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M(마조마마) - 2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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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형우의 행동으로 학교는 한바탕 뒤집어 졌다.
학교 자체가 날라리가 별로 없는 모범 학교였기에, 이토록 요란스러운 싸움은 전례가 없었다.
형우의 싸움은 아이들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도 없을 정도로 험악했다.
선생의 앞에서 폭력을 휘두른 것은 둘째 치고, 폭행의 정도가 아이들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현장에서 형우를 말렸던 체육선생은 자신이 조금만 늦게 말렸다면 김동혁이 죽었을 지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폭행도 폭행이었지만, 더욱 큰 문제는 김동혁의 부모가 보통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김동혁의 부친은 부동산 재벌이며 학교 이사장과도 호형호제 하는 인물이었고, 모친은 삼년째 육성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한 마디로 부모가 둘 다 학교에 지대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부모를 둔 김동혁이 만신창이가 되어 두들겨 맞았으니, 교장 이하 선생들의 똥줄이 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형우는 그 날 보건실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은 후, 하루 종일 담임과 학생주임에게 시달려야 했다.
그들로서는 일단 싸움의 원인부터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형우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사실을 말 할 수도 없었고, 무슨 합당한 핑계를 대든 간에 결국 자신이 가해자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학생주임 선생은 형우에게 계속 입을 닫고 있다간 감옥에 갈 것이라며 윽박질렀지만, 형우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담임 선생은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얼마 전까지 그가 가장 피하려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미 김동혁을 짓밟은 순간부터 그런 결과가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실제로 겪게 되는 것은 머리 속에서만 각오했던 것보다 더욱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지숙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겠다던 예전의 각오 때문에 아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지숙의 비밀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형우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말다툼을 했는데, 그 새끼가...저보고 "니미 창녀"라고 욕했습니다."
형우의 말에 담임과 학생주임이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머리속에 아이들이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한 명이 "니미 창녀다." 라고 욕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입이 험한 아이들간에 흔히 쓰는 욕 중 하나였다.
굳이 뜻을 풀이 하자면야 "너희 엄마는 창녀다." 라고 풀이 할 수 있겠지만, 요즘 청소년들 중에 그걸 있는 그대로 나타내고 받아 들이는 아이는 없었다.
그냥 씨팔이나 개새끼 처럼 흔히 써먹는 욕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니미 씨팔이나 니미럴 같은 욕도 "니 애미랑 씹질 할 놈." 이란 뜻이다.
욕의 본 뜻을 따지고 들자면 그렇게 한도 끝도 없이 패륜적인 욕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뜻을 일일이 풀이하면서 받아 들이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형우는 말다툼 중에 그런 욕을 들었다고 상대 아이를 반 죽여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아니, 겨우 그거 때문에 애를 그 모양으로 줘팼다고? 그게 말이 돼?"
학생주임이 책상을 쾅 내리치며 소리질렀다.
선생들 역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요즘 아이들이 자주 쓰는 욕 같은 것은 훤하게 꾀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이 그런 욕을 들었다고 흥분해서 날뛸만큼 순진하지 않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윽박에 형우는 화가 났다.
자신은 그토록 괴로워하고, 고민했던 일을 학생주임은 별것 아닌 일로 취급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형우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그럼 엄마를 욕하는 놈을 가만 둡니까? 선생님 같으면 선생님 어머니한테 창녀라고 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형우가 고함에 학생주임이 잠시 당황한다.
그러나 이내 형우의 말을 이해하고는 얼굴을 구기며 형우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짜악.
성인 남자의 거센 손바닥에 얻어 맞자 형우는 의자에서 나뒹굴었다.
"이런 개자슥이! 너 방금 뭐라 그랬어?"
학생주임은 씩씩거리며 소매를 걷어 부쳤다.
담임선생이 그를 말렸다.
"어허. 주임선생님. 참으세요. 아직 애잖아요. 제가 잘 다독거려 볼테니, 나가서 흥분 좀 가라 앉히세요."
"아우. 내가 이놈의 선생질을 때려 치든가 해야지."
학생주임은 가슴을 쾅쾅 치며 나가 버렸다.
