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와 나의 에뛰드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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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나의 에뛰드3
토요일 오후, 난 이젤과 물감 스케치북 등 그림도구를 들고 마로니에 공원으로 갔다. 한켠에 내가 그동안 그렸던 초상화들 중 잘된 것 몇점을 진열해 놓고 정면에 이젤을 세워 스케치북을 걸어놓고 손님을 받을 준비를 했다.
파랑새극장 쪽으로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한 사람의 리드에 맞춰 춤동작을 연습하고 있었다. 브레이크댄스. 나도 한 때 시도해보았던 동작들이었다. 토마스, 하이디, 윈드밀... 아이들을 리드해서 동작을 반복 훈련시키는 리더의 동작이 그럴듯 해 보였다.
한참동안 멍하니 춤추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쳐다보니 앳되보이는, 하지만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애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림그려주는데 얼마야?"
"대충 있는대로 줘."
"백원줘도 그려줘?"
"백원은 너무했고 보통은 4000원 달라고 하는데 중학생이나 고등학생한테는 천원도 받아."
"자, 천원."
"자... 저기 춤추는 애들 보이지 거기 보고 있어봐."
자세를 잡도록 시키고 스케치북에 4B연필로 슥슥 그려나가는데 5분도 안돼서 여자애가 날쳐다보더니 말한다.
"오빠 고등학생이지."
"어."
"그럼 오빠 아닐지도 모르겠네. 몇학년이야?"
"3학년."
"그럼 오빠네. 나 2학년이니까. 뭐 한 살 차인데 말틀까?"
"죽을래. 그림그리게 저쪽 보고 있어."
"싫어 지겨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아... 짱나."
다시 그림을 그려나가는데 3분도 안돼서 여자애가 또 자세를 풀었다. 자리에서 발딱 일어서더니 내가 그리고 있는 스케치북을 쳐다본다.
"애걔, 이것밖에 못그렸어?"
"윤곽은 다 잡았으니까 금방 끝나."
"물감은 안칠해."
"물감 칠해줘? 기다리기 지겹다며."
"......"
여자애는 옆에 놓아둔 물감을 들어보더니 거기에 적혀있는 것을 읽었다.
"복성고 3학년 8반 김준식. 우리학교랑 가까운 학교네?"
"어느학교 다니는데?"
"예진여고."
그러더니 다시 의자에 앉아 자세를 잡는다. 난 짜증이 나려는 것을 참고 재빨리 연필을 놀려 초상화를 마무리지었다.
"자. 끝났다."
여자애가 초상화를 받아들더니 날보고 말했다.
"자, 열셀동안 데이트신청 받아줄께."
"하나... 둘... 셋..."
내가 뜬금없는 소리에 입을 벌리는데 여자애가 재빨리 카운트를 한다.
"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 땡! 끝났어. 바이."
여자애가 발딱 일어서더니 저리로 뛰어가 버렸다.
"뭐 저런애가 다있어. 쪼그만게 화장은 덕지덕지..."
피식 웃고는 그 애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 여자애는 다음날인 일요일에 다시 나타났다.
"오빠 오늘도 그림그리러 나왔네?"
"어?"
여자애가 양손을 쭉 뻗어 손가락을 벌리더니 카운트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 아홉의 반..."
"잠깐!"
"아홉의 반의 반..."
"나랑 놀자."
"그게 데이트신청이야?"
"그럼 뭐라고 그래."
"좋아 놀러가자."
이렇게 해서 얼떨결에 난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여자애의 이름은 이보미, 예진여고 2학년이라고 했다. 토요일날 그림그려줄 때도 알아봤지만 진득하니 참을성이 없고 변덕이 엄청 심했다. 처음에 좀 걷자고 그러더니 금방 다리 아프다고 만화방에 가자고 하고, 빌려놓은 만화가 재미없다고 겜방에 가자고 하고 겜방에서도 몇분 되지도 않아 재미없다고 PC방에 가자고 하고...
정신없이 끌려다니다 9시쯤에 헤어졌는데 헤어질 때 핸드폰 번호를 서로 교환하며 보미가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나 말고 다른 기집애 만나면 죽어! 내가 감시할꺼야."
일단은 토요일 마다 만나기로 했다.
다음날 부터 시도때도 없이 문자메세지가 오는데 정말 지치지도 않나 대단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일일이 다 답장을 보내주다가 나중에는 띄엄띄엄 보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목요일날 야자를 땡땡이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작은누나가 휘파람을 불며 이옷 저옷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있었다.
"어디가?"
"응 놀러간다."
"남자친구랑?"
"아니, 고등학교 친구랑."
"잘 놀다와."
"고럼!"
작은누나는 씩씩하게 말하고는 집을 나갔는데 30분쯤 지났을까 작은누나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왜그래? 지갑 안가져 갔구나."
작은누나는 고개를 힘없이 절래절래 흔들더니 자기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무슨일이지?"
내가 작은누나가 옷갈아 입는 것을 기다려 방으로 들어가자 작은 누나가 날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 젠장 혜연이 그 기집애가 글쎄 갑자기 남자친구가 오늘 꼭 보자고 한다고 나랑 만나기로 한걸 취소하는 거 있지. 참나. 남자친구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학교 다닐 때는 너밖에 없어 뭐 남친 생겨도 서로 챙겨주자 뭐 그러더니 막상 남친 생기니까 안면을 싹 바꾸네."
"아, 그 누나 재수없다."
"그러게 말야 젠장 기분 꽝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목소리가 밝아서 그냥 웃어주고는 내방으로 돌아왔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은누나는 평소에 기분이 많이 안 좋아도 별로 티를 내지 않는다. 아무래도 누나가 굉장히 기분이 상했을 것 같았다. 난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작은누나 방으로 갔다.
“누나 나랑 내일 저녁에 놀래? 나 스트레스 쌓이는데.”
누나가 날 쳐다보더니 빙긋 웃고는 말한다.
“고3이 스트레스 쌓이는거 당연하지 뭘그래?”
내가 말없이 히히 웃고 있자 누나가 말했다.
“내가 기분 상했을까봐 일부러 그러는거지? 오케, 누나가 동생의 갸륵한 마음을 생각해서 내일 한턱 쏜다!”
다음날은 금요일, 누나가 우리학교 교문 앞에서 날 기다리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문으로 나가자 누나가 날 발견하고는 손을 흔든다. 내가 웃으면서 누나 앞으로 다가갈 때였다. 갑자기 옆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고개를 돌려보니 보미가 아닌가. 누나가 말했다.
“누구니?”
“어... 여자친구.”
“어라? 그새 여자친구 사궜어?”
