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도록 아름다운 - 1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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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찬승은 미경과 함께 영어 학원에서 강의를 듣고는 배가 고파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미경아 밥 먹고 갈래?”
“밥이요? 예. 좋아요.”
미경은 대답하며 또 다시 우아하게 미소 짓는다.
학원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앉을 때까지 찬승은 미경의 미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예전의 차갑고 도도한 얼굴도 매력적이었지만, 보는 이의 마음조차 기분 좋게 만드는 그녀만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많이 변했다….’
찬승의 생각대로 미경은 처음과 달리 많이 변해 있었다. 사람을 잘 쳐다보지도 않고 말도 잘 안하던 그녀가 수업시간에 잡담을 하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게다가 술자리나 엠티에까지 참여하지 않았는가? 찬승은 그런 그녀의 긍정적인 변화가 자신의 조언 때문이란 생각이 들자 뿌듯하기까지 하다.
‘나는 정말 상담을 잘 해주나봐. 후훗…. 나중에 커서 심리치료사 같은 거라도 할까?’
밥까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계속해서 쓸데없는 망상을 하던 찬승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다. 나중에 커서 무엇을 할까…. 그러고 보니 딱히 생각해 둔 것이 없었다.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가 커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피아노를 좋아하긴 하지만 음대에서 전공을 한 사람들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법학과를 다니긴 하지만 삼류대학의 법학과에서 고시 같은 것을 패스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웠다.
“으….”
문득 그런 고민을 하던 찬승이 자신의 꿈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고는 무의식중에 신음소리를 흘렸다.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미경은 앞에 앉아 있는 찬승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다가 갑자기 신음소리까지 흘리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왜, 왜 그러세요? 어디 안 좋으세요?”
“…너는….”
“예?”
“…너는 커서 뭐 할 거야?”
“…음. 다 컸는데요.”
“….”
진지하게 고민하던 찬승의 마음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머릿속이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뭐, 뭐야. 얘 설마 이걸 농담이라고 한 건가? 진지하게 한 얘긴가? 웃어 줘야 하는 건가? 어떻게 하지?’
0.7초도 안 되는 순간 그런 생각을 끝마치고 미경의 눈치를 슬쩍 본다. 무언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으읏…. 저 행동은 웃기려고 한 말인데 아무 반응이 없자 민망해 하는 행동? 역시 웃기려고 한 것이다. 웃어줘야 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시간이 딱 1초였다.
“푸하핫! 뭐야 그게…. 아 웃겨….”
너무나도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 찬승의 자연스러운 동작이라 미경은 눈치 채지 못한다. 단지 미경은 자신의 농담이 통한 줄 알고 같이 웃을 뿐이었다.
“하하. 웃기죠? 헤헤. 죄송해요….”
“아냐. 아냐. 아 웃겨…. 아 오랜만에 크게 웃었네…. 후우-!”
찬승은 정말 크게 웃은 것처럼 길게 한 숨까지 내쉬고는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하하…. 아 아무튼 이번엔 진지하게 나중에 뭐하고 싶냐고….”
그러자 미경도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음…. 사실 저는….”
“응?”
“사실 공무원 하려고요….”
“공무원? 행시?”
찬승의 말에 미경이 놀라 부정한다.
“아, 아뇨! 그건 너무 어렵고 7급 정도…. 이것도 어렵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게 제일 무난할 거 같아요….”
“그렇구나…. 그래도 뭘 할지 생각해놔서 다행이네. 어릴 적 꿈은 뭐였는데?”
찬승의 말에 미경이 빙그레 웃는다.
“학교 다닐 적엔 국어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교대에 갈만큼 성적도 안 나오고 대학원에 진학할 형편도 실력도 안 되고…. 이래저래 어려워서 그냥 덜컥 법학과에 들어와 버린 거예요.”