담임, 최진성이 쓰러진 형우를 일으켜 앉히며 물었다.
"괜찮으냐?"
최진성은 다른 선생들과 달리 권위 같은 것을 내세우지 않고 학생들과 격식 없이 지내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학생들과도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다.
형우는 그를 힐끗 쳐다 보고는 대답 없이 의자에 앉았다.
"후우. 주임 선생님이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는 말아라. 그건 그렇고, 진짜 그런 이유 때문에 싸움을 한 거냐? 정말 그게 다야? 체육선생님 말씀으로는 뭔가 원한 같은 거라도 있는 것 같았다던데 말이야."
최진성 역시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말리는 선생 앞에서 까지 폭력을 휘둘렀을 거라고는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 속사정을 모두 알지 못하는 한, 다른 사람은 형우의 행동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그런 변명이라도 꾸며서 한 것은 자신이 화를 낸 이유를 단순화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냥 보통 싸움처럼 가벼운 말다툼에서부터 시작 된 것으로 여겨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지숙 역시 형우가 화를 낸 것이 자신의 비밀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폭력의 정도가 심한 것만 빼면 싸움 이유로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지나가다 어깨만 툭 건드려도 주먹질부터 하고 보는 피끓는 청소년들 아니던가?
그저 형우는 그런 피끓는 아이들 중에 조금 더 피가 정신 나간 놈 정도로 취급 받으면 그만이었다.
"정말 그게 다야?"
최진성이 확인조로 다시 물었다.
형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게 답니다."
그리고 형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다시 입을 다물었다.
결국 싸움은 평소 김동혁을 마땅찮게 생각했던 형우가 사소한 말다툼 중에 흥분해서 폭행을 가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리고 이틀 후, 지숙이 학교에 불려갔다.
형우의 처벌 문제와 치료비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딱딱한 분위기의 상담실에 지숙과 형우, 김동혁과 그의 모친이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다.
이틀 만에 보는 김동혁은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얼굴은 온통 붓고 멍이 들어 있었는데, 특히 코는 뼈가 부러지기라도 했는 지 퉁퉁 부어 올라 있었다.
그는 맞은 데가 아픈 지 연신 인상을 쓰고 형우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정작 형우와 눈이 마주치면 채 1초 이상을 견디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 버렸다.
구타 가해자와 피해자간가 의례 그렇듯, 몸의 고통이 형우에 대한 두려움으로 남겨진 듯 했다.
김동혁이 아파서 낑낑거리자 김동혁의 모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참아. 니가 뭘 잘했다고 끙끙거려?"
어머니의 엄한 목소에 김동혁이 궁시렁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김동혁의 모친은 매우 자신감이 넘치는 여자였다.
"육성회장 주민정이에요. 제가 동혁이 엄마에요."
그녀는 처음 지숙을 보자 마자 악수를 청하며 자신의 이름 부터 밝혔다.
보통 누구누구 엄마입니다 라고 밝히는 학부형들과 판이하게 다른 인사였다.
결혼이나 주부라는 단어 안에 자신의 이름이 묻히는 것을 싫어하는, 전형적인 자립형 여성인 듯 했다.
주민정은 김동혁이 말했던 대로 상당한 미인이었다.
얼굴은 동그란 계란형이었는데, 눈이 크고 코가 오똑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입이 크고 입술 역시 두꺼워서 서구적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다만, 눈꼬리가 살짝 찢어져 있고 머리 스타일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자로 잰듯이 반듯하게 정돈된 채 틀어 올려 상당히 딱딱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그 매력을 감소시켰다.
몸매는 지숙보다 훨씬 풍만하고 살집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평소에 관리를 많이 하는 지 뚱뚱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또한, 눈에는 빨간색 뾰족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인상이 더욱 엄격하고 날카롭게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도도한 부잣집 사모님과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이 반쯤 섞여 있는 외모였다.
아이들 앞에서는 그토록 흔들림 없던 최진성도 주민정 앞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쩔쩔맸다.
"그, 그래서 그냥 단순한 말다툼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만큼 담임인 제 입장에서는 서로 좋게 마무리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진성은 싸움의 원인과 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하며 땀을 닦았다.
