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무원, 연인, 여자 -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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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이 지난 회사 사무실.
진동으로 맞춰놓은 핸드폰이 울린다.
문자가 들어와 있다.
“안녕하세요? 출장은 잘 다녀오셨어요?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죠? 책 돌려 드릴려구여.”
아직 오전인데 말이다.
혜미의 폰 번호를 처음 알게 되었다.
곧 답장을 날렸다.
“죄송합니다, 잠시 있다 연락 드릴께요.”
여자들에겐 결코 서둘러서는 안된다.
흔히 성에 대해서는 초보인 남자들이 무척 서두르곤 하는데, 위험하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이런 면에서 매우 민감하다.
상당히 많은 경우에 남자들은 여자보다 서두르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자기자신은 잘 느끼질 못한다.
하지만 여자들은 바로 느낀다.
여자들은 서두르는 남자에게 웬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당황하게 되면서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나는 커피를 한잔 들고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담배를 한대 꺼내 불을 지폈다.
요즘의 많은 회사들이 흔히 그렇듯이 우리 회사도 담배를 피울 때마다 적지않이 불편하다.
담배 맛이 무척 맛있게 느껴진다.
그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여유있게 시원한 날씨 속에서 담배 한대와 커피 한잔을 즐겼다.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기분 좋구나. 얼른 들어가서 마저 일을 끝내자."
요즘엔 정말 업무가 장난 아니다.
나는 일을 무척 즐긴다.
일에 대한 욕심도 많고, 실제로 맡은 일에 대해서는 매우 열심히 정력을 쏟아붓는다.
남자는 사회에서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무엇인가 다른 것에 몰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30분이 지났다. 조금 초조해지고 있을까?
점심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문자를 보낸다.
"제가 금방 전화 드릴께요, 미안^^"
5분쯤 있다가 혜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혜미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에 가벼운 웃음소리가 섞여있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게 하는건 예의가 아닌데..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네요."
"아, 아니에요, 바쁘실텐데 제가 방해드렸나 봐요."
예의 바른 것...내가 능청스럽게 폰을 통해 말을 건넨다.
"이런 방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ㅋ 그동안 잘 지내셨죠?"
"네, 잘 지냈습니다. 건강하시죠?"
"제 목소리에 힘이 없나요? 밝고 즐거운 음성이 아닌가?"
"쿡쿡...여전히 잼나게 말씀을 잘하시네요."
"그거 욕하는거 아니죠?"
"그럼요, 욕이라뇨...ㅋㅋ"
"아항, 좋았어, 자존심 살았쓰으...근데 책은 벌써 다 읽으신거에요? 혹시 속독하세요?"
"네?"
"속독이요, 속독. 책 빨리 읽으신다구여."
"아...책 빨리 읽는 편이에요. 무척 좋던데요?"
"마음에 드셨어요? 다행이네요. 싫어하실까봐 걱정했는데."
"네, 무척 좋았어요. 헤헷. 이제 다 봤으니 약속대로 돌려드리려구여."
"약속이라뇨? 우리가 언제 약속했나요? 제가 간절히 매달렸던 것 아닌가요?"
"아, 그랬던 건가요? 헤헷"
"어쨋든 저보다 먼저 다 읽으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요. 언제 시간이 되세요?"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데요. 언제 시간이 되세요? 승무원에겐 스케줄이 있으니..."
"흠...제가 지금 공항에서 막 출발하려고 하거든요. 오늘 저녁에 혹시 시간되세요?"
"응, 비행 다녀오셨구나. 이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전화를 하신거네?"
"네...이틀동안 오프거든요. 아무래도 서두르는게 좋을 것 같아서요."
"막 돌아오신거라면 피곤할텐데...어디 다녀 오셨어요?"
"방콕이요, 2박 3일동안 정말 잠만 잤어요."
"미인은 잠이 많죠. 잠을 안자면 미인이 아니에요. 그래도 우선 집으로 돌아가셔서 좀 쉬셔야죠."
"네, 우선 그럴려구요. 아참 사시는 곳이 어디세요?"
"저는 도곡동에 살아요. 혜미 씨는?"
"저는 한남동요. 아, 도곡동...서...설마...??"
