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야설

노리로리 - 1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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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She will be loved (전편)











내가 요즘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고 하기 싫은 사소한 일 몇 가지를 든다면, 전화 안 받는 사람한테 전화질을 해대야 하는 것이 아마도 그 안에 꼭 들어갈 것이다. 적어도 3위 안에는 들지 않을까. 사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 지금까지는 순위권 밖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그것도 ‘얘기하기 싫은 사람한테서 전화 오는 것’보다 한 단계 위에 둬야 할 듯 하다. 나한테 오는 전화야 꺼버리면 그만이니.







어쨌거나, 세상엔 가끔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하루 종일 15분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 봐도 계속 같은 대답만이 되돌아온다.



혜경이는 정말 나와 통화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휴우…….







(삐리비리빗~ 삐리비리빗~)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접는 순간 벨이 울린다.



나도 모르게 무작정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혜경이니?”



“…저기… 미안. 오빠 나야.”







아아, 여고생…인가.



어제 풍선 들려서 집에 보내주긴 했는데, 가정문제는 잘 처리된 걸까.







“그 언니 전화… 기다렸나 보네. 집이야?”



“어, 뭐, 그렇지.”



“미안, 나 나중에 걸게.”



“아니, 괜찮아. 지금 얘기해도.”







왠지 민망하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하고 혜경이한테 전화하고 있었다는 걸 들킨 것만 같다.







“정말 괜찮아?”



“응… 아, 어제 어머니랑 얘기 잘 됐냐?”



“그게 좀… 오빠, 잠깐 나와라.”



“응?”



“전화요금 많이 나오니까, 만나서 얘기해.”







나오라구?



벽에 붙은 시계를 힐끔 쳐다보니, 6시가 다 되었다.



같은 동네 사람도 아니고, 전화요금 때문에 이 시간에 나오라니…







“부잣집 딸이 요금 걱정은… 야, 너 차비랑 장소 값이 더 들겠다. 어딜 갈지 모르겠지만.”



“차비는 벌써 들었구, 장소는 아무데나 상관없잖아. 나 신촌이야. 오빠 집 근처.”



“엥?”



“어제 오빠가 가리킨 방향으로 왔는데, 여기 건물이 넘 많네. 고시원은 아니지? 히히.”







와.



어제 신촌로터리 길 건너편에서 대충 가리킨 것 만으로 내 집을 찾아왔단 말인가?



잠깐, 고시원 얘기 하는 걸 보면 거의 근처인데…







“야, 너 어디야. KL고시원이야?”



“KL고시원? 음… 좀 전에 거기 지나친 것 같은데.”



“…거기 어딘진 모르지만 꼼짝 말고 서 있어라. 내가 갈게.”







오리털 파카를 꿰어 입으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설마 얘 우리집 어딘지 아는 건가? 찾아내기 전에 빨리 찾아 돌려보내야…



하지만 건물을 나서는 순간, 결국 마주치고 말았다.



건물 왼편에서 걸어오던, 갈색 목도리를 두른 찬바람에 약간 발그스름해진 앳된 얼굴과.







“빙고~! 아하하…”



“…….”







……



“정말 몰랐다니까. 걷고 있는데 오빠가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정말이라면 너, 세기의 스토커가 될 자질이 있다…”



“스토커라니, 탐정이면 모를까. 흥.”







노리와 나는 건물 앞 계단에 걸터앉아 어제처럼 얘기를 한다.



크리스마스라는 오늘 하루도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노을이 제법 곱게 깔리고 있다.



주변의 삐죽삐죽 솟아나온 건물들에 가려 부분만 보일 뿐이지만.







“오빠 오늘 머했어?”



“어, 나? 뭐했냐고?”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나한텐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오히려 평소보다도 지루한 하루였다.



분당에 사는 식구들과는 며칠 전에 따로 기념 식사를 했기에 구태여 만나러 갈 필요는 없었다.



뭐, 어차피 부모님은 성당에 가셨을 테고, 정안이는 또 어디론가 사라졌을 테지.



그래도 갔다 왔으면… 채인 여친한테 하루 종일 전화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이 많은 사람한테 물어볼 때는 좀 공손하게 해 봐라.”



“아, 네에… 아저씨 오늘 어떻게 보내셨어요? 응? 아,저,씨.”



“…….”







대답이 궁해서 말을 돌렸다가 오히려 뒤집어 썼다.







“누구 덕분에 혼자서 책보고 지냈다. 혼,자,서.”



“…아저씨, 크리스마스 혼자서 비참하게 보낸 게 자랑은 아니죠.”



“그러는 넌 뭐하고 보냈는데? 아, 어머니랑 어떻게 됐어?”



“아…”







그녀가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너 어제 내가 하라는 대로 했어?”



“그게… 저기.”







어머니와의 화해를 위해 내가 권한 것은, 케잌이라도 사 들고 가서 사과를 드리라는 것이었다.



일부러 맛있는 가게까지 데려가 줬더니만.







“안 했어?”



“저기, 오빠 나 추워. 좀 들어가자.”



