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본성 - 1부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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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전개상...1부를 수정하고 프롤로그를 삽입했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프롤로그부터 다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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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훈.
그와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그를 만나기 전, 그러니까 약 3년 전으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때는 바야흐로 2008년, 미국에서의 대학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귀국한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국내에서 명문 K대 심리학과를 잘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미국의 미대에 편입한지 3년만에 무사히 졸업을 하긴 했지만 취직할 걱정이 막막하여 한국에 돌아오면서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때마침,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는 영어로 미술을 가르치는 아동미술학원이 상류층 학부모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을 타고 있었다. 원생들이 대거 몰리자 대형 프렌차이즈 영어미술학원에서는 영어와 미술을 동시에 잘하는 학벌 좋은 강사가 몹시 급하게 되었고. 덕분에 유학파였던 나는 무경력임에도 별다른 노력 없이 대형 프렌차이즈 영어미술학원의 전임강사로 단번에 취직이 되었다.
그렇게 취직걱정을 한결 덜고 나자 마음의 여유도 조금 생기고, 아동미술학원에서 딱히 야근을 하는 일도 없어 시간적 여유도 생겼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7시쯤이 되었다. 저녁의 남는 시간에 책을 읽기도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항상 빈 시간이 많이 생겼다. 한국에 친구가 별로 없어서 늘 만나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또 불러내 만나는 것도 한두번이었다. 나는 한창 이쁘게 꾸미고 사랑받고 싶은 20대 중반의 여자였고,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 당시의 나는 20대 중반임에도 순수한 사랑을 꿈꾸던 철없는 여자였다. 아무 조건 없이 그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고 정을 줄 수 있는 남자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내가 바라는 대로만은 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아무 조건 없이 애정을 주면 상대방도 그런 내 마음에 감동해서 나에게 더 잘하겠지 싶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실되게 보여주면 되겠거니 했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았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해주는 것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다 저마다 그릇의 크기가 있었다. 그릇이 소주잔만한 남자는 아무리 사랑을 양동이채 들이부어도 소주잔만큼만 채워지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딱 고만큼밖에 안되더라. 그것은 물질적인 것을 주고받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의사소통의 수준차이나 성격에 따른 문제도 있었다. 남자가 한번 자격지심을 느끼게 되면 내 확실한 의사표현은 명쾌함이 아니라 오만함으로 비춰지고, 평소에 무심코 쓰는 표현들은 지적인 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저 나 혼자만의 잘난 척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내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이해심을 키우면 키울수록 상대 남자는 더 많은 이해심을 바랬다. 내가 남자의 자유를 존중하고 믿어주면, 상대방은 나를 되려 쉬운 여자라 여기고 믿음과 신뢰 대신 배신을 주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내가 가진 ‘이상’을 감당하기가 너무나 버거웠다. 사랑이란 말은 참으로 헛되게 느껴졌고 헌신이란 말은 말 그대로 헌신짝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지치고, 또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몇 개월이 채 안되게 사귀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나를 작정하고 속이고 양다리를 걸쳤던 한 남자와의 연애를 마지막으로, 나는 ‘조건’을 보고 ‘밀당’을 하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남자를 대할 때, 내가 줄 것보다 받을 게 얼마나 있는지를 먼저 염두에 두고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몸매에 대한 어필을 충분히 하면서도 절대 날 쉬이 여기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애인인 류지훈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당시 내 나이는 26세. 지훈씨는 나보다 두살 연상이었는데 무척 신사적이고 품위가 있었다. 키 크고 선해 보이는 인상에 자신감이 충만했으며 동시에 겸손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기세였다. 그는 항상 퇴근 후 내가 일하는 곳까지 데릴러와서 집까지 데려다 주었으며 매일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는 나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고 나는 작정하고 그걸 즐겼다. 그가 아무리 품위 있는 태도를 지녔어도, 그도 남자인 이상 내 몸에 매우 관심이 많다고 나는 확신했기 때문에, 그를 만날 때면 너무 수수한 옷 대신 카라가 있는 넉넉한 품의 실크 체크 블라우스에 미니스커트 등을 매치해 단정해보이면서도 몸매를 은근히 드러내는 옷들을 골라 입었다. 또 그러면서도 내가 그를 매우 신사적이고 매너 있는 남자로 여긴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나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스킨쉽에 있어서는 조심스럽게 대했고,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듯 했다. 이전의 연애에서 시간이 지나 정이 쌓이고 남자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수록 나를 쉽게 여기는 것을 누누이 겪어봤기에, 나는 그의 신중한 행동과 나를 대하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지훈씨는 회사에서 주말 출장이 있다고 하여 오랜만에 혼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혼자 바람도 쐬고 쇼핑이나 할겸 해서 오랜만에 명동엘 갔는데 길거리 한복판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소연아!”
내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남자는 매우 낯익은 얼굴이었다.
“......동수?”
한동수, 그는 바로 내가 이전에 잠깐 사귀었던 애인 중 한명이었다. 당시에 그는 마땅한 계획도 없이 대학은 자퇴하였고 가진 것은 쥐뿔도 없었고 성격도 매우 이기적이었지만 한때 내가 뭐에 홀렸는지 매우 헌신적으로 사랑을 갖다바쳤던 남자였다. 돈이 없어서 매일 맥도날드 햄버거만 먹었어도, 무슨 내가 영화의 여주인공이라도 되는 마냥 꿋꿋히 헤쳐나가야할 사랑의 어려운 시련쯤으로 생각하며 애정을 갖다바쳤었던 것이다.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새삼 생각하면 참 어이없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과거일 뿐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 명동엔 왠일로 온거야?”
“으응, 오랜만에 쇼핑하려고 나왔지 뭐.”
“아아, 그렇구나...”
우리는 헤어진 후 몇 년만에 우연히 거리에서 다시 만나는, 과거 연인이었던 대부분의 남녀가 그렇듯 어딘지 어색하고 뻘줌한 느낌으로 길거리에 서 있었다. 그것은 마치 두 번 다시 찾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꼭꼭 숨겨놓았던 기억의 상자가 우연히 다시 펼쳐진 느낌이었다.
“얼굴이 참 좋아보인다. 요새 연애해?”
“응 뭐, 만나는 남자는 있지.”
“아...역시, 그렇구나.”