보미가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약간 높은 톤으로 말했다.
“이 여자 누구야?”
“어... 누나야. 너 낼 만나기로 했잖아?”
“오늘 보고 싶어서 왔어. 그러면 안돼? 막 나오라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누나가 내어깨를 툭쳐서 돌아보니 누나가 웃으면서 말한다.
“에구에구 데이트 잘 해 나 집에 갈게.”
작은누나가 손을 흔들더니 몸을 돌려서 저편으로 걸어갔다. 작은누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보미가 말한다.
“진짜 누나야? 앤 아니야?”
“......”
난 갑자기 이대로 누나를 보내면 안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웬지는 모르지만...
“보미야. 오늘은 그냥 헤어지자. 내일 만나.”
“왜? 저여자랑 놀게?”
“어. 오늘 같이 놀기로 약속했었단 말이야.”
보미가 흥분했는지 얼굴이 빨개지더니 소리쳤다.
“오늘 저여자 따라가면 오빠랑 끝이야!”
“야, 진짜 내 누나야 친누나 왜그래.”
“친누나든 아니든 끝이야.”
작은누나의 모습이 이미 멀어져서 조금 더 있으면 종적을 놓칠 것 같았다. 난 급한 마음에 말했다.
“좋아 끝이든 아니든 니 맘대로 해.”
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보미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야! 개새끼야!”
‘개새끼? 젠장 니 맘대로 해.’
나에게는 만난지 일주일 밖에 안된 기집애보다는 누나가 더 소중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막 버스에 오르는 누나의 뒤를 따라 가까스로 버스를 올라탔다.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누나 뒤로 가서 어깨를 툭 쳤다. 누나가 날 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악! 야!......”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놀랬어?”
“어. 야 너 여자친구는 어떡하고 왔어.”
“그냥 집에 보냈어.”
“뭐?”
“......”
“걔가 화 안냈어?”
“뭐 괜찮아. 오늘은 누나랑 놀기로 했었는데 약속도 없이 찾아 온 걔가 잘못이지.”
“야, 너 그러면 안돼, 지금이라고 가서 사과해.”
“괜찬대두?”
“......”
잠시 후 누나가 말했다.
“참나. 바보네 정말 여자 마음도 모르고. 할 수 없지. 어디로 갈까?”
우리는 신촌에서 버스를 내렸다. 누나가 숄더백에다가 내 사복을 담아 가지고 왔었다. 내가 빌딩 화장실에 가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옛날 신촌시장이 있던 골목으로 들어가 호프집을 찾았다.
“음... 여기 처음와보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네?”
내가 잘 모르겠어서 물어보았다.
“분위기가 왜?”
“모르겠어?”
“응.”
“보통 호프집은 사방이 탁 트여 있는데 여기는 테이블 하나 하나 마다 거의 막혀 있잖아.”
“응? 그런데?”
“바보, 애인끼리 오라고 이렇게 해놓은거야.”
“아...”
난 그제서야 누나의 말을 이해했다. 술을 마시다가 애인끼리 무슨짓을 해도 시야가 가려져 있어서 남들이 못보는 것이다.
내가 알았다는 표정을 짓자 누나가 농담을 했다.
“뭐, 오늘 우리 준식이 데이트를 내가 방해했으니까 내가 오늘 하루만 애인 해주지뭐.”
“누나 괜찮다니까? 원래 누나하고 놀기로 한 날인데 뭐, 걔 신경쓰지마.”
“어라? 누나가 앤 해준다니까 싫다네? 노땅은 싫다 이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알바생이 맥주와 안주를 가지고 왔다.
“건배!”
“캬! 바로 이맛이야.”
“말해봐 누나랑 앤하는 거 싫어?”
“아니, 뭐 말로만 앤하면 뭘해 아무것도 못하는데.”
“아무것? 뭐? 뭘 못하는데? 말해봐.”
“아니... 참나.”
“말해보라니까? 뭐 키스하고 싶어?”
“그래, 키스, 누나가 키스해줄래?”
“오케, 키스해줄게. 이리와봐.”
그러면서 누나가 내 옆자리로 옮겨 와서 입술을 쭉 내밀고 달려드는데 내가 질겁을 해서 얼굴을 뒤로 빼면서 웃으며 말했다.
“아, 저리가 저리.”
“하하하하 킥킥킥킥.”
우리는 즐겁게 놀면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각자 두잔씩 마시고 세잔째 시켰을 때였다. 남녀 한쌍이 우리 테이블 앞을 지나가다가 여자가 다시 돌아와서 소리쳤다.
“어? 가영이 아냐?”
누나가 쳐다보더니 말했다.
“지혜야...”
누나 친구인가 보다.
“어쩜, 여기서 만났네? 이가게 자주오니?”
“아니...”
“우리 같이 앉을까?”
“아니, 저...”
“같이 앉자 얘.”
누나와 난 어떨결에 누나 친구 커플과 동석을 하게 되었다.
지혜라는 누나친구가 같이 온 남자를 소개했다.
“이쪽은 최병석이라고 내 남자친구야. S대 2학년.”
“아... 안녕하세요?”
누나와 난 어정쩡하게 인사를 했다. 누나친구 박지혜가 내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소개 안해줘?”
“어...”
누나가 잠시 당황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김준식.”
“어머, 어려보이는데 동생이니? 아니지?”
박지혜의 얼굴이 약간 비웃는듯한 표정이 되었다. 누나가 갑자기 약간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 내 남자친구.”
“!!!”
난 물을 마시다가 한마터면 놀래서 사래에 걸릴 뻔 했다. 누나를 쳐다보니 누나가 테이블 밑으로 내 다리를 꼬집었다.
“어머, 그래? 연하?”
“어. 재수생.”
난 얼떨결에 재수생 누나 남친이 되고 말았다.
“어머 어머, 요즘 연하남 커플이 유행이라고 하더니... 하하 뭐 어때. 건배하자.”
“건배!”
술을 들이키고 나서 박지혜가 말했다.
“가영아 너 음대 포기한거니? 학교다닐 때는 너가 나보다 피아노 더 잘쳤잖아?”
술을 마시면서 가만히 대화를 들어보니 박지혜라는 누나 친구는 음대에 다니는 듯 했다. 그리고 웬지 누나한테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했으며 현재 자기는 음대에 다니고 있고 작은누나는 대학을 포기한 것에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상대를 위로하는 듯이 말하며 은근히 얕잡아 보고 약올리는 말투... 난 기분이 무척 상했다. 작은누나도 박지혜를 좋아하지 않는듯. 약간 화가 난 것 같았다. 물론 누나를 잘 아는 나만이 눈치챌 정도의 모습이었지만.