“말 돌리기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큰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걸었을까.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빠 어디 가?”



“… 어디 들어가자며.”



“오빠 집 여기잖아.”



“내 방?”







그녀가 앉아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건물 유리문을 가리키고 있다.



…내 방에 들어가자고?







“야, 외간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어딜 들어가려고.”



“뭐 어때서.”



“뭐가 뭐 어때서야. 여자애가 겁도 없이.”



“내가 왜 무서워해야 되는 건데?”







말똥말똥 뜬 귀여운 큰 눈에서는 장난기가 흐르고 있다.



아니, 얘가 어쩌려고 이러냐.







“솔직히 말해. 방 지저분하다고. 헤헤, 내가 치워줄까?”



“안 지저분해.”



“그럼 됐네. 나 추워어… 진짜야…”



“그래도…”







……



……



“뭐 마실래?”



“콜라 있어?”



“아니.”



“그럼 마운틴듀.”



“탄산음료는 없다.”







아, 결국 들어왔다. 여고생.



침대 위에 걸터앉아서 두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담대해 보인다.



노리 너란 애는 도대체…







“뭐야, 콜라두 사이다두 없구.”



“탄산음료는 몸, 특히 치아에 좋지 않아.”



“아~아, 아저씨 같애.”



“…날도 추운데 따뜻한 거 마셔라. 커피나 녹차, 코코아…”



“음… 코코아.”







찬장에서 차 종류를 뒤적이다가, 문득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아하항. 코코아라. 이거 좋은 게 걸렸군.







“우웅~. 코코아...?”



“……?”



“우리 노리, 코코아 마시고 싶었쪄?”



“……?!”



“아저씨는 커피 마실 테니까, 노리는 코코아 줄게에~?”







커피에 설탕을 타면서, 다른 손으로 곰돌이가 그려진 코코아 분말 통을 가볍게 흔들어 보여줬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예상했던 반응이 튀어나온다.







“뭐, 뭐야. 그 말투는?!”



“아니 그냥. 귀여워서. 하하하.”



“애기 취급이잖아~!!!”



“아니 귀엽다는데 왜 또 난리냐. 그럼 꼬맹이, 네가 애기지 어른이냐?”



“나 커피 줘! 커피!!! 우씨이~!!!!!”







……



노리는 얌전히 코코아를 마시고 있다.



달고 따뜻한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커피 달란 얘긴 어디론가 사라졌다.



얘도 생각보다 단순하군.







“자, 따뜻한 곳에서 코코아까지 대령했으니, 아까 얘기 마저 들어볼까?”



“아…”







다시 난처한 표정을 짓는 그녀.







“아, 안했어. 엄마랑 얘기.”



“뭐야, 설마 안 들어오셨니?”



“그게, 어제 들어갔을 땐 자구 있었구, 오늘 늦게 일어났더니 장보러 갔단 메모만 있길래… 그냥 나왔어.”



“아니, 그냥 나왔다구? 케잌은?”



“식탁 위에 두고 왔지.”



“야 야…”







애혀, 엊저녁에 몸바쳐(?) 조언해 준 나의 노고는 저 하늘로 사라진 건가…







“어떻게 해. 민망한 걸.”



“지금이라도 전화 드려.”



“전화해서 어쩌게…?”



“그걸 말이라고 하냐? 잘못했다고 사과드려야지…!”



“그래도…”



“너 지금 바로 안 하면 나중에 더 힘들어.”







나중엔 전화해봤자 소용없을 수도 있다니까.



하루 종일 전화해도 안 받는 상황도 생긴단 말이다.







“오빠…?”



“좌, 좌우간 빨리 해.”



“아, 알았어. 할게.”







휴대폰 폴더를 열던 노리가 단축번호를 누르려다 말고 다시 나를 본다.



어떡해… 라고 호소하는 눈빛인 것 같다.







“뭐해. 안 누르고.”



“치이.”







그녀는 통화버튼을 누르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간다.







“어, 엄마, 노리에요.”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다.







“밖에 나와 있어요. 저기… 죄… 죄송해요. 어제 그렇게 나와서.”







그래 잘한다.



이제 난 자리를 잠시 피해 주는 것이 좋을지도.



하지만 지금 와서 밖으로 나가기도 뭐하고… 화장실로 들어가야 되나?



에라 모르겠다… 난 반쯤 마신 커피잔을 들고 침대 위에 걸터 앉았다.







“아, 그건… 근데 엄마도 그랬잖아요.”







응? 갑자기 그녀가 얼굴을 찌푸린다.







“엄마도 아빠랑 따로 살게 되었다는 얘기, 나한테 전화로 했잖아요…!”







으악… 왜 전화로 사과하냐고 하신 모양이군. 노리는 예전의 보복인가.



…근데 그건 사과하는 착한 딸이 할 얘기가 아니란 말이다…!







“어떻게… 응?”







내가 노리에게 인상을 쓰며 공손하라는 몸짓을 하자 잠시 내 쪽을 보는 그녀.







“아… 어쨌든 죄송해요. 집에 가서 말씀드릴게요. 네? 아아, 애인이요.”







