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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1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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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15











"본인은 오늘 제군들에게 섭섭한 소식과 기쁜 소식을 한가지씩 전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바이다."



전교생이 교정에 모인 조회에 단상에 오른 교장 선생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일제시대 부터 교사생활을 한 교장 선생은 많은 사람 앞에 설 때나, 좀 폼을 잡아 말을 하려면 "본인" 이니 "제군" 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떠나는 이미영 선생과 새로 오는 이원주 선생의 이취임식이다.



"방금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섭섭한 소식의 주인공 이미영입니다. ...... 만남과 헤어짐이 인생살이에서 늘 반복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저에게 오늘은 섭섭함을 넘어 슬프기까지 한 날입니다. ...... "



이미영 선생의 이임사가 이어졌다. 우아한 미모에 어울리게 목소리도 영롱한데 오늘은 착 가라앉고 조금은 떨려 나왔다.



"흐윽!" 하는 소리가 들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3학년 줄의 여학생 몇몇이 울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눈을 꾹꾹 찌르는 아이도 있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두손으로 눈을 가리고 어깨를 들먹이는 아이도 있었다.



참, 계집애들이란 ...... 나는 픽! 하고 비웃음을 보내려 했다. 그런데 나도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느낌에 고개를 쳐들었다. 늦가을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온틍 진파랑색이었다.







신임교사 이원주 선생에 대한 첫인상은 한마디로 개떡이었다.



우선 그녀는 못생겼다. 수박통 같은 얼굴에 눈은 좀 커보이지만 코는 납작했고 입술은 두터웠다. 특히 그무렵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뚱뗑이였다. 가슴은 튀어 나왔지만 허리선도 없는 절구통 같은 몸매에 스커트 밑의 두다리는 너무 굵었다.



오늘 운동장의 다른 학생들과 달리 나는 그녀에 대해 약간의 사전 정보가 있는 셈이었다. 내가 그토록 흠모하는 이미영 선생이 "정말 실력 있고 좋은 선생." 이라고 칭찬했다. 또 "사범학교의 2년 선배로 항상 전교 수석을 하는 재원이고 아직 처녀." 라는 말까지 들으며 약간의 호기심도 생겼다.



그런데 생김새로만 봐도 전혀 아니올씨다다. 더구나 그녀의 취임사라니 ......



"이원주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밝은 얼굴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저도 좀 안도가 되는군요. 교육이란 늘 소중한 것이고 저는 최선을 다 해 여러분을 가르치려 합니다. ...... "



그 용모에 걸맞는 것인가, 약간 쉰듯해서 남자 목소리처럼 들리는데다 뭔가 우쭐대듯 하는 말에 나같은 촌놈 학생도 우선 아니꼬운 기분이 들었다.







이취임식의 두 주인공은 모든 것이 너무 대조적이었다.



우선 얼굴이나 체격에서 완전히 미녀와 추녀를 나란히 세운 것 같았고, 이미영 선생의 이임사가 애틋한 음성으로 감정을 울린데 반해 이원주 선생은 탁한 음성으로 우쭐대기만 하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귀한 보석과 돼지 하나를 맞바꾸었다. ...... 불쑥 이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영 선생이 그녀에 대해 여러가지 찬사와 호기심을 자극한 것도 짖꿎게 나를 놀리려고 그런 것인지 모른다.



어떻든 그녀가 3학년 학생과 이미영 선생의 살림집을 물려 받은 것은 바로 이미영 선생을 모독하는 짓이다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도라무깡!"



내 왼쪽편, 그러니까 5학년 줄에서 누군가 이 말을 내뱉자 몇명의 남학생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나도 따라 웃었다.



"도라무깡"이란 드럼통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강철로 만든 원통형의 드럼통은 당시 휘발유나 경유의 저장과 운반에 많이 쓰였고, 빈 드럼통은 다시 펴서 각종 강판 원자재로 쓰였고 심지어 버스나 택시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용도는 바로 뚱뚱한 사람을 놀리는 것이다.



그래, 이원주 선생의 별명은 벌써 지어졌다. 그녀는 이제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도라무깡"으로 통할 것이다.







