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X - 2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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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협의했지만 누구도 통제구역을 자유롭게 활보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결론입니다. 다만, 박사가 완전히 귀화한다면 자유로운 통행이 허용됩니다.“
“물질과 시간에너지 연구엔 관심이 있지만 로봇만으로도 벅찬 일이오. 지금 당장 시간에너지에 대한 열쇠를 찾아야 한다면 이도 저도 잃게될 뿐이지요. 많은 사람의 참여해야 작은 성과를 얻게 될 일인데 보안에만 초점을 맞춰버리면 평행선만 그어질 뿐이지요.”
“시간에너지가 박사의 로봇에겐 절대적이지 않다는 얘깁니까?”
“새로운 시간에너지를 다루는 것은 영광된 일이지만 로봇의 행동이 시간에너지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오. 당장에는 최소한의 생체 구성물질에 대한 내구성만으로 대기권 안에서 활동영역을 제한하는 것도 유력한 방법이니까.”
“그렇긴 하지만 시간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열쇠만 찾게 된다면 인류의 우주 경영은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내 자신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합니다. 그런 마당에 우주 경영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소.”
“그럼 휴먼로봇과 시간에너지를 공존시킬 수 있는 빠른 대안을 찾아 보도록 합시다.” 스미드는 한발 물러서며 나를 달래려 했다.
“나도 휴먼로봇의 내구성에 대해 생각 못했던 것은 사실이오. 가속도와 중력 저항에 대한 내구성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휴먼로봇의 활동반경이 대기권으로 제한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대신할 휴먼로봇을 기대한다면 인공지능과 생체기능을 포함하여 이동매체에 대한 연구가 선행 되야하고, 그 후에 시공을 초월한 시간에너지 조정 능력이 부여되면 된다는 생각이오. 매체가 있어야 매질을 쓰고 말고 할 것 아니겠소.”
스미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박사의 의견을 따르겠소. 사람들은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지구는 다른 행성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수억 광년 떨어진 외계로부터 날아온 이들의 눈엔 지구인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듯 합니다. 그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려면 빠른 시간내에 로봇이 생산되야 하고 대기권 밖에서 활동하며 이들의 침략을 막아내야 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우려하는 것들은 수억년 전부터 있었던 일이오. 이 곳을 찾는 우주인들은 이미 시간에너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신의 영역에 들어선 것 같소. 그들이 휴먼 로봇이 완성된 때에 맞춰 지구를 정복하려는 것은 아니지 않소. 어쩌면 그들은 지구의 생물이 우주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수억년을 지켜보던 그대로 더 많은 시간을 지켜 보기만 할 것이라고 믿고 싶소.”
“지구를 지켜야 하는 우리 입장은 다릅니다. 저들은 척후병에 불과할 뿐이고 그들 뒤에는 거대한 무리가 뒤따르며 지구점령을 위한 출병을 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먼저하게 됩니다.”
“당신들 논리가 비약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미 신의 경지에 도달한 그들이 무엇이 아쉽다고 이렇게 초라한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수억년의 거리까지 날아와 공격한단 말이오?”
“인간에게 야망이 있듯이 우주의 또 다른 생물도 야망이 있습니다. 그들이 공격하지 않았다는 사실 만으로 앞으로도 계속 평화가 유지될 것을 기대하는 것 보다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여 그들을 무찌르고 지구를 지켜낼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처한 입장에 따라 생각도 다른 것이니 스미드 당신 생각이 옳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겠소. 다만 휴먼로봇이 당신들이 기다려온 또 다른 신무기로 쓰이지 않기만 바랄 뿐이오.”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시대입니다. 미국의 강력한 힘으로 지구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는 부정하지 않지만 만약 로봇이 다른 나라에 의해 개발된다면 힘의 균형이 깨지고 지구는 대혼란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속수무책으로 인류는 파멸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구에서 전쟁만 하지 않는다면 수억년을 조용히 지켜보던 외계인들은 앞으로 또 수억년을 조용히 지켜 보기만 할 것이라는 얘기요.”
