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열전 -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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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나그네의 길은 끝이 없고 개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 멀다. 그러나 이들의 발걸음은 조금도 지칠 줄을 모르고 부지런히 산길을 걷는다. 한낮에 햇살은 나무 가지 사이에서
빤짝거리고 산새 우는 소리에 마음은 즐거웠다.
“옥녀(玉女)님!... 여기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름다운 소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는 곳에 이르러 비연맹녀(飛燕猛女)를 가까이서 따르던 문숙 낭자가 물었다. 옥녀는 선아 아가씨의 또 다른 별호(別號)이다.
“그래... 그게 좋겠구나!... 모두들 여기서 잠시 쉬어서 가자!......................”
비연맹녀의 말에 큰 소나무 근처에서 잠시 쉬느라고 자리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짐을 실은 나귀를 소나무에 매던 옥자 낭자가 허겁지겁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맹녀님!... 여기 소나무에 어떤 여자가 목을 매었습니다........................”
“뭣이?... 어떤 여자가 소나무에 목을 매었다고?................................”
옥자 낭자의 말에 비연맹녀는 반문을 하다가 얼른 옥자 낭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의 곁에 있던 다른 여자들도 비연맹녀를 따라서 갔다.
“어서... 저 여자의 목에 맨 끈을 잘라라!.............................”
급한 비연맹녀의 목소리에 여자들이 모두 달려들어서 나무에 매달린 여자를 구출하였다. 다행히도 목을 맨 시간이 얼마 되지를 않아서 숨결이 붙어 있었다. 비연맹녀가 재빨리 혈도를
눌러서 막혀서 있던 목 부위를 회복시켰다. 목을 맨 여자를 자세히 살펴서 보니 나이가 어린 처녀 같았다. 처녀는 갑자기 자기를 살려낸 여자들을 보고는 무척이나 당황해 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 왜 나무에 목을 매었느냐?...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 보거라!............................”
위엄이 넘치는 비연맹녀의 말에 처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고 난 처녀는 마음을 진정시키더니 이내 자세하게 자기의 사정을 비연맹녀에게 낱낱이 다 이야기를 했다.
소나무에 목을 맨 처녀는 올해 열아홉 살 된 정 경화(鄭京華)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로 이 산골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정 경화의 오빠가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곳 마을에서 가장 세도를 부리는 박 재근(朴載根)이라는 사람의 며느리를 우연히 밤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러자 한 밤중에 아주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가 깜짝 놀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지켜보다가 여자 쪽에서 먼저 정경화의 오빠를 알아보고는 말을 걸어왔다.
“어머나!... 경수 총각 아닌가요?.....................................”
그러자 정경화의 오빠도 상대방을 알아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쉬며 말을 했다.
“저어... 우리 동네 박 첨지 댁의 아씨 맞지요... 그런데... 이 밤중에 혼자서 어딜 가십니까?...........................”
그러자 박 첨지 댁 며느리는 정경화의 오빠에게 갑자기 흐느끼며 하소연을 하였다.
“저어... 경수 총각!... 오늘 밤 나를 만났다는 사실을 꼭 비밀로 해야 해요...........................”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제가... 지금 우리 시댁 사람들 몰래 도망을 가는 중이랍니다............................”
“이 밤중에?... 도망은 왜요?......................”
“그 동안 시댁 식구들의 온갖 수모를 다 겪으며 웬만하면 참고 살아 보려고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멀리 도망을 가는 길이랍니다.....”
“그래도... 그렇지 여자 혼자의 몸으로 어떻게 이 밤중에 도망을 갑니까?.......................”
“이제는 죽었으면 죽었지...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가 없어요........................”
“그래도... 그 이유나 말을 해 주십시오...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 말입니다.........................”
“경수 총각하고 나하고 둘이만 이렇게 있으니 사실대로 말을 할 게요... 사실은... 우리 남편이 성질이 매우 괴팍하고 사나워서 심심하면... 나를 때리고 심지어 발길질도 하고 어떤 때는
몽둥이를 가지고 개를 패듯이 때리기도 했어요... 그러데... 이런 남편의 행동에 시아버지나 시어머니도 모두 한 통속이 되어 제가 이렇게... 죽을 고통을 당해도 그냥 본체만체 하면서
자기 아들 편만 들고요... 오직 나 혼자만 죽어라고 두들겨 맞고 이제 도저히 견디다 못해서 도망을 가는 길이랍니다.........................”