그가 설명한 원인과 과정은 평소에 두 학생의 사이가 좋지 않았었고, 사소한 말다툼과 욕설로 그 감정이 터져서 이렇게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굳이 학부형들 앞에서 "니미 창녀" 라느니 "니미럴" 이라느니 하는 험한 단어를 쓸 필요성은 없었기 때문에 싸움의 발단이 되었다는 욕설에 관해서는 대충 넘겼다.
그 외에도 최진성은 몇 가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이었다.
학부형들이야 알고 있을 리가 없었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이미 싸움에 관해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평소에 김동혁이 공공연히 학교 짱 행세를 하는 것을 눈꼴시게 여기던 전학생, 기회를 노리다 김동혁이 말실수로 흘린 욕설을 빌미로 삼아 그를 죽도록 두들겨 패버렸다는 소문이었다.
굳이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김동혁을 두들겨 팬 것은, 이제부터 자신이 학교 짱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린 것이라고 했다.
그 소문 때문인지 학생들 사이에선 서로의 가족에 관련되는 욕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이상한 불문율까지 생기게 되었다.
최진성 역시 그런 소문을 얼추 들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선생 입장에서 학부모들에게 차마 "당신들 아이들이 학교 짱 자리를 놓고 싸운 것 같다" 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꺼낼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말다툼으로 인한 우발적 다툼이라는 말 뿐이었다.
가만히 팔짱을 끼고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주민정이 팔을 풀며 말했다.
"그래서 학교측에서는 어떻게 처벌을 하겠다는 건가요?"
"저, 저희 교무회의 결과로는 유기 정학 이주에 근신 십일 정도로......"
주민정이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그의 말을 끊어 먹었다.
"뭐라고요? 애를 이꼴로 만들어 놨는데, 고작 이주 라고요? 진단이 전치 삼주가 나왔어요. 삼주면 고소감이라고요. 이사장님이 하도 조용히 넘어가자고 부탁하고, 또 동혁이하고 같은 나이에 민증에 빨간줄 긋고 인생 망치게 하는 건 심한 일 같아서 학교에 처분을 맡기겠다고 한 건데, 이주라니요? 선생님은 그게 합당한 처사라고 생각하세요?"
똑 떨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최진성의 목이 움츠러 들었다.
"물론 동혁이 어머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이제 졸업도 몇 달 안 남았는 데다 학교 분위기도 그렇고...게다가 전적으로 형우 잘못만 있는 것도 아니고......"
최진성이 조심스럽게 변명을 하자 주민정이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에욧? 그럼 우리 동혁이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싸움이 일어난 원인이 동혁이가 말실수를 한 것이......"
"얻어 맞은 애가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거에요? 저 애는 멀쩡하고 우리 애는 만신창이잖아요. 그런데도 우리 애 잘못이라고 할 수 있나요?"
주민정의 말에 옆에 있던 김동혁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어, 엄마. 나도 맞기만 하진 않았어. 잘 보면 저 새끼 얼굴에도 멍 좀 들었......"
"시끄러 이 녀석아! 맞고 다니지 말라고 태권도 도장을 삼년이나 다니게 했는데, 그 모양으로 얻어 맞고 다녀? 엄마가 그랬지? 치료비 같은 건 다 책임져 줄테니 절대 맞고 다니지 말라고. 맞을 바에 차라리 니가 때리라고! 했어 안했어?"
"해, 했어."
"그런데 그렇게 맞고 들어 와? 어휴. 속상해. 널 아들이라고 둔 내가 불쌍하다."
주민정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그녀의 구박에 김동혁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였다.
그는 평소에 학교에서는 온갖 허세를 다 부리며 아이들을 휘둘렀고, 또 지숙에게는 범점할 수 없는 주인으로서의 카리쓰마를 보여 왔었지만 주민정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김동혁은 어려서부터 그녀에게 완전히 휘어잡힌 채 살아 왔다.
그가 첫 상대로 주민정과 비슷한 또래인 지숙을 선택한 것도 자신의 엄마를 마음대로 휘둘러 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김동혁이 말문을 닫자 주민정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을 이었다.