동수는 그러고보니 예전부터 거침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연애얘기를 물었고 나도 그에게 별로 특별한 감정이 남아있었던 것도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지훈씨의 얘기를 하였다. 오히려 한동수에게 그보다 훨씬 잘난 애인이 있다는 것을 은근 자랑하고픈 심산도 있었다. 나는 이야기 중에 내 현재의 애인이 대기업인 H기업 계열의 카드사에 다닌단 사실도 슬쩍 내비쳤다. 동수는 나와 사귈땐 참 자기 멋대로 굴더니 나와 헤어지고 난 뒤에는 계속 변변찮은 애인을 못 사귄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같이 저녁이나 먹자는 동수의 말에, 이미 특별한 약속 없이 혼자 나온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거절을 하기가 뭐하여 그럼 식사만 같이 하기로 했다. 근처 닭갈비집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앉아서 다시 보니 많이 힘들었는지 예전보다 살은 조금 빠졌지만 다부지게 생긴 모습은 여전했다. 그는 내 근황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요새도 계속 그 학원 강사 일해?”
“응, 그렇지.”
“벌써 2년째지? 나랑 사귈 때 들어간지 얼마 안되었을 때니깐”
“아, 그러고보니 그렇네.”
“월급도 좀 올랐겠네?”
“응...그리고 사실 학원이 잘되어서 지점을 하나 더 늘릴 계획인데 지금 인테리어 공사도 거의 마무리 되가고 있어. 거기 공사가 다되면 실장급 강사를 우리 학원 강사들 중에서 채용할 생각인데 원장은 날 염두에 두고 있나봐.”
“휴, 그렇구나...정말 잘된 일이네??”
“월급은 많이 오르겠지 아마. 집에서 좀더 멀어지긴 하겠지만.”
그는 자신의 얘긴 별로 자세히 하지 않았는데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닌 듯했다. 아직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이 아르바이트 등으로 하루 용돈을 버는 모양이었다. 나와 사귈 당시에도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 나에게 늘 의지하였고 돈도 종종 빌렸던 터라 그럼 그렇지 싶으면서도, 막상 오랜만에 만났는데 기운 없이 쳐진 모습을 보자 그래도 한 때 정을 주었던 남자인지라 짠한 마음이 들었다. 동수는 그래도 나와 사귀면서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거나 하진 않았다. 그 속이야 돈 때문이었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헤어질 무렵에도 끝까지 나만을 바라보던 남자였다.
나는 진심으로 그를 격려하고 위로해주었다.
동수는 닭갈비가 익어가는 것을 물끄럼히 바라보다가 술 한잔만 하겠다며 참이슬을 한병 시키더니, 나한테는 묻지도 않고 소주잔 두 개를 점원한테 달래가지고 앞에다 놓고 술을 따랐다. 그리고는 잔을 한잔 금새 들이키더니 나에게도 한잔 하라며 권했다.
“아니야, 난 됐어. 집에 일찍 들어가봐야 하기도 하고. 나 잘 취하는거 알잖아.”
“에이, 그러지 말고 한잔만 해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네가 있으니까 걱정이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딱 한잔 한다고 별다른 일이야 있을까 싶어서 마지못한 척 잔을 입에다 댔다. 사실 이렇게 편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랜만이라서 한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지훈씨와는 사귄지 일년이 다되어가는데도 함께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동수와 사귈 때는 직장을 다니던 내가 늘 데이트비용을 지불했고, 가끔가다 그가 알바한 돈으로 고기에 소주를 마셨다. 반면에 지훈씨는 이런데 날 데려오는 것조차 미안해할 지경이었다.
“휴, 소연이 넌 정말 좋은 남자 만날 줄 알았어. 내가 그때 비록 철이 없어서 너한테 잘 못했지만, 넌 참 좋은 여자였는데...내가 많이 미안했지,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후후, 그래...너가 나한테 잘 못한게 참 많긴 했지. 뭐, 괜찮아 이미 다 지난 얘긴데.”
“내가 진짜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널 잡았어야 했던건데, 내가 못된 놈이란걸 나도 알아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지금 뭘 어쩌자는게 아니라, 그냥 그때의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해서 하는 말이야.”
“으응~~그래애~~~”
“지금 애인이 잘해주겠네? 나보다 훨씬 더 잘해주겠지??”
“으응...날 편하게 해주지...”
그래도 옛 애인이라고 내 지금의 애인이 어떤 사람인지 많이 궁금한가보았다.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술을 한잔 원샷을 하고는 또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밤에도 나보다 더 잘해? 화끈하게 만족시켜줘??”
“에이~~ 왜 그런 걸 물어~~동수야, 너 많이 취했다, 그만 마셔~~”
“솔직히 말해봐~~ 박소연! 너 내가 별 볼일 없어도 사귀었던 이유가 뭐야??”
“이유라니~~새삼 그런 건 왜 물어보니, 다 지난 일인데~~”
“내가 맞춰봐? 소연아? 응?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 내가 매일 밤 죽여줬잖아~~”
“어휴~~ 동수야~~!그만해~~~”
술을 연거푸 마시며 동수가 이러쿵저러쿵 새삼 옛날 얘기를 꺼내자 나는 당황스러웠고, 그가 참 못나 보이면서도 이상하게도 그의 말에 딱히 뭐라고 부정할 말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는 낮에는 참 갖가지 일들로 다투었지만 밤이 되면 모든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무아지경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동수는 낮동안에 내게 어떻게 대해도 내가 자신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을만큼 밤마다 나를 그의 노예로 만들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지훈씨와의 잠자리는 그런대로 만족할만 한 정도였지만, 이전의 경험에서 느꼈던 강렬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살짝 부족하긴 했다. 그러다가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며 황급히 머릿속의 생각들을 지워버렸다.
“소연아, 나...사실 요즘 네 생각 많이 했는데, 이렇게 우연히라도 만나니까 너무 반갑고 좋다.”
“으응, 나도 그러네. 참 세상 좁다.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몰랐어? 난 언젠가 만날거라고 생각했어. 계속 생각하고 있었으니깐. 왜, 노래가사에도 그러잖아.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되는~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동수는 예전 생각이 많이 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더 이상 영화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았다. 또다시 그런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정말이지 두려운 일이었다. 한잔만 더 하자는 동수의 제안을 애써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지훈씨였다.
“여보세요?”
“지훈씨 전화했었어요?”
“소연씨 보고싶어서 아까 전화했었죠~ 뭐하고 있었어요?”
“명동에서 쇼핑하느라고, 가방 안에 넣어두고 깜박했어요.”
“아아~ 그렇구나...소연씨, 나 주말출장이 좀 연장되어서 월요일 밤에나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안해서 어쩌죠?”
“괜찮아요~~일 때문인데 뭐. 나 신경쓰지 말고 일 열심히 해요.”
“그래도...너무 미안하네요. 월요일날 내가 맛있는 거 살게요. 먹고싶은 거 뭐든지 생각해둬요.”
“알겠어요. 나 이제 그만 씻을께요. 오랜만에 많이 걸었더니 피곤하다~”
“그래요, 소연씨 잘자고, 사랑해요.”
“지훈씨도 잘자요~~ 나도 사랑해요 지훈씨!”