매혹적인 이미영 선생은 떠나고, 볼품 없는 이원주 선생은 새로 등장하고, ...... 그것만으로도 오늘 학교생활은 도대체 재미가 없고 울적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황달자가 학교로 찾아 왔다. 이번에는 주먹짱 김종구를 불러내지도 않고 직접 우리 교실까지 왔으며 그녀도 교복차림이었다. 그녀가 교복을 입은 것은 처음 보았는데 검정 세라복으로 몸을 감싸고 보니 평소의 여자깡패 같은 풍채도 많이 감추어진 것 같았다.



"누부야가 어쩐 일로 ....... ?"



"와? 내는 여 오마 안되나? ...... 니 보고 싶어 왔제."



그녀는 입을 한번 삐죽거리고 생긋 웃어 보였다.



"내는 아직 두시간 더 남았는데 ...... "



"오늘은 나도 안된다. 기말시험이 내일까진기라. 그래서 오늘 금지네 집에서 모두 밤샘 공부 하기로 했다."



나는 "픽!" 하고 웃음이 나오며 그녀를 놀렸다.







"누부야가 무슨 밤샘 공부를 ...... "칠공구파" 모여가 또 남자 잡아묵는거 아이가?"



"임마가 무슨 말을 ...... ? 내도 학생인데 낙제는 하지 않고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할 꺼 아이가?"



화까지 내지는 않았지만 조금 샐쭉한 표정이었다.



"내가 말을 잘 몬했네. 이래 교복까지 차려 입으이 황달자 성님도 진짜는 참한 여고생인데 ...... "



"임마야! 그것도 내 놀리는 말이제?"



그녀는 주먹으로 나를 치는 시늉을 하며 웃어 보였다.



"내일은 반공일이이 느그도 오전수업만 하제? 끝나고 만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자와는 처음 양조장에서 강간당하듯이, 두번 째는 율곡리의 숙자네 집에서 빠구리를 했지만 어떻게 그 뒤로는 기회가 없었다.



특히 두번째 빠구리를 하고 나서는 눈물까지 흘리며 "너 때문에 나는 오늘 진짜 여자가 되었다."면서 감격했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그녀가 내일 만나자는 것은 바로 그 빠구리를 하자는 의미가 틀림없을 것이다.







두 여선생의 이취임식으로 울적했던 기분은 새롭게 황달자와 빠구리를 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좀 풀렸다.



그녀는 만날 장소를 일러 주면서 한마대 덧붙였다.



"참, 책가방은 놓고 오그라."



"어디다 놓노?"



"그야 니가 알아서 해야지. 어쨌거나 둘이 오붓하게 보낼락 하는데 책가방은 필요도 없고 걸리적거릴꺼 아이가."



달자의 말도 내 짐작처럼 우리가 내일 만나 빠구리까지 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 그러나 나는 그 하루밤을 그냥 곱게 기다리지 못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행동을 취하게 된 것은 바로 두 여선생의 이취임식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가다 3학년 반을 힐끗 보니 오늘 부임한 이원주 선생과 학생 대여섯명이 둘러 앉아 빵과 사이다 같은 것을 먹으며 떠들고 있었다. 교단에는 <환영! 선생님>이라는 리본까지 달린 것을 비롯해 3개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3학년은 오전 수업뿐인데 아마 반장등 학급간부와 청소당번들이 남았다가 어울린 모양이다. 나는 괜히 아니꼬운 기분이 들었다.



너희들, 바로 어제까지 그토록 아름답고 다정한 이미영 선생한테 배우던 학생들이 선생이 바뀌었다고 금방 이렇게 알랑방귀를 뀌어? 의리 없는 연놈들 같으니 ......







방과 후, 담임선생은 마침 눈에 뜨인 나와 또 한 남학생에게 "동물도감"이라는 차트와 그 걸이개를 교무실에 갖다 놓도록 시켰다.



수업이 끝난 선생들이 둘러 앉아 있는데 내가 들어설 때 웃음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원주 선생이 뭐라고 한마디 하자 좌중에는 폭소가 터졌다. 그중에는 박수를 치는 사람까지 있었다.



돌아보니 교장 선생까지 그 무리에 끼어 있었다. 교장실은 따로 있어 보통 평교사들에게 볼일이 있으면 교장실도 부르곤 했는데 ......



나는 배알이 뒤틀렸다. 평소 근엄해 보였던 교장의 속없어 보이는 짓도 그렇고, 이미영 선생을 대신한 그녀가 벌써 학생이며 선생들까지 휘어잡는 듯한 꼴이 아니꼬왔다.







혼자 집으로 가면서도 마음은 계속 스산하고 울적했다.