“정말로 듣고 보니 너무한 집안이군요..................”
“그러니... 이제 저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동네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해서는 안돼요.....................”
“그럼...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경수 총각에게만 특별히 이야기를 하는데... 저어 보은(報恩)에 외숙모님이 살고 계시는데 그리로 갈까 합니다.....................”
“그런데.. 이 밤중에 여자 혼자의 몸으로 그 먼 길을 어떻게 갈려고 그러십니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무서울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그래도... 아녀자의 몸으로 이 밤에 그 먼 길을 어떻게 가려고 그러십니까?...........................”
한참 둘이서 이러고 있는 광경을 몰래 훔쳐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박 첨지 댁의 외동아들인 박 대수(朴大首)였다. 박 대수는 자기 아내가 밤중에 몰래 보따리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우연히 보고 몰래 뒤를 미행하다가 정경화의 오빠와 밤길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다 엿들었다. 성질(性質)이 본래 잔인하고 사악한 박 대수는 갑자기 엉뚱하고 추악한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지금 자기와 살고 있는 아내는 정경화의 오빠인 경수와 불륜을 맺은 사이라고 소문을 내어서 친정으로 쫓아버리고 그 동안 가끔 보아 온 경수의 여동생 경화를
이번 기회에 자기의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런 계획을 음흉하게 자기의 머리로 재빠르게 세우자 갑자기 두 사람에게 박대수가 불쑥 자기 몸을 나타내었다. 그리고는 온 마을
사람들이 들으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
“이런... 나쁜 년 놈들이 있나?... 그래 둘이서 내 몰래 도망을 치려고?... 동네 사람들아!... 내 말 좀 들어 봐라!... 이처럼 억울한 일이 어데 있나?......................”
자기 아내의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큰 소리를 지르니 갑작스런 박 대수의 이런 행동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정 경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게 그대로 서 있었다. 박대수가 질러대는
큰 소리에 온 동네의 개들이 놀라서 짖어대고 고요한 밤중이라 그 소리는 온 마을 집집마다 다 들렸다. 잠시 후 박첨지는 자기 아들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자기 집에서 부리는 머슴들과
자기의 손발처럼 쓰는 떠돌이 불량배들을 모아가지고 현장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정경화의 오빠인 경수와 야간도주를 하려던 자기 며느리를 끌고 자기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아들인
박 대수처럼 두 사람에게 온갖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자기 집 곳간에다 같이 가두었다.
다음날 얼마 전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된 경수 어머니와 그의 여 동생인 경화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였다. 평소에 경수의 엄마에게 음심(淫心)을 품고 있던 박 첨지는 이번 기회에 아들과
함께 새 장가를 가려고 엉뚱한 마음을 품었다. 얼굴도 지금의 마누라 보다 예쁘고 나이도 젊은 경수의 엄마를 자기의 첩으로 삼으려는 속셈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을 내가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고... 청주 댁의 아들이 내 며느리와 통정(通情)을 했기 때문이다... 곧 바로 관가에 알려서 그대의 아들을 물고(物故)를 내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한 마을에서 같이 살아 온 인정 때문에 차마 그러지를 못하고 그대를 부른 것이다...........................”
박첨지는 마치 큰 선심(善心)을 쓰는 것처럼 하더니 이내 그의 추악한 본색을 드러내었다.
“그래서... 이 일을 무마하려면 아무래도 그 쪽 집안과 혼인을 맺어야 아무런 후환이 없을 것이니... 그리들 알고... 청주 댁은 나와 혼인을 하고... 그대의 딸인 경화는 내 아들과 혼인을
하도록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집으로 돌아가 준비를 하고 있도록 해라............................”
