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의 머나먼 여정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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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비는 소리부터 내린다.
"우르릉, 꽈쾅!!"
때마침 작열하는 뇌전의 섬광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사내가 눈살을 찌푸린다.
겉옷이 찢겨 재껴지고 하얀 허벅지가 다 드러난 여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짧은 뚜껑 머리의 승냥이가 바지춤을 움켜쥐며 한편으로 비실비실 물러 나오고, 그사이 잔뜩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여자의 몸 위로 키가 작달막한 승냥이가 막 발톱을 세우고는 덤벼들고 있었다.
순간, 사내의 거친 목소리가 승냥이들을 향해 날아갔다.
“야! 이게 뭐 하는 짓이고? 이, 이, 개 같은 자식들아! 그만 해라!”
그때까지도 사냥한 먹잇감에 몰두해 있던 세 마리의 승냥이들은 낯선 그림자가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해 들어왔음을 모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호통에 화들짝 놀란 심경락이 고개를 확! 돌렸고, 이내 여자의 팔목을 부둥켜 잡고 있던 녀석도 열기가 피어오르는 눈길을 소리 난 방향으로 지르르 끌어당겼다.
“익..! 뭐야? 이런... 씨발...어? 너는?”
“그래, 내다...와? 떫으냐?”
“뭐야? 경락아, 네가 아는 놈이냐?”
“어, 여기 밤에 경비 서는 아이다.”
“그런데...씨발, 경비면 경비나 서지, 여기는 왜 들어와서 개보지 보리알 낀 거 같이 지랄인데?”
야수들은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난데없이 나타난 사내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뭐? 지랄? 야, 이놈들아, 그래...빠(섹스)를 하려면 다른 데서 하지, 왜 여기서 이 지랄들이고, 그것도 세 놈이 여자 하나를. 그리고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나?”
“아, 씨발! 십새야. 재수 없다. 그만 가서 잠이라 자빠져 자라!”
“하이고. 이게 얼마 만이냐, 살이 야들야들한 게 미치겠네. 젖통도 딴딴한 것이 숫처녀 맞나보네...아이고.”
“하윽!...흑흑...!”
“이, 이, 나쁜 자식이, 너는 그만하라고 하여도, 빨리 일어나라!”
퍽...!!
바지를 까 내린 키가 작달막한 승냥이의 알 궁둥이에 사내의 발길이 떨어졌다.
낡은 군화를 신은 사내의 발길질은 의외로 충격이 컸는지, 정확하게 불알 윗부분을 걷어챈 승냥이는 죽는 소리를 지르며 벌렁 나자빠진다.
“까윽! 아이쿠..!”
“아니.? 씨발, 이 좆만 한 새끼가 미쳤나? 어디에다 대고.”
“크흑!! 으윽, 윽!”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사내의 발길질이 다시 한번 바람을 갈랐다.
여자의 뽀얀 허벅지를 한 손으로 쓰다듬고 있던 덩치 큰 녀석이 복부를 걷어 채인 듯 배를 움켜쥐며 옆으로 퉁겨지듯 쓰러졌다.
녀석의 다급한 신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속하여 선빵을 날린 사내.
그러나 야수의 이빨을 드러낸 승냥이들은 순간적으로 사내에게 선수를 빼앗겼으나 이내 전열을 가다듬어서 바닥에 웅크려 있는 여자를 버려둔 채 벌떡벌떡 몸들을 일으켰다.
“너, 이...씨발..아이구, 가서 잠이나 자빠져 자라니까. 우리가 누구라고 까불고 있어
허우대 멀쩡한 심경락이 비릿한 웃음을 베어 물며 사내의 명치께로 주먹을 뻗었다.
“좆만 한 새끼가 선빵을 때려? 하이고, 제기랄. 이게 무슨 창피고.”
“뭐하나. 밟아버려, 인마 이거 오늘 제삿날이다”
막 경락의 주먹을 피하려고 상체를 뒤트는 순간 뚜껑 머리의 승냥이가 정확하게 옆구리를 찍었다.
사내가 낮은 신음을 뱉으며 주춤하는 사이,
"퍽--"
둔탁한 충격음.
“죽여버려라. 겁대가리 상실한, 인마 이거.”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벌레같이 허리를 둥글게 구부린 사내.
그 순간,
세 마리의 무자비한 승냥이들은 사정없이 발길질과 주먹, 그리고 삽자루를 휘두르며 난타를 퍼부었다.