한참 말을 하던 미경의 표정이 무언가 서글프게 변한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말을 잇는 미경.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젠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무 것도 특출 난 게 없는, 아무 특기도 실력도 없는 그저 평범한 인생…. 대학에 와서 사람을 만나는 일도 내 자신을 가꾸는 일도 어디 하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제가 이렇게 만든 것이지만 왠지 두렵기까지 해요. 너무나도 평범한…, 이 보통이라는 자신에….”
얘기를 하는 미경의 눈가가 어느새 살짝 촉촉해진다. 그러나 이내 예의 그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찬승에게 물었다.
“선배는요? 선배는 뭘 하고 싶으세요?”
“흠…. 너의 얘기를 듣고 깨달은 건데 나는 보통 인간이 되고 싶어.”
“에…?”
무슨 소리냐는 듯 동그랗게 눈을 뜨는 미경.
“흠. 너가 보통이라는 것이 평범하다고 좋지 않다고 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제일 어려운 거잖아. 비유가 우스울지 모르지만 찌개가 매운맛, 보통, 싱거운 맛이 있다고 쳐보자. 그럼 자. 매운맛과 싱거운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음…. 정확히 따지긴 어려운데….”
“그래. 정확하게 따지기 어렵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보통은 모두 좋아한다는 거지. 매운맛을 좋아하든, 싱거운 맛을 좋아하든 일단 쬐금 아쉽지만 먹고 본다는 거야.”
찬승의 어이없는 비유에 미경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풋…. 그게 뭐예요.”
“나도 몰라.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너무나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 되게 위해 노력하고 있어. 물론 그 보통이라는 기준이 상대적이라 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이라는 중도를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거든….”
“그런가요?”
“그래. 하하 난 그래서 너의 얘기를 듣고 보통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으하핫.”
찬승은 허리에 손까지 올려놓으며 짐짓 과장되게 웃어젖힌다. 미경도 그런 찬승의 어이없는 행동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 선배가 하는 말은 앞뒤도 안 맞고 어딘가 한참 이상하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자신에게 분명히 도움이 되고, 잠시나마 우울했던 기분들을 한없이 좋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지금 이렇게 자신을 웃게 만들지 않는가?
‘고마워요. 선배….’
미경은 앞에서 계속해서 웃고 있는 찬승을 보며 또 다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점차 커져가는 찬승의 존재를 느끼며….
*
금요일 날 학원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찬승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지현이었다. 엠티가 끝난 후 문자도, 전화도 없다가 오랜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반가운 마음이 든 찬승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서, 선배. 안녕하세요.]
저번 엠티를 통해 찬승에 대한 떨림증을 어느 정도 고친 지현이었지만 역시 예전처럼 쉽게쉽게 말이 나오진 않는다.
“와-! 진짜 오랜만이다. 반가워!”
제일 친한 후배이고 거의 한 달만인지라 찬승은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찬승의 진심어린 반응에 지현은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덕분에 떨림도 사라지고….
[히힛. 저도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응. 넌 뭐하고 지내? 요즘에도 요리하니?”
[아…하하하. 예. 요즘에도 가끔 요리해요. 근데… 선배.]
갑자기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지현.
“응?”
[주말에는 알바하시니까 안 되고 워, 월요일 날에 만나실 수 있어요?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선배에게 먼저 만나자는 말은 처음 하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 떨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만나자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까봐 이런저런 이야기로 둘러대려는데 찬승의 말이 가로 막는다.
“응! 시간 있지 당연히.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도 해보자.”
찬승의 너무나도 긍정적인 반응. 지현은 그런 찬승의 반응에 너무나도 기뻐하며 보이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는 8월. 그러나 이제 8월도 중순을 훌쩍 지났고 조금 있으면 벌써 9월이다. 신촌에서 지현을 기다리던 찬승은 눈을 찡그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햇볕은 쨍쨍, 여자들은 노출….
‘덥다….’