…애인?







“엄마도 애인 있는데 나라고… 아우웃~?! 그럼 어제 그 아저씨는?”







잠시 표정을 찌푸리던 그녀가 묘하게 표정이 밝아지는 것 같다.



무슨 얘길 들었길래 저러지.







“아… 응. 정말? 응… 이따가 들어갈게요. …아.”







노리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집어넣고는, 창가에서 내 쪽으로 돌아온다.







“뭐라셔?”



“…어제 그 아저씨 엄마 애인 아니래.”



“그렇지?”







역시… 철딱서니 없는 딸의 오해였구만.







“그러길래 어쩌자고 무작정 뛰쳐 나오고 그래.”



“…….”



“또 뭐라고 하시는데?”



“케잌… 맛있었다구…….”







코코아 잔을 다시 드는 그녀의 멍한 표정에 일순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



약간 편안해진 마음으로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니 오늘 벌써 넉 잔째의 커피다. 혜경이에게 전화하면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타 마셨던 것이다. 오늘 잠은 다 잔 것 같군. 화학 작용 때문이든, 정신적인 이유에서든.







“…어쨌거나 잘 됐구나.”



“애인 덕택이지 뭐.”







갑자기 그녀가 씨익 웃으며 자연스레 내 옆에 앉는다.







“애인? 맞아, 아까 전화하면서도 애인 얘기 하던데…”



“으응.”



“애인이라니 누구 말이냐?”



“여기 있잖아. 여기.”







내 등을 가볍게 툭툭 치는 노리.



한숨 한 번 쉬어 주고,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들이킨 뒤 말했다.







“실없는 장난 그만해라 꼬맹아…”



“장난이라니. 이제 그 언니랑도 헤어졌잖아. 신세도 졌으니 사귀어 줄게.”







얼씨구.







“꼬맹이.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말하는 거냐?”



“당근이지. 애기 취급하지 말라니까…?”



“자꾸 그러다간 아저씨한테 험한 꼴 당한다.”



“응? 험한 꼴? 그게 뭔데에…? 우리 처음 만났을 때 한 거? 후후…”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이젠 숫제 내 등을 쓰다듬고 있다.



안되겠군.







“그래…네 뜻이 정 그렇다면…뭐.”



“……?!”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툭 미니, 비스듬히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의 몸이 어이없이 가볍게 쓰러진다.







“애인끼리 뭐하고 지내는지는 알지? 뭐, 잘 아는 것 같네.”



“어… 아, 아…!”







품에 쏙 들어오는 노리의 아담한 몸을 거칠게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갑작스런 나의 변화에 그녀는 미처 말할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얌전히 있어 봐.”



“아, 오빠, 어어… 저기…”







부드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거친 움직임.



그녀의 회색 티셔츠 밑으로 내 두 손이 미끄러져 들어간다.



브래지어의 촉감이 느껴졌을 때,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안돼. 싫어, 싫어…!!! 으흐흑…”



“…….”







…역시.



나는 그녀의 비명이 터져 나오자마자 그녀에게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노리.



그녀에게 그녀의 코트와 가방을 들려준 뒤 대문을 열었다.







“오, 오빠…”



“집안 문제 해결됐지? 가서 어머니랑 저녁이라도 같이 먹어.”



“오빠…”



“잘 가라 꼬맹아. 어른 놀리지 말고.”







그녀를 문 밖으로 밀어낸 뒤, 망설임 없이 문을 닫았다.







(쾅)







……



침대로 돌아와 한참을 그냥 누워 있었다.



창 밖은 어느 새 어둠에 덮여, 불빛들이 비쳐온다.



살다 보니 별 희한한 크리스마스 다 보내는구나…







하지만 여고생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문을 닫기 직전 본, 그녀의 미묘한 표정이 마음에 걸리는군.



혼란스러우면서도 미안하고, 어느 정도는 야속하다는 듯한 표정의 얼굴.



…젠장, 나보고 어쩌라고?







뭐, 하긴 꽤나 놀랐을 테지.



내게 있어서 노리 그녀의 이미지는 물정 모르는 순진한 여고생의 느낌이 훨씬 강하다. 처음 만나던 날의 기묘한 느낌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늘의 반응도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 일로 데어서 당분간 연락 안 하겠지. 다신 못 볼지도 모르겠군.







(뾰로롱~)







응…? 어느 틈엔가 문자메시지가 온 모양이다.



문자는 2통… 그녀, 노리의 문자다.







((오빠오늘미안해나지금집에간다))



((고맙구미안해*나오빠놀리려던거아녀써))







생각보다 차분한 반응... 아까 내가 한 짓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괜히… 어휴, 어두운데 지하철까지는 바래다 줄 걸 그랬나. 약간 후회된다.







(뾰로롱~)







((근데담번에또그러면잘참을게*나꼬맹이아냐))







…어라.



뭐냐 이거.







((나오빠좋아하나바>.<이힛))







“…….”







…벌써 저녁이 꽤 늦었다. 라면이라도 끓여먹고 일찍 자야겠군.



생각보다 잠은 잘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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