나는 잠시 강뚝에 앉았다. 벌써 초겨울에 접어든 듯 강바람도 춥게 느껴지는데 억새풀이 노란 물결을 만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덩달아 거의 시들어 가는 코스모스 몇송이도 한들거린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이곳 저곳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가을꽃을 따기 시작했다. 들국화와 코스모스, 보라색이 좀 슬퍼 보이는 자주방망이, 이곳 강변에서 많이 보이는 물매화, 여기다 억새풀 가지를 몇개 섞으니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꽃다발 하나가 만들어 졌다.



나는 그것을 소중히 가슴에 안고 내리 쪽으로 다시 발길을 돌리며 내가 할 행동을 마음 속으로 그려 보았다.



이미영 선생을 만나면, ...... 그녀는 놀라서 그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리라. 나는 묵묵히 이 꽃다발을 건네고 돌아서며 딱 한마디만 하리라. "새임, 사랑해요!" --- 그녀가 뭐라고 대꾸를 하든, 나를 끌어 잡든. 행여나 빠구리를 한번 더 하자고 할지라고 나는 결코 돌아선 발길을 다시 되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남자, 의리 있는 남자의 걸맞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미영 선생은 집에 없었다. 조금 맥이 빠졌지만 나는 기다리기로 하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무슨 소리가 들려 눈을 떴을 때 너무 강한 빛에 나는 눈이 부셨다.



내 앞에는 지프차 한대가 서 있었고 한 남자가 내렸다. 말끔한 양복과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신사였다. 이어서 내리는 여인이 바로 이미영 선생, 그래서 나는 그 신사가 그녀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나! 너 영도 아냐? 이 밤중에 웬 일이니?"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보고 그녀는 비명처럼 물어댔다.



"이거 새임한테 드릴려고 ...... "



나는 소중하게 안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꽃다발을 받으면서도 그녀의 놀란 표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니, 밤 10시가 넘었는데 ...... 너 언제부터 ......? 저녁은 먹었니? ...... 아니, 겨우 이걸 주려고 이렇게 ...... 집에는 말슴 드리고 왔니?"







내가 마음 속에 그렸던 풍경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녀의 화가 난듯한 질문에 나는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벌써 밤 10시가 넘었나? ...... 그 오랜 시간이 흐르는 중 내가 무엇을 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다리기에 점점 지치는 것을 오기로 버티다 두번 골목안으로 들어가 오줌을 눈 것은 기억이 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냥 쪼그린 채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얘는 뭐야?"



그녀의 남편이 눈쌀을 찌푸린 채 내 아래위를 훑어보다 아내에게 물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는 것이 쾌 취해 보였다.



이미영 선생이 놀라며 내게 질문을 던지는 중 지프차 운전수가 내려와 신사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차를 돌려 가는 것을 배웅하고 돌아서서의 첫마디였다.







"우리학교 학생이예요."



"그런데 한밤중에 왜 ...... ?"



"이걸 전하려고 기다린 모양인데 내가 너무 늦게 온거죠."



이제는 내게도 그저 볼품 없어 보이는 꽃다발을 내보이며 그녀는 말했다.



"받았으면 됐네. 자, 그럼 너는 집에 가고 ...... "



그는 쌀쌀맞게 말하며 대문을 따고 들어서려 했다.



"아, 여보!"



그녀는 남편을 불러 세웠다.



"이 애를 이 한밤중에 그냥 집으로 보낼 수는 없어요. 집이 금촌리거든요."







"그래서 어쩌자고 ...... ?"



"집에서 재워야죠. 더구나 저녁도 안 먹은 모양인데 ...... "



"원 촌놈들은 애나 어른이나 무작하다니까 ...... "



그는 투덜거리며 비틀걸음으로 집안에 들어갔다.



"올 생각이었으면 미리 말이라도 하지 않고 ...... 오늘 밤 애 아빠 전에 일했던 군청사람들과 송별회가 있어서 이렇게 늦었단다. 그런데 어쩌지? 내일 이삿짐을 나르게 되어 먹을꺼리도 없고 ...... 참, 라면이 좀 남았나? ...... "



집안에 들어와서 그녀가 미안하다는 투로 상황을 설명하고 걱정하는 식으로 말하는 바람에 나는 정말 몸둘바를 모를 기분이었다. 오늘 그녀의 남편이 와 있을 줄은 전혀 생각을 못했다.