더웠다. 정말 더웠다. 하지만 그만큼 좋았다. 신촌에 나오니 지나다니는 여자들의 옷차림이 정말 장난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배꼽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패션은 오래된 패션이기에 별로 없었지만, 미니스커트로 인해 드러난 가느다랗고 하얀 다리들과 끈나시로 인해 드러난 우윳빛 어깨들은 찬승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자들의 다리를 힐끔거리며 몰래 훔쳐보던 찬승의 눈에 순백의 가느다란, 정말 너무나도 예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이럴 수가 저런 다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니….’
솔직히 보통 마른 여자들의 다리가 차이나면 얼마나 차이 나겠는가. 분명히 과장된 생각이긴 했지만 지금 찬승이 본 다리는 정말 너무나 예뻤다. 빨간 컨버스 신발을 깔끔하게 신은 하얗고 가느다란 발목과 종아리, 그리고 마찬가지로 흠하나 없이 깔끔한 우윳빛의 가느다란 허벅지. 찬승의 눈이 점차 위로 올라가자 그 하얀 허벅지의 중간쯤부터 회색빛의 청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앗…. 허벅지가 사라졌잖아.’
하얀 허벅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조금 아쉽다. 그러나 너무나도 짧은 회색빛의 청치마도 아슬아슬한 것이 꽤나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섹시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청순하다는 느낌?
‘이런 다리를 가진 여자의 얼굴은 어떨까….’
찬승은 조금 더 시선을 올려봤다. 그러자 진분홍빛의 예쁜 티셔츠가 나타난다.
‘티셔츠 예쁘군….’
티셔츠의 배 부분을 지나 가슴 쪽으로 눈을 가져가자….
‘뭐야. 거의 없잖아?’
작았다. 여자의 가슴은 브래지어의 모양만 약간 있을 뿐 가슴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흠 지현이도 가슴이 거의 없는데…. 가슴 부분이 조금 아쉽군…. 큰 가슴이라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디 보자 얼굴은….’
찬승은 조금 더 시선을 올렸다. 등까지 내려오는 긴 검은 생머리에 새하얗고 갸름한 얼굴. 그리고 살짝 얼굴이 붉어져 무언가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
‘헉…. 뭐야? 뭐가 이렇게 예뻐? 완전 청순하잖아? 흠…. 그러고 보니 지현이 좀 닮았네…. 응? 아…. 헉!’
“저, 정지현!”
찬승은 그제 서야 자신이 훔쳐보던 다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지, 지현아….”
“선배. 아, 안녕하세요.”
살짝 붉어진 얼굴로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지현.
“으아으아으….”
그러나 찬승은 입을 벌린 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변한 것은 없었다. 화장을 하지 않은 청순한 얼굴도 그대로고 등을 덮는 긴 머리도 그대로다. 단지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옷차림…. 치마를 입었다. 그것도 그냥 치마가 아니라 허벅지까지 훤히 보이는 초미니 청치마를….
‘사,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전에도 예뻤지만 회색빛 청치마와 진분홍빛 티셔츠를 입은 지금의 모습은 정말 연예인 뺨치게 예뻤다. 실제로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지 않는가?
그제야 약간 정신을 차린 찬승은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으, 응. 아, 안녕….”
“헤헷. 오랜만이에요.”
지현은 특유의 그 맑은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여전히 살짝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응. 오랜만이다. 정말…. 그, 근데 그… 웬일로 치마를….”
치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봐 노심초사 하고 있던 지현은 결국 그 이야기가 터져 나오자마자 귀까지 빨개진다. 그러나 애써 여유 있는 척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하하. 이 치마요? 아니 날도 더워서 바지 입기가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입어봤죠. 입으니까 시원한데요? 하하. 왜요 이상한가요?”
웃고 있는 얼굴의 지현이었지만 여전히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그녀.
지현의 말에 찬승이 말도 안 된다는 듯 황급하게 말했다.