"네, 저희 집 저 건너 편에 타워펠리스가 보이죠. 밤에 항상 바라보곤 해요 ㅋ"
"쿠쿡...^^"
혜미의 웃음소리가 귀엽다.
"우선 집에 가셔서 쉬세요. 아직 퇴근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쉬시고 연락 주세요."
"아...그러시면 문자라도 남겨주세요."
"그럴께요."
일부러 애인의 일은 물어보지 않았다.
자기가 먼저 전화를 준 것인데, 괜히 애인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으니까.
그 놈은 아마 아직도 학생인가 보군.
아니면 같은 사회인이라도 쑥맥이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놈일 것 같다.
세 시간 가까이 지났다.
지금쯤은 이미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마치고 틀림없이 침대에 누웠을 것이다.
여승무원이란 육체적으로 고된 직업이다.
시차를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무리 현지에서 푹 쉬었다고는 해도 비행에서 막 돌아오면 반드시 피곤하게 마련이다.
자기 집의 자기 방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동안 팽배하던 몸의 긴장이 한순간에 풀어진다.
그리고 샤워 후에 정말 급한 일이 없고서는 반드시 침대를 찾게된다.
나는 문자를 보냈다.
"혜미 씨, 오늘은 그냥 푹 쉬시는게 좋겠어요. 저도 오늘은 많이 바쁠 것 같아서 늦을 것 같네요."
일단 한번 눕게 되면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오히려 문자를 보고 피곤한 의식 속에서 반갑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런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여자들의 마음을 쉽게 감동시키기도 한다.
답장은 금방 들어오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 지금쯤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문자를 보내고도 세 시간이나 더 지나서야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목소리를 들려주기 힘든 상태일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하고 말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문자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아뇨, 괜찮아요. 저도 아직 회사에요. 오늘은 아무 염려 마시고 푹 쉬세요.
마침 저도 바쁘니까 오늘은 통화가 좀 힘들겠네요.”
다시 그녀의 문자가 왔다.
“괜찮으시다면...혹시 내일 오후 6시에 압구정동 000에서 뵐 수 있을까요? 오전엔 약속이 있어서요.”
“가까운 곳으로 잡으시지...알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촉박하네요. 7시는 안될까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몇 통의 문자가 오갔다.
그날 밤...적당한 시간에 그날의 마지막 문자를 넣었다.
“잘자요, 혜미 씨. 오늘 밤 달콤한 꿈의 요정이 혜미씨와 함께 하길 바래요.”
잠시 후 그녀의 문자가 왔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다음 날 오후 7시 20분 전에 내 차를 몰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퇴근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정장 차림 그대로였다.
원래 말쑥한 차림을 좋아하는데다가, 아침에 전체적으로 조금 더 신경을 쓰고 나왔다.
15분쯤 기다리니 혜미가 저쪽에서 걸어온다.
큰 키에 밝은 얼굴이 벌써 멀리서도 눈에 확 띈다.
여승무원들은 대부분 매우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혜미도 마찬가지였다.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약간 긴 붉은 색 치마가 특히 돋보인다.
참 예쁘다, 어디서 샀을까?
“어머, 벌써 나오셨네요.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느새 혜미가 생글거리며 내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지금 막 도착한 길이에요. 집에서 가까운 쪽으로 잡으시지 그러셨어요. 좀 누추해도 상관없는데.”
“쿡쿡...! 보여드리기가 민망해서....”
혜미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오랜만에 보는 귀여운 눈웃음과 보조개….탐스럽다.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와는 상당히 달라보이는 모습이다.
풀어헤치고 있는 긴 머리결도 승무원 헤어스타일의 그것과는 정 반대로 상큼했다.
“식사...안하셨죠? 전 아직 저녁 전이라서 배가 좀 고프네요.”
“아, 저도 아직 안했어요. 식사 하셔야죠? 제가 쏠께요.”
“별 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쏴야죠. 제게 주머니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내 말에 혜미가 방긋 웃음을 지어 보인다.
“책까지 빌려주셨는데, 제가 답례 드려야 하는데요...어떻게 감히^^”
“연락 주신 것만도 감사드릴 뿐입니다, 오늘은 그냥 저한테 맡겨주세요.”
둘이 합의 하에 퐁듀집으로 갔다.
압구정동에 퐁듀를 맛있게 하는 곳이 있었다.