"학교에 처분을 맡긴 것만 해도 제 입장에선 많이 양보한 거에요. 그러니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저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에요."
"합당한 처벌이라 하시면 어느 정도를 생각 하시는 지......"
최진성의 물음에 주민정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무기정학이죠!"
그녀의 말에 최진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학생에게 무기정학은 내린다는 것은 졸업을 시키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지만 형우에게만 일방적으로 그런 벌을 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주민정은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최진성은 도저히 그녀의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것은 그뿐 아니라 이 학교 선생들 모두가 그랬다.
워낙 치맛바람이 쎈 학교인지라 그만큼 육성회의 권한이 강했고, 주민정은 그 중에서도 몇년 째 회장직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치맛바람 어머니들의 대표인 셈이었으니 얼마나 기가 드센 지는 굳이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원래 이 자리에 함께 참석했어야 할 교감선생과 학년주임 선생이 피해 학생 어머니가 주민정이라는 말만 듣고, 병가를 내고 학교를 빠졌을 정도였다.
덕분에 두 사람의 담임을 맡고 있는 지라 빠질 수 없었던 최진성이 학교 측 입장을 설명하게 된 것이다.
최진성이 어쩔 줄 몰라 버벅되고 있을 때, 조용히 고개만 숙이고 있던 지숙이 입을 열었다.
"저...동혁 어머... 사모님. 치료비와 보상은 모두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런 심한 처사 만은......"
주민정은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돈이라면 우리도 얼마든 지 있어요. 굳이 그쪽 신세 질 생각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분명한 처분 뿐이에요. 이건 단지 우리 아이가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이러는 것만은 아니에요. 이 학교 육성회장으로서, 댁의 아들에게도 이 사회의 정의와 질서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확실히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댁의 아들이 어린 나이라도 잘못을 하면 당연히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알아야 나중에 또 이런 일을 안 일으키지 않겠어요?"
"하지만 형우는 나쁜 아이가 아니에요.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에요. 지금도 많이 반성 하고 있고 후회하고......"
지숙의 변명에 주민정이 뾰족한 고함을 질렀다.
"댁이 그렇게 아들을 감싸고 도니 이런 일이 일어난 거 아니에요? 자기 아들이라고 잘못 같은 건 안 할거라고만 생각하는 게 믿음이 아니에요. 부모들이 내 아들은 안그럴 거라고 감싸돌기만 하니까 수많은 청소년 범죄가 일어나는 거라고요. 아들을 믿고 싶으면 올바른 길로 확실히 인도한 후에야 믿으세요! 댁은 그런 소리 할 게 아니라 먼저 반성부터 해야 돼요! 이런 일이 생긴 진짜 이유는 댁의 그 아들에 대한 무책임한 믿음 때문이니까욧!"
지숙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러 말도 하지 못했다.
주민정의 언변은 대하는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죄를 하러 온 자리에 원래부터 성격이 드세지 못한 지숙이 그녀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바탕 설교를 늘어 놓고 난 주민정은 자신이 조금 심했다고 생각했는 지 톤을 낮춰서 다시 말했다.
"오해하진 마세요. 그쪽에 악감정을 가지고 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다만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 책임의 절반은 엄마에게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에요. 아들의 잘못을 책임지는 것도 엄마로서의 의무이니까요."
상담실 안은 오직 주민정의 단호한 설교만이 울려퍼졌다.
최진성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 사나운 암코양이 마음을 돌리긴 틀렸구나. 후우. 이제 한달 반만 있으면 방학인데, 학생에게 무기정학이라니."
그는 안쓰러운 눈으로 형우와 지숙 모자를 돌아 보았다.
그때, 지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의 잘못이 엄마의 책임이라는 말씀 잘 알아 들었어요.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행동에 주민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래서요? 받아 들이겠다는 건가요?"
지숙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리 그래도 형우가 무기정학까지 받게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제가 대신......"
말을 하던 지숙이 갑자기 주민정과 김동혁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마를 땅에 붙이고 빌었다.
"...책임지고 용서를 빌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모두 부덕한 제 잘못입니다. 부디 저희를 용서해 주세요."
지숙의 행동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주민정과 최진성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형우 역시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났다.