“박사님의 기본회로도 하나가 흘러나와 이미 초기 로봇을 개발했다고 난리치는 시댑니다. 저들이 전력투구하여 공격용 로봇으로 양산하게 되면 지구는 또 한번의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이미 시작된 로봇시대라면 박사님은 미국을 중심으로 인간에게 복종하는 휴먼로봇을 완성하여 전쟁무기로써 쓰이지 않도록 철저한 협력과 통제의 틀에서 쓰이게 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대서나 연구만 하면 되는 사람이오. 당신들이 그토록 지구 방어를 위해 휴먼로봇을 고대하고 있다면 당신들 뜻대로 그 용도로 사용하시오. 나는 보다 인간적인 로봇의 탄생만으로 만족할 것이며, 외계인보다 더 가까이 있게 될 휴먼로봇의 반란에 대비하는 것이 내가 해야할 마지막 사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스미드 일행과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김학수와 숙은 진지하게 우리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양보해야 할 것들이 서로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와 스미드는 결론 도출을 위한 필사적인 설변을 더 이상 토하지는 않았다. 커피가 리필되고 말 없이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장내는 침묵이 이어졌다.
“팬타곤으로 가시죠.” 스미드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억지를 부리기 보다는 내가 제시한 것에 대한 의견을 먼저 듣고 싶소.”
“좋습니다. 휴먼로봇은 다국적 컨소시엄을 통해 개발하는 것으로 합시다. 시간에너지를 다루는 것은 박사만이 참여토록 하고 프로젝트 수행 장소는 팬타콘에서 결정하는 것에 따르도록 합시다. 자금은 무제한 투입 할테니 박사가 필요한 사람을 다국적으로 선발하여 로봇의 완성을 당겨봅시다.”
“나는 미국 측에서 모든 나라에게 이런 프로젝트가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공지해 주길 바라오. 그들도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금과 인력도 공동으로 부담할 것을 제의하오. 먼 훗날 휴먼로봇이 또 다른 인류를 제압하는 데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장치도 당신들에게 약속 받아야 하겠소.”
“박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 줄테니 우선 이곳을 떠납시다. 추운 날씨요.”
“일행 중 신디는 관광 안내원 일 뿐이니 적당히 내려 주시오. 팬타곤에서는 가계약만 하고 본계약은 내가 고국에 다녀 온 후에 합시다.”
“좋습니다.”
“이번 금요일에 뉴욕 교외에서 두 사람이 결혼할텐데 참가해 주시겠소?”
“두분이 결혼합니까?”
“당연히 두 사람이 결혼하지 서너명이 한꺼번에 합니까?”
“알았습니다. 저희 팀도 모두 들러리로 참가 시키겠습니다.”
헬리콥터가 떠나간 자리엔 승용차 들이 서 있었다. 여러 대에 나뉘타고 팬타곤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지난 날들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인간이 계단을 하나씩 밟아 언제 쯤 성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미친 짓거리라며 비웃던 일만 골라서 덤벼들기를 이십오년. 평범하게 자리 잡은 친구들은 마누라와 자식새끼만으로 행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한 듯 만족해 했었지. 뚜렷한 목표 조차 설정하지 못한 채 헤메던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모두 결과를 맺지 못한 과정속에 내 팽겨쳐져 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능하다고 믿고 몸부림치던 지난 날들을 사람들이 맘껏 비웃었다. 죽으면 한 줌 흙밖에 안될 몸으로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사는 것 보다는 작은 행복에 목표를 맞추고 알콩달콩 사는 재미가 더 크다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결국 그들이 목표를 삼지 않아서 얻지 못했을 과업들이나 목표를 삼고 몸부림치면서도 얻지 못한 내 경우나 결과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어쩌면 그들 보다 더 빨리 늙어 버린 흰머리카락 만큼은 그들 보다 많으니 그것이 다른 결과였다. 꿈이 헛되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어차피 이루지 못할 꿈이라며 포기한 인생 보다는 조금 나았으면 좋겠다.
일행이 국방차관 회의실에 도착하니 그 곳에는 이미 국무성, 육군성, 해군성 최고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어서 오시오. 박사.” 리차드 차관이 인사하며 자리를 권했다.