“아니?... 박 첨지 나리!...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깜짝 놀란 경화 엄마가 박 첨지를 보며 항의를 하자 박 첨지는 보란 듯이 머슴들에게 자기 집 곳간에 가두어 두었던 경화의 오빠인 경수를 끌고 오라고 하더니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정도 두지 않고 자기가 데리고 있는 불량배들을 시켜서 경수를 두드려 패게 하였다.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것처럼 경수는 아무리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무지막지한
박 첨지는 그를 아주 잔인하게 계속하여 뚜드려 패기 시작 했다. 보다 못한 경수 엄마가 박 첨지에게 애원을 하다시피 하여서 자기 아들이 매를 맞는 것을 겨우 그치게 하였다. 이리하여
박 첨지는 경수 엄마와 자기가 혼인을 하는 날에 경수를 풀어준다는 약속을 하면서 그를 다시 곳간에 가두어 두라고 했다.
“이런... 천하에 나쁜 놈의 새끼가 다 있나?..............................”
여태 것 경화 곁에서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미주가 화를 내며 분노의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느냐?...........................”
비연맹녀가 경화에게 물었다.
“이제... 내일이면 그 짐승 같은 박첨지 댁 아들 박 대수하고 제가 결혼을 해야만 한답니다... 그래야... 우리 오빠도 살려 주고요 하지만 저는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그 놈에게 시집을
가기가 싫어서 아무도 몰래 이곳에 와서 죽으려고 그랬는데... 아가씨를 만나서 모진 목숨이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경화가 비연맹녀를 보면서 한탄에 섞인 말로 모든 이야기를 끝냈다.
“내일이면... 너희 어머니도 박 첨지하고 혼인을 하겠구나!.............................”
“네... 저희 어머니도 그런 일이 있고나서부터 밤잠을 설치시고 괴로워하고 있답니다.......................”
비연맹녀의 말에 경화가 안타까운 현실을 사실대로 말했다. 산골처녀인 경화의 이런 안타까운 사연에 비연맹녀는 부채를 든 채로 큰 소나무에 기대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옥자 낭자와 미주 낭자를 불렀다.
“너희 둘이는... 지금 이 처녀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가서... 경화 어머니를 안심 시키고... 절대로 자칫하여 자결을 한다든지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잘 지키고 있다가... 내일
아침에 박 첨지 댁 사람들이 가마를 보내어 오거든... 이 두 모녀를 가마에 태워서 보내고 곧 바로 이리로 달려서 오너라!.....................”
“네...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두 낭자가 그대로 따르겠다고 대답을 했다.
“나머지는 여기서 자리를 잡고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낸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 난 비연맹녀는 아무 영문을 몰라 멍하게 있는 처녀에게 말을 했다.
“네... 이름이 경화라고 그랬느냐?.......................................”
“네... 경화이옵니다..............................”
비연맹녀의 말에 산골처녀는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너는... 내일 박 첨지가 말한 대로 그 집 아들과 혼인예식을 하도록 해라!... 그렇다고 간악한 박 첨지와 그 아들을 내가 그냥 가만 놓아두지는 않을 것이니... 너는 나만 믿고 내 말대로
하도록 해라!..........................”
“네... 아가씨만 믿고 그대로 따르겠사옵니다...............................”
산골처녀인 경화는 감히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넘치는 비연맹녀의 말에 그대로 순종을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옥자와 미주 낭자를 산골처녀와 함께 마을로 내려 보내고 나서
비연맹녀는 자기를 둘러싼 여자들을 향해 말했다.
“참으로... 오랫동안 너희들이 갈고 닦은 솜씨를 내일은 박 첨지와 그의 악한 아들과 이들을 도우는 불량배들을 깨끗이 소탕하는데... 사용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각자 자기의 칼을
소중하게 잘 간수하도록 해라!............................”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비연맹녀의 말에 그를 따르는 여덟 명의 여자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저희는... 피곤해서 먼저 잠을 자야겠습니다..............................”
“아... 네... 그래요....................................”
밤이 아주 깊어지자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가 머리에 베개를 베면서 말을 하자 뜻밖에 자기 집에 딸과 함께 찾아 온 이들이 약간은 수상쩍었지만 지금 경화 엄마의 마음에는 그런 것들이
들어올 리가 없는지라 그냥 그러라고 대답을 했다. 오로지 경화 엄마의 마음은 이제 날이 새면 그 짐승 같은 박첨지에게 온갖 수모(受侮)를 당할 것을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귀찮아 졌다.
“엄마!... 절대로 마음 약하게 먹으면 안돼요... 오빠를 생각해서라도.......................................”