전화를 끊고 욕조에 들어가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그니 한주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아까 동수를 만날 때 잠시 떠올렸던 기억이 슬그머니 다시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지금의 지훈씨에게 여러 면에서 만족하고 있고 구태여 나를 힘들게 했던 동수와는 더더욱 비교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지훈씨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건, 그러니까 잠자리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매우 신사적이고 깔끔한 매너를 보여주는 데에 나는 더욱 신뢰를 느끼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동수를 우연히 만났던 기억을 머릿속에서 잊어보려고 했다.
그 뒤로 한 3개월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여느 때처럼 지훈씨와 저녁식사를 하고 그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나는 지훈씨에게 항상 어려운 여자이고 싶었기 때문에 그와 있을 때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를 만나고 집에 오는 날이면 분명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어쩐지 피곤했다.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혼자 방안에 누워있는데,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몇 안되는 연락처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늘 보던 친구들 이외에는 딱히 내가 연락을 할만한 특별한 누군가가 없었다. 내 친구들, 희연이나 지수와도 물론 연애 얘기로 수다를 떨지만, 그녀들에게 내 속마음 깊은 곳까지 다 털어놓는 것은 어쩐지 망설여졌다. 그렇게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괜히 여러번 반복해서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찰나에, 갑자기 진동이 울리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폰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져서 계속 진동이 울리는 폰을 들어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소연아...나야 동수...”
“어머......동수야!”
“오랜만이야, 목소리도 여전하네?”
“으응, 그런데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으응, 사실은...그때 우연히 만났을 때...내가 너 화장실 갔을 때 네 폰으로 나한테 전화를 걸어서 번호를 남겨놨었어.”
“뭐??”
“미안해, 정말 미안한데 왠지 내가 물어보면 안 가르쳐줄 것 같아서 그랬어.”
“참, 어쩌면 그럴 수가 있니..”
동수를 타박하면서도, 내심 그의 전화가 반가웠기에 더 추궁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 사실은 취직했어. 그동안 전화하고 싶었는데, 내가 상황이 안좋아서 차마 연락을 다시 할 수 없었어, 잘되면 전화하려고 꾹 참고 있었다?”
“뭐야, 그랬구나~~축하해~~너무 잘됬다 정말~!.”
“그리 큰 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엿한 정규직이야. 이제부터는 돈을 정말 착실히 모아야겠어.”
“그래그래, 남자 나이가 20대 후반이면 그리 늦은 것도 아니지! 넌 잘 할 수 있을꺼야.”
나는 진심으로 기뻐서 축하해주었다. 드디어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겼으니 얼마나 마음이 놓일까? 그가 취직된 것이 이제는 나와 별 상관도 없는 일이었지만서도 정말 다행한 일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취직도 되고 했으니 한턱 쏠게, 이번 주에 시간돼? 소연이 네가 시간이 되는 때 보자.”
“으응 글쎄...주말은 좀 그렇고, 목요일이나 금요일 저녁이 괜찮겠는데?”
“그래? 그럼 금요일 저녁에 보자! 내가 너 일하는 학원 근처로 갈게. 새로 옮긴 지점이 대치동 지점 맞지?”
“으응, 맞아, 찾아올 수 있겠어?”
“약도 보고 가면 되겠지~ 그럼 금요일 저녁에 봐~!”
“그래~”
얼떨결에 동수와 만날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고 났는데 바로 다시 전화가 울렸다.
“지훈씨?”
“으응, 방금 보고 왔는데도 또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집에는 잘 들어갔어요?”
“호호~그랬구나~네~~지금 집에 가는 길이에요?”
“으음~사실은 집에 돌아가다가 친구가 근처에서 잠깐 보자고 해서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소연씨는 벌써 옷 다 갈아입었어요?”
“네~~왜요?”
“아~아쉽다... 친구한테 소연씨 자랑을 했더니 보고 싶다고 해서...혹시 아직 옷 안갈아입었으면 다시 잠깐 나와줄 수 있나 싶었는데...”
“아하...저런...미안해요...이미 옷도 갈아입고 다 씻었어요...다음에 같이 봐요~~”
“그럼 혹시 이번주 금요일에 시간 되요? 친구 녀석이 워낙 바빠서 보기가 힘든데 금요일에 마침 대학교 동기들하고 다 같이 보기로 했거든요.”
“지훈씨 대학교 동기들 모임에 같이 가자고요?”
“불편하면 그냥 얼굴만이라도 비춰줄 수 있나 하고요. 나는 동기들한테 우리 소연씨 너무 자랑하고 싶은데~~”
“으음...어쩌죠? 저 하필 그날 다른 약속이 생겼는데...”
“중요한 약속이에요?”
“그게...그러니깐...중요하다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나는거라..”
“그렇구나...혹시 스케줄 조정할 수 있으면 금요일날 왠만하면 나와주면 좋을텐데. 다들 바빠서 좀처럼 다같이 모이기 힘든 자리라...그렇다고 소연씨가 무리해서 약속 펑크내지는 말고요. 나한텐 소연씨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네...알겠어요, 한번 바꾸어볼께요”
나는 다음날 약속을 바꾸어보려고 다시 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벌써 다른 날은 약속을 다 잡아버렸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지훈씨에게 약속을 바꿀 수 없다고 하자, 그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혹시 일찍 자리를 파하게 되면 늦게라도 전화를 달라고 했다.
비록 동수와의 약속이 선약이긴 했어도, 왠지 지훈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내가 동수와 특별히 뭘 어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취직을 했으니 단지 축하해주기 위해 한번 만나는 것 뿐이란 생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싶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옛 애인인 동수의 취직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소연아~~”
“동수야, 처음오는데 잘 찾아왔네~~”
“그럼~ 이 정도야~ 껌이지~.”
“그래도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서 찾기가 힘들지 않았어?”
“사실 저쪽 대로변 앞에서 좀 헷갈려서 근처에 서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고 왔어.”
“호호 그랬구나~”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오늘은 내가 진짜 제대로 쏜다~ 닭갈비 이런거 말고 진짜 비싼거 말해~”
“어휴~됐다 됐어~ 호기 부리지 말어~”
“호기 아니다, 이제 취직했으니까 돈도 있겠다, 예전에 못해준 것도 갚고 싶고.”
“자꾸 예전 얘기하지마~, 그래도 취직했다 이거지? 그럼 나 회 사주라?”
“회? 알았어~~내가 근처 맛집 알아봤는데 마침 괜찮은 일식집 있더라~~ 가자~~”
“호호~ 정말? 너 정말 많이 변했다~ 그런 것도 미리 알아오고...”
