이긴 했어도, 무엇보다, 부장검사의 귀에까지 선을 대고 있다는 그 제보자의 치밀한 작태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 였기 때문이었다. 진검사는 보통 만만한 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자기에게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질 않고, 끝끝내 어찌하나 지켜본 그 태도도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흡사, 제보자의 말이 자신의 수사방향보다 유효적절하다고 믿어버리는 그 허술함이 더 섭섭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 온 진 검사는 의자에 앉아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이형사, 민윤서의 주변 친인척에 대한 수사는 어찌 되었어? 혹시 나 말고 달리 위로 보고한 적 있나?’
‘아녀? 아니, 직속 상관이 모르게 보고하는 또라이도 있습니까? 윗선이 나 몰라라 해도, 막판에 날 지켜 줄 사람은 직속 상관 뿐인데, 제가 그걸 넘겨짚고 누구에게 보골 하겠습니까? 검사님도, 참…..’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뭐 특별한 점이 발견되었나 싶어서 말이지.’
‘제가 수색작전 때문에 상황실을 지키느라, 못가서리, 정형사를 시켰걸랑여. 지금 관련 자료를 겨우 살펴보고 있습니다요. 보시져. 그러니까. 민윤서의 어머니 민홍선 여사는…..’
‘아니, 성이 왜 똑 같아?’
‘글쎄요. 아직까지 그건 자세히 모르겠구여. 무직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은 민윤서가 재직하고 있던 황성그룹에 오래 전부터 주현실이라는 가명으로 일을 하고 있었기에 몰랐던 것 같습니다. 결혼한 강민기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 같구요. 강민기의 본가를 통해 알아본 바로도, 사돈이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답니다. 이번에 탈출을 도운 숨은 공로자는 선우팀장이 아니고, 그 모친이라는 것이죠.’
‘그럼, 그 사이에 선우팀장과의 접촉은 없었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강현실, 그러니까, 민윤서의 모친이 근무하던 황성그룹에서 오래전 1년이 넘도록 휴직했었던 그녀의 모친을 아무런 근거도 남기질 않았음에도 다시 1년 후에 은근슬쩍 복직 시킨 걸로 나와 있다는 겁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서 기록이 정확치는 않은데요. 사정이 그렇습니다.’
‘그때가 언젠데?’
‘그게, 민윤서가 태어나기 1년전 입니다. 오래전 일이져. 대개 그런 경우에는 복직이 어려운 걸로 사규에 나와 있거덩여. 뭔가 냄새가 나질 않습니까? 어머니와 성이 같고,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고, 결혼한 기록은 없는데, 딱 보기에도 출산을 근거로 휴직한 듯이 보이는 모친의 행적이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 말이져.’
‘정형사는 그렇게 자세하게,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리도 많은 걸 긁어냈다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평소엔 보고서도 찌질대며, 잊어먹기 십상인 친구가 이번엔 이렇게 보고섭네 하면서 척 하니 올린 것 쫌 보십셔. 해가 서쪽에서 뜰 지경입니다요.’
‘정형사 쫌 불러주게, 어서 빨리….’
‘지금 다른 사건으로 잠복 나간 걸로 아는데, 그래도 오라고 헐까여?’
‘전화나 연결해 봐.’
‘예썰….’
얼마 있질 않아서 진 검사는 정형사와 통화가 되었다.
‘충성! 정형삽니더. 뭔 일이라예?’
‘자네, 민윤서 모친에 대한 보고, 언제 올렸나? 자네가 직접 발로 뛴거 맞아?’
‘그기 아이고요. 카, 이기 참 난감하네…..누가 줬다 아입니꺼!’
‘누가 주다니?’
‘지 이멜로 왔다꼬, 열어 봤그등예, 근데, 그기 참 묘하다 아입니꺼?’
‘뭐가?’
‘사실 내용 확인을 할라꼬, 황성그룹에 전화를 탁 했는데, 마, 우예 그리 잘알고 있느냐꼬 화를 버럭 내드라고예.’
‘왜 화를 내?’
‘그기 이상하드라고요. 아, 청소부 한사람 신원확인하고 스또리 쪼매 긁을라 카는데, 그리 화를 내서 엄청 뒤꼭지가 가렵더라 그 말이지예.’