“아냐! 아냐! 정말 예뻐. 잘 어울린다. 진작에 입어도 될 걸 그랬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던 지현은 찬승의 칭찬에 크게 미소 짓는다.
“고, 고맙습니다!”
살짝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하는 지현의 얼굴엔 정말 진심으로 기뻐하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용기 내어 입길 잘했다는 상상을 하며….
‘선배가 그때 파스타 먹을 때 그랬죠? 히힛. 그래서 조금 부끄럽지만 입어 봤어요. 교복이 아닌 치마는 오늘 처음 입어보는 건데 잘 부탁드립니다.’
혼자 싱글벙글거리고 있는 지현을 찬승은 약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
밖의 날씨가 워낙 덥기에 찬승과 지현은 서둘러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아이스티와 팥빙수를 주문한 뒤 조금씩 더위가 가시기 시작하자 지현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선배. 요즘엔 뭐하고 지내시나요?”
“응. 나는 학원 다니고 주말알바하고 뭐 그 외에는 딱히 하는 일이 없다. 너는 뭐하고 지내냐?”
“헤헷. 저도 딱히 하는 일이 없어요. 그냥 집에서 빈둥빈둥 놀아요. …히힛!”
말을 하던 지현이 갑자기 작게 웃음을 터트린다.
“응? 뭐야? 갑자기 왜 웃어?”
“아뇨.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같아서요….”
지현의 애매모호한 말에 찬승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뭐가? 뭐가 역시나라는 거야. 똑바로 말해!”
찬승이 짐짓 위협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고개를 살짝 돌리며 입을 여는 지현. 그런 그녀의 표정엔 왠지 약간의 불안감이 감돈다.
“여, 여자친구는 역시 없으신 거 같아서요.”
“크읏…! 그, 그래 어, 없다….”
지현의 말에 찬승은 슬쩍 고개를 숙이며 쓰디쓰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찬승과 반대로 지현의 입가엔 함박웃음이 걸린다. 물론 고개를 숙인 찬승이 그런 지현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후 지현의 행동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찬승은 그녀가 왜 그런지 알지 못했기에 어리둥절했지만 나쁘지 않은 일이라 그저 같이 웃을 뿐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던 중 어느새 화제는 지난 번 엠티로 흘러갔다. 찬승도 엠티 때 재밌게 놀았기에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지현의 가슴을 짚은 것은 빼고….
엠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지현이 은근슬쩍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선배 근데 아영이랑은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예요?”
“어, 어? 왜? 내가 친하게 보였니?”
찬승은 살짝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냥 아영이가 계속 선배 옆에만 있고…. 선배도 말 자주 거시는 거 같아서….”
“아…. 그냥 수업 같이 듣고 그러다보니까…. 하하하….”
찬승의 말에 지현은 엠티 때의 일을 떠올렸다. 아영의 옆에서 슬쩍슬쩍 곁눈질로 훔쳐보던 찬승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괜히 분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오늘의 일을 생각해보면 그 분한 마음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흥… 이런 생각하는 거 부끄럽지만 그래도 아까 보니까 선배가 잠깐이지만 내 다리 쳐다보는 거 같았는데…. 나도 안 입어서 그렇지 이렇게 입으면 아영이 못 지 않다고….’
지현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실 치마를 처음 입고 나오려 할 때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고등학교 때 교복치마를 입은 이후 처음 입는데다가 짧은 초미니의 청치마이니 익숙하지 않은 그녀로선 부담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그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겨우 찬승의 앞에 섰는데, 선배의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 그녀로선 꽤나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또한 노출을 즐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예쁘다고 인정해주며 쳐다보는 것이니 싫지 않았던 것이다.
지현은 어제 밤 치마를 입고 거울 앞에 섰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거울 앞에서 앞, 뒷모습을 연신 살펴보며 스스로에게 무척 만족해하지 않았는가?