괜히 방해물이 되었다는 생각에 바로 발길을 돌리려 했으나 그녀가 한사코 집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나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기야 오늘 꽃다발 전달은 처음부터 모두 엉망이 되어 버렸으니까.







"각시야! 빨리 안들어 오고 뭐하노? ...... 오늘밤이 한 3년 살아온 이집의 마지막 아이가. 정은 안 들었어도 마지막 회포는 풀어야제. 빨리 들어 온나!"



안방에서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밖에서는 서울말씨더니 집에서 부부끼리는 사투리를 쓰는 모양이다.



"아이 참!"



그녀는 안방에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붉혔다. 나도 그 말은 알아 들었다. 이 집에서의 마지막 빠구리를 하자는 것이다. 또 뭐라고 큰소리가 나오자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저 학생 요기나 시키고 잠자리만 봐주고 올테니까 ...... "



그녀의 말은 나직했지만 내 귀에도 들려 왔다.



다시 나온 그녀는 잠깐 사이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그릇을 식탁에 내려 놓았다.



"집에 계란 하나도 없구나. 아쉬운대로 우선 시장끼나 달래야지."



아까부터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는데 라면 향기에 입안에는 침이 가득 고였다.







나는 그전에도 집에서 라면을 꼭 두번 먹어본 적이 있지만 계란을 함께 먹은 적은 없었다. 그저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두부나 김치도 얹는데 꼬불꼬불한 면발은 국수보다 훨씬 고소하고 입에 착착 달라 붙었다. 그리고 건데기만 건져먹고 국물에는 다시 밥을 말아 먹는데 우리집에서는 라면도 대단한 별식이었다.



오늘의 라면은 파도 두부도 없지만 그래도 양을 보니 2인분이었다. 나는 너무 뜨거워 호호 불며 먹다가 말했다.



"새임요. 고추장 좀 있는교?"



"고추장 ...... ?"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고추장을 갖다 주었다. 그녀는 분명 모르고 있다. 라면발에 고추장을 발라 먹는 그 감칠 맛을. ......



하지만 가뜩이나 미안한 내가 그녀에게 고추장을 주문한 것은 꼭 먹는 것을 밝혀서는 아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 될 이미영 선생이 해 준 음식을 좀 더 맛있게 먹으며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어서라고나 할까.







다다미가 깔린 서재가 나의 잠자리였다. 3일전 나에게 몇10권의 책을 빼주었던 서가는 텅 비어 있었고 모두가 박스며 노끈으로 묶은 짐꾸러미가 되어 있었다.



이미영 선생은 이부자리를 가져와 펴주고는 "잘 자거라." 라며 내 볼에 살짝 입을 맞추어 주고는 곧 되돌아 갔다.



불을 끄고 눕자 나는 또 좀 스산하고 울적한 기분이 되었다. 안방에서는 "마지막 회포" 라는 명분으로 빠구리판도 벌어지겠지. ...... 이미영 선생과 남편은 어떤 식으로 빠구리를 할까? ...... 호기심이 동했지만 잔뜩 굶다가 음식을 급히 먹어서인지 졸음이 밀려오며 어느 새 잠이 들었나보다.



나는 꿈결인가 생시인가, 잠시 헷갈렸다. 부드러운 손길이 이불을 들치고 내 바지 혁대를 풀며 신비스럽다고 할만한 향기를 품는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스치고 있었다. 이어 뜨거운 입김이 볼을 덮었다.



"영도야. 자니? ...... 나 잠깐만 있다 갈께."



"아저씨는요?"



"잠에 빠졌어. 코 고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잖아. 괜찮아. ...... 그냥 잠깐만, ...... 조용히 ...... "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그녀는 잠옷 차림, 나는 아랫도리만 벗은 채 그녀는 말을 타듯 내 몸에 올라타 살을 섞고는 천천히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격정이나, 요란한 움직임이나,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도 빠구리를 할 수 있다. ...... 나는 그때 불쑥 그런 생각을 했다. 시소를 타는 것처럼, 그것은 들썩거리는 그녀뿐 아니라 가만히 누워있는 나도, 감정이 그녀가 주는 자극에 따라 느긋하게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참 색다른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놀이든 운동이든, 시소를 타는 것만으로 욕구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다 같이 인정해야 했다. 결국 그녀는 나와 몸을 밀착한 채 엉덩이를 빠르게 움직이다 헐떡거리며 엎어져 버렸고, 그런 그녀를 다시 누이고 나도 속도를 빨리 하며 그녀의 몸속에 정액을 쏟아 부었다.



