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 - 2부14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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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바늘은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논문집을 읽고 있기는 했지만 집중이라고는 전혀 되질 않고 있었다. 페이지가 넘어가질 않고 있었다. 몇번이고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그 동안 지나가 버린 시간 만이 아직 유미의 부재를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길래.. 이시간까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유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따위는 인정하고 싶지도 믿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만 믿고 있으면 되리라는 생각은 산산히 부셔져 버렸다. 초조하기만 할 뿐이었다. 가슴을 억누르고 있는 불길한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 귀가가 늦었다. 부모님이 출장 중일 때도 피곤하다며 자신의 집으로 가버리는 적이 많았다. 며칠째 얼굴조차 보지 못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불안한 생각들만이 떠올리는 자신이 짜증스러웠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도 있거든’
지영의 말이 또 다시 생각났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유미를 믿었다. 그날 이후부터 쭉 이어온 믿음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왔었다. 그동안 유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미 역시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음이 틀림 없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서로 이야기를 해보면 오해를 풀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만 싶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파란색 작은 상자를 손 위에 올려두고 바라보았다. 연구는 이제 시작이었지만, 아직 성과는 못내기는 했지만, 조금 이르기는 해도 오늘 이걸 전해줄 생각이었다. 그러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분명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한번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전해야만 했다.
오전 12시 30분. 이렇게 식탁에 앉아 유미를 기다린지 벌써 5시간이 지나 있었다. 유미로부터 아직 연락이 없었다. 평소대로라면 기다리고 있는 희성을 생각해서 반드시 연락을 하던 유미였다. 하지만 그런 연락조차 없었다. 손에 들었던 휴대폰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 맞은편의 유미의 지정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유미를 믿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멍하니 하고 있을 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인종이 울렸다. 뛰어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유미가 돌아왔다. 희성의 생각대로였다.
“유미야.. 어서와!”
밝은 목소리로 문을 열었다. 여자친구의 귀가를 맞이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유미의 어깨에 취해서 늘어진 남자가 기대어 있었다.
‘왜 저 자식이…? 왜 유미가 저 놈이랑 같이…?’
술냄새를 풍기는 지훈이 술주정 같은 혼자말을 흘리고 있었다. 유미의 얼굴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유미야.. 어떻게…?”
어두운 표정으로 묻는 희성에게 유미의 대답이 돌아왔다.
“미.. 미안해.. 동아리 애들이랑 회식이 있었는데.. 그래서 늦었거든.. 근데.. 이 친구가.. 너무 취해서.. 다들 나한테 떠넘기지 뭐야.. 택시 태워 보낼 수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 미안.. 엄마 아빠 안계시니까 우리 집에 재울 수도 없고.. 그래서 희성이네서 하루밤 재워보낼까 하고..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유미가 변명을 늘어 놓았다. 거짓말 투성이의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 어쨌든.. 들어와”
비틀거리는 유미를 대신해서 지훈을 부축해 거실 쇼파에 눕혔다. 어깨와 팔에 느껴지는 단단한 체구에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희성아.. 미안해..”
식탁에 앉은 유미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쩔 수 없잖아…”
정말 동아리 회식이었는지 되묻고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까지 가져 본적 없던 여자친구에 대한 불신이었다. 하지만 믿어야 한다고.. 간신히 그런 마음을 억눌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유미는 고개를 숙인채 그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화 났지? 미안.. 정말 미안…”
“화 안났어. 그러니까 그만 해.. 유미도 옷 갈아입고 와”
“고..고마워.. 희성아…”
유미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살피듯이 들여다 본 유미의 눈가에 약간의 웃음기가 떠 올라 있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을 보고서야 간신히 마음의 파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눈 앞에서 일어서고 있는 유미를 향해서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천천히 갈아 입고 나와”
“.. 응.. 아.. 저기 있잖아..”
유미가 머뭇거리며 쇼핑 백 안에 들어 있던 위스키 병을 꺼냈다.
“이거.. 술집 주인한테.. 받았어. 갈아 입을 동안 이거라도 마시고 있어. 잘 모르지만 되게 비싼 술이래나봐. 주인이 내가 이쁘다며 서비스 해주던걸? 희성이한테 주려고 받아왔어”
희성의 등 뒤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수다스럽게 얘기하며 얼음잔을 만들어 와 호박색의 액체를 따라 희성이에게 내밀었다.