‘히힛…. 나도 치마 잘 어울리는 구나….’
오늘따라 무척 기분이 좋은 지현이었다.
엠티의 이야기가 그렇게 지나가고 화제는 다음 주에 하는 수강신청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지현은 미소 띤 얼굴로 찬승에게 말했다.
“선배는 저랑 같이 시간표 맞춰 드릴게요. 같이 다닐 사람이 없으니 저라도 같이 다녀야죠. 히힛.”
“그, 그래 고맙다….”
그러나 정말 고마운 건 지현이었다. 같이 맞추자는 말도 꽤나 떨려서 억지로 꺼낸 말이었는데 찬승이 별 망설임 없이 순순히 승낙한 것이다.
‘오늘 일이 너무 잘 풀리잖아!’
또 다시 연신 싱글벙글거리는 지현이었다.
*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밖에 나온 찬승은 이제 집에 가려고 지하철역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옆에서 같이 걷는 지현이 왠지 우물쭈물하며 잘 따라오질 않는다. 이를 이상스레 여긴 찬승이 물었다.
“왜 그래?”
“아, 아뇨…. 지금 집에 가나요?”
“응. 왜?”
아무렇지도 않은 찬승의 대답에 지현은 한층 더 안절부절 못한다. 그러더니 이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오랜만에 만나… 아니 오랜만에 밖에 나왔는데 일찍 집에 가기 뭐해서요. 더 노, 놀다 가실래요?”
겨우겨우 용기를 내어 쥐어짜내듯 입에서 나온 말. 그러나 찬승은 그녀가 더 놀고 싶은가 보다 생각하고 순순히 승낙했다.
“응. 그래. 근데 뭐하지?”
찬승이 승낙하자 지현이 기쁜 듯이 말했다.
“그, 그럼 영화라도 볼까요?”
“영화? 그래.”
“그럼 가요!”
언제 우물쭈물 거렸냐는 듯 지현은 앞장서서 신나게 걷기 시작했다.
‘히힛. 이렇게 용기 내 치마까지 입고 나왔는데 그냥 들어갈 순 없잖아.’
*
영화관에 간 찬승은 상영 중인 영화들을 보고 마땅히 볼만한 영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저 헐리웃 액션영화는 저번 주에 아영과 본 영화가 아닌가?
“영화 뭐 보고 싶은 거 있니?”
별 생각 없이 물어 본 찬승의 말에 지현은 고민에 빠졌다.
‘으음…. 나는 멜로 같은 거 좋아하는데 선배는 아무래도 남자니까 액션 영화 같은 거 좋아하겠지? 저거 보자고 해야겠다.’
“선배. 저거 보고 싶어요.”
“응 뭐?”
찬승은 지현이 가리킨 영화를 바라보았다. 아영과 함께 봤던 헐리웃 액션영화….
‘으윽….’
하필 골라도 저것을 고르다니…. 찬승은 곤란했지만 기껏 지현이 고른 영화인데 봤다고 할 수도 없기에 그냥 표를 사고는 팝콘과 음료수를 사러갔다.
“팝콘 하나랑 음료수 하나 주세요.”
찬승의 말에 옆에 있던 지현이 화들짝 놀란다.
“으, 음료수 하나만 사요?”
“응. 왜?”
“두, 두 개 사요. 저기요. 두 개 주세요!”
지현에 의해 음료수가 하나 더 나오게 되었다.
“야. 음료수 하나도 많은데 왜 두 개 사냐.”
“저는 음료수 많이 마시거든요. 하핫.”
왠지 어설프게 웃는 지현…. 속마음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빨대를 써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운 것이었다. 21살이나 돼서 그런 것에 신경 쓰는 것이 웃기기도 했지만 그만큼 순진한 지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찬승은 팝콘을 먹으며 지루하게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저번 주에 본 영화인데 눈에 들어올 리가 있겠는가….