쓰러졌던 사내가 힘겹게 일어서는 순간, 다시금 다구리(집단폭행)가 가해지고, 한바의 사내는 무방비로 드러나 있는 영양의 아랫도리 위로 허물어지듯 무너졌다.
“야. 야, 그만 해라. 누가 오는가 보다.”
“좆만 한 자식이. 한참 신나는 판을 깨 버리네. 아이고 씨발, 확! 좆대가리를 밟아 버릴라.”
“하이고, 새끼. 뒈지려고! 경락아.... 인마 이거, 네가 안다며.”
“야. 씹새가 우리를 알면 또 어떻게 할 건데.”
얼룩덜룩한 무늬의 남방을 입은 승냥이는 마지막으로 발길질을 날리고는 돌아섰다.
“아, 아쉽다, 끝내주는 가시난데....저, 새끼 때문에...쯥!”
사내에게 처음 호되게 걷어챘던 녀석이 이제 울음소리가 잦아진 여자 쪽을 힐끔 쳐다보고는 재빠르게 앞서 나간 승냥이들을 뒤쫓아 창고 문을 열어젖히며 나갔다.
정적...그리고,
"우르릉 꽈광!! 쏴아아--쏴아--!"
뇌전과 우레, 더욱더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만 참담한 정경의 공간에 메아리쳤다.
가느다랗게 이어지던 여자의 흐느낌이 어느 순간인가 잦아들고 있었다.
여자의 하얗게 탈색되고 텅 비어버린 머릿속 한 구석에서 자조 섞인 후회가 때늦게 일어난다.
애초에 잘못되었다.
밤바다를 보고 싶다는 자신을 그는 왜 하필이면 이런 한적한 부둣가로 데려왔을까?
송정, 광안리, 해운대 쪽은 비록 먼 거리지만 꼭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이곳뿐이었을까?
왜 갑자기 바다를 보고 싶었을까?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일찍 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
그제야 어느 정도 현실을 돌아보게 된 여자는 자기 하체에 죽은 듯이 엎어져 있는 사내의 중량감을 은연중에 느꼈다.
이런, 이런, 하필이면 자신의 그 은밀한 부분에 얼굴을 박고 있을 게 뭐람.
우연치고는 너무 황당한 상황, 그 와중에도 발갛게 얼굴을 붉히며 두 뺨에 뜨끈한 열기가 피어오름을 여자는 느꼈다.
"아, 어떡해...나쁜 자식들..."
여자는 자기 몸을 야수들에게 내 던지고 비겁하게 도망쳐 버린 그 남자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며 힘겹게 몸을 추슬러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이봐요. 아저씨. 아저씨!”
사내의 어깨를 가볍게 잡고 흔들어 보았지만, 양아치 승냥이들의 무자비한 린치에 사내는 의식을 놓아버린 듯했다.
“아아..어떡해? 누..누구 없어...요?”
여자는 제법 정신이 돌아온 듯 사내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쇳소리가 나는 쉰목소리로 구원을 요청해보지만,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만 귓결에 들려올 뿐이었다.
허름한 창고 안에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사내, 그리고 갈가리 찢긴 채 버려져 있는 여자의 참담하고 처절한 몰골, 그렇게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컥컥! 으윽...끄으응....!”
“아, 이봐요? 아저씨...아저씨! 저, 정신이 들어요?”
새우등처럼 구부러져 있던 사내의 등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검붉은 핏물이 이미 말라버린 입가에서 끄렁거리는 호흡과 함께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윽, 으윽..! 후우~ 그, 그 자식들은? 괜챦아요? 아가씨는?”
힘겹게 긴 숨결을 토해낸 사내는 눈을 감은 채 여자의 안위부터 걱정하며 물음을 던졌다.
“가..갔어요. 저...전, 흐흑! 아저씨는요?”
“후우~아고고.. 으윽! 나...나는”
비칠비칠 겨우 상체를 가누고 한쪽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던 사내는 순간 움찔하며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런. 내가 어디에 엎어져 있었던 거야?"
왼쪽 눈 주위가 퉁퉁 부어올라 주변의 사물들이 흐릿하게 비치려는 순간, 사내는 그냥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여태껏 제대로 가리지도 못하고 처음 그대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여자의 아랫도리, 그 중심부를 자기 얼굴이 짓누르고 있었다니.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파묻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으음, 잘 사는 집 여자인가? 비누 향이 좋은데."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사내는 후각을 자극해오는 비릿한 냄새 대신 향기를 맡았다.