술을 마시고 온 것은 사실이었다. 단지 지훈에게 이끌려 갔던 시내의 허름한 술집에서 지훈이의 지인이라던 술집 지배인 앞에서 지훈이가 시키는대로 서비스를 했을 뿐이었다. 이 위스키는 그런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었다. 물론 그런 술을 소중한 남자친구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훈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희성이에게 알려져서는 안되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감정을 억누르고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 그럼 갈아입고 올게”
욕실을 향하면서 지시 받았던 대로 갈색의 롱코트를 벗었다.
“유..유미야…”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허리까지 크게 등이 파여진 짙은 홍색의 미니 원피스였다. 검고 긴 머리카락과 눈처럼 하얀 피부. 빨간 색 드레스로 가려진 힙 라인이 눈길을 붙들고 있었다. 천천히 희성을 향해 돌아섰다.
“어때..? 어울려?”
평소와 같은 듯 달라 보이는 웃는 얼굴로 유미가 말했다. 요염해 보이는 색기가 온몸에 흐리고 있었다. 가는 어깨끈으로 이루어진 가슴 부분은 풍만한 유미의 가슴이 보기 좋은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몸에 달라붙은 얇은 옷감은 유미의 아름다운 바디라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짧은 스커트는 무릎 위가 아닌 허벅지 바로 아래에서 끝나고 있었다. 섹시해 보이는 허벅지에서 시작되어 가늘고 쭉 벋은 종아리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각선미가 감춤없이 드러나 있었다.
“… 어..어울리기는 해도.. 유미야.. 너무.. 화려하지 않니?”
청순하고 심플한 옷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맨살을 노출하는 화려한 복장은 한번도 입은 적이 없었다.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희성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차림으로 술집에 갔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차림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좀 그런가?”
믿어야 한다는 마음과 어딘지 달라보이는 마음이, 복잡한 마음이 뒤섞이고 있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농염한 유미의 자태에서 얼굴을 돌렸다.
“어서 갈아 입어!”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주먹을 꼭쥐고 눈을 내린 희성을 바라보는 유미의 표정에 아픔과 슬픔이 드러나 있는 것을 희성은 보지 못했다.
“응 빨리 갈아입고 올게”
욕실의 문이 소리를 내며 닫혔다. 희성은 주머니에 들어 있던 파란 상자를 바지 위로 움켜쥐었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작은 상자에라도 기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지훈은 등받이를 넘어트린 쇼파에서 담요를 덮은 채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희성은 그 옆으로 이불을 깔고 있었다.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뒷모습 만으로도 희성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도 그런 옷 따위 입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그런 차림을 희성에세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던 남자친구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당하고 있던 일들을 본다면 어떤 표정일까 싶었다. 유미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빈 잔은을 싱크대로 치운 후 입술을 깨물면서 녹아가는 얼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온기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잘자라는 인사와 함께 가벼운 입맞춤을 나누고 나서 거실의 불을 껐다. 미동도 하지 않는 지훈의 소파 아래쪽에 누워있는 희성의 이불 속으로 방에서 자기로 했던 유미가 들어왔었다. 등 뒤에서 안아오는 유미의 체온이 피부로 느껴졌다. 자신의 팔 안에서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감촉을 느끼면서 그동안의 궁금함을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잠이 들고 말았었다. 그 이후로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허전한 느낌에 유미가 방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음날 물어보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온몸이 무거웠다. 머리가 아파왔다. 멍한 희성의 의식이 또 다시 멀어지려고 하는 순간 속삭임이 들려왔다.
“… 시…싫어.. 하.. 하지마..”
잘못 들을 리가 없는 분명한 유미의 목소리였다. 등 뒤의 소파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제…발.. 부탁이야.. 싫어… 제발… 아응… 아읏.. 그.. 그만해…”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목소리에 몽롱해지던 의식이 확실하게 깨어났다.
“아흑.. 으으음.. 아읏… 으으응… 시.. 싫어….”
일어나려고 해 보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모든 관절이 따로 노는 것만 같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다. 가위라도 눌린 듯이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아응.. 으으음… 하읏… 아으응… 그만해.. 여..여기서는… 아흣”
막힌 듯한 소리와 함께 옷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 희성이… 깬….단 말야…. 하읏… 아응… 싫…어… 희.. 희성이가…”
“괜찮아.. 그 자식.. 절대 못일어나.. 지금쯤 꿈나라일 걸? 크크큭”
취해서 널부러져 있어야 할 지훈의 목소리였다.