“그 정도 쯤이야 뭐 별로 힘든 일도 아닌데,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왜 그렇게 별것도 아닌 것들을 잘 못해줬나 몰라~~헤어지고 나니까 다른 것보다도 그게 너무 후회됐었다”
“그래서 지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거야? 호호~”
“하하하 그런가 보다~~~”
3개월 만에 다시 보는 동수는 편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우리는 마치 계속 봐오던 친구 사이처럼 수다를 떨면서 일식집으로 가서 밥도 먹고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도 마셨다.
시간이 흘러 한 10시 가까이 되었을 무렵, 갑자기 지훈씨가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나를 조르거나 조금이라도 무리한 부탁 같은 건 하지 않는 그였기에, 늦게라도 올 수 있으면 오라던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모처럼 너무나 편한 느낌의 동수와 일찍 헤어지기가 싫은 마음이 들었다.
“소연아, 우리 술 한잔 할까?”
“술??”
동수가 술 얘기를 꺼내자 나는 순간 망설여졌지만, 어렵게 취직했는데 축하주 정도는 한잔 같이 마셔줄 수 있지 않냐며 계속 나를 설득하길래 할 수 없이 그럼 딱 한잔만 하기로 하고 술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수는 알콜 도수가 높은 술을 나에게 마시게 하고 나는 못이기는 척 받아마셨다. 머리가 금새 어지러워지며 취기가 올랐지만 그렇다고 판단력이 완전히 흐려질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내가 술이 몹시 약한 것을 알면서도 동수가 굳이 술을 하자고 한 그 속마음을 전혀 모른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 이었다. 내가 그것을 알면서도 동수를 뿌리치지 못하고 술을 마신 것은, 나는 계속 스스로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나도 동수와 오랜만의 즐거운 대화 그 이상을 원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그때 모르는 번호로 온 동수의 전화를 아예 받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훈씨에게 항상 나를 전부 보여주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자리에서도 마음을 놓고 온전히 욕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지훈씨는 너그럽고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앞에서 이성의 끈을 전부 놓아버리고 원초적인 본능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솔직해야할 순간에조차 가면을 쓰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분출하지 못한 무언가가 계속 쌓였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하필이면 동수가 나타난 것이었다. 술이 적당히 취했을 무렵, 동수는 나를 부축하여 근처의 모텔로 데려갔고, 나는 마치 취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동수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그날 내 옷차림은 평소 지훈씨를 만날 때처럼 단정하면서도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파란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완전히 짧진 않았지만 무릎위로 꽤 짧게 올라오는 원피스에 살이 살짝 비치는 소재의 검은색 민무늬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동수는 모텔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그러니까 비록 좁은 골목이었지만 길거리에서 날 부축하는 척 하면서 대담하게 내 치맛속으로 손을 넣어 스타킹 위 허벅지를 주무르는 것이었다. 내 몸을 훑는 그의 시선은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굶주린 늑대같았다.
나는 동수의 부축을 받고 걸으면서 다리를 베베 꼬으며 아앙거리다가 막상 모텔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에 간신히 다시 이성을 붙들고 동수를 말려보았다.
“나...난 지금 남자친구가 있잖아...이러면 안돼, 동수야”
“비밀로 하면 되잖아. 너랑 내가 말만 안하면 누가 알겠어??”
“그래도...들키면 어떡해~~”
“안 들켜~~~ 걱정하지마...”
“그래도...동수야...흐읍...!!”
“츄읍, 츕,”
내가 뭐라 더 제지하기도 전에 동수는 키스로 내 입을 막고 원피스 위의 내 몸을 더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의 입술은 거칠게 내 입술을 빨아들였고 곧이어 그의 혀가 내 입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나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붙들기 위해 황급히 입을 떼어내고 동수를 말리려했는데, 그는 이미 늦었다는 듯이 원피스 자락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재빠르게 팬티스타킹과 팬티를 무릎 아래로 끌어내려버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아랫도리의 맨살이 드러나는 느낌에 두 다리가 떨려왔다.
“아앙, 동수야....!!!”
그의 가운뎃 손가락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내 다리 사이의 은밀한 곳을 쓱 훑고 지나갔다. 나는 몸을 더 이상 가누지 못하고 그에게 몸을 기댔다. 동수는 나를 침대에 밀쳐 눕히고 내 원피스는 그대로 둔 채로 두 다리의 발목을 잡고 활짝 벌렸다.
“아아..동수야 이러면 안돼..아흑..!!”
그는 나의 애원에도 아랑곳없이 두 손가락으로 내 은밀한 속살을 가로질러 벌리고 자신의 혀를 찔러넣었는데, 그 짜릿한 감각에 그만 나도 모르게 발정난 암컷처럼 몸을 꼬으면서 마치 더 해달란 듯이 두 다리를 한껏 더 벌리고 만것이었다.
“아아아앙......난 몰라아...”
동수는 어떻게 해야 내가 느끼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혀로 클리토리스를 살살 굴리면서 제 손가락으로는 은밀한 속두덩을 마구 헤치면서 나를 농락하는데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온 몸의 구석구석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나는 한참동안이나 동수의 입과 손에 내 은밀한 속두덩을 내맡긴 채 흐느적거렸다.
“휴으...소연아.....”
“아아앙...동수야아..”
“아아...더이상 못 참겠다...”
마침내 그의 커다란 자지가 내 속살을 짓누르듯이 가르며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나는 그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버렸다. 내 그곳은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
“아흑....동수야아...아흐으응...”
동수의 그것은 어쩐지 그와 사귀었을 당시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크고 굵어진 느낌이었다. 내 안으로 들어온 그것의 느낌은 너무나 단단하고 위용이 있어서 내 몸은 그의 힘찬 피스톤질에 맥을 못 추고 출렁거렸다.
퍼억~ 퍽!
“후으, 소연아, 후으, 말해봐!”
“아흐응, 뭐얼”
퍽퍽 찔걱찔걱~
“너도 사실은 내 좆맛이 보고 싶었지?! 후으,”
“아흥, 몰라아~~~”
퍽~퍽~
“대답해봐 어서!
“아앙, 몰라아~~”
그는 계속 그 굵은 것을 내안에 찔러 넣으면서 저질스러운 질문으로 내게 대답을 재촉하다가 내가 계속대답을 회피하자 돌연 피스톤질을 멈추었다.
“아앙??!!”
“대답 안할꺼야? 내 좆이 그리웠어 안 그리웠어??”
“아흐응~~~~~~~~~”
“대답 안하면 그만할까??”
대답을 하면 나는 그와의 정사를 원했다고 자인하는 것이 되버리기에, 내 입으로 차마 대답을 하기가 두려워 계속 도리질을 치자, 동수는 아예 내 안에 넣고 있던 그것을 빼버리는 것이었다.
“소연이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계속 할 이유도 없다”
“아흐응, 정말 이러기야?!”
“어서 대답해봐!”
“아흥,,,,몰라, 뭐르을!”