“아윽, 휴~ 뭔 놈의 비가 아직도 오냐. 아이고, 나쁜 놈의 자식들...”
그리고 후다닥 재빨리 일어난 사내는, 한바에서 걸치고 나왔던 점퍼를 던지다시피 여자 몸에 덮어주고는 비틀거리며 문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
“후, 난 쉬어야겠으니 그만 가봐요..애 그, 결리네.”
사내가 문을 밀치고 나서자,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핏자국이 씻겨 내린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한바까지도 걸어가기가 힘들 지경이다.
사내는 발을 질질 끌면서 돌아와, 희뿌연 전등불이 아직도 켜져 있는 한바의 딱딱한 나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배를 찾아, 막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댕기려는데, 어느새 뒤따라왔는지 주춤거리며 문 앞에 서 있는 여자.
사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가시라니까요. 다 잊어버리고 가세요. 어서요”
“흐윽.! 이. 이런 꼴로 어떻게, 그리고. 저 때문에 아저씨가.”
“나, 참. 내 걱정은 안 해줘도 돼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세요.”
“...그래도....”
“하아, 참...이 아가씨...자요, 그럼 이거라도 좀 걸쳐요. 땀 냄새가 좀 심할 테지만, 마땅한 게 없으니.”
여태껏 머리를 눕혔던 침구 위,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옷가지 속에서 셔츠 하나를 집어 여자에게 건넨 사내는 얼른 고개를 돌린다.
젖은 머리. 치마와 블라우스가 찢겨 여기저기 드러나 있는 하얀 속살, 희미한 불빛 아래 얼핏 보았으나 꽤 귀염성 있는 이쁜 얼굴의 여자다.
사내는 너울거리며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속으로 다시금 훅! 입김을 불어내었다.
잠시 망연해하며 서 있던 여자는 사내가 건네준 셔츠로 몸을 가렸다.
사내가 담배꽁초를 휙 던져 발로 비벼끄려는 그때, 여자가 갑자기 흐느낌을 보이더니, 이내 울음소리를 크게 해버린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흐흑! 으앙..앙앙...”
“허, 참! 이 아가씨,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네. 괜히 허튼 생각 하지 말고 잠깐 악몽을 꾸었다고 생각해요.”
“으앙..엉엉..흑흑, 아저씨가...아저씨가 뭔데 그런 말을...흑흑”
“내 말뜻은...그냥요, 낯선 곳에 와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겪었지만, 그래요. 그 누구도 아가씨를 보지 않았다고, 모른다고 생각하시라는 그런.”
“흑흑...흐흑...”
사내의 위로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에 여자는 더 괴로운 듯 눈물을 찔끔거렸다.
사내의 말은, 이런 야심한 시간에 으슥한 장소로 데이트 나온 것은 그렇고 그런 일을 당해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냐는 투의 뜻도 포함된 듯했고, 한편으로는 제 일은 제가 책임지라고 나무라는 의미로도 들렸다.
잠시 후, 여자는 울음을 그치고 약하게 흐느끼면서, 막 윗도리를 벗고 아직도 피가 베여나오는 어깻죽지의 상처에 손을 가져가는 사내의 모습을 힐끔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흐흑, 아..아저씨가...있었쟎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 나. 그럼, 나더러 도대체 어떻게 하란 거요? 그놈들에게 얻어터져서 내일 일도 못 하게 생겼구만.”
“그건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그 약, 이리 줘봐요.”
“됐어요, 평소 같았으면 그깟 놈들...으윽!”
공사판의 한바에 비치된 약이라고 해봤자, 아까징기(소독용)에 다이야찐(지혈제) 가루 정도다.
그제야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가느다란 손끝이 사내의 어깻죽지를 스쳐 간다.
“대충대충 해요. 비가 좀 가늘어진 것 같은데. 큰길까지 데려다줄게요. 아까 내가 한 말 오해해서 듣진 마시고요. 아셨지요?”
“...........”
그렇게 거세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약해지면서 한바 천장을 울리는 빗소리가 뜸해진다. 바깥은 흐린 먹물을 온통 뿌려놓은 듯 짙은 어둠만이 더욱더 깊어지고 있었다.