‘쳇…. 하필 본 걸 또 보다니….’
저번 주의 일이 떠올랐다. 옆에서 연신 설레는 표정으로 열심히 스크린을 보던 아영의 모습…. 그때 아영은 열심히 찬승의 손을 밀어내며 팝콘을 먹지 않았는가?
‘응…?’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금 팝콘을 집는 지현의 손이 눈에 들어온다. 찬승의 손에 닿자 움찔하며 빼내고는 찬승이 팝콘을 집을 때까지 기다린 뒤 다시 조심스레 손을 집어넣는 모습….
‘이, 이럴 수가…. 아영이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찬승은 영화를 보고 있는 지현을 새삼스레 바라봤다. 평소 아영보다 더 활발하고 터프한 그녀였지만 이런 것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워하는 것이었다.
‘그래. 이런 모습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던 모습이었지…. 그에 비해 아영은…. 응? 가만…. 그럼 아까 콜라도?’
아까 어색하게 웃으며 콜라를 두 개 주문하던 지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까 그 행동은 같은 빨대로 하나의 콜라를 먹기 부끄러워서 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찬승은 쿡쿡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너무나도 순수하고 귀여운 지현의 행동 때문이었다.
‘정말 순진 하구나 얘는….’
새삼스레 지현을 바라보는데 자꾸 눈길이 그녀의 다리 쪽으로 간다. 어두운 극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유독 하얀 다리는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으음…. 영화 보지 말고 지현이 다리나 감상하자…. 흔하게 보기 힘든 거니까…. 무, 물론 순수한 생각만 가지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한 찬승은 스크린을 보지 않고 계속해서 지현의 다리만 훔쳐봤다.
*
찬승과 지현은 영화가 끝난 뒤, 근처 호프집으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하러 들어갔다. 지현은 500cc 맥주잔을 들고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키더니 분노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우-! 마지막에 왜 범인을 놔주었는지 모르겠어요.”
지현의 말에 찬승은 잠시 데쟈뷰를 느꼈다.
‘음…. 그러고 보니 아영이 했던 말이었군.’
찬승은 아영과 똑같은 질문을 해오는 지현에게 그때와 똑같은 답변을 해주었다.
“뭐 그 형사도 범인의 범행 동기를 알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이 놔줬겠지….”
그러자 지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와. 선배 대단하다. 어떻게 영화를 그런 쪽으로 분석하시다니…. 정말 다시 봤어요.”
“그, 그래….”
왠지 찬승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아영과 너무나도 다른 지현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선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찬승의 눈을 사로잡는 광경이 있었다.
‘윽…! 이럴 수가!’
테이블 저편으로 앉아 있는 지현의 짧은 청치마가 밀려 올라간 것이다. 덕분에 드러난 가느다랗고 새하얀 허벅지와, 역시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새하얗고 깨끗한 하얀 팬티.
얌전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찬승의 물건이 순식간에 고개를 든다. 너무나도 맑고 순수한 지현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급격하게 흥분해버린 것이다.
‘그, 근데 왜 저렇게 밀려 올라간 거야….’
힐끔힐끔 훔쳐보다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소 치마를 입지 않던 지현은 의자에 앉아 있어도 지속적으로 치마를 내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었다.
‘저걸 말해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자신의 치마가 밀려 올라간 지도 모른 채 웃으며 좋아하고 있는 지현을 바라보며 찬승은 심한 갈등에 빠졌다. 그녀를 생각하면 말해줘야 하지만 너무나도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게다가 아영과는 노출 파괴력의 정도가 달랐다. 평소 바지로 꽁꽁 싸매어져 있어 드러나지 않던 은밀한 부분이 오랜 세월을 지난 끝에 겨우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 말하면….’
찬승이 직접 말하면 분명 그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숙인 채 아무 말을 못할 것이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결국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찬승은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했다. 혼자 남아서 자신의 모습을 보다 보면 알아차릴 테니까….