즐거웠던 술자리는 누나 친구 커플이 등장하면서 거북해졌다. 게다가 몇차례 술을 마시고 나자 박지혜, 최병석 커플은 은근히 붙어 앉더니 스킨쉽을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테이블 밑으로 마치 몰래하는듯, 하지만 누나와 내가 뻔히 알 수 있게 서로의 다리를 만지고 허리를 만지고 하더니 점차 술기운이 돌자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스킨쉽을 하며, 이윽고 키스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누나와 내가 그들의 대담한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고 있는데 박지혜가 키스를 하고 나서 말했다.
“괜찮지?”
누나가 말했다.
“응. 보기 좋은데.”
박지혜는 일부러 보라는 듯이 약올리듯 스킨쉽을 하며 너네는 아직 이런관계는 아니지? 아직 어린애처럼 사귀고 있지? 하고 말하는 듯 하였다. 최병석은 그래도 좀 쑥스러운 듯 다시 키스를 하려는 박지혜의 입을 막고는 말했다.
“아... 저는 음악은 잘 몰라요. 그림은 꽤 좋아하지만, 가영씨는 좋아하는 화가 있어요?”
“글쎄요. 그림은 저도 잘 몰라서... 그림은 얘, 준식이가 잘 알아요.”
“아? 그래요? 준식씨는 어떤화가가 좋아요?”
내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 좋아하지만 마티스를 제일 좋아하는 편이에요.”
“아! 마티스, 야수파! 맞죠?”
“예.”
“음... 마티스 보다는 고흐가 더 좋지 않아요? 고흐는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데.”
난 ‘예’하고 맞장구를 쳐줄려다가 괜히 심통이 났다.
“글쎄요. 전 고흐가 천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최병석은 나의 의외의 대답에 약간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고흐가 천재가 아니라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준식씨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그 해바라기하며 삼나무 그림하며. 자화상하며... 천재가 아니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내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고흐는 분명 천재가 아니에요.”
“네?”
“고흐의 작품이 정말 사람의 가슴을 흔드는 그림들이라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그것은 고흐가 천재라서 그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고흐가 미쳤기 때문에 그릴 수 있었던 그림이에요.”
“......”
“고흐의 작품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사실 고흐의 초창기 작품은 그다지 잘그리지 못했어요. 마치 아마추어 화가가 그린듯한... 고흐는 자신의 재능없음에 절망하며 생활고와 사교생활의 문제로 외로움에 사로잡혀 미쳐가기 시작했죠. 정작 고흐의 작품 중 명작들은 고흐가 미쳐서 자살하기 직전 몇 년동안 그린 그림들이에요.”
“......”
“미쳤기 때문에 미친 열정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 명작이 탄생한 것이죠. 고흐의 그림을 가만히 보면 너무나도 슬픈,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마저도 불살라버릴 정도로 뜨거운 광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흠... 흠...”
최병석은 할말이 없는지 머쓱해하며 맥주를 마셨다.
“아... 어려운 얘기는 그만.”
박지혜가 자기 남친이 곤란해하자 말을 끊으며 최병석의 머리를 잡아당겨 키스를 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잠깐 잠깐 하는 키스가 아니라 완전히 입술을 포개서 서로의 혀를 빠는 딥키스였다.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한참동안의 긴 키스를 끝내더니 박지혜가 자기의 허리에 감싸여 있는 최병석의 손을 잡아 자신의 유방 위에 올려놓았다. 최병석이 박지혜의 가슴을 천천히 주무르는게 보였다.
“너희들, 정말 사귀는 거 맞아? 키스같은거 안해봤지 응?”
누나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우리는...”
나는 약간 취기가 오르며 은근히 계속 상대의 신경을 거슬리는 박지혜 커플의 행동에 화가났다. 그래서 돌발행동을 했다. 그건 순간적으로 생각없이 저지른 돌발행동이었다.
난 누나의 옆에 바짝 다가가서 누나의 머리를 잡고 내쪽으로 돌렸다. 누나가 무슨일인가 해서 멍하니 날 쳐다보는데 난 덮치듯 그런 누나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쪽!”
내가 누나의 입술을 한번 빨았다가 떼었다.
“어머!”
박지혜가 놀란 듯 경호성을 발했다. 그러더니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머, 얘 귀엽다. 귀여운 뽀뽀.”
누나는 놀라서 날 멍하니 쳐다보는데 내가 박지혜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리 친한사이라도 남들 앞에서 너무 행동이 지나친 것이 아니에요? 보기에 민망하군요.”
“어머.”
박지혜의 얼굴이 변했다.
“가자. 누...”
난 누나라는 말은 얼버무리고 누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카운터에 계산을 하고는 호프집을 나왔다.
누나와 난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화난 것이 점차 가라앉자 내가 누나한테 키스한 것이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누나 미안해.”
“응? 뭐가?”
“아까... 뽀뽀해서. 미안...”
“아냐, 괜찮아. 내가 남자친구라고 했는데 뭐. 그게 미안하지. 화 안났어?”
“아니, 난 괜찮아 내가 누나한테 미안해.”
“아니, 괜찮다니까?”
누나의 표정이 밝은 표정이 아니라서 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나 보다. 누나가 날 쳐다보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에잇, 괜한년을 만나서 기분 잡쳤네. 우리 춤추러 가자 오케?”
“응? 춤? 나 춤 못추는데.”
“괜찮아. 가자!”
우리는 이대앞으로 가서 먹자골목 사이에 있는 디스코텍으로 들어갔다. 난 디스코텍에 처음가보는 것이라 귀를 멍멍하게 울리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번쩍 번쩍 점멸하는 사이키 조명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미 은근히 취해 있었다. 안주로 화채가 나오고 술은 버드와이저를 시켰다. 내가 맥주병을 따려고 병따개를 찾자 누나가 말했다.
“이렇게 따는거야.”
누나가 냅킨으로 병마개 부분을 덮고 손으로 돌리자 병마개가 따지는 것이 아닌가. 신기해하며 따라해보자 내 버드와이저도 마개가 떨어져 나갔다.
“자, 건배!”
주위를 둘러보니 쇼파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일행은 드물고 대부분 스테이지에 나가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한편을 보니 여자애 둘이 미니스커트에 탱크탑을 똑같이 맞춰입고 거울을 보고 둘이 동작을 맞춰 똑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사이키델릭하고 약간 어두운 조명이라서 그런지 그 둘이 엄청 섹시해 보였다.
“쟤네들이 마음에 들어?”
“응?”
“부킹해볼까?”
“부킹?”
“어, 같이 술마시자고. 히히.”
“됐어. 참나.”