옆에서 딸 경화가 무슨 큰 요행수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자 하도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그래... 너는 산속에서 어떤 아가씨를 만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지금 우리가 이런 험한 꼴을 당하게 되었는데... 너는 아무 걱정이 안 되니?.....................”
“엄마는... 그 분을 만나보지 않아서 그래요... 나는 그 분을 정말 믿어요............................”
경화가 자기 엄마에게 끝까지 용기를 가지라고 설득을 하고 있었다.
“글쎄... 너는 그 아가씨를 믿는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그런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그냥 네가 목숨을 끊어 죽으려고 하니까... 그 아가씨가 너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 말처럼
밖에 들리지를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 박첨지의 말대로 가마를 타고... 그 집에 가서 혼인예식을 올리라는 것 아니냐?... 그러면... 일단은 자결을 하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이... 엄마는 그 분을 직접 보지를 않아서 그래요... 나는 그 분에게서 분명히 보았어요... 이 세상 사람에게는 없는 놀라운 기품(氣品)과 능력(能力)이 그 분에게는 있었어요........”
“그래... 너는 그렇게라도 위로를 가져라 나는 내일 박첨지 댁 혼인예식 자리에서 네 오빠를 풀어주라 하고서 너의 아버지를 따라서 갈란다.....................”
“아이... 엄마는 자꾸 약한 마음을 갖지 말라니까요................................”
두 모녀가 이렇게 서로 상반된 마음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날이 밝아지자 일찍 잠을 잔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가 일찍 일어나 새벽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든 두 모녀를 위하여 아침 밥을
짓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준비했다. 해가 동녘에서 환하게 떠올라 올 때에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는 잠을 자고 있는 두 모녀를 깨우고 아침을 먹게 하였다. 그리고 두 모녀를 아주 곱게
단장(丹粧)을 시키고 박첨지 댁에서 이들을 태우고 갈 가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박첨지 댁에서 보낸 가마가 집 앞에 당도를 하자 조심스럽게 두 모녀를 가마에 태워 보낸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는 한 걸음에 선아 아가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박첨지는 자기 집 마당에서 하인들이 혼인 잔치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을 보면서 이제 자기의 두 번째 마누라로 맞이하게 될 예쁜 청주 댁을 머 리 속으로 떠올리며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 동안 먼발치에서 예쁜 청주 댁을 볼 때마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는데 이제야 자기의 그 소원을 시원하게 풀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시기심이 아주 많은
자기의 본처는 불평스런 말을 마구 끄집어내었지만 서슬이 시퍼런 박첨지가 으름장을 놓는 소리에 끽 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조용해 졌다. 이런 여자들이 본래 남편의 말에는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를 못하고 그저 남편의 말에 오로지 순종이다.
박첨지의 하는 꼴을 보니 이제 순서가 뒤 바뀌어 청주 댁이 본처가 되고 자기 아들과 결혼을 하는 경화라는 어린 계집년이 온 집안에 귀여움을 독차지를 할 지경이다. 속으로는 불이
붙어서 미치고 환장을 할 노릇이지만 그 동안 남편과 한통속으로 온갖 나쁜 짓을 다한 처지에 이제야 자기 위치를 찾으려고 하니 그게 통할 리가 없다. 자기 아들 조차도 자기 엄마의
이런 심정은 조금도 헤아려 주는 것도 없이 오로지 자기 아내로 맞이하게 될 경화라는 어린 계집에게 홀랑 빠져 있었다.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더니.............................”