‘그럼 누가 보낸지는 알고?’
‘그건 잘 모르겠스예, 멜 주소로 우찌됐든 고맙따꼬 감사의 멜을 보낼라 켔는데, 안 들어가더라고요. 반송됐다 아입니꺼!’
‘다른 건 모르고?’
‘집에는 전화를 동체 받지도 않코, 연락처라꼬 적혀 있다는 핸폰도 두절이라예. 마, 딸내미 그리되고, 지도 튀었다 카는 생각도 들었심더. 마, 이형사가 하도 닥달을 해가, 낼 아침 쯤 찾아가 볼라켔스예. 지가 잘몬 했십니꺼?’
‘아니야, 계속 수고 하라구.’
진검사는 전화를 끊고, 나서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이 형사, 어서 빨리 황성그룹 회장 주변의 여자관계랑, 그로 인해 원한을 살만한 사람이 있었나 한번 살펴 봐. 그리고, 회장과 민윤서, 그리고, 민윤서 모친과의 관계도 아울러 긁어 보고……..’
‘캬. 내 이럴 쭐 알았네. 스토리가 항상 그렇지 뭐……알겠슙니다용.’
‘아참, 그리고, 정형사에게 도착 되었다는 이멜 관련 정보를 사이버 수사대에 넘겨서, 추적 가능한지도 알아보고, 필요하다면 협조공문도 아울러 보내! 긴급이라고 하고서, 얼릉?’
진 검사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맨 처음부터 민윤서는 도망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일, 민윤서가 모친 강현실과 황성그룹 회장의 사이에서 출생한 혈연관계라면, 그림이 딱 맞아 떨어지는 감이 없진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황성그룹 측은 아주 오래 전, 아무런 이유없이 1년을 휴직한 그녀의 모친을 자연스럽게 복직 시켰고, 더군다나, 그녀의 딸을 그룹내의 핵심부서에서 일 할 수 있도록 한 배려를 위에서 모를리 없다는 판단 때문 이기도 했다. 회장과 민윤서, 그리고, 민윤서의 모친 사이에 놓인 실타래를 풀 수만 있다면 얘기는 쉽게 쫑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과연 그 철두철미한 뒷감당을 해오고 있는 그 제보자가 속한 그룹이 아군 인지, 혹은 적군인지 판단이 되고 있질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 였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민윤서와 황성그룹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그 모종의 세력과의 싸움에 황성그룹이 관련된 것처럼 보이는 구석이 더 짙게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첨부터 갖고 있었던 민윤서에 대한 짙은 혐의를 진검사 스스로 풀고 있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결코 그래서는 안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민윤서도 이 사건의 일개 피해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 이었다.
‘이 형사?’
‘네? 검사님?’
‘지금, 이 시각, 민윤서와 선우팀장, 그리고, 남편 강민기의 행방은 어디일까? 국외로 나가질 못했다면, 아니, 이 서울 시내를 벗어나질 못했다면, 독안의 든 쥐 꼴 아니겠어?’
‘그렇기야 하죠. 독이 너무 크기가 커서 그렇죠. 메아리가 칠 정도로….’
‘지금 뭐라고 했지?’
‘메아리요. 독이 너무 크면 그 안에 소리쳐 봐야 웡웡 울기 밖에 더 허겠습니까?’
‘그래, 메아리야, 메아리….그거야!’
진검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넣었다. 그리고는 상의를 집어들고, 방을 나가면서,
‘나 알아볼 께 있어서…잠깐 나갔다 올께. 내가 지시한 거, 계속 예의 주시 하면서 수사 계속해. 늦더라도 돌아올께. 알았지?’
‘그럼 지원은?’
‘필요 없어. 나 혼자 갈거야. 안 따라 와도 돼.’
‘그래도 될까요?’
‘누구에게도 내 행적에 대해 일절 보고 하지마. 알았지? 만일 새어 나가는 날엔, 몽조리 이 형사 자네가 뻐꾸기 날린 걸로 알고 치도곤 날릴테니 그리 알고…..’
‘예?….예….예, 다녀 오십셔……나 이거야, 원….’
진검사는 마음이 급했다. 아무 것도 먹질 못했던 속이 부글대며 쓰려 오고 있었지만, 밥이 문제가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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