“어서 단추 풀어 보란 말야… 니 손으로 말이지”
그렇게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명령하는 낮은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냉혹한 포식자가 된 지훈은 위스키 병에 수면제를 타 놓았던 것이다. 희성이도 유미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시,, 싫어.. 싫어… 희성이가.. 깬단 말야… “
“말 안듣지? 저 자식 두들겨 깨워줄까? 그럴까?”
유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만이 급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아.. 안돼.. 제발… 그것만은…”
“그럼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하란 말야. 저 바보자식한테 들키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꼼짝도 할 수 없는 탓에 식은 땀만이 흐르고 있었다.
“뭐야? 이거? 젖꼭지가 왜 그렇게 발딱 서 있어? 그거 조금 만져줬다고 이렇게 되었단 말야?”
“아.. 아냐.. 그런 거.. 아흣.. 아응.. 아아앙.. 으음~”
참지 못하고 터트리는 유미의 작은 신음소리와 지훈이 가슴을 거칠게 빨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듣고 싶지 않아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젖꼭지 이렇게 가볍게 깨물어 주는 거 좋아하잖아? 안그래?”
“으흠~ 아으응~”
유미를 더 수치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지훈은 일부러 자신의 행동을 하나하나 말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렇게 혀로 젖꼭지 굴려주는 거랑 깨무는 거랑 어떤 게 더 좋지?”
“아흑.. 하아.. 아응.. 아아응”
희성이가 잠에서 깨어 있다는 사실은 지훈도 유미도 모르고 있었다.
“자, 그럼 젖꼭지를 이렇게 하는 건?”
“하앗~! 아흑.. 조.. 좋아.. 하읏.. 으응”
“… 세게 빨아주는 거.. 좋아했었나?”
마치 실황중계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유미에게 남아 있는 자존심을 무너트리고 인형처럼 만들기 위한 지훈의 시도가 생각지도 않게 희성이에게도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군.. 어떻게 해도 좋아하는 군.. 정말 밝히는 년이라니까..남자친구가 옆에서 자고 있는데 젖꼭지 좀 만져준다고 이렇게 느끼는 것 좀 봐”
“시.. 싫어.. 말하지 마…”
“자 이젠 그 거추장스러운 거 다 벗어보지 그래? 자기 손으로 벗어 보라고.. 허리 들고”
소파가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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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집을 읽고 있기는 했지만 집중이라고는 전혀 되질 않고 있었다. 페이지가 넘어가질 않고 있었다. 몇번이고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그 동안 지나가 버린 시간 만이 아직 유미의 부재를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길래.. 이시간까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유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따위는 인정하고 싶지도 믿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만 믿고 있으면 되리라는 생각은 산산히 부셔져 버렸다. 초조하기만 할 뿐이었다. 가슴을 억누르고 있는 불길한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 귀가가 늦었다. 부모님이 출장 중일 때도 피곤하다며 자신의 집으로 가버리는 적이 많았다. 며칠째 얼굴조차 보지 못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불안한 생각들만이 떠올리는 자신이 짜증스러웠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도 있거든’
지영의 말이 또 다시 생각났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유미를 믿었다. 그날 이후부터 쭉 이어온 믿음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왔었다. 그동안 유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미 역시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음이 틀림 없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서로 이야기를 해보면 오해를 풀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만 싶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파란색 작은 상자를 손 위에 올려두고 바라보았다. 연구는 이제 시작이었지만, 아직 성과는 못내기는 했지만, 조금 이르기는 해도 오늘 이걸 전해줄 생각이었다. 그러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분명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한번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전해야만 했다.
오전 12시 30분. 이렇게 식탁에 앉아 유미를 기다린지 벌써 5시간이 지나 있었다. 유미로부터 아직 연락이 없었다. 평소대로라면 기다리고 있는 희성을 생각해서 반드시 연락을 하던 유미였다. 하지만 그런 연락조차 없었다. 손에 들었던 휴대폰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 맞은편의 유미의 지정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유미를 믿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멍하니 하고 있을 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인종이 울렸다. 뛰어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유미가 돌아왔다. 희성의 생각대로였다.
“유미야.. 어서와!”
밝은 목소리로 문을 열었다. 여자친구의 귀가를 맞이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유미의 어깨에 취해서 늘어진 남자가 기대어 있었다.
‘왜 저 자식이…? 왜 유미가 저 놈이랑 같이…?’
술냄새를 풍기는 지훈이 술주정 같은 혼자말을 흘리고 있었다. 유미의 얼굴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유미야.. 어떻게…?”