“내 좆맛 말이야, 내 좆을 여기도 원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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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로우시더라도 프롤로그부터 다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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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훈.
그와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그를 만나기 전, 그러니까 약 3년 전으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때는 바야흐로 2008년, 미국에서의 대학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귀국한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국내에서 명문 K대 심리학과를 잘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미국의 미대에 편입한지 3년만에 무사히 졸업을 하긴 했지만 취직할 걱정이 막막하여 한국에 돌아오면서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때마침,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는 영어로 미술을 가르치는 아동미술학원이 상류층 학부모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을 타고 있었다. 원생들이 대거 몰리자 대형 프렌차이즈 영어미술학원에서는 영어와 미술을 동시에 잘하는 학벌 좋은 강사가 몹시 급하게 되었고. 덕분에 유학파였던 나는 무경력임에도 별다른 노력 없이 대형 프렌차이즈 영어미술학원의 전임강사로 단번에 취직이 되었다.
그렇게 취직걱정을 한결 덜고 나자 마음의 여유도 조금 생기고, 아동미술학원에서 딱히 야근을 하는 일도 없어 시간적 여유도 생겼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7시쯤이 되었다. 저녁의 남는 시간에 책을 읽기도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항상 빈 시간이 많이 생겼다. 한국에 친구가 별로 없어서 늘 만나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또 불러내 만나는 것도 한두번이었다. 나는 한창 이쁘게 꾸미고 사랑받고 싶은 20대 중반의 여자였고,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 당시의 나는 20대 중반임에도 순수한 사랑을 꿈꾸던 철없는 여자였다. 아무 조건 없이 그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고 정을 줄 수 있는 남자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내가 바라는 대로만은 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아무 조건 없이 애정을 주면 상대방도 그런 내 마음에 감동해서 나에게 더 잘하겠지 싶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실되게 보여주면 되겠거니 했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았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해주는 것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다 저마다 그릇의 크기가 있었다. 그릇이 소주잔만한 남자는 아무리 사랑을 양동이채 들이부어도 소주잔만큼만 채워지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딱 고만큼밖에 안되더라. 그것은 물질적인 것을 주고받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의사소통의 수준차이나 성격에 따른 문제도 있었다. 남자가 한번 자격지심을 느끼게 되면 내 확실한 의사표현은 명쾌함이 아니라 오만함으로 비춰지고, 평소에 무심코 쓰는 표현들은 지적인 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저 나 혼자만의 잘난 척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내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이해심을 키우면 키울수록 상대 남자는 더 많은 이해심을 바랬다. 내가 남자의 자유를 존중하고 믿어주면, 상대방은 나를 되려 쉬운 여자라 여기고 믿음과 신뢰 대신 배신을 주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내가 가진 ‘이상’을 감당하기가 너무나 버거웠다. 사랑이란 말은 참으로 헛되게 느껴졌고 헌신이란 말은 말 그대로 헌신짝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지치고, 또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몇 개월이 채 안되게 사귀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나를 작정하고 속이고 양다리를 걸쳤던 한 남자와의 연애를 마지막으로, 나는 ‘조건’을 보고 ‘밀당’을 하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남자를 대할 때, 내가 줄 것보다 받을 게 얼마나 있는지를 먼저 염두에 두고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몸매에 대한 어필을 충분히 하면서도 절대 날 쉬이 여기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애인인 류지훈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당시 내 나이는 26세. 지훈씨는 나보다 두살 연상이었는데 무척 신사적이고 품위가 있었다. 키 크고 선해 보이는 인상에 자신감이 충만했으며 동시에 겸손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기세였다. 그는 항상 퇴근 후 내가 일하는 곳까지 데릴러와서 집까지 데려다 주었으며 매일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는 나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고 나는 작정하고 그걸 즐겼다. 그가 아무리 품위 있는 태도를 지녔어도, 그도 남자인 이상 내 몸에 매우 관심이 많다고 나는 확신했기 때문에, 그를 만날 때면 너무 수수한 옷 대신 카라가 있는 넉넉한 품의 실크 체크 블라우스에 미니스커트 등을 매치해 단정해보이면서도 몸매를 은근히 드러내는 옷들을 골라 입었다. 또 그러면서도 내가 그를 매우 신사적이고 매너 있는 남자로 여긴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나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스킨쉽에 있어서는 조심스럽게 대했고,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듯 했다. 이전의 연애에서 시간이 지나 정이 쌓이고 남자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수록 나를 쉽게 여기는 것을 누누이 겪어봤기에, 나는 그의 신중한 행동과 나를 대하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지훈씨는 회사에서 주말 출장이 있다고 하여 오랜만에 혼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혼자 바람도 쐬고 쇼핑이나 할겸 해서 오랜만에 명동엘 갔는데 길거리 한복판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소연아!”
내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남자는 매우 낯익은 얼굴이었다.
“......동수?”
한동수, 그는 바로 내가 이전에 잠깐 사귀었던 애인 중 한명이었다. 당시에 그는 마땅한 계획도 없이 대학은 자퇴하였고 가진 것은 쥐뿔도 없었고 성격도 매우 이기적이었지만 한때 내가 뭐에 홀렸는지 매우 헌신적으로 사랑을 갖다바쳤던 남자였다. 돈이 없어서 매일 맥도날드 햄버거만 먹었어도, 무슨 내가 영화의 여주인공이라도 되는 마냥 꿋꿋히 헤쳐나가야할 사랑의 어려운 시련쯤으로 생각하며 애정을 갖다바쳤었던 것이다.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새삼 생각하면 참 어이없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과거일 뿐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 명동엔 왠일로 온거야?”
“으응, 오랜만에 쇼핑하려고 나왔지 뭐.”
“아아, 그렇구나...”
우리는 헤어진 후 몇 년만에 우연히 거리에서 다시 만나는, 과거 연인이었던 대부분의 남녀가 그렇듯 어딘지 어색하고 뻘줌한 느낌으로 길거리에 서 있었다. 그것은 마치 두 번 다시 찾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꼭꼭 숨겨놓았던 기억의 상자가 우연히 다시 펼쳐진 느낌이었다.
“얼굴이 참 좋아보인다. 요새 연애해?”
“응 뭐, 만나는 남자는 있지.”
“아...역시, 그렇구나.”
동수는 그러고보니 예전부터 거침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연애얘기를 물었고 나도 그에게 별로 특별한 감정이 남아있었던 것도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지훈씨의 얘기를 하였다. 오히려 한동수에게 그보다 훨씬 잘난 애인이 있다는 것을 은근 자랑하고픈 심산도 있었다. 나는 이야기 중에 내 현재의 애인이 대기업인 H기업 계열의 카드사에 다닌단 사실도 슬쩍 내비쳤다. 동수는 나와 사귈땐 참 자기 멋대로 굴더니 나와 헤어지고 난 뒤에는 계속 변변찮은 애인을 못 사귄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같이 저녁이나 먹자는 동수의 말에, 이미 특별한 약속 없이 혼자 나온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거절을 하기가 뭐하여 그럼 식사만 같이 하기로 했다. 근처 닭갈비집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앉아서 다시 보니 많이 힘들었는지 예전보다 살은 조금 빠졌지만 다부지게 생긴 모습은 여전했다. 그는 내 근황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요새도 계속 그 학원 강사 일해?”