"우르릉, 꽈쾅!!"
때마침 작열하는 뇌전의 섬광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사내가 눈살을 찌푸린다.
겉옷이 찢겨 재껴지고 하얀 허벅지가 다 드러난 여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짧은 뚜껑 머리의 승냥이가 바지춤을 움켜쥐며 한편으로 비실비실 물러 나오고, 그사이 잔뜩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여자의 몸 위로 키가 작달막한 승냥이가 막 발톱을 세우고는 덤벼들고 있었다.
순간, 사내의 거친 목소리가 승냥이들을 향해 날아갔다.
“야! 이게 뭐 하는 짓이고? 이, 이, 개 같은 자식들아! 그만 해라!”
그때까지도 사냥한 먹잇감에 몰두해 있던 세 마리의 승냥이들은 낯선 그림자가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해 들어왔음을 모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호통에 화들짝 놀란 심경락이 고개를 확! 돌렸고, 이내 여자의 팔목을 부둥켜 잡고 있던 녀석도 열기가 피어오르는 눈길을 소리 난 방향으로 지르르 끌어당겼다.
“익..! 뭐야? 이런... 씨발...어? 너는?”
“그래, 내다...와? 떫으냐?”
“뭐야? 경락아, 네가 아는 놈이냐?”
“어, 여기 밤에 경비 서는 아이다.”
“그런데...씨발, 경비면 경비나 서지, 여기는 왜 들어와서 개보지 보리알 낀 거 같이 지랄인데?”
야수들은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난데없이 나타난 사내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뭐? 지랄? 야, 이놈들아, 그래...빠(섹스)를 하려면 다른 데서 하지, 왜 여기서 이 지랄들이고, 그것도 세 놈이 여자 하나를. 그리고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나?”
“아, 씨발! 십새야. 재수 없다. 그만 가서 잠이라 자빠져 자라!”
“하이고. 이게 얼마 만이냐, 살이 야들야들한 게 미치겠네. 젖통도 딴딴한 것이 숫처녀 맞나보네...아이고.”
“하윽!...흑흑...!”
“이, 이, 나쁜 자식이, 너는 그만하라고 하여도, 빨리 일어나라!”
퍽...!!
바지를 까 내린 키가 작달막한 승냥이의 알 궁둥이에 사내의 발길이 떨어졌다.
낡은 군화를 신은 사내의 발길질은 의외로 충격이 컸는지, 정확하게 불알 윗부분을 걷어챈 승냥이는 죽는 소리를 지르며 벌렁 나자빠진다.
“까윽! 아이쿠..!”
“아니.? 씨발, 이 좆만 한 새끼가 미쳤나? 어디에다 대고.”
“크흑!! 으윽, 윽!”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사내의 발길질이 다시 한번 바람을 갈랐다.
여자의 뽀얀 허벅지를 한 손으로 쓰다듬고 있던 덩치 큰 녀석이 복부를 걷어 채인 듯 배를 움켜쥐며 옆으로 퉁겨지듯 쓰러졌다.
녀석의 다급한 신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속하여 선빵을 날린 사내.
그러나 야수의 이빨을 드러낸 승냥이들은 순간적으로 사내에게 선수를 빼앗겼으나 이내 전열을 가다듬어서 바닥에 웅크려 있는 여자를 버려둔 채 벌떡벌떡 몸들을 일으켰다.
“너, 이...씨발..아이구, 가서 잠이나 자빠져 자라니까. 우리가 누구라고 까불고 있어
허우대 멀쩡한 심경락이 비릿한 웃음을 베어 물며 사내의 명치께로 주먹을 뻗었다.
“좆만 한 새끼가 선빵을 때려? 하이고, 제기랄. 이게 무슨 창피고.”
“뭐하나. 밟아버려, 인마 이거 오늘 제삿날이다”
막 경락의 주먹을 피하려고 상체를 뒤트는 순간 뚜껑 머리의 승냥이가 정확하게 옆구리를 찍었다.
사내가 낮은 신음을 뱉으며 주춤하는 사이,
"퍽--"
둔탁한 충격음.
“죽여버려라. 겁대가리 상실한, 인마 이거.”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벌레같이 허리를 둥글게 구부린 사내.
그 순간,
세 마리의 무자비한 승냥이들은 사정없이 발길질과 주먹, 그리고 삽자루를 휘두르며 난타를 퍼부었다.