중위 계급장을 단 무관이 절도있게 우리가 앉을 자리의 의자를 빼주고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내왔다. 무거운 분위기가 엄숙하게 어깨를 누른다.
“우린 박사의 프로젝트에 대해 심각한 토의를 마친 상태입니다. 스미드 소장으로부터 받은 제의에 동의 하는 것으로 알겠소.”
“좋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거대한 프로젝트를 맡아 준다면 기꺼이 응하겠소. 다만 본계약은 내가 고국을 방문 한 이후로 미뤘으면 합니다.”
“우리도 박사에게 궁금한 점이 있어서 기다리던 참입니다.”
“모이신 분들이 각 군 최고 수뇌부이신데 이미 다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휴먼로봇의 골격은 생체를 이용할 겁니까? 설계도 유출로 먼저 만들어진 것을 보니 뼈대를 강철로 하고 피부는 세라믹을 썼더군요. 휴먼로봇의 근간은 두뇌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소?”
“맞습니다. 인공지능 기능을 갖추려면 수많은 프로세스를 기능별 컨트롤러로 만들어 상호 명령체계를 전달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와 제어가 핵심 기술입니다. 각 컨트롤러는 자체 연산과 판단회로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외부 컨트롤로와의 협조관계로 반응과 거절에 대한 고도의 프로그래밍이 필요하고 이를 저장할 자체 메모리를 갖추게 됩니다. 결국 휴먼로봇은 겉모양이 어떻든 수억개의 컴퓨터가 모여서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쇠덩이에 불과합니다.”
“박사의 감춰진 설계를 추론해 보면 그런 컴퓨터 회로가 제어버스나 데이터버스의 구조를 경유해 전달되지 않고 신경망 조직을 이용할 것이라 봅니다. 맞습니까?”
“수억개의 컴퓨터가 연결된 상태에서 인간의 형상을 갖추려면 초박형 설계가 필요한데 각 디바이스들을 연결하는 회로망을 지금처럼 버스를 이용한다면 크기를 줄일 수 없습니다. 당연히 명령과 데이터의 이동은 신경망을 이용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번에 만들어진 초기 로봇의 기능이라는 것은 기대할 만한 것이 못된단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초기 설계도는 각각의 컨트롤러가 동작부분에서만 제어되어 일상적인 기계장치라고 봐야 합니다. 적어도 휴먼로봇이 되려면 수억개의 컨트롤러를 일괄제어할 수 있는 헤더와 이런 명령을 전달받을 디바이스는 다른 디바이스에 자신이 수행할 명령 이외의 명령을 초고속으로 전달하는 버퍼역활이 고려되야 합니다.”
“명령을 정류할 공간 말입니까?”
“하나의 명령이 하나의 동작을 지시하게 되면 휴먼로봇의 헤더는 엄청난 규모의 크기를 갖게 됩니다. 인간 뇌의 크기에 맞게 하려면 한 명령이 전달될 때 마다 최종 목표 디바이스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각 디바이스는 자동적으로 자신이 수행할 명령을 추출하고 나머지 명령을 가공하여 다른 디바이스에 전달하는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헤더는 짧은 명령으로 각 디바이스 단위에 연속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결과를 수집하여 또 다른 행위를 지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각 디바이스들 조차 헤더를 갖고 있단 말입니까?”
“각 디바이스는 초박형 컴퓨터일 뿐이지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데는 전혀 지장 없는 완벽한 컴퓨터 장치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필요한 명령을 수집하고 이웃 디바이스에 가공된 명령을 넘겨주는 버퍼 역할이 고려될 때만이 휴먼로봇의 헤더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을 갖게 됩니다.”
“대기권에서의 이동 속도만 보더라도 내구성에 문제가 있겠던데 물질 개발은 어떻게 진행할 계획입니까?”