“근데 쟤네들은 왜 거울을 보고 춤을 추지?”
“나르시스트야.”
“나르시스트?”
“어. 지네들이 스스로의 모습에 빠져서 쾌감을 느끼는 거지. 아니면 괜히 저렇게 춤추면서 남자들이 찝적거려주길 바라는 걸 수도 있고.”
“웃긴다.”
“어... 분위기 짱이지 우리도 나가서 춤추자.”
“아... 난 춤 못춘다니까...”
“괜찮아. 자 나와.”
우리는 스테이지에 나가서 춤을 췄다. 난 처음 춰보는 춤이라 완전히 막춤인데 누나은 꽤 춤을 잘 춘다. 누나가 몸을 깜직하게 놀리며 춤을 추자 누나가 되게 이뻐보였다.
강렬한 테크노 음악에 귀가 쾅쾅 울리는 가운데 디제이의 말이 들여왔다.
“자... 여러분! 오늘의 절정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 모두 함께 미쳐봅시다. 따라하세요! 미치자!”
그러자 춤추던 사람들이 괴성을 질러대었다.
“미치자!(손님)”
“미치자!(디제이)”
“미치자!(손님)”
“목소리가 작다! 미치자!”
“미치자!”
음악이 바뀌었다. 헬리콥터 소리가 귀청을 때리더니 이어 강렬한 비트의 드럼과 기타리프! 핑크플로이드의 어나더 브릭 인더 워를 댄스풍으로 편곡한 음악이었다. 이 음악에 맞춰 분위기가 절정에 다달았다. 디제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빅 이벤트!!! 상품 왕창 빅이벤트 키스타임이 시작되겠습니다!!!”
“와~~~”
음악이 약간 조용해지며 느린 템포의 라틴 풍 록이 흘러나왔다. 템포는 느리지만 강한 비트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음악이었다. 그 음악에 맞춰 디제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시죠 키스타임! 자 가장 섹시하고 격렬하고 야한 키스를 하는 커플에게 상품이 나갑니다. 자 첫 번째는 이 커플!”
디제이가 무대로 걸어들어와 무작위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커플에게 마이크를 대며 물었다.
“키스하실래요?”
질문을 받은 커플이 쑥스러운 듯 손을 흔들었다.
“빼는 거 없습니다. 자...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모두에게 공개하세요!”
디제이가 몇 번 재촉하고 상품으로 유혹해도 그 커플은 부끄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디제이가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음 커플을 지목하여 ‘키스하실래요?’하고 물어보았다.
세 번째로 지목당한 커플이 ‘예!’하고 키스할 것임을 밝혔다. 그 커플이 서로 껴안고 키스를 했다. 음악이 행진곡으로 바뀌며 관중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예! 첫 번째 키스커플이 나왔습니다. 예... 하지만 이정도로는 1등을 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다시 키스하실 의향은?”
그러자 그 커플이 쑥스러워하며 쇼파쪽으로 도망갔다. 디제이는 계속해서 커플들을 찾아다니며 키스하실래요? 하고 물었다.
두 번째 키스 커플이 등장했다. 이 커플은 상당히 키스 경험이 많은 듯 딥키스를 하며 에로틱한 광경을 연출했다. 그런데도 디제이는 성에 안차는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네.. 꽤 강도 높은 키스였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정도로는 1등을 못합니다. 예! 다시하세요!”
그러자 그 커플이 외쳤다.
“우린 2등으로 만족해요!”
“네, 과연 2등은 할 수 있으라나? 다음 커플에게 갑니다.”
한 커플 한 커플 키스커플이 계속 등장하며 점차 키스 뿐만 아니라 서로의 몸을 쓰다듬는 등 그 에로틱한 광경이 점층적으로 강화되었다. 관중들은 열광하며 박수를 쳤다.
나와 누나는 디제이가 점차 다가오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쇼파로 도망가서 앉았다. 그런데 디제이가 도망가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뒤쫒아 왔다.
“예! 이 커플은 무서워서 도망을 가는군요. 자! 여러분 오늘 우리 이 커플 키스를 시킵시다!”
“와!!! 키스! 키스! 키스해라! 키스!”
도망가는 것이 오히려 눈에 띈것이다. 나와 누나는 얼굴이 헬쓱해졌다. 내가 디제이를 보고 입을 열었다.
“아... 저 우리는...”
그 때 누나가 말했다.
“키스하자.”
그러더니 누나의 얼굴이 확 다가와서 내 입술을 쪽 빨았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조그맣게 말했다.
“자, 비겼지?”
아까 내가 키스한 것에 대한 말이리라. 내가 마음에 걸려하는 걸 알고 누나가 키스를 해준 것이다. 어쨌든 관중들은 열광했다.
“와!!!”
하지만 디제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여러분 이것이 키스입니까 뽀뽀입니까. 차라리 안하는게 나았습니다. 자. 다시 키스 어게인!”
내가 당황해서 누나를 쳐다보는데 누나의 얼굴이 붉어지며 표정이 약간 이상해지더니 조그맣게 말했다.
“준식아 오늘일은 여기서 나가면 모두 잊는거야.”
그러더니 누나의 얼굴이 서서히 다가왔다. 디제이의 멘트.
“예, 이커플은 키스를 하면서 서로 상의를 합니다. 예... 뜸을 들이고... 예, 이번에는 어떤 키스를 보여줄지...”
누나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내가 뻗뻗하게 몸이 굳었는데 누나의 입술이 내 입술을 벌렸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벌렸다. 내 입술 사이로 누나의 혀가 파고 들어왔다.
“!!!”
입술이 완전히 포개지며 딥키스가 되었다. 누나의 매끄러운 혀를 느꼈다. 누나의 혀가 내 입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빠져나갔다. 난 나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누나의 혀을 따라 내 혀를 밀어 누나의 입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러자 누나가 내 혀를 빨았다.
디제이 멘트.
“네! 딥키스입니다. 그러나 이정도로는 1등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디제이의 목소리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 아른아른하게 들리는데 누나의 손이 내 손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누나의 손은 잠시 내 손을 꼭 쥐고 있더니 어디론가 내 손을 이끌고 갔다.
내 손에 무언가가 닿았다.
‘뭉클!’
난 머릿속으로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내 손에 닿은 것은 누나의 유방이었다. 숨이 막혀서 몰아쉬자 누나와 나의 입술이 떨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겹쳐져 왔다. 누나의 손의 압력에 의해 내 손이 누나의 유방을 잡았다. 그리고 내 손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제이 멘트
“예, 야합니다 야해요!”
관중들이 열광했다.