쓰러졌던 사내가 힘겹게 일어서는 순간, 다시금 다구리(집단폭행)가 가해지고, 한바의 사내는 무방비로 드러나 있는 영양의 아랫도리 위로 허물어지듯 무너졌다.
“야. 야, 그만 해라. 누가 오는가 보다.”
“좆만 한 자식이. 한참 신나는 판을 깨 버리네. 아이고 씨발, 확! 좆대가리를 밟아 버릴라.”
“하이고, 새끼. 뒈지려고! 경락아.... 인마 이거, 네가 안다며.”
“야. 씹새가 우리를 알면 또 어떻게 할 건데.”
얼룩덜룩한 무늬의 남방을 입은 승냥이는 마지막으로 발길질을 날리고는 돌아섰다.
“아, 아쉽다, 끝내주는 가시난데....저, 새끼 때문에...쯥!”
사내에게 처음 호되게 걷어챘던 녀석이 이제 울음소리가 잦아진 여자 쪽을 힐끔 쳐다보고는 재빠르게 앞서 나간 승냥이들을 뒤쫓아 창고 문을 열어젖히며 나갔다.
정적...그리고,
"우르릉 꽈광!! 쏴아아--쏴아--!"
뇌전과 우레, 더욱더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만 참담한 정경의 공간에 메아리쳤다.
가느다랗게 이어지던 여자의 흐느낌이 어느 순간인가 잦아들고 있었다.
여자의 하얗게 탈색되고 텅 비어버린 머릿속 한 구석에서 자조 섞인 후회가 때늦게 일어난다.
애초에 잘못되었다.
밤바다를 보고 싶다는 자신을 그는 왜 하필이면 이런 한적한 부둣가로 데려왔을까?
송정, 광안리, 해운대 쪽은 비록 먼 거리지만 꼭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이곳뿐이었을까?
왜 갑자기 바다를 보고 싶었을까?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일찍 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
그제야 어느 정도 현실을 돌아보게 된 여자는 자기 하체에 죽은 듯이 엎어져 있는 사내의 중량감을 은연중에 느꼈다.
이런, 이런, 하필이면 자신의 그 은밀한 부분에 얼굴을 박고 있을 게 뭐람.
우연치고는 너무 황당한 상황, 그 와중에도 발갛게 얼굴을 붉히며 두 뺨에 뜨끈한 열기가 피어오름을 여자는 느꼈다.
"아, 어떡해...나쁜 자식들..."
여자는 자기 몸을 야수들에게 내 던지고 비겁하게 도망쳐 버린 그 남자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며 힘겹게 몸을 추슬러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이봐요. 아저씨. 아저씨!”
사내의 어깨를 가볍게 잡고 흔들어 보았지만, 양아치 승냥이들의 무자비한 린치에 사내는 의식을 놓아버린 듯했다.
“아아..어떡해? 누..누구 없어...요?”
여자는 제법 정신이 돌아온 듯 사내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쇳소리가 나는 쉰목소리로 구원을 요청해보지만,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만 귓결에 들려올 뿐이었다.
허름한 창고 안에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사내, 그리고 갈가리 찢긴 채 버려져 있는 여자의 참담하고 처절한 몰골, 그렇게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컥컥! 으윽...끄으응....!”
“아, 이봐요? 아저씨...아저씨! 저, 정신이 들어요?”
새우등처럼 구부러져 있던 사내의 등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검붉은 핏물이 이미 말라버린 입가에서 끄렁거리는 호흡과 함께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윽, 으윽..! 후우~ 그, 그 자식들은? 괜챦아요? 아가씨는?”
힘겹게 긴 숨결을 토해낸 사내는 눈을 감은 채 여자의 안위부터 걱정하며 물음을 던졌다.
“가..갔어요. 저...전, 흐흑! 아저씨는요?”
“후우~아고고.. 으윽! 나...나는”
비칠비칠 겨우 상체를 가누고 한쪽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던 사내는 순간 움찔하며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런. 내가 어디에 엎어져 있었던 거야?"
왼쪽 눈 주위가 퉁퉁 부어올라 주변의 사물들이 흐릿하게 비치려는 순간, 사내는 그냥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여태껏 제대로 가리지도 못하고 처음 그대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여자의 아랫도리, 그 중심부를 자기 얼굴이 짓누르고 있었다니.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파묻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으음, 잘 사는 집 여자인가? 비누 향이 좋은데."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사내는 후각을 자극해오는 비릿한 냄새 대신 향기를 맡았다.