어두운 표정으로 묻는 희성에게 유미의 대답이 돌아왔다.
“미.. 미안해.. 동아리 애들이랑 회식이 있었는데.. 그래서 늦었거든.. 근데.. 이 친구가.. 너무 취해서.. 다들 나한테 떠넘기지 뭐야.. 택시 태워 보낼 수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 미안.. 엄마 아빠 안계시니까 우리 집에 재울 수도 없고.. 그래서 희성이네서 하루밤 재워보낼까 하고..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유미가 변명을 늘어 놓았다. 거짓말 투성이의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 어쨌든.. 들어와”
비틀거리는 유미를 대신해서 지훈을 부축해 거실 쇼파에 눕혔다. 어깨와 팔에 느껴지는 단단한 체구에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희성아.. 미안해..”
식탁에 앉은 유미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쩔 수 없잖아…”
정말 동아리 회식이었는지 되묻고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까지 가져 본적 없던 여자친구에 대한 불신이었다. 하지만 믿어야 한다고.. 간신히 그런 마음을 억눌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유미는 고개를 숙인채 그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화 났지? 미안.. 정말 미안…”
“화 안났어. 그러니까 그만 해.. 유미도 옷 갈아입고 와”
“고..고마워.. 희성아…”
유미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살피듯이 들여다 본 유미의 눈가에 약간의 웃음기가 떠 올라 있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을 보고서야 간신히 마음의 파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눈 앞에서 일어서고 있는 유미를 향해서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천천히 갈아 입고 나와”
“.. 응.. 아.. 저기 있잖아..”
유미가 머뭇거리며 쇼핑 백 안에 들어 있던 위스키 병을 꺼냈다.
“이거.. 술집 주인한테.. 받았어. 갈아 입을 동안 이거라도 마시고 있어. 잘 모르지만 되게 비싼 술이래나봐. 주인이 내가 이쁘다며 서비스 해주던걸? 희성이한테 주려고 받아왔어”
희성의 등 뒤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수다스럽게 얘기하며 얼음잔을 만들어 와 호박색의 액체를 따라 희성이에게 내밀었다.
술을 마시고 온 것은 사실이었다. 단지 지훈에게 이끌려 갔던 시내의 허름한 술집에서 지훈이의 지인이라던 술집 지배인 앞에서 지훈이가 시키는대로 서비스를 했을 뿐이었다. 이 위스키는 그런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었다. 물론 그런 술을 소중한 남자친구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훈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희성이에게 알려져서는 안되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감정을 억누르고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 그럼 갈아입고 올게”
욕실을 향하면서 지시 받았던 대로 갈색의 롱코트를 벗었다.
“유..유미야…”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허리까지 크게 등이 파여진 짙은 홍색의 미니 원피스였다. 검고 긴 머리카락과 눈처럼 하얀 피부. 빨간 색 드레스로 가려진 힙 라인이 눈길을 붙들고 있었다. 천천히 희성을 향해 돌아섰다.
“어때..? 어울려?”
평소와 같은 듯 달라 보이는 웃는 얼굴로 유미가 말했다. 요염해 보이는 색기가 온몸에 흐리고 있었다. 가는 어깨끈으로 이루어진 가슴 부분은 풍만한 유미의 가슴이 보기 좋은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몸에 달라붙은 얇은 옷감은 유미의 아름다운 바디라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짧은 스커트는 무릎 위가 아닌 허벅지 바로 아래에서 끝나고 있었다. 섹시해 보이는 허벅지에서 시작되어 가늘고 쭉 벋은 종아리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각선미가 감춤없이 드러나 있었다.
“… 어..어울리기는 해도.. 유미야.. 너무.. 화려하지 않니?”
청순하고 심플한 옷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맨살을 노출하는 화려한 복장은 한번도 입은 적이 없었다.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희성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차림으로 술집에 갔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차림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좀 그런가?”
믿어야 한다는 마음과 어딘지 달라보이는 마음이, 복잡한 마음이 뒤섞이고 있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농염한 유미의 자태에서 얼굴을 돌렸다.
“어서 갈아 입어!”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주먹을 꼭쥐고 눈을 내린 희성을 바라보는 유미의 표정에 아픔과 슬픔이 드러나 있는 것을 희성은 보지 못했다.