“와~~~”
난 손안에 들어온 누나의 유방을 조심스럽게 주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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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난 이젤과 물감 스케치북 등 그림도구를 들고 마로니에 공원으로 갔다. 한켠에 내가 그동안 그렸던 초상화들 중 잘된 것 몇점을 진열해 놓고 정면에 이젤을 세워 스케치북을 걸어놓고 손님을 받을 준비를 했다.
파랑새극장 쪽으로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한 사람의 리드에 맞춰 춤동작을 연습하고 있었다. 브레이크댄스. 나도 한 때 시도해보았던 동작들이었다. 토마스, 하이디, 윈드밀... 아이들을 리드해서 동작을 반복 훈련시키는 리더의 동작이 그럴듯 해 보였다.
한참동안 멍하니 춤추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쳐다보니 앳되보이는, 하지만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애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림그려주는데 얼마야?"
"대충 있는대로 줘."
"백원줘도 그려줘?"
"백원은 너무했고 보통은 4000원 달라고 하는데 중학생이나 고등학생한테는 천원도 받아."
"자, 천원."
"자... 저기 춤추는 애들 보이지 거기 보고 있어봐."
자세를 잡도록 시키고 스케치북에 4B연필로 슥슥 그려나가는데 5분도 안돼서 여자애가 날쳐다보더니 말한다.
"오빠 고등학생이지."
"어."
"그럼 오빠 아닐지도 모르겠네. 몇학년이야?"
"3학년."
"그럼 오빠네. 나 2학년이니까. 뭐 한 살 차인데 말틀까?"
"죽을래. 그림그리게 저쪽 보고 있어."
"싫어 지겨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아... 짱나."
다시 그림을 그려나가는데 3분도 안돼서 여자애가 또 자세를 풀었다. 자리에서 발딱 일어서더니 내가 그리고 있는 스케치북을 쳐다본다.
"애걔, 이것밖에 못그렸어?"
"윤곽은 다 잡았으니까 금방 끝나."
"물감은 안칠해."
"물감 칠해줘? 기다리기 지겹다며."
"......"
여자애는 옆에 놓아둔 물감을 들어보더니 거기에 적혀있는 것을 읽었다.
"복성고 3학년 8반 김준식. 우리학교랑 가까운 학교네?"
"어느학교 다니는데?"
"예진여고."
그러더니 다시 의자에 앉아 자세를 잡는다. 난 짜증이 나려는 것을 참고 재빨리 연필을 놀려 초상화를 마무리지었다.
"자. 끝났다."
여자애가 초상화를 받아들더니 날보고 말했다.
"자, 열셀동안 데이트신청 받아줄께."
"하나... 둘... 셋..."
내가 뜬금없는 소리에 입을 벌리는데 여자애가 재빨리 카운트를 한다.
"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 땡! 끝났어. 바이."
여자애가 발딱 일어서더니 저리로 뛰어가 버렸다.
"뭐 저런애가 다있어. 쪼그만게 화장은 덕지덕지..."
피식 웃고는 그 애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 여자애는 다음날인 일요일에 다시 나타났다.
"오빠 오늘도 그림그리러 나왔네?"
"어?"
여자애가 양손을 쭉 뻗어 손가락을 벌리더니 카운트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 아홉의 반..."
"잠깐!"
"아홉의 반의 반..."
"나랑 놀자."
"그게 데이트신청이야?"
"그럼 뭐라고 그래."
"좋아 놀러가자."
이렇게 해서 얼떨결에 난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여자애의 이름은 이보미, 예진여고 2학년이라고 했다. 토요일날 그림그려줄 때도 알아봤지만 진득하니 참을성이 없고 변덕이 엄청 심했다. 처음에 좀 걷자고 그러더니 금방 다리 아프다고 만화방에 가자고 하고, 빌려놓은 만화가 재미없다고 겜방에 가자고 하고 겜방에서도 몇분 되지도 않아 재미없다고 PC방에 가자고 하고...
정신없이 끌려다니다 9시쯤에 헤어졌는데 헤어질 때 핸드폰 번호를 서로 교환하며 보미가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나 말고 다른 기집애 만나면 죽어! 내가 감시할꺼야."
일단은 토요일 마다 만나기로 했다.
다음날 부터 시도때도 없이 문자메세지가 오는데 정말 지치지도 않나 대단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일일이 다 답장을 보내주다가 나중에는 띄엄띄엄 보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목요일날 야자를 땡땡이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작은누나가 휘파람을 불며 이옷 저옷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있었다.
"어디가?"
"응 놀러간다."
"남자친구랑?"
"아니, 고등학교 친구랑."
"잘 놀다와."
"고럼!"
작은누나는 씩씩하게 말하고는 집을 나갔는데 30분쯤 지났을까 작은누나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왜그래? 지갑 안가져 갔구나."
작은누나는 고개를 힘없이 절래절래 흔들더니 자기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무슨일이지?"
내가 작은누나가 옷갈아 입는 것을 기다려 방으로 들어가자 작은 누나가 날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 젠장 혜연이 그 기집애가 글쎄 갑자기 남자친구가 오늘 꼭 보자고 한다고 나랑 만나기로 한걸 취소하는 거 있지. 참나. 남자친구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학교 다닐 때는 너밖에 없어 뭐 남친 생겨도 서로 챙겨주자 뭐 그러더니 막상 남친 생기니까 안면을 싹 바꾸네."
"아, 그 누나 재수없다."
"그러게 말야 젠장 기분 꽝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목소리가 밝아서 그냥 웃어주고는 내방으로 돌아왔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은누나는 평소에 기분이 많이 안 좋아도 별로 티를 내지 않는다. 아무래도 누나가 굉장히 기분이 상했을 것 같았다. 난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작은누나 방으로 갔다.
“누나 나랑 내일 저녁에 놀래? 나 스트레스 쌓이는데.”
누나가 날 쳐다보더니 빙긋 웃고는 말한다.
“고3이 스트레스 쌓이는거 당연하지 뭘그래?”
내가 말없이 히히 웃고 있자 누나가 말했다.
“내가 기분 상했을까봐 일부러 그러는거지? 오케, 누나가 동생의 갸륵한 마음을 생각해서 내일 한턱 쏜다!”
다음날은 금요일, 누나가 우리학교 교문 앞에서 날 기다리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문으로 나가자 누나가 날 발견하고는 손을 흔든다. 내가 웃으면서 누나 앞으로 다가갈 때였다. 갑자기 옆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고개를 돌려보니 보미가 아닌가. 누나가 말했다.
“누구니?”
“어... 여자친구.”
“어라? 그새 여자친구 사궜어?”
보미가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약간 높은 톤으로 말했다.