좀 느끼하기도 하지만, 다행히 나는 아무거나 잘 먹는다.
식사를 하기 전에 혜미가 내게 책을 돌려준다.
예쁜 작은 책봉지에 담은 채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이 매너도 좋네.
“깨끗하게도 보셨네요. 안 읽고 그냥 돌려주신건 아니죠?”
“어머, 안읽다뇨. 정말 감명깊게 읽었는데요. 글 내용도 아주 좋았어요.”
“그래요? 전 아직 다 안 읽어봤는데...저보다 낫네요.”
“쿡쿡...”
또 보조개가 보이는 밝은 웃음.
“정말 읽은 거 맞나요? 테스트 해보면 금방 나오는데요...”
내가 책을 펼치고 말한다.
“86페이지 셋째 줄의 글귀를 외워보세요.”
“헉! 그걸 어떻게 외워요?”
내 능청스러운 농담에 혜미도 그날부터 적응이 된 걸까?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같이 농담에 응한다.
“안 읽었구나?”
“사실은...우물쭈물...”
읽긴 읽었나 보다.
여유있게 우는 표정 지으면서 농담까지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책 사이에 끼워줬던 메모는 사라지고 없었다.
서로 이런저런 안부인사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으로 챙겨줘야 할 물음들이 오갔다.
물론 나는 군데군데 농담과 애정어린 관심을 섞어가며 혜미의 마음을 풀어줬다.
재회의 긴장감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날 기내에서보다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혜미가 나에게 적응하기 시작한다.
혜미의 모습을 눈치 못채도록 슬쩍슬쩍 훑어보며,
그녀의 모습 위에 그 날 기내에서의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덧씌워가며 비교해 본다.
각자 색다른 맛이 느껴졌고, 둘 다 기분 좋은 맛이다.
식사를 끝낼 때까지 가벼운 이야기들만 오갔다.
주로 비행에 관한 화제와 그날 이후 출장에 관한 화제였다.
분위기는 즐거웠고, 혜미도 나와의 재회가 생각과는 달리 편안한 느낌이었는지
많이 안심하고 마음에 드는 듯 했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엔 혜미가 차를 쏜다면서 분위기 좋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걸어가는 거리였다.
거기서 거기였기에 그냥 이동했다.
인테리어와 분위기 설정이 상당히 좋은 카페였다.
친구가 데리고 와줘서 알았는데, 마음에 들어서 가끔씩 온다고 한다.
자리가 무척 편안하고 좋았다.
혜미가 마치 파묻히듯이 자리에 앉더니, 나를 마주 보며 싱긋 웃는다.
“이렇게 앉으면 싫으세요?”
“보기 좋은데요, 승무원들은 습관적으로 그럴 거 같아요.”
“편안한 자리에 앉으면 잠시동안이나마 이렇게 앉아보고 싶어져요.”
“그럼 나도 한번...”
나 역시 파묻히듯이 장난스럽게 앉아본다.
혜미가 방긋 웃음을 지으며 보고 있다.
“남자친구는 만나셨어요?”
“네? 네, 오늘 오후에요.”
“애인 만났다고 좋아하죠?”
“어제 안 만나줬다고 삐쳤던데요...”
“저런...어제는 혜미 씨가 비행 마치고 피곤하지 않았나?”
“그건 그렇지만...원래 잘 삐쳐요 ㅋ”
“비행 마치면 픽업 나오지 않나요?”
“처음에 몇 번은...자기도 많이 바쁘니까 제가 나오지 말라고 그래요.”
“어떻게 만나셨는데요?”
“친구들 모임 갔다가 거기서 알게 됐어요.”
“응.”
짧은 대화였지만, 뭔가 불만이 있다는 것은 느껴졌다.
혜미는 나름대로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이야기하지만, 표정이 밝지는 않다.
나도 별달리 캐묻지 않았다.
그런 건 어차피 중요하지 않다.
그런 문제는 혜미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문제이고, 우린 우리대로 분위기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
화제를 바꾸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나갔다.
혜미가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그런 이야기들로...
화제거리는 풍부하고 말빨도 좋으니깐.
이야기를 하면서 물론 계속 혜미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즐겁다는 듯이 이야기에 심취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잠시잠시 뭔가 딴 생각을 하는 듯 했다.