“잠깐 나 화장실 좀….”
“네.”
찬승은 화장실로 들어왔다. 그냥 왔다 나가기 뭐해서 소변을 보려 했으나 빳빳해진 자지를 느끼며 그것조차 쉽지 않음을 느꼈다. 지현의 새하얀 팬티를 보고 흥분한 것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것이다. 결국 그냥 손만 대충 씻고 자리로 돌아오자 얼굴을 있는 대로 붉히고 앉아 있는 지현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 단정하게 치마를 내린 채로 말이다.
‘푸훗…. 역시 너무 순진해….’
찬승은 그런 그녀의 태도를 보며 웃음을 삼켰다. 하지만 그녀의 팬티를 보고 흥분한 것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찬승이었다.
*
“후우….”
찬승은 문 앞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또 이런 이유로 오고야 말았네….”
아영이 살고 있는 곳…. 지현 때문에 흥분해서 아영에게 전화했더니 흔쾌히 허락하는 그녀…. 물론 지현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저번 미경 때문에 찾은 것도 그렇고 오늘도 지현 때문에 아영을 찾아 왔다.
찬승은 천천히 방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방문이 활짝 열리며 찬승을 반기는 아영.
“선배! 또 저 보고 싶어서 오셨군요!”
철없이 웃으며 좋아하는 아영.
‘미안. 아영아…. 미안하다는 걸로 다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말 미안….’
그리고 그런 아영에게 이끌리듯 방안으로 들어가는 찬승이었다.
*
금요일 날 찬승이 영어 학원에 강의를 들으러 가자 먼저 와 있던 미경이 우아한 미소로 반겨준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이제 미경의 우아한 미소는 보기 힘들지 않았다. 인사할 때나, 얘기를 나눌 때나 예전 그 무표정하고 차가운 모습은 사라진 채 항상 미소를 짓고 있었다.
1시간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찬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 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던 미경은 찬승의 책상에서 가벼운 진동을 일으키는 핸드폰을 발견했다. 문자가 온 것이다.
“응? 문자 왔네….”
핸드폰 액정이 밝아지며 문자가 뜨기에 무심코 바라본 미경은 놀라움에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잠시 후 화장실에 다녀온 찬승이 문자가 온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미경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미경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체 책을 보고 있었다. 잠시 미경의 눈치를 살피던 찬승은 무언가 문자를 누르고 전송을 했다. 그리고 곁눈질로 그 내용을 훔쳐본 미경….
‘이 선배 정말….’
미경이 처음에 본 문자는 아영에게서 온 문자였다.
[선배!!! 이따가 저희 집에 좀 오세요!!!]
그리고 찬승은 그 문자에 알았다고 답문을 보냈다.
*
“하악… 하악 선배! 하윽!”
이불에 엎드려 하얀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있는 아영이 찬승의 허리 움직임에 맞춰 연신 신음소리를 흘렸다.
“선배…. 하악…. 아흑!”
찬승의 허리 움직임이 점차적으로 빨라져갔다. 그에 맞춰 아영의 탱글탱글한 가슴이 심하게 요동을 친다.
“아흑그흑…. 물 튀어…. 선배 물 튀어요….”
과연 찬승이 아영의 보지에 깊숙이 박을 때마다 많은 양의 물이 튀어 오르며 이불에 떨어졌다. 아영은 무척이나 물이 많은 여자였다.
“하윽! 하윽! 하으윽!”
아영이 못 참겠다는 듯 이불에 얼굴을 꼭 파묻고는 신음소리를 흘리던 순간이었다.
똑똑-.
“…!”
신음소리를 흘리던 아영의 목소리도, 찬승의 거친 허리 움직임도 일제히 멈춘다. 순간적으로 조용해진 방안에는 찬승과 아영의 달뜬 숨소리만이 낮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때 문 밖에서 다시 한 번 소리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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