“이 여자 누구야?”
“어... 누나야. 너 낼 만나기로 했잖아?”
“오늘 보고 싶어서 왔어. 그러면 안돼? 막 나오라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누나가 내어깨를 툭쳐서 돌아보니 누나가 웃으면서 말한다.
“에구에구 데이트 잘 해 나 집에 갈게.”
작은누나가 손을 흔들더니 몸을 돌려서 저편으로 걸어갔다. 작은누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보미가 말한다.
“진짜 누나야? 앤 아니야?”
“......”
난 갑자기 이대로 누나를 보내면 안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웬지는 모르지만...
“보미야. 오늘은 그냥 헤어지자. 내일 만나.”
“왜? 저여자랑 놀게?”
“어. 오늘 같이 놀기로 약속했었단 말이야.”
보미가 흥분했는지 얼굴이 빨개지더니 소리쳤다.
“오늘 저여자 따라가면 오빠랑 끝이야!”
“야, 진짜 내 누나야 친누나 왜그래.”
“친누나든 아니든 끝이야.”
작은누나의 모습이 이미 멀어져서 조금 더 있으면 종적을 놓칠 것 같았다. 난 급한 마음에 말했다.
“좋아 끝이든 아니든 니 맘대로 해.”
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보미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야! 개새끼야!”
‘개새끼? 젠장 니 맘대로 해.’
나에게는 만난지 일주일 밖에 안된 기집애보다는 누나가 더 소중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막 버스에 오르는 누나의 뒤를 따라 가까스로 버스를 올라탔다.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누나 뒤로 가서 어깨를 툭 쳤다. 누나가 날 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악! 야!......”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놀랬어?”
“어. 야 너 여자친구는 어떡하고 왔어.”
“그냥 집에 보냈어.”
“뭐?”
“......”
“걔가 화 안냈어?”
“뭐 괜찮아. 오늘은 누나랑 놀기로 했었는데 약속도 없이 찾아 온 걔가 잘못이지.”
“야, 너 그러면 안돼, 지금이라고 가서 사과해.”
“괜찬대두?”
“......”
잠시 후 누나가 말했다.
“참나. 바보네 정말 여자 마음도 모르고. 할 수 없지. 어디로 갈까?”
우리는 신촌에서 버스를 내렸다. 누나가 숄더백에다가 내 사복을 담아 가지고 왔었다. 내가 빌딩 화장실에 가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옛날 신촌시장이 있던 골목으로 들어가 호프집을 찾았다.
“음... 여기 처음와보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네?”
내가 잘 모르겠어서 물어보았다.
“분위기가 왜?”
“모르겠어?”
“응.”
“보통 호프집은 사방이 탁 트여 있는데 여기는 테이블 하나 하나 마다 거의 막혀 있잖아.”
“응? 그런데?”
“바보, 애인끼리 오라고 이렇게 해놓은거야.”
“아...”
난 그제서야 누나의 말을 이해했다. 술을 마시다가 애인끼리 무슨짓을 해도 시야가 가려져 있어서 남들이 못보는 것이다.
내가 알았다는 표정을 짓자 누나가 농담을 했다.
“뭐, 오늘 우리 준식이 데이트를 내가 방해했으니까 내가 오늘 하루만 애인 해주지뭐.”
“누나 괜찮다니까? 원래 누나하고 놀기로 한 날인데 뭐, 걔 신경쓰지마.”
“어라? 누나가 앤 해준다니까 싫다네? 노땅은 싫다 이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알바생이 맥주와 안주를 가지고 왔다.
“건배!”
“캬! 바로 이맛이야.”
“말해봐 누나랑 앤하는 거 싫어?”
“아니, 뭐 말로만 앤하면 뭘해 아무것도 못하는데.”
“아무것? 뭐? 뭘 못하는데? 말해봐.”
“아니... 참나.”
“말해보라니까? 뭐 키스하고 싶어?”
“그래, 키스, 누나가 키스해줄래?”
“오케, 키스해줄게. 이리와봐.”
그러면서 누나가 내 옆자리로 옮겨 와서 입술을 쭉 내밀고 달려드는데 내가 질겁을 해서 얼굴을 뒤로 빼면서 웃으며 말했다.
“아, 저리가 저리.”
“하하하하 킥킥킥킥.”
우리는 즐겁게 놀면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각자 두잔씩 마시고 세잔째 시켰을 때였다. 남녀 한쌍이 우리 테이블 앞을 지나가다가 여자가 다시 돌아와서 소리쳤다.
“어? 가영이 아냐?”
누나가 쳐다보더니 말했다.
“지혜야...”
누나 친구인가 보다.
“어쩜, 여기서 만났네? 이가게 자주오니?”
“아니...”
“우리 같이 앉을까?”
“아니, 저...”
“같이 앉자 얘.”
누나와 난 어떨결에 누나 친구 커플과 동석을 하게 되었다.
지혜라는 누나친구가 같이 온 남자를 소개했다.
“이쪽은 최병석이라고 내 남자친구야. S대 2학년.”
“아... 안녕하세요?”
누나와 난 어정쩡하게 인사를 했다. 누나친구 박지혜가 내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소개 안해줘?”
“어...”
누나가 잠시 당황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김준식.”
“어머, 어려보이는데 동생이니? 아니지?”
박지혜의 얼굴이 약간 비웃는듯한 표정이 되었다. 누나가 갑자기 약간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 내 남자친구.”
“!!!”
난 물을 마시다가 한마터면 놀래서 사래에 걸릴 뻔 했다. 누나를 쳐다보니 누나가 테이블 밑으로 내 다리를 꼬집었다.
“어머, 그래? 연하?”
“어. 재수생.”
난 얼떨결에 재수생 누나 남친이 되고 말았다.
“어머 어머, 요즘 연하남 커플이 유행이라고 하더니... 하하 뭐 어때. 건배하자.”
“건배!”
술을 들이키고 나서 박지혜가 말했다.
“가영아 너 음대 포기한거니? 학교다닐 때는 너가 나보다 피아노 더 잘쳤잖아?”
술을 마시면서 가만히 대화를 들어보니 박지혜라는 누나 친구는 음대에 다니는 듯 했다. 그리고 웬지 누나한테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했으며 현재 자기는 음대에 다니고 있고 작은누나는 대학을 포기한 것에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상대를 위로하는 듯이 말하며 은근히 얕잡아 보고 약올리는 말투... 난 기분이 무척 상했다. 작은누나도 박지혜를 좋아하지 않는듯. 약간 화가 난 것 같았다. 물론 누나를 잘 아는 나만이 눈치챌 정도의 모습이었지만.