뭔가 신경쓰이는 일이 있나 보다 하고 짐작했다.
시간은 어느 덧 아홉시를 넘기고 있었다.
만나고 나서 어느 새 두시간 이상이 훌쩍 지난 것이다.
혜미의 폰이 그녀의 손가방 안에서 울리는 듯 하다.
“잠깐만요.”
혜미가 폰을 꺼내든다.
나는 잠시 창 밖을 응시하면서 그녀의 대화에 귀 기울인다.
“네...회사 언니랑요. 오랫만에 만났어요. 응, 그럴께요.”
전화 받는 목소리가 사뭇 진지하다. 어머니나 아버지 두 분중 한분인 듯 하다.
“응...그건...아냐, 만났는데? 응, 알았어요. 그럴께요...염려 마세요.”
전화를 끊고 폰을 집어넣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Mother?”
그녀가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대답한다.
“네, 엄마. 그냥 이것저것 묻길래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하는데, 얼굴의 웃음자국은 금방 사라진다.
“딸을 굉장히 사랑하시는가 봐요. 걱정을 많이 하시는가 보네요.”
“네? 네...그럼요, 항상 걱정하시죠.”
“다 큰 딸을 아직도 염려하시는 어머니라...그게 부모님 마음이시죠.”
“음...네...”
그녀의 눈빛이 약간 흐려짐을 감지했다.
그녀가 눈을 잠시 아래로 향하고 뭔가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고개를 들고 말한다.
“고맙긴 하지만, 가끔씩은 좀 그래요.”
“그렇다뇨?”
“불편할 때가 있어요. 우리 아빠 절 너무 챙기시거든요.”
“응? 웬 아빠?”
속으로 뚱딴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많이 엄하신 분이신가 보네요?”
“흠...그렇죠. 어려서부터...항상 그러셨죠.”
“어렸을 때부터 딸을 엄하게 다스리시니 어머니가 대신 걱정해 주시는구나?”
“흠...그런거 같네요.”
뭔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가 보다.
남의 집 가정사 듣는 건 짜증나는 일인데 말야...
설마 그런 이야기를 시시콜콜히 꺼내진 않겠지?
“제가 승무원 되길 잘한거 같아요. 취업 하기 전까지만 해도 항상 11시까지는 들어갔어요.”
“와, 가정교육이 엄하시네.”
“네...”
그녀가 약간 처량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자리 옮기는 곳마다 전화 드려야 했구요.”
“응? 다 커서도?”
“다 커서도.”
“부득이하게 늦는 경우는?”
“그런 적 거의 없어요.”
“정말요? 매사에 스케줄을 꼼꼼히 챙기셨구나.”
“그래야 하니까요.”
“시간 엄수해야 했나요?”
“네.”
“혹시 늦으면요?”
“전화기도 집어 던지고...재떨이도 집어 던지고...”
“헉!”
웃지도 않고 대답하는 혜미의 뜻밖의 대답에 내가 오히려 놀라버렸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는지?”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네, 말씀하세요.”
“그건...어쩌면 집착이 아닐까요? 이렇게 다 큰 딸한테 그건 좀...”
“네, 집착이죠.”
혜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녀는 사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레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척 이야기 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처음엔 단단히 불만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눌 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말하면 안되는게 아닐까 싶어서 어색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경험을 통해서 그녀는 이럴 경우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구나...흠...그래도 혜미 씨를 걱정하셔서 그러시는 거니까 혜미 씨가 맞춰드려야죠.”
이렇게 말하며 시계를 보았다. 9시 반이다.
“일어나는게 좋겠네요.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네요.
오늘 분위기도 몹시 즐거웠고…혜미 씨 덕분에 오랜만에 기분이 무척 좋네요.”
즐겁다는 듯이 내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다소 불안한 듯한 표정으로 일어선다.
“아...정말 제가 오늘 잘해 드렸어야 하는 건데, 정말 죄송해요. 아...어떡하지...”
“아아뇨, 전 즐겁기만 한걸요. 제 차로 모셔드릴께요.”
“차 갖고 나오신 거에요?”
“네, 평일엔 잘 안 몰고 다녀요. 하지만 스피드를 좋아한답니다.”
“우웅...괜히 늦으실텐데요...”