“응, 그렇지.”
“벌써 2년째지? 나랑 사귈 때 들어간지 얼마 안되었을 때니깐”
“아, 그러고보니 그렇네.”
“월급도 좀 올랐겠네?”
“응...그리고 사실 학원이 잘되어서 지점을 하나 더 늘릴 계획인데 지금 인테리어 공사도 거의 마무리 되가고 있어. 거기 공사가 다되면 실장급 강사를 우리 학원 강사들 중에서 채용할 생각인데 원장은 날 염두에 두고 있나봐.”
“휴, 그렇구나...정말 잘된 일이네??”
“월급은 많이 오르겠지 아마. 집에서 좀더 멀어지긴 하겠지만.”
그는 자신의 얘긴 별로 자세히 하지 않았는데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닌 듯했다. 아직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이 아르바이트 등으로 하루 용돈을 버는 모양이었다. 나와 사귈 당시에도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 나에게 늘 의지하였고 돈도 종종 빌렸던 터라 그럼 그렇지 싶으면서도, 막상 오랜만에 만났는데 기운 없이 쳐진 모습을 보자 그래도 한 때 정을 주었던 남자인지라 짠한 마음이 들었다. 동수는 그래도 나와 사귀면서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거나 하진 않았다. 그 속이야 돈 때문이었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헤어질 무렵에도 끝까지 나만을 바라보던 남자였다.
나는 진심으로 그를 격려하고 위로해주었다.
동수는 닭갈비가 익어가는 것을 물끄럼히 바라보다가 술 한잔만 하겠다며 참이슬을 한병 시키더니, 나한테는 묻지도 않고 소주잔 두 개를 점원한테 달래가지고 앞에다 놓고 술을 따랐다. 그리고는 잔을 한잔 금새 들이키더니 나에게도 한잔 하라며 권했다.
“아니야, 난 됐어. 집에 일찍 들어가봐야 하기도 하고. 나 잘 취하는거 알잖아.”
“에이, 그러지 말고 한잔만 해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네가 있으니까 걱정이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딱 한잔 한다고 별다른 일이야 있을까 싶어서 마지못한 척 잔을 입에다 댔다. 사실 이렇게 편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랜만이라서 한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지훈씨와는 사귄지 일년이 다되어가는데도 함께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동수와 사귈 때는 직장을 다니던 내가 늘 데이트비용을 지불했고, 가끔가다 그가 알바한 돈으로 고기에 소주를 마셨다. 반면에 지훈씨는 이런데 날 데려오는 것조차 미안해할 지경이었다.
“휴, 소연이 넌 정말 좋은 남자 만날 줄 알았어. 내가 그때 비록 철이 없어서 너한테 잘 못했지만, 넌 참 좋은 여자였는데...내가 많이 미안했지,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후후, 그래...너가 나한테 잘 못한게 참 많긴 했지. 뭐, 괜찮아 이미 다 지난 얘긴데.”
“내가 진짜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널 잡았어야 했던건데, 내가 못된 놈이란걸 나도 알아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지금 뭘 어쩌자는게 아니라, 그냥 그때의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해서 하는 말이야.”
“으응~~그래애~~~”
“지금 애인이 잘해주겠네? 나보다 훨씬 더 잘해주겠지??”
“으응...날 편하게 해주지...”
그래도 옛 애인이라고 내 지금의 애인이 어떤 사람인지 많이 궁금한가보았다.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술을 한잔 원샷을 하고는 또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밤에도 나보다 더 잘해? 화끈하게 만족시켜줘??”
“에이~~ 왜 그런 걸 물어~~동수야, 너 많이 취했다, 그만 마셔~~”
“솔직히 말해봐~~ 박소연! 너 내가 별 볼일 없어도 사귀었던 이유가 뭐야??”
“이유라니~~새삼 그런 건 왜 물어보니, 다 지난 일인데~~”
“내가 맞춰봐? 소연아? 응? 이러니저러니 해도 너 내가 매일 밤 죽여줬잖아~~”
“어휴~~ 동수야~~!그만해~~~”
술을 연거푸 마시며 동수가 이러쿵저러쿵 새삼 옛날 얘기를 꺼내자 나는 당황스러웠고, 그가 참 못나 보이면서도 이상하게도 그의 말에 딱히 뭐라고 부정할 말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는 낮에는 참 갖가지 일들로 다투었지만 밤이 되면 모든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무아지경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동수는 낮동안에 내게 어떻게 대해도 내가 자신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을만큼 밤마다 나를 그의 노예로 만들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지훈씨와의 잠자리는 그런대로 만족할만 한 정도였지만, 이전의 경험에서 느꼈던 강렬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살짝 부족하긴 했다. 그러다가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하며 황급히 머릿속의 생각들을 지워버렸다.
“소연아, 나...사실 요즘 네 생각 많이 했는데, 이렇게 우연히라도 만나니까 너무 반갑고 좋다.”
“으응, 나도 그러네. 참 세상 좁다.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몰랐어? 난 언젠가 만날거라고 생각했어. 계속 생각하고 있었으니깐. 왜, 노래가사에도 그러잖아.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되는~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동수는 예전 생각이 많이 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더 이상 영화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았다. 또다시 그런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정말이지 두려운 일이었다. 한잔만 더 하자는 동수의 제안을 애써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지훈씨였다.
“여보세요?”
“지훈씨 전화했었어요?”
“소연씨 보고싶어서 아까 전화했었죠~ 뭐하고 있었어요?”
“명동에서 쇼핑하느라고, 가방 안에 넣어두고 깜박했어요.”
“아아~ 그렇구나...소연씨, 나 주말출장이 좀 연장되어서 월요일 밤에나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안해서 어쩌죠?”
“괜찮아요~~일 때문인데 뭐. 나 신경쓰지 말고 일 열심히 해요.”
“그래도...너무 미안하네요. 월요일날 내가 맛있는 거 살게요. 먹고싶은 거 뭐든지 생각해둬요.”
“알겠어요. 나 이제 그만 씻을께요. 오랜만에 많이 걸었더니 피곤하다~”
“그래요, 소연씨 잘자고, 사랑해요.”
“지훈씨도 잘자요~~ 나도 사랑해요 지훈씨!”