“개발 초기에는 프레임간의 명령 전달체계만 갖추는 신경망 조직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다른 한편에선 음속과 초음속 그리고 광속에 견딜만한 물질 개발이 있어야 하고 운반체에 대한 소형화가 함께 추진되야 합니다. 내가 맡게 될 일은 헤더와 디바이스간의 정보전달 방법에 대한 부분이고 나머지는 다른 팀에 의해 진행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안한 것이 시간에너지 조절방법을 휴먼로봇에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이 방법을 통해 로봇의 이동과 재질에 관한 연구를 축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좋은 접근 방법입니다. 그러나 대기권에서 견디지 못하는 휴먼로봇이 대기권 밖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뛰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우선 지금까지 개발된 물질 전체에 대한 적용 가능성이 검토되야 하고 선택된 물질의 증식 용이성이 검토되야 합니다.”
“알았습니다. 박사의 생각은 설계도에서 이미 읽었소. 모든 분야를 총괄하기 보다는 헤더와 신경망조직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는 휴먼로봇을 완성하겠다는 굳은 의지도 보여집니다. 우린 이번 토론을 통해 이미 수집된 정보와 함께 박사의 프로젝트를 돕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휴먼로봇의 수중에서의 내구성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해군성 막스 대령이 물었다.
“재질에 따라 수중 활동은 결정될 것입니다. 초음속과 광속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수압을 이길 수 있도록 설계될 것으로 믿어도 됩니다.”
“만약 수중 활동이 보장된다면 인류 역사는 크게 발전할 것입니다.”
“그렇겠죠. 지구를 덮고 있는 70퍼센트의 세계를 휴먼로봇이 인간을 대신하여 개발한다면 무한한 자원을 얻게 될테니까.”
“그 뿐만 아닙니다. 바닷속에는 지구 탄생의 비밀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개발된 잠수함이나 잠수정으로는 해저속의 해구를 탐험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었는데 이런 탐험에 투입한다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몇만배의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이 아닌 평화의 승리라...”
“휴먼로봇의 재질에 따라서는 총알이나 화약류에도 강한 내구성을 보이겠군요?” 육군성 트라이 대령이 물었다.
“회전체에 대한 저항을 고려한다면 충격에 대한 완충도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물질 중에선 두가지 모두를 충족할 만한 것은 강철 종류인데 생체 물질 중에서 이를 적용하려면 생체와 무생물의 결합이 연구되야 합니다. 어차피 지구를 지키는 임무가 팬타곤의 목표라면 재질은 원자폭탄에 피폭되도 파괴되지 않는 물질을 찾아내야할테지요.”
“이번 주 금요일에 두 분이 결혼한다고 들었습니다. 초대해 주시겠소?” 리차드 차관이 회의를 정리하는 분위기에서 말 했다.
“돈을 봉투에 두둑하게 넣고 오면 아무도 안 말립니다.” 그 말에 박장대소하며 웃는 통에 회의실 분위기는 다소 환해졌다. 일행이 팬타곤에서 나와 호텔로 향하는 길에 경호 차량이 앞 뒤에 따라 붙었다. 짧은 순간에 유명 인사가 된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운전대를 잡은 김학수는 한참을 침묵하며 생각에 잠겨있다가 호텔이 눈 앞에 나타나자 다급한 듯 말 했다.
“박사님, 저는 갈등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일했던 중국에서의 시간을 생각하면 박사님의 협력자로서 대등한 입장에서 계속 일해야 하지만 몇일 박사님 곁에 있으며 보고 느낀 것은 이번 일만큼은 모든 것을 버리고 박사님의 수족이 되야한다는 결심이 섭니다.”
“김학수씨, 당신은 자유인이오. 어떤 행동도 당신의 책임하에 결정되는 것이니까 갈등하지 말아요.”
“저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소. 다만 여러 나라에서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일을 시작하자고 하면 그 일을 맡게 될 예정일 뿐이고 그 일이 시작되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평온한 시간은 없어집니다. 오직 일과 일 속에 자신의 일생을 걸어야 할 끝이 보이지 않는 시련 뿐이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러 나라가 돕겠다고 나서는 속에서도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반자동로봇을 염려하는 박사님의 깊은 배려에 감동되었습니다. 제게 그 로봇의 설계를 맡겨 주신다면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김학수씨는 휴먼 로봇이 더 좋지 않소?”