한가지 그전의 빠구리들과 다른 점은 그녀가 끝내 "앙앙!" 하고 울부짖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안방의 남편이 줄곧 마음에 걸려 그만큼 둘이 모두 신경을 쓴 셈이다. 그것은 환희 자체에는 좀 미흡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뜻밖에 몸이 찌릿찌릿한 쾌감도 맛보게 되었다.



그녀는 또 한번 내 볼에 입을 맞추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 나는 방금의 일들이 꿈결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면서 또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른 새벽 다시 잠이 깨자 집주인의 아무도 모르게 그 집을 살짝 빠져 나왔다.



대문을 살짝 닫으면서 나는 그집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속으로 한마디 했다. 권병찬씨. 무작한 어린 촌놈은 당신이 자는 옆에서 마누라를 먹었다오. 라고 ......







금촌리에서 이미영 선생과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 후 나는 고향에서 다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다만 뒷날 내가 서울에서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우연히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꽤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그녀는 매혹적이며 우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 선생님이 아니었다. 남편과는 벌써 이혼을 했고 강남의 무슨 가든이라는 제법 큰 갈비집의 주인이었다.



그 후의 이야기는 혹 다시 기회가 있으면 털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마저 기약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토요일의 수업을 마치고 달자와 만나기로 한 3거리의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더니 전에도 한번 탄 적이 있는 오빠의 오토바이를 몰고 그녀가 나타났다.



"마이 기다맀나?"



"뭐 별로 ...... "



이런 말을 나누는 중에 금촌리로 가던 아이들 몇명이 주위에 몰려들었다. 사실 이렇게 비까번쩍한 오토바이는 금촌리에는 물론 없을 뿐더러 주위에서 쉽게 구경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더구나 어느 새 점퍼와 긴 장화차림으로 바꾸어 입은 달자는 만화영화의 여전사처럼 보이는데다, 그런 그녀와 내가 말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 금촌리 아이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 것 같다. 우리반의 한 친구는 "영도야, 어디 가노?" 라고 일부러 알은체를 하기도 했다.



"응, 어디 좀 놀러 ...... " 라고 대답하며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또 부담스럽기도 했다. 화려한 그녀에 비해 내가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배부터 채워야제. ...... 뭐 물래?"



뒤에 올라타자 출발하기 전에 그녀가 물었다.



"아무기나 ...... "



내가 메뉴를 고를 입장도 아니지만 내리에서는 사실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면사무소와 국민학교가 있는 내리에 당시 내가 알기로는 식당이 국밥집과 백반집, 그리고 중국집등 딱 3군데 뿐이었다. 상호(商號)가 따로 있었지만 어떻든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국밥집은 소주 막걸리와 국밥, 더러는 돼지 머리고기 같은 것도 파는데 아버지가 친구와 술마실 때 따라가 국물만 얻어 먹은 적이 있다. 주인 아주머니가 새 손님이 오면 숟가락을 손가락으로 쭉 밀어서 내 주는 것이 인상에 남았다.



백반집은 그저 집에서 먹는 것처럼 밥상을 차려주는 식당이다. 김치와 된장에 콩나물국이나 씨레기국, 나물과 장아찌들로 상이 거의 차지만 돈을 받는 음식이라 자반이나 장조림도 올라 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백반집을 한번도 못 가보았다.



중국집은 꽤 나이 든 진짜 중국사람이 주인인데 아내는 좀 못생기고 젊은 한국 여인이다. 영미누나의 국민학교 졸업식 때, 그러니까 내가 2학년 때 엄마와 셋이 자장면을 딱 한번 먹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 맛은 기막혔다. 다만 음식 먹는 시간보다 주문해서 나오는 시간이 몇배나 더 걸리는 것이 특별했다.



우리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방 주이소."



달자는 들어서자 음식보다 방부터 주문했다. 한국 여인인 안주인은 우리 아래 위를 훑어 보고 좀 퉁명스럽게 말했다.



"방 없어."



"우리 탕수육하고 팔보채도 물낀데 ...... "



안주인은 찔끔하는 표정이더니 말씨도 좀 부드러워졌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벌써 방 셋이 다 찼어요. 다음에 오면 꼭 챙겨 줄께. 미리 약속을 하면 더 좋고 ...... "



구석자리에 앉은 달자는 "그라마 자장면 두그릇 주이소." 라더니 "내리 쭈근발이들도 그건 디기 좋아하나보다." 라고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뭘 좋아 하는데 ...... ?"