전화를 끊고 욕조에 들어가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그니 한주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아까 동수를 만날 때 잠시 떠올렸던 기억이 슬그머니 다시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지금의 지훈씨에게 여러 면에서 만족하고 있고 구태여 나를 힘들게 했던 동수와는 더더욱 비교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지훈씨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건, 그러니까 잠자리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매우 신사적이고 깔끔한 매너를 보여주는 데에 나는 더욱 신뢰를 느끼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동수를 우연히 만났던 기억을 머릿속에서 잊어보려고 했다.
그 뒤로 한 3개월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여느 때처럼 지훈씨와 저녁식사를 하고 그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나는 지훈씨에게 항상 어려운 여자이고 싶었기 때문에 그와 있을 때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를 만나고 집에 오는 날이면 분명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어쩐지 피곤했다.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혼자 방안에 누워있는데,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몇 안되는 연락처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늘 보던 친구들 이외에는 딱히 내가 연락을 할만한 특별한 누군가가 없었다. 내 친구들, 희연이나 지수와도 물론 연애 얘기로 수다를 떨지만, 그녀들에게 내 속마음 깊은 곳까지 다 털어놓는 것은 어쩐지 망설여졌다. 그렇게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괜히 여러번 반복해서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찰나에, 갑자기 진동이 울리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폰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져서 계속 진동이 울리는 폰을 들어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소연아...나야 동수...”
“어머......동수야!”
“오랜만이야, 목소리도 여전하네?”
“으응, 그런데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으응, 사실은...그때 우연히 만났을 때...내가 너 화장실 갔을 때 네 폰으로 나한테 전화를 걸어서 번호를 남겨놨었어.”
“뭐??”
“미안해, 정말 미안한데 왠지 내가 물어보면 안 가르쳐줄 것 같아서 그랬어.”
“참, 어쩌면 그럴 수가 있니..”
동수를 타박하면서도, 내심 그의 전화가 반가웠기에 더 추궁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 사실은 취직했어. 그동안 전화하고 싶었는데, 내가 상황이 안좋아서 차마 연락을 다시 할 수 없었어, 잘되면 전화하려고 꾹 참고 있었다?”
“뭐야, 그랬구나~~축하해~~너무 잘됬다 정말~!.”
“그리 큰 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엿한 정규직이야. 이제부터는 돈을 정말 착실히 모아야겠어.”
“그래그래, 남자 나이가 20대 후반이면 그리 늦은 것도 아니지! 넌 잘 할 수 있을꺼야.”
나는 진심으로 기뻐서 축하해주었다. 드디어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겼으니 얼마나 마음이 놓일까? 그가 취직된 것이 이제는 나와 별 상관도 없는 일이었지만서도 정말 다행한 일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취직도 되고 했으니 한턱 쏠게, 이번 주에 시간돼? 소연이 네가 시간이 되는 때 보자.”
“으응 글쎄...주말은 좀 그렇고, 목요일이나 금요일 저녁이 괜찮겠는데?”
“그래? 그럼 금요일 저녁에 보자! 내가 너 일하는 학원 근처로 갈게. 새로 옮긴 지점이 대치동 지점 맞지?”
“으응, 맞아, 찾아올 수 있겠어?”
“약도 보고 가면 되겠지~ 그럼 금요일 저녁에 봐~!”
“그래~”
얼떨결에 동수와 만날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고 났는데 바로 다시 전화가 울렸다.
“지훈씨?”
“으응, 방금 보고 왔는데도 또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집에는 잘 들어갔어요?”
“호호~그랬구나~네~~지금 집에 가는 길이에요?”
“으음~사실은 집에 돌아가다가 친구가 근처에서 잠깐 보자고 해서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소연씨는 벌써 옷 다 갈아입었어요?”
“네~~왜요?”
“아~아쉽다... 친구한테 소연씨 자랑을 했더니 보고 싶다고 해서...혹시 아직 옷 안갈아입었으면 다시 잠깐 나와줄 수 있나 싶었는데...”
“아하...저런...미안해요...이미 옷도 갈아입고 다 씻었어요...다음에 같이 봐요~~”
“그럼 혹시 이번주 금요일에 시간 되요? 친구 녀석이 워낙 바빠서 보기가 힘든데 금요일에 마침 대학교 동기들하고 다 같이 보기로 했거든요.”
“지훈씨 대학교 동기들 모임에 같이 가자고요?”
“불편하면 그냥 얼굴만이라도 비춰줄 수 있나 하고요. 나는 동기들한테 우리 소연씨 너무 자랑하고 싶은데~~”
“으음...어쩌죠? 저 하필 그날 다른 약속이 생겼는데...”
“중요한 약속이에요?”
“그게...그러니깐...중요하다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나는거라..”
“그렇구나...혹시 스케줄 조정할 수 있으면 금요일날 왠만하면 나와주면 좋을텐데. 다들 바빠서 좀처럼 다같이 모이기 힘든 자리라...그렇다고 소연씨가 무리해서 약속 펑크내지는 말고요. 나한텐 소연씨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네...알겠어요, 한번 바꾸어볼께요”
나는 다음날 약속을 바꾸어보려고 다시 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벌써 다른 날은 약속을 다 잡아버렸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지훈씨에게 약속을 바꿀 수 없다고 하자, 그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혹시 일찍 자리를 파하게 되면 늦게라도 전화를 달라고 했다.
비록 동수와의 약속이 선약이긴 했어도, 왠지 지훈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내가 동수와 특별히 뭘 어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취직을 했으니 단지 축하해주기 위해 한번 만나는 것 뿐이란 생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싶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옛 애인인 동수의 취직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소연아~~”
“동수야, 처음오는데 잘 찾아왔네~~”
“그럼~ 이 정도야~ 껌이지~.”
“그래도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서 찾기가 힘들지 않았어?”
“사실 저쪽 대로변 앞에서 좀 헷갈려서 근처에 서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고 왔어.”
“호호 그랬구나~”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오늘은 내가 진짜 제대로 쏜다~ 닭갈비 이런거 말고 진짜 비싼거 말해~”
“어휴~됐다 됐어~ 호기 부리지 말어~”
“호기 아니다, 이제 취직했으니까 돈도 있겠다, 예전에 못해준 것도 갚고 싶고.”
“자꾸 예전 얘기하지마~, 그래도 취직했다 이거지? 그럼 나 회 사주라?”
“회? 알았어~~내가 근처 맛집 알아봤는데 마침 괜찮은 일식집 있더라~~ 가자~~”
“호호~ 정말? 너 정말 많이 변했다~ 그런 것도 미리 알아오고...”