“아뇨, 저야 좋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요...어서 가요, 안 급해요?”
빨리 나가자는 시늉을 하면서 슬쩍 그녀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매끈한 피부의 감촉이 좋았다.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는 듯 하다.
“아아뇨...그 정도까진 아닌데...”
“쿡쿡 미안...가까운 곳에 있어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차가 있는 곳까지 금방 왔다.
조용한 주차장, 정말 조용하다.
“내가 너무 서두르는가봐, 그렇게 급한 시간도 아니고 거리도 가까운데...”
“그런 느낌이 있네요.”
그녀가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버님은 보이는 곳에서 혜미 씨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여를 하시는 편?”
“좀 그런 경향이...음, 네.”
그녀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장난기 섞인 모습이 몹시 사랑스럽다.
타고난 밝은 성격은 그 무엇으로도 억제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렇게 귀여운 걸 누가 낳았을까?
“그럼 지금은 안보이실 테니까...”
내가 장난스럽게 그녀의 얼굴 가까이 얼굴을 가까이 하며 은근한 말투로 속삭이며,
장난스런 포즈로 그녀의 어깨를 살짝 끌어안고 내 가슴쪽으로 당겼다.
그녀가 가만히 있는다!!!
전혀 뿌리치지 않고 놀라지도 않는 몸짓이다.
짧은 순간이나마 내 품속에 안긴 그녀의 체온이 생생히 느껴진다.
오히려 내가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녀의 이런 반응은 뜻밖이다. 전혀 어떤 기미도 느끼지 못했는데.
오히려 내가 귀신에 홀린듯한 기분이다.
얼른 그녀에게서 살짝 벗어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눈이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내 가슴을 그대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눈빛이...
다소 몽롱한 눈빛이다.
그 눈빛과 표정으로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응?”
나는 말 없이 그녀의 그런 모습을 응시했다.
그녀가 시선을 약간 위로 옮겼지만, 여전히 내 눈을 바라보지는 않고 있다.
“뭐가요...? 뭐....?”
아주 나지막이…중얼거리듯하는 그녀의 속삭임.
뭔가 기운이 풀려있는 듯한 상태다.
왜 이러는 걸까? 이상한 반응이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내 쪽으로 당겼다.
그리고 이번에는 살며시, 그러나 제대로 내 품 속으로 끌어안았다.
그녀가 그대로 안겨온다.
마치 숨도 쉬지 않는 듯 하다.
온 몸의 뼈가 녹아버린 듯이 허물거리는 듯이...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녀를 껴안은 왼팔에 힘을 주며, 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손으로 그녀의 앞 머릿결을 살짝 넘겨주었다.
그녀의 눈빛이...눈빛이 다소 풀려있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이 눈빛......
흔히 말하는 잘노는 여자애들이나 술집 나가요 걸들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다른 이 눈빛.
그녀의 이마에 살며시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코에, 뺨에 살짝 입맞춤을 하면서, 오른 손으로 그녀의 귓가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주 살며시 그녀의 몸이 아주 살며시 떨림을 느꼈다.
내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로 살며시 포개어졌다.
한번 두번...살며시 입술로 입술을 애무하고 나서 살짝 깊숙이 그녀의 입술을 내 입술로 덮어 눌렀다.
내 혀가 그녀의 입술을 살짝 맛보고 금새 그녀의 치아를 벌리도록 만들었다.
내 혀가 그녀의 혀를 찾았다.
내 혀가 그녀의 혀를 찾아내고 그 혀를 맛보기 시작했다.
혜미는 가만히 있었다.
처음 껴안을 때부터 바로 이 순간까지 그녀의 온 몸은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는다.
마치 일순간에 갑자기 넋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상한 반응이다.
내 팔이 그녀의 등과 허리를 더 쎄게 조이면서 그녀의 감촉을 더 깊이 느끼고 있다.
내 혀가 그녀의 혀를 서서히 탐닉해 들어가는 그 순간, 그녀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흐음...!!"
아주 가벼운 신음소리가 나지막히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린다.
턱도 아주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고 혀도 약간 파르르 떨기 시작하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혀도 내 혀를 찾고 있었다.
혀와 혀가 조금씩 쎄게 엉켜들어가며, 서로 타액이 교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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