즐거웠던 술자리는 누나 친구 커플이 등장하면서 거북해졌다. 게다가 몇차례 술을 마시고 나자 박지혜, 최병석 커플은 은근히 붙어 앉더니 스킨쉽을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테이블 밑으로 마치 몰래하는듯, 하지만 누나와 내가 뻔히 알 수 있게 서로의 다리를 만지고 허리를 만지고 하더니 점차 술기운이 돌자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스킨쉽을 하며, 이윽고 키스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누나와 내가 그들의 대담한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고 있는데 박지혜가 키스를 하고 나서 말했다.
“괜찮지?”
누나가 말했다.
“응. 보기 좋은데.”
박지혜는 일부러 보라는 듯이 약올리듯 스킨쉽을 하며 너네는 아직 이런관계는 아니지? 아직 어린애처럼 사귀고 있지? 하고 말하는 듯 하였다. 최병석은 그래도 좀 쑥스러운 듯 다시 키스를 하려는 박지혜의 입을 막고는 말했다.
“아... 저는 음악은 잘 몰라요. 그림은 꽤 좋아하지만, 가영씨는 좋아하는 화가 있어요?”
“글쎄요. 그림은 저도 잘 몰라서... 그림은 얘, 준식이가 잘 알아요.”
“아? 그래요? 준식씨는 어떤화가가 좋아요?”
내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 좋아하지만 마티스를 제일 좋아하는 편이에요.”
“아! 마티스, 야수파! 맞죠?”
“예.”
“음... 마티스 보다는 고흐가 더 좋지 않아요? 고흐는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데.”
난 ‘예’하고 맞장구를 쳐줄려다가 괜히 심통이 났다.
“글쎄요. 전 고흐가 천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최병석은 나의 의외의 대답에 약간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고흐가 천재가 아니라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준식씨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그 해바라기하며 삼나무 그림하며. 자화상하며... 천재가 아니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내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고흐는 분명 천재가 아니에요.”
“네?”
“고흐의 작품이 정말 사람의 가슴을 흔드는 그림들이라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그것은 고흐가 천재라서 그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고흐가 미쳤기 때문에 그릴 수 있었던 그림이에요.”
“......”
“고흐의 작품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사실 고흐의 초창기 작품은 그다지 잘그리지 못했어요. 마치 아마추어 화가가 그린듯한... 고흐는 자신의 재능없음에 절망하며 생활고와 사교생활의 문제로 외로움에 사로잡혀 미쳐가기 시작했죠. 정작 고흐의 작품 중 명작들은 고흐가 미쳐서 자살하기 직전 몇 년동안 그린 그림들이에요.”
“......”
“미쳤기 때문에 미친 열정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 명작이 탄생한 것이죠. 고흐의 그림을 가만히 보면 너무나도 슬픈,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마저도 불살라버릴 정도로 뜨거운 광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흠... 흠...”
최병석은 할말이 없는지 머쓱해하며 맥주를 마셨다.
“아... 어려운 얘기는 그만.”
박지혜가 자기 남친이 곤란해하자 말을 끊으며 최병석의 머리를 잡아당겨 키스를 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잠깐 잠깐 하는 키스가 아니라 완전히 입술을 포개서 서로의 혀를 빠는 딥키스였다.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한참동안의 긴 키스를 끝내더니 박지혜가 자기의 허리에 감싸여 있는 최병석의 손을 잡아 자신의 유방 위에 올려놓았다. 최병석이 박지혜의 가슴을 천천히 주무르는게 보였다.
“너희들, 정말 사귀는 거 맞아? 키스같은거 안해봤지 응?”
누나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우리는...”
나는 약간 취기가 오르며 은근히 계속 상대의 신경을 거슬리는 박지혜 커플의 행동에 화가났다. 그래서 돌발행동을 했다. 그건 순간적으로 생각없이 저지른 돌발행동이었다.
난 누나의 옆에 바짝 다가가서 누나의 머리를 잡고 내쪽으로 돌렸다. 누나가 무슨일인가 해서 멍하니 날 쳐다보는데 난 덮치듯 그런 누나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쪽!”
내가 누나의 입술을 한번 빨았다가 떼었다.
“어머!”
박지혜가 놀란 듯 경호성을 발했다. 그러더니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머, 얘 귀엽다. 귀여운 뽀뽀.”
누나는 놀라서 날 멍하니 쳐다보는데 내가 박지혜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리 친한사이라도 남들 앞에서 너무 행동이 지나친 것이 아니에요? 보기에 민망하군요.”
“어머.”
박지혜의 얼굴이 변했다.
“가자. 누...”
난 누나라는 말은 얼버무리고 누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카운터에 계산을 하고는 호프집을 나왔다.
누나와 난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화난 것이 점차 가라앉자 내가 누나한테 키스한 것이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누나 미안해.”
“응? 뭐가?”
“아까... 뽀뽀해서. 미안...”
“아냐, 괜찮아. 내가 남자친구라고 했는데 뭐. 그게 미안하지. 화 안났어?”
“아니, 난 괜찮아 내가 누나한테 미안해.”
“아니, 괜찮다니까?”
누나의 표정이 밝은 표정이 아니라서 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나 보다. 누나가 날 쳐다보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에잇, 괜한년을 만나서 기분 잡쳤네. 우리 춤추러 가자 오케?”
“응? 춤? 나 춤 못추는데.”
“괜찮아. 가자!”
우리는 이대앞으로 가서 먹자골목 사이에 있는 디스코텍으로 들어갔다. 난 디스코텍에 처음가보는 것이라 귀를 멍멍하게 울리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번쩍 번쩍 점멸하는 사이키 조명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미 은근히 취해 있었다. 안주로 화채가 나오고 술은 버드와이저를 시켰다. 내가 맥주병을 따려고 병따개를 찾자 누나가 말했다.
“이렇게 따는거야.”
누나가 냅킨으로 병마개 부분을 덮고 손으로 돌리자 병마개가 따지는 것이 아닌가. 신기해하며 따라해보자 내 버드와이저도 마개가 떨어져 나갔다.
“자, 건배!”
주위를 둘러보니 쇼파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일행은 드물고 대부분 스테이지에 나가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한편을 보니 여자애 둘이 미니스커트에 탱크탑을 똑같이 맞춰입고 거울을 보고 둘이 동작을 맞춰 똑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사이키델릭하고 약간 어두운 조명이라서 그런지 그 둘이 엄청 섹시해 보였다.
“쟤네들이 마음에 들어?”
“응?”
“부킹해볼까?”
“부킹?”
“어, 같이 술마시자고. 히히.”
“됐어. 참나.”