“어차피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에서 눈독을 들인다면 언젠간 휴먼로봇이 만들어지겠지요. 그들이 진화하면서 인간을 짖밟아버릴 정도의 지능을 갖추게 될 때 이를 제압할 방법은 외면될텐데 그 일을 박사님 혼자서 감당하시렵니까? 적어도 박사님의 곁에는 제가 있어 미력한 힘을 보태야 한다고 봅니다.”
“좋소. 처음부터 당신이 무모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합시다.”
김학수는 감동된 얼굴로 브레이크를 밟으며 호텔 로비에 도착한 나를 위해 차 문을 열었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김학수를 보내고 단 둘이서 호텔 객실에 들어섰다. 떨림과 감동의 시간을 짧은 몇일 동안 겪었다. 모두 쳐다보지도 않았던 허황된 꿈들이 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모두 숙의 도움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생각에 그녀를 보듬어 안고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머릿결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숙도 감동의 눈물을 볼 위로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다.
“당신이 나를 믿어 줘서 고마웠어.”
“끝난 일인가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잖아요.”
“끝난 것 같아. 한국에 들어가서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는 몇몇 애들만 놀려주면 신상 정리를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올꺼야.”
“마누라와 아이들 모두를 버리고요?”
“착수금이나 계약금 받게 되면 식구들 평생 먹고 살만큼 남겨주고 이 프로젝트에 목숨을 걸어야겠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삼년 정도 생각하고 있어.”
“금방이네요. 당신은 삼년 후에도 젊을꺼에요.”
“혼신을 쏟는 삼년은 삼십년만큼의 시간과 같아.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는 중늙은이같이 축 늘어져있게 될꺼야.”
“당신이 말했죠. 너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겐 시간도 비켜간다고요. 그렇다면 삼년 후엔 당신은 지금 보다 더 젊어질 수 있어요.”
“알고 있었어? 시간 에너지에 손 댈꺼야. 미래로의 이동은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지만 과거로의 이동은 반대 개념이 될테니까.”
“아아, 당신은 신이 되고 싶었군요.”
“그렇지 않아. 애쓴 당신에게 봉사할 시간만 벌고 싶을 뿐이야.”
“당신은 젊어지고 나는 늙어지는 그런 현상이 생기겠네.”
“각각의 객체마다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 봐야겠지.”
“그럼 나도 당신에게 딱 어울리는 나이로 돌아갈 수 있는것이에요?”
“삼년의 세월만 기다리면 가능할거야.”
“너무 좋아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미 신의 반열에 들어섰어요. 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당신을 보채기만 했어요. 그렇게 다른 생각 속에서 살면서 당신의 위대함 보다는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울고 웃었죠. 이틀 후면 적어도 미국땅에선 당신의 공식적 여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어린 소녀가 된 것 같아요.”
숙은 쓰러지듯 안겨오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빰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겨주며 그 사이로 비치는 하얀 목덜미를 입술로 덮었다.
“잠깐만요. 옷 좀 벗고 샤워하고 올께요.”
살아온 길이 달라서 일까. 그녀는 항상 단정하고 품위있는 모습으로 내 앞에 있었다. 감정이 솟구치면 그 순간 달아올라 부등켜 안고 뒹굴고 동물같이 엉켜 버리면 좋으련만 감정을 억제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내게 안겨오고 싶은 이성이 감성을 완전히 제압해 버리는 것 같다. “그래, 나도 옷좀 벗고 샤워를 해야겠어.”
“그럼 우리 같이 해요. 이 곳 욕탕은 넓더라구요.”
두 사람은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샤워실로 뛰어 들었다.
물줄기가 샤워기에서 하얗게 떨어졌다. 욕탕에는 뜨거운 물이 조금씩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나는 얼굴에 거품을 마구 일으킨 후 일회용 면도기로 까뭇거렸던 수염을 뿌리까지 깔끔하게 밀어버렸다. 거울 속에 비춰진 산타할아버지의 수염은 면도기가 이동할 때 마다 살색으로 변하면서 원래의 내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물이 다 찼어요. 들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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