"이거 말이다."



달자는 검지와 중지 사이로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손짓은 아이들끼리 통하는 빠구리의 뜻이다.







"아니, 중국집에서도 빠구리를 하나?"



"야야, 소리 좀 낮춰라."



그녀는 방쪽으로 눈을 흘낏하면서 정말 낮춘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 여자가 단둘이 드갔다카마 대강 알쪼지."



나는 중국집에 방이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런데 한쪽 벽을 차지한 방쪽으로 눈을 돌리니 방문 앞에 놓인 것이 모두 남녀의 신발 두켤레씩이었다. 식당에서 대낮에, 그것도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데 빠구리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누부야도 해봤나?"







"히히 ...... " 하고 웃으며 그녀는 말을 돌려 남의 일처럼 말한다.



"요리락도 시키고 그짓 하마 그래도 낫제. 자장면 딱 두그릇 시키고 몇시간씩 붙어 있으마 주인도 열불난다 아이가. 빈그릇 가져간다고 문을 확 열고, 쪼매 있다 자부동 꺼낸다고 열고, 간장병 달라고 열고, ...... 막 심통을 부리는기라."



"그라마 손님도 화 안내나?"



"주고 받는기 있어야지. 그쯤 되마 요리를 하나 시키든지, 돈 없으마 싸게 나와야 더 망신 안당하제."



"누부야도 당해 봤나?"



"내사 방에 드가서 자장면만 시킨 적은 없다."



결국 그녀도 중국집 방에서 빠구리 같은 것을 해봤다는 고백을 들은 셈이다.







"오늘 우리한테도 방 주었으마 누부야는 그쨔서 빠구리 할락 했나?"



그녀는 또 한번 "히히 ...... " 하고 웃고 나서 말했다.



"문영도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했는데 이런데서 하겠노? 사실 주인이나 옆방 신경쓰며 번개불에 콩 튀겨먹듯 하마 재미도 없고 뒷맛은 쓰다. ...... 하지만 키스나 패팅은 할 수 있제."



"패팅 ...... ? ...... 패팅이 뭐꼬?"



"남자도 여자도 만지마 좋아 지는데가 안 있나? 그래가 서로 어루만져 주고 ...... 니도 꼭꼭 찝어가 잘 하드만 ...... "



"아! 애무 ...... ?"



"그래. 애무를 영어로는 패팅이락 하는기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자지가 조금씩 부플어 올랐다.



건너편 뒷 테이블에 손님 4명이 새로 왔는데 들어서면서부터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우리는 낮은 소리로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영도가 몸집이라도 좀 컸으마 여관이 딱 좋은데 ...... "



"여관 ...... ? ...... 그건 나그네가 잠자는데 아이가? 여관에서도 빠구리 하나?"



"하모! 원래는 나그네 재워줄라꼬 만들었다캐도 요즘은 빠구리 할라꼬 드가는게 대부분이지. 그러이 남 눈치보고 방해받고 할끼 없다. 방에 드가마 무슨 지랄을 해도 상관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데 니가 너무 어려 보이이 같이 드갈 수는 없는기라."



"여관은 어디 있는데 ...... "



"읍내에도 세개, 여인숙까지 치마 대여섯개는 되제. 하지만 우리 읍내는 쪽팔려 못간다. 다른 읍으로 가야지."



"여인숙도 빠구리 하는데가?"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읍내 버스터미널 옆에 <우리여인숙>, <행복여인숙> 같은 간판을 본 기억이 난다. 나는 그게 여인들끼리 모인다거나 여인에게만 뭘 파는 데 정도로만 짐작하고 더 이상 관심은 갖지 않았었다.



"하모! 두가지 다 영업방식은 똑같은데 여인숙은 여관보다 값이 싼만큼 후진기라. 몸 씻는 것도 변소도, 방에 없고 공동으로 써야 되이 불편타."







자장면이 나왔다. 달자는 젓가락을 쪼개 양손에 들고 섞어 나갔다. 나도 그 손놀림을 따라서 했는데 둘다 한그릇을 비우는데는 3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음식이 늦게 나오는 덕에 우리는 꽤 많은 말들을 나누었고 나는 오늘 많은 것을 새로 배운 셈이었다. 하기야 여관이나 여인숙을 내가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



"자, 배는 채웠으이 어디로 갈꼬? ...... 양조장으로 갈까?"