“아윽, 휴~ 뭔 놈의 비가 아직도 오냐. 아이고, 나쁜 놈의 자식들...”
그리고 후다닥 재빨리 일어난 사내는, 한바에서 걸치고 나왔던 점퍼를 던지다시피 여자 몸에 덮어주고는 비틀거리며 문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
“후, 난 쉬어야겠으니 그만 가봐요..애 그, 결리네.”
사내가 문을 밀치고 나서자,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핏자국이 씻겨 내린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한바까지도 걸어가기가 힘들 지경이다.
사내는 발을 질질 끌면서 돌아와, 희뿌연 전등불이 아직도 켜져 있는 한바의 딱딱한 나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배를 찾아, 막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댕기려는데, 어느새 뒤따라왔는지 주춤거리며 문 앞에 서 있는 여자.
사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가시라니까요. 다 잊어버리고 가세요. 어서요”
“흐윽.! 이. 이런 꼴로 어떻게, 그리고. 저 때문에 아저씨가.”
“나, 참. 내 걱정은 안 해줘도 돼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세요.”
“...그래도....”
“하아, 참...이 아가씨...자요, 그럼 이거라도 좀 걸쳐요. 땀 냄새가 좀 심할 테지만, 마땅한 게 없으니.”
여태껏 머리를 눕혔던 침구 위,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옷가지 속에서 셔츠 하나를 집어 여자에게 건넨 사내는 얼른 고개를 돌린다.
젖은 머리. 치마와 블라우스가 찢겨 여기저기 드러나 있는 하얀 속살, 희미한 불빛 아래 얼핏 보았으나 꽤 귀염성 있는 이쁜 얼굴의 여자다.
사내는 너울거리며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속으로 다시금 훅! 입김을 불어내었다.
잠시 망연해하며 서 있던 여자는 사내가 건네준 셔츠로 몸을 가렸다.
사내가 담배꽁초를 휙 던져 발로 비벼끄려는 그때, 여자가 갑자기 흐느낌을 보이더니, 이내 울음소리를 크게 해버린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흐흑! 으앙..앙앙...”
“허, 참! 이 아가씨,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네. 괜히 허튼 생각 하지 말고 잠깐 악몽을 꾸었다고 생각해요.”
“으앙..엉엉..흑흑, 아저씨가...아저씨가 뭔데 그런 말을...흑흑”
“내 말뜻은...그냥요, 낯선 곳에 와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겪었지만, 그래요. 그 누구도 아가씨를 보지 않았다고, 모른다고 생각하시라는 그런.”
“흑흑...흐흑...”
사내의 위로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에 여자는 더 괴로운 듯 눈물을 찔끔거렸다.
사내의 말은, 이런 야심한 시간에 으슥한 장소로 데이트 나온 것은 그렇고 그런 일을 당해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냐는 투의 뜻도 포함된 듯했고, 한편으로는 제 일은 제가 책임지라고 나무라는 의미로도 들렸다.
잠시 후, 여자는 울음을 그치고 약하게 흐느끼면서, 막 윗도리를 벗고 아직도 피가 베여나오는 어깻죽지의 상처에 손을 가져가는 사내의 모습을 힐끔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흐흑, 아..아저씨가...있었쟎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 나. 그럼, 나더러 도대체 어떻게 하란 거요? 그놈들에게 얻어터져서 내일 일도 못 하게 생겼구만.”
“그건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그 약, 이리 줘봐요.”
“됐어요, 평소 같았으면 그깟 놈들...으윽!”
공사판의 한바에 비치된 약이라고 해봤자, 아까징기(소독용)에 다이야찐(지혈제) 가루 정도다.
그제야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가느다란 손끝이 사내의 어깻죽지를 스쳐 간다.
“대충대충 해요. 비가 좀 가늘어진 것 같은데. 큰길까지 데려다줄게요. 아까 내가 한 말 오해해서 듣진 마시고요. 아셨지요?”
“...........”
그렇게 거세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약해지면서 한바 천장을 울리는 빗소리가 뜸해진다. 바깥은 흐린 먹물을 온통 뿌려놓은 듯 짙은 어둠만이 더욱더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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