“그 정도 쯤이야 뭐 별로 힘든 일도 아닌데,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왜 그렇게 별것도 아닌 것들을 잘 못해줬나 몰라~~헤어지고 나니까 다른 것보다도 그게 너무 후회됐었다”
“그래서 지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거야? 호호~”
“하하하 그런가 보다~~~”
3개월 만에 다시 보는 동수는 편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우리는 마치 계속 봐오던 친구 사이처럼 수다를 떨면서 일식집으로 가서 밥도 먹고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도 마셨다.
시간이 흘러 한 10시 가까이 되었을 무렵, 갑자기 지훈씨가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나를 조르거나 조금이라도 무리한 부탁 같은 건 하지 않는 그였기에, 늦게라도 올 수 있으면 오라던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모처럼 너무나 편한 느낌의 동수와 일찍 헤어지기가 싫은 마음이 들었다.
“소연아, 우리 술 한잔 할까?”
“술??”
동수가 술 얘기를 꺼내자 나는 순간 망설여졌지만, 어렵게 취직했는데 축하주 정도는 한잔 같이 마셔줄 수 있지 않냐며 계속 나를 설득하길래 할 수 없이 그럼 딱 한잔만 하기로 하고 술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수는 알콜 도수가 높은 술을 나에게 마시게 하고 나는 못이기는 척 받아마셨다. 머리가 금새 어지러워지며 취기가 올랐지만 그렇다고 판단력이 완전히 흐려질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내가 술이 몹시 약한 것을 알면서도 동수가 굳이 술을 하자고 한 그 속마음을 전혀 모른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 이었다. 내가 그것을 알면서도 동수를 뿌리치지 못하고 술을 마신 것은, 나는 계속 스스로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나도 동수와 오랜만의 즐거운 대화 그 이상을 원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그때 모르는 번호로 온 동수의 전화를 아예 받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훈씨에게 항상 나를 전부 보여주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자리에서도 마음을 놓고 온전히 욕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지훈씨는 너그럽고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앞에서 이성의 끈을 전부 놓아버리고 원초적인 본능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솔직해야할 순간에조차 가면을 쓰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분출하지 못한 무언가가 계속 쌓였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하필이면 동수가 나타난 것이었다. 술이 적당히 취했을 무렵, 동수는 나를 부축하여 근처의 모텔로 데려갔고, 나는 마치 취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동수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그날 내 옷차림은 평소 지훈씨를 만날 때처럼 단정하면서도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파란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완전히 짧진 않았지만 무릎위로 꽤 짧게 올라오는 원피스에 살이 살짝 비치는 소재의 검은색 민무늬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동수는 모텔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그러니까 비록 좁은 골목이었지만 길거리에서 날 부축하는 척 하면서 대담하게 내 치맛속으로 손을 넣어 스타킹 위 허벅지를 주무르는 것이었다. 내 몸을 훑는 그의 시선은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굶주린 늑대같았다.
나는 동수의 부축을 받고 걸으면서 다리를 베베 꼬으며 아앙거리다가 막상 모텔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에 간신히 다시 이성을 붙들고 동수를 말려보았다.
“나...난 지금 남자친구가 있잖아...이러면 안돼, 동수야”
“비밀로 하면 되잖아. 너랑 내가 말만 안하면 누가 알겠어??”
“그래도...들키면 어떡해~~”
“안 들켜~~~ 걱정하지마...”
“그래도...동수야...흐읍...!!”
“츄읍, 츕,”
내가 뭐라 더 제지하기도 전에 동수는 키스로 내 입을 막고 원피스 위의 내 몸을 더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의 입술은 거칠게 내 입술을 빨아들였고 곧이어 그의 혀가 내 입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나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붙들기 위해 황급히 입을 떼어내고 동수를 말리려했는데, 그는 이미 늦었다는 듯이 원피스 자락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재빠르게 팬티스타킹과 팬티를 무릎 아래로 끌어내려버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아랫도리의 맨살이 드러나는 느낌에 두 다리가 떨려왔다.
“아앙, 동수야....!!!”
그의 가운뎃 손가락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내 다리 사이의 은밀한 곳을 쓱 훑고 지나갔다. 나는 몸을 더 이상 가누지 못하고 그에게 몸을 기댔다. 동수는 나를 침대에 밀쳐 눕히고 내 원피스는 그대로 둔 채로 두 다리의 발목을 잡고 활짝 벌렸다.
“아아..동수야 이러면 안돼..아흑..!!”
그는 나의 애원에도 아랑곳없이 두 손가락으로 내 은밀한 속살을 가로질러 벌리고 자신의 혀를 찔러넣었는데, 그 짜릿한 감각에 그만 나도 모르게 발정난 암컷처럼 몸을 꼬으면서 마치 더 해달란 듯이 두 다리를 한껏 더 벌리고 만것이었다.
“아아아앙......난 몰라아...”
동수는 어떻게 해야 내가 느끼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혀로 클리토리스를 살살 굴리면서 제 손가락으로는 은밀한 속두덩을 마구 헤치면서 나를 농락하는데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온 몸의 구석구석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나는 한참동안이나 동수의 입과 손에 내 은밀한 속두덩을 내맡긴 채 흐느적거렸다.
“휴으...소연아.....”
“아아앙...동수야아..”
“아아...더이상 못 참겠다...”
마침내 그의 커다란 자지가 내 속살을 짓누르듯이 가르며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나는 그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버렸다. 내 그곳은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
“아흑....동수야아...아흐으응...”
동수의 그것은 어쩐지 그와 사귀었을 당시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크고 굵어진 느낌이었다. 내 안으로 들어온 그것의 느낌은 너무나 단단하고 위용이 있어서 내 몸은 그의 힘찬 피스톤질에 맥을 못 추고 출렁거렸다.
퍼억~ 퍽!
“후으, 소연아, 후으, 말해봐!”
“아흐응, 뭐얼”
퍽퍽 찔걱찔걱~
“너도 사실은 내 좆맛이 보고 싶었지?! 후으,”
“아흥, 몰라아~~~”
퍽~퍽~
“대답해봐 어서!
“아앙, 몰라아~~”
그는 계속 그 굵은 것을 내안에 찔러 넣으면서 저질스러운 질문으로 내게 대답을 재촉하다가 내가 계속대답을 회피하자 돌연 피스톤질을 멈추었다.
“아앙??!!”
“대답 안할꺼야? 내 좆이 그리웠어 안 그리웠어??”
“아흐응~~~~~~~~~”
“대답 안하면 그만할까??”
대답을 하면 나는 그와의 정사를 원했다고 자인하는 것이 되버리기에, 내 입으로 차마 대답을 하기가 두려워 계속 도리질을 치자, 동수는 아예 내 안에 넣고 있던 그것을 빼버리는 것이었다.
“소연이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계속 할 이유도 없다”
“아흐응, 정말 이러기야?!”
“어서 대답해봐!”
“아흥,,,,몰라, 뭐르을!”
“내 좆맛 말이야, 내 좆을 여기도 원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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