"에이, 그쨔는 ...... "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그녀도 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문을 닫은 양조장 건물은 처음 내가 "7공주파"의 4명에게 끌려가 말 그대로 강간을 당했던 곳이고, 지저분한 방에 군용담요 한장 깔려 있는 곳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겠다. 니 기분은 그럴만 하제. ....... 아 참! 좋은데가 있다. 나가자."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간 곳은 강변 부근의 창고 같은 곳이다. 자갈, 모래를 구하기 쉬워 시멘트 벽돌이나 하수관 같은 것을 만들었던 곳 같은데 지금은 작업을 안하는지 인기척이 없다. 그 한 구석에 오두막 같은 집 하나가 있는데 달자는 그 앞에 서서 신음처럼 "아이고, 날 샜네!" 라고 했다. 문에는 송판을 X자로 박아 놓았다.







"아, 저쪽에 좀 괘않은 데가 있다."



우리는 걸어서 건물 뒤로 돌아갔다. 잡초들만 무성한 곳을 지나 갈대밭 가까이 가자 웬만한 방하나 넒이만큼 움푹 파인 곳이 있었다. 바닥에는 갈대가 없이 잡초만 자랐고 주위는 갈대가 에워싸고 있어, 마치 방석을 깔아 놓은 찻잔 속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누부야는 아는 것도 많드이 이런데는 또 언제 개발했노?"



"그기 다 인생 경험 아이겠나. 니가 지금 내 나이 되마 훨씬 더 할끼다."



우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키스했다. 빠구리를 할려고 만난 남녀가 2시간이 넘게 헤매다가 이제사 처음으로 입술이나마 부딛쳐보게 된 것이다. 굶주렸다는 기분 때문인지 맹렬히 혀를 주고 받으면서 나는 그녀의 점퍼 재크를 내리고 그 안의 쉐터는 올려 브래지어 밑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앗, 차거버라!"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 그제서야 나도 한기(寒氣)를 느꼈다.



사실 날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강바람은 가끔 솨- 하는 소리를 내고 그럴 때면 갈대도 스스스스 춤을 추며 찬 기운을 뿜어 냈고 엉덩이 쪽은 벌써 시려왔다. 그때 자지는 서 있었지만 아랫도리만 깐다고 해도 싸늘한 날씨에 곧 죽어버릴 것 같았다. 달자도 같은 느낌이었던 모양이다.



"여도 안되겠다. 여름철에는 명당인데 ...... " 라며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일어서며 말했다.



"할 수 없다. 우리집으로 가자."



달자의 널찍한 등판에 뺨을 기댄 채 읍내로 향하는 오토바이에서 나는 불쑥 이런 생각도 들었다. 금촌리에서 시작된 나의 빠구리 행각이 내리에서 율곡리까지 이어지더니 드디어 오늘은 읍내로까지 진출하는구나. ...... 몇달전, 아니 빠구리를 알기 전까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인생의 변화다.







또 하나 내 상상을 초월한 것은 달자네 집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철제 대문을 열자 자그만 연못까지 있는 정원이 나타났다. 잘 다듬어진 향나무며 사철나무, 단풍나무등이 적당히 배치되어 있고 수석이나 바닥에 깔린 돌들도 모두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뒤에 알고보니 이곳은 일제시대 때 군수의 관사였던 집이라고 한다. 살림집은 목조건물을 헐고 양옥으로 새로 지었다는데 큼직한 가죽 쇼파며 나무 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다탁, 긴 뿔이 달린 사슴과 독수리의 박제, 한쪽 벽의 장식장에는 우승컵과 각종 상패며 도자기와 두툼한 책들과 술병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읍내에서 첫손 꼽는 "황부자" 집이라고 하나 이 정도로 으리으리하고 화려할 줄은 몰랐다. 아, 부자란 이렇게 사는 것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나는 감탄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곱상하게 생긴 중년 여인이 우리를 맞았다. 나는 그녀가 달자의 어머니인줄 알고 말없이 그냥 머리를 꾸벅했다.







"아기씨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점심은 우옜는지 ...... 밥상 차릴까요?"



"점심 묵고 왔어요. 집에는 아지매 혼잔겨?"



"아이라예. 아기 엄마도 위층에 계신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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