"어, 엄마! 뭐 하시는 거에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그냥 제가 그만 둘게요! 이 딴 학교 제가 그만 둬 버리면 되잖아요! 어서 일어 나세요!"
형우는 정말 지숙이 저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동안 그가 일으킨 사건 때문에 많은 피해학생들의 부모 앞에 불려가 용서를 빌었던 지숙이었지만, 이렇게까지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던 적은 없었다.
형우는 급히 지숙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맞은 편에 앉은 김동혁의 얼굴을 보고 몸이 굳어 버렸다.
김동혁은 그와 지숙을 내려다 보며 소리없이 웃고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연극이라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을 본 형우는 깨달았다.
지금 지숙이 하고 있는 굴욕적인 행동이 바로 김동혁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지금 주민정이 아니라 김동혁에게 엎드려 빌고 있는 것이다.
김동혁을 그렇게 만든 자신의 앞에서.
"개...새끼......"
형우는 이빨을 바드득 갈았다.
분노로 손이 떨려왔다.
당장이라도 달려 들어 김동혁을 다시 한 번 밟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눈 앞에 비참하게 엎드리고 있는 지숙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머리속에 수만가지 생각이 소용돌이 치듯 맴돌았다.
뿌드득.
어금니가 갈리며 뼛가루가 입안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잇몸이 찢어지며 찝찌름한 피가 새어 나왔다.
꽉 쥔 주먹이 터져 나갈 것처럼 떨려왔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눈 앞에 엎드린 지숙을 위해 참아야 했다.
그때 당혹스러워 하는 주민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하시는 거에요?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온다고 해결 되는 일이 아니에요. 어서 일어 나세요. 문제가 있으면 이성적으로, 대화로 해결을 해야죠."
똑부러지던 그녀 역시 두 사람의 행동에 너무도 놀랐던지, 말까지 더듬었다.
옆에서 남몰래 히죽거리며 웃던 김동혁이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 말했다.
"엄마. 형우 아줌마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그냥 봐주자. 형우도 반성하는 것 같고. 또 친구 사이에 다툴 수도 있는데, 괜히 그거 가지고 정학이니 뭐니 해버리면 다른 애들 사이에서 내 입장도 엄청 곤란해 져. 잘못하면 나 진짜 왕따 당할 지도 모른다니까?"
그 말에 주민정의 얼굴에 갈등이 떠올랐다.
3년간 육성회를 꾸려가면서 아이들간의 왕따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왕따 당할 지도 모른다는 김동혁의 말이 상당히 와닿았다.
잠시 갈등하던 주민정은 무릎 꿇고 엎드린 지숙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댁이 아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니 같은 엄마로서 더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네요. 좋아요. 치료비와 보상을 받는 정도로 끝내고 처벌은 요구하지 않겠어요. 정학이든 근신이든 아무래도 좋으니 최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주민정은 판사가 판결을 선언하 듯 말을 내뱉고는 그대로 상담실을 나가 버렸다.
인사도 없이 급히 나가는 것을 보면, 당황스러운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김동혁이 그녀의 뒤를 따라나가는 척 형우에게 다가와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니네 엄마 때문에 살아난 줄 알아."
그리고 이번에는 지숙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우리 엄마 마음을 돌리다니. 아줌마 대단하던데?"
그의 손이 닿자 지숙이 몸을 움찔하는 것이 옆에서도 느껴졌다.
뿌드득.
형우는 이를 악물고 자신을 억제했다.
최진성 역시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님을 알았는 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형우 어머님. 우선 진정 좀 하시고 나중에 다시...저, 전 교무실에 가 있을테니 진정 되면 들리세요. 형우야. 어머니 위로 좀 해드려라......"
최진성은 상담실을 나가며, 아직도 바닥에 주저 앉아 일어나지 않고 있는 지숙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저렇게 착하고 헌신적인 엄마를 모욕했으니......"
그는 어쩌면 형우가 싸운 원인이 진짜 그 욕 한 마디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상담실을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나자 상담실에는 형우와 지숙만이 남게 되었다.
형우는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지숙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순간적인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던 것이 지숙에게 이런 굴욕을 안겨 준 것이다.