“응 빨리 갈아입고 올게”
욕실의 문이 소리를 내며 닫혔다. 희성은 주머니에 들어 있던 파란 상자를 바지 위로 움켜쥐었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작은 상자에라도 기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지훈은 등받이를 넘어트린 쇼파에서 담요를 덮은 채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희성은 그 옆으로 이불을 깔고 있었다.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뒷모습 만으로도 희성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도 그런 옷 따위 입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그런 차림을 희성에세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던 남자친구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당하고 있던 일들을 본다면 어떤 표정일까 싶었다. 유미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빈 잔은을 싱크대로 치운 후 입술을 깨물면서 녹아가는 얼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온기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잘자라는 인사와 함께 가벼운 입맞춤을 나누고 나서 거실의 불을 껐다. 미동도 하지 않는 지훈의 소파 아래쪽에 누워있는 희성의 이불 속으로 방에서 자기로 했던 유미가 들어왔었다. 등 뒤에서 안아오는 유미의 체온이 피부로 느껴졌다. 자신의 팔 안에서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감촉을 느끼면서 그동안의 궁금함을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잠이 들고 말았었다. 그 이후로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허전한 느낌에 유미가 방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음날 물어보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온몸이 무거웠다. 머리가 아파왔다. 멍한 희성의 의식이 또 다시 멀어지려고 하는 순간 속삭임이 들려왔다.
“… 시…싫어.. 하.. 하지마..”
잘못 들을 리가 없는 분명한 유미의 목소리였다. 등 뒤의 소파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제…발.. 부탁이야.. 싫어… 제발… 아응… 아읏.. 그.. 그만해…”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목소리에 몽롱해지던 의식이 확실하게 깨어났다.
“아흑.. 으으음.. 아읏… 으으응… 시.. 싫어….”
일어나려고 해 보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모든 관절이 따로 노는 것만 같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다. 가위라도 눌린 듯이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아응.. 으으음… 하읏… 아으응… 그만해.. 여..여기서는… 아흣”
막힌 듯한 소리와 함께 옷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 희성이… 깬….단 말야…. 하읏… 아응… 싫…어… 희.. 희성이가…”
“괜찮아.. 그 자식.. 절대 못일어나.. 지금쯤 꿈나라일 걸? 크크큭”
취해서 널부러져 있어야 할 지훈의 목소리였다.
“어서 단추 풀어 보란 말야… 니 손으로 말이지”
그렇게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명령하는 낮은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냉혹한 포식자가 된 지훈은 위스키 병에 수면제를 타 놓았던 것이다. 희성이도 유미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시,, 싫어.. 싫어… 희성이가.. 깬단 말야… “
“말 안듣지? 저 자식 두들겨 깨워줄까? 그럴까?”
유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만이 급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아.. 안돼.. 제발… 그것만은…”
“그럼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하란 말야. 저 바보자식한테 들키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꼼짝도 할 수 없는 탓에 식은 땀만이 흐르고 있었다.
“뭐야? 이거? 젖꼭지가 왜 그렇게 발딱 서 있어? 그거 조금 만져줬다고 이렇게 되었단 말야?”
“아.. 아냐.. 그런 거.. 아흣.. 아응.. 아아앙.. 으음~”
참지 못하고 터트리는 유미의 작은 신음소리와 지훈이 가슴을 거칠게 빨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듣고 싶지 않아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젖꼭지 이렇게 가볍게 깨물어 주는 거 좋아하잖아? 안그래?”
“으흠~ 아으응~”
유미를 더 수치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지훈은 일부러 자신의 행동을 하나하나 말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렇게 혀로 젖꼭지 굴려주는 거랑 깨무는 거랑 어떤 게 더 좋지?”
“아흑.. 하아.. 아응.. 아아응”
희성이가 잠에서 깨어 있다는 사실은 지훈도 유미도 모르고 있었다.
“자, 그럼 젖꼭지를 이렇게 하는 건?”
“하앗~! 아흑.. 조.. 좋아.. 하읏.. 으응”
“… 세게 빨아주는 거.. 좋아했었나?”
마치 실황중계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유미에게 남아 있는 자존심을 무너트리고 인형처럼 만들기 위한 지훈의 시도가 생각지도 않게 희성이에게도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군.. 어떻게 해도 좋아하는 군.. 정말 밝히는 년이라니까..남자친구가 옆에서 자고 있는데 젖꼭지 좀 만져준다고 이렇게 느끼는 것 좀 봐”
“시.. 싫어.. 말하지 마…”
“자 이젠 그 거추장스러운 거 다 벗어보지 그래? 자기 손으로 벗어 보라고.. 허리 들고”
소파가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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