혼자서 방안을 서성거리며 중얼거려보지만 어느 누구 한 사람 자기를 위해서 위로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꽃가마가 집안에 도착을 하고 아주 예쁘게 단장을 한 두 신부(新婦)가
박첨지 댁의 하녀들에게 이끌려 가마에서 내렸다. 온 동네 사람들이 박첨지 댁에 모여 오늘 일어나는 이상(異常)한 결혼식을 저마다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어찌
박첨지가 사람으로서 이런 인륜에서 벗어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못 마땅했지만 그러나 정작 누구 한 사람 이런 것에 대해서 바른말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전에 이 동네에서 살던 제 문호(諸文鎬)라는 사람이 큰 황소를 한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이 황소가 욕심(慾心)이 난 박첨지는 제 문호를 자기 집에 불러서 자기 집에 있는 황소와 맞
바꾸자고 제의를 했다. 그러나 이 황소를 자기 자식처럼 끔찍이 아끼는 제 문호는 웃돈을 더 얹어서 준다고 해도 자기 집의 황소와 박첨지 댁의 황소와는 바꿀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이지만 박첨지 댁의 황소는 누가 보더러도 비루먹어서 제 문호 집의 황소와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박 첨지는 자기 마누라와 머리를 맞대고 아주 악한 꾀를 내어서 자기 집에서 데리고 있는 떠돌이 불량배들을 시켜서 밤중에 제 순호 집의 황소를 몰래 훔쳐서 오게 하고 그 집의
식구들이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집에 불을 질러서 모두를 죽게 하였다. 그리고는 제 순호 가족이 갑작스런 화재(火災)로 인하여 온 가족이 다 죽었다고 관가(官家)에다 보고를 하였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런 박첨지의 악행을 다 알고 있었지만 서로가 쉬쉬하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루는 같은 마을에 사는 정 동영(鄭東榮)이라는 사람이 술이 취하여
주막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고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억울하게 죽은 제 문호의 귀신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정작 박첨지는 모르고 있더라고?... 그리고... 훔쳐간 제문호의 황소가 박첨지 마구칸의 기둥에 고삐를 칭칭
감아서 죽었는데... 그 얼마나 원한(怨恨)이 깊을까?.........................”
물론 술이 취해서 정동영이가 자기도 모르게 해 버린 말이었지만 이 말이 박 첨지의 귀에 안 들릴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박첨지는 또다시 자기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악한 꾀를 내어서
정동영이가 술이 취해 돌아오는 길목에 자기 집에서 데리고 있던 불량배들을 숨기고 있다가 강도(强盜)를 만난 것처럼 위장을 하여 죽였다. 이 사건도 정동영이가 술이 취해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강도를 만나서 살해(殺害)를 당했다고 박첨지는 관가에 허위(虛僞) 보고를 하였다.
관가에서도 평소에 박첨지에게 자주 뇌물을 먹는지라 포졸들을 보내어 대충 마무리를 하였다. 이러다 보니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박첨지가 하는 일에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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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짝거리고 산새 우는 소리에 마음은 즐거웠다.
“옥녀(玉女)님!... 여기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름다운 소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는 곳에 이르러 비연맹녀(飛燕猛女)를 가까이서 따르던 문숙 낭자가 물었다. 옥녀는 선아 아가씨의 또 다른 별호(別號)이다.
“그래... 그게 좋겠구나!... 모두들 여기서 잠시 쉬어서 가자!......................”
비연맹녀의 말에 큰 소나무 근처에서 잠시 쉬느라고 자리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짐을 실은 나귀를 소나무에 매던 옥자 낭자가 허겁지겁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맹녀님!... 여기 소나무에 어떤 여자가 목을 매었습니다........................”
“뭣이?... 어떤 여자가 소나무에 목을 매었다고?................................”
옥자 낭자의 말에 비연맹녀는 반문을 하다가 얼른 옥자 낭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의 곁에 있던 다른 여자들도 비연맹녀를 따라서 갔다.
“어서... 저 여자의 목에 맨 끈을 잘라라!.............................”
급한 비연맹녀의 목소리에 여자들이 모두 달려들어서 나무에 매달린 여자를 구출하였다. 다행히도 목을 맨 시간이 얼마 되지를 않아서 숨결이 붙어 있었다. 비연맹녀가 재빨리 혈도를
눌러서 막혀서 있던 목 부위를 회복시켰다. 목을 맨 여자를 자세히 살펴서 보니 나이가 어린 처녀 같았다. 처녀는 갑자기 자기를 살려낸 여자들을 보고는 무척이나 당황해 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 왜 나무에 목을 매었느냐?...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 보거라!............................”
위엄이 넘치는 비연맹녀의 말에 처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고 난 처녀는 마음을 진정시키더니 이내 자세하게 자기의 사정을 비연맹녀에게 낱낱이 다 이야기를 했다.