형우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미안해요."
그 말에 지숙이 고개를 젓는다.
"아냐. 엄마가 미안해."
그녀의 목소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엄마가 뭐가 미안해요?"
"그냥. 그냥 형우한테 미안해."
"뭐가 자꾸 미안해요? 다 내가 잘못한 건데. 우리도 그만 일어 나요."
"그래. 일어 나야지."
지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일어 나려던 지숙의 다리가 휘청거리며 다시 주저 앉는다.
다리가 풀린 모양이었다.
"내가 부축해 줄게요."
형우가 그녀의 팔을 잡고 부축해 주었다.
지숙의 가녀린 팔에 희미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엄마도...나한테 안 좋은 모습을 보여 줄까봐 이렇게 떨고 있었구나."
형우는 지숙을 부축해 일으켜 준 후, 한쪽 어깨를 살짝 기울여 그녀의 백을 집으려 했다.
그때 형우의 눈에 지숙이 앉아 있던 자리가 보였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적시고 있는 희뿌연 물방울들.
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지숙의 엉덩이를 보았다.
지숙의 치마가 물에 젖은 것 처럼 약간 얼룩이 져 있었다.
치마 색깔이 짙은 검은 색이라 거의 표가 나지 않았지만, 형우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숙이 흘린 보짓물이라는 것을.
지숙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굴욕적으로 엎드리고, 그 행위로 인해 흥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숙의 팔을 부축하던 형우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눈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지숙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형우야. 엄마 아파. 살살 잡아."
형우는 지숙의 부름에 정신이 들었다.
다행이 지숙은 아직 자신이 저토록 물을 많이 흘렸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형우는 지숙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불그스름하게 달아 올라 있었다.
조금 전에는 그것이 굴욕적으로 엎드린 탓에 창피함과 수치심으로 상기 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흥분해서 몸이 달아 올라 있어서였다.
형우는 왠지 지숙이 자신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짧은 순간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떠올리고 그녀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뺐다.
"미안해요. 잠깐 나쁜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요. 엄마. 어서 가요."
형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관리하며 지숙을 부축하여 상담실을 나갔다.
"내가 집까지 바래다 줄게요."
형우의 말에 지숙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형우 너 아직 수업도 안 끝났잖아. 엄마 괜찮으니까 교실로 가. 그리고 엄마 교무실 가서 선생님도 만나 봐야 하잖아."
지숙의 말에 형우는 마지못해 그녀의 팔을 놓았다.
"그럼 엄마. 조심해서 가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하고요."
"호홋. 사고는 니가 쳐 놓고 왜 엄마를 걱정하니? 아들도 더 이상 사고 치지 마?"
그 말에 형우는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이번엔 정말로 실수였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에요. 정말이에요 엄마."
"알아. 엄마는 우리 형우 믿어. 그럼 엄마 갈게."
지숙은 상냥하게 웃으며 형우를 한 차례 안아 주고는 돌아섰다.
형우는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걸어가는 지숙의 뒷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며 교실로 향했다.
그러나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복잡해서 도저히 수업을 들어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업 시간의 복도는 마치 사람 없는 무인도와 같이 조용했다.
형우는 그 정적과 고독이 좋아 괜히 목적 없이 복도를 서성거리며 돌아 다녔다.
창가 너머로 펼쳐진 파란 하늘을 보자 담배를 피고 싶어졌다.
형우는 건물을 나와 자신만의 장소로 향했다.
비록 냄새는 나는 곳이지만, 학교 안에서 유일하게 혼자만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형우는 학교 구석의 창고 뒤의 버려진 화장실 건물로 걸어갔다.
화장실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면 밖에서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완벽한 그만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형우가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코너를 돌기 직전.
거친 욕설이 들려왔다.
"이 씨발년아! 니 년 아들새끼 때문에 존나 아프잖아! 이거 어쩔 건데?"
욕설의 뒤를 이어 살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철퍽철퍽!
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흐느낌 소리.
"아흐흑. 주, 주인님.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바로 지숙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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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가 제일 기다렸던 장면이 나왔군요.
상담실에서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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