“근데 쟤네들은 왜 거울을 보고 춤을 추지?”
“나르시스트야.”
“나르시스트?”
“어. 지네들이 스스로의 모습에 빠져서 쾌감을 느끼는 거지. 아니면 괜히 저렇게 춤추면서 남자들이 찝적거려주길 바라는 걸 수도 있고.”
“웃긴다.”
“어... 분위기 짱이지 우리도 나가서 춤추자.”
“아... 난 춤 못춘다니까...”
“괜찮아. 자 나와.”
우리는 스테이지에 나가서 춤을 췄다. 난 처음 춰보는 춤이라 완전히 막춤인데 누나은 꽤 춤을 잘 춘다. 누나가 몸을 깜직하게 놀리며 춤을 추자 누나가 되게 이뻐보였다.
강렬한 테크노 음악에 귀가 쾅쾅 울리는 가운데 디제이의 말이 들여왔다.
“자... 여러분! 오늘의 절정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 모두 함께 미쳐봅시다. 따라하세요! 미치자!”
그러자 춤추던 사람들이 괴성을 질러대었다.
“미치자!(손님)”
“미치자!(디제이)”
“미치자!(손님)”
“목소리가 작다! 미치자!”
“미치자!”
음악이 바뀌었다. 헬리콥터 소리가 귀청을 때리더니 이어 강렬한 비트의 드럼과 기타리프! 핑크플로이드의 어나더 브릭 인더 워를 댄스풍으로 편곡한 음악이었다. 이 음악에 맞춰 분위기가 절정에 다달았다. 디제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빅 이벤트!!! 상품 왕창 빅이벤트 키스타임이 시작되겠습니다!!!”
“와~~~”
음악이 약간 조용해지며 느린 템포의 라틴 풍 록이 흘러나왔다. 템포는 느리지만 강한 비트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음악이었다. 그 음악에 맞춰 디제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시죠 키스타임! 자 가장 섹시하고 격렬하고 야한 키스를 하는 커플에게 상품이 나갑니다. 자 첫 번째는 이 커플!”
디제이가 무대로 걸어들어와 무작위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커플에게 마이크를 대며 물었다.
“키스하실래요?”
질문을 받은 커플이 쑥스러운 듯 손을 흔들었다.
“빼는 거 없습니다. 자...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모두에게 공개하세요!”
디제이가 몇 번 재촉하고 상품으로 유혹해도 그 커플은 부끄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디제이가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음 커플을 지목하여 ‘키스하실래요?’하고 물어보았다.
세 번째로 지목당한 커플이 ‘예!’하고 키스할 것임을 밝혔다. 그 커플이 서로 껴안고 키스를 했다. 음악이 행진곡으로 바뀌며 관중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예! 첫 번째 키스커플이 나왔습니다. 예... 하지만 이정도로는 1등을 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다시 키스하실 의향은?”
그러자 그 커플이 쑥스러워하며 쇼파쪽으로 도망갔다. 디제이는 계속해서 커플들을 찾아다니며 키스하실래요? 하고 물었다.
두 번째 키스 커플이 등장했다. 이 커플은 상당히 키스 경험이 많은 듯 딥키스를 하며 에로틱한 광경을 연출했다. 그런데도 디제이는 성에 안차는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네.. 꽤 강도 높은 키스였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정도로는 1등을 못합니다. 예! 다시하세요!”
그러자 그 커플이 외쳤다.
“우린 2등으로 만족해요!”
“네, 과연 2등은 할 수 있으라나? 다음 커플에게 갑니다.”
한 커플 한 커플 키스커플이 계속 등장하며 점차 키스 뿐만 아니라 서로의 몸을 쓰다듬는 등 그 에로틱한 광경이 점층적으로 강화되었다. 관중들은 열광하며 박수를 쳤다.
나와 누나는 디제이가 점차 다가오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쇼파로 도망가서 앉았다. 그런데 디제이가 도망가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뒤쫒아 왔다.
“예! 이 커플은 무서워서 도망을 가는군요. 자! 여러분 오늘 우리 이 커플 키스를 시킵시다!”
“와!!! 키스! 키스! 키스해라! 키스!”
도망가는 것이 오히려 눈에 띈것이다. 나와 누나는 얼굴이 헬쓱해졌다. 내가 디제이를 보고 입을 열었다.
“아... 저 우리는...”
그 때 누나가 말했다.
“키스하자.”
그러더니 누나의 얼굴이 확 다가와서 내 입술을 쪽 빨았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조그맣게 말했다.
“자, 비겼지?”
아까 내가 키스한 것에 대한 말이리라. 내가 마음에 걸려하는 걸 알고 누나가 키스를 해준 것이다. 어쨌든 관중들은 열광했다.
“와!!!”
하지만 디제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여러분 이것이 키스입니까 뽀뽀입니까. 차라리 안하는게 나았습니다. 자. 다시 키스 어게인!”
내가 당황해서 누나를 쳐다보는데 누나의 얼굴이 붉어지며 표정이 약간 이상해지더니 조그맣게 말했다.
“준식아 오늘일은 여기서 나가면 모두 잊는거야.”
그러더니 누나의 얼굴이 서서히 다가왔다. 디제이의 멘트.
“예, 이커플은 키스를 하면서 서로 상의를 합니다. 예... 뜸을 들이고... 예, 이번에는 어떤 키스를 보여줄지...”
누나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내가 뻗뻗하게 몸이 굳었는데 누나의 입술이 내 입술을 벌렸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벌렸다. 내 입술 사이로 누나의 혀가 파고 들어왔다.
“!!!”
입술이 완전히 포개지며 딥키스가 되었다. 누나의 매끄러운 혀를 느꼈다. 누나의 혀가 내 입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빠져나갔다. 난 나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누나의 혀을 따라 내 혀를 밀어 누나의 입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러자 누나가 내 혀를 빨았다.
디제이 멘트.
“네! 딥키스입니다. 그러나 이정도로는 1등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디제이의 목소리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 아른아른하게 들리는데 누나의 손이 내 손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누나의 손은 잠시 내 손을 꼭 쥐고 있더니 어디론가 내 손을 이끌고 갔다.
내 손에 무언가가 닿았다.
‘뭉클!’
난 머릿속으로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내 손에 닿은 것은 누나의 유방이었다. 숨이 막혀서 몰아쉬자 누나와 나의 입술이 떨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겹쳐져 왔다. 누나의 손의 압력에 의해 내 손이 누나의 유방을 잡았다. 그리고 내 손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제이 멘트
“예, 야합니다 야해요!”
관중들이 열광했다.
“와~~~”
난 손안에 들어온 누나의 유방을 조심스럽게 주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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