소나무에 목을 맨 처녀는 올해 열아홉 살 된 정 경화(鄭京華)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로 이 산골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정 경화의 오빠가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곳 마을에서 가장 세도를 부리는 박 재근(朴載根)이라는 사람의 며느리를 우연히 밤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러자 한 밤중에 아주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가 깜짝 놀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지켜보다가 여자 쪽에서 먼저 정경화의 오빠를 알아보고는 말을 걸어왔다.
“어머나!... 경수 총각 아닌가요?.....................................”
그러자 정경화의 오빠도 상대방을 알아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쉬며 말을 했다.
“저어... 우리 동네 박 첨지 댁의 아씨 맞지요... 그런데... 이 밤중에 혼자서 어딜 가십니까?...........................”
그러자 박 첨지 댁 며느리는 정경화의 오빠에게 갑자기 흐느끼며 하소연을 하였다.
“저어... 경수 총각!... 오늘 밤 나를 만났다는 사실을 꼭 비밀로 해야 해요...........................”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제가... 지금 우리 시댁 사람들 몰래 도망을 가는 중이랍니다............................”
“이 밤중에?... 도망은 왜요?......................”
“그 동안 시댁 식구들의 온갖 수모를 다 겪으며 웬만하면 참고 살아 보려고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멀리 도망을 가는 길이랍니다.....”
“그래도... 그렇지 여자 혼자의 몸으로 어떻게 이 밤중에 도망을 갑니까?.......................”
“이제는 죽었으면 죽었지...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가 없어요........................”
“그래도... 그 이유나 말을 해 주십시오...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 말입니다.........................”
“경수 총각하고 나하고 둘이만 이렇게 있으니 사실대로 말을 할 게요... 사실은... 우리 남편이 성질이 매우 괴팍하고 사나워서 심심하면... 나를 때리고 심지어 발길질도 하고 어떤 때는
몽둥이를 가지고 개를 패듯이 때리기도 했어요... 그러데... 이런 남편의 행동에 시아버지나 시어머니도 모두 한 통속이 되어 제가 이렇게... 죽을 고통을 당해도 그냥 본체만체 하면서
자기 아들 편만 들고요... 오직 나 혼자만 죽어라고 두들겨 맞고 이제 도저히 견디다 못해서 도망을 가는 길이랍니다.........................”
“정말로 듣고 보니 너무한 집안이군요..................”
“그러니... 이제 저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동네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해서는 안돼요.....................”
“그럼...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경수 총각에게만 특별히 이야기를 하는데... 저어 보은(報恩)에 외숙모님이 살고 계시는데 그리로 갈까 합니다.....................”
“그런데.. 이 밤중에 여자 혼자의 몸으로 그 먼 길을 어떻게 갈려고 그러십니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무서울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그래도... 아녀자의 몸으로 이 밤에 그 먼 길을 어떻게 가려고 그러십니까?...........................”
한참 둘이서 이러고 있는 광경을 몰래 훔쳐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박 첨지 댁의 외동아들인 박 대수(朴大首)였다. 박 대수는 자기 아내가 밤중에 몰래 보따리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우연히 보고 몰래 뒤를 미행하다가 정경화의 오빠와 밤길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다 엿들었다. 성질(性質)이 본래 잔인하고 사악한 박 대수는 갑자기 엉뚱하고 추악한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지금 자기와 살고 있는 아내는 정경화의 오빠인 경수와 불륜을 맺은 사이라고 소문을 내어서 친정으로 쫓아버리고 그 동안 가끔 보아 온 경수의 여동생 경화를
이번 기회에 자기의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런 계획을 음흉하게 자기의 머리로 재빠르게 세우자 갑자기 두 사람에게 박대수가 불쑥 자기 몸을 나타내었다. 그리고는 온 마을
사람들이 들으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
“이런... 나쁜 년 놈들이 있나?... 그래 둘이서 내 몰래 도망을 치려고?... 동네 사람들아!... 내 말 좀 들어 봐라!... 이처럼 억울한 일이 어데 있나?......................”
자기 아내의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큰 소리를 지르니 갑작스런 박 대수의 이런 행동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정 경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게 그대로 서 있었다. 박대수가 질러대는
큰 소리에 온 동네의 개들이 놀라서 짖어대고 고요한 밤중이라 그 소리는 온 마을 집집마다 다 들렸다. 잠시 후 박첨지는 자기 아들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자기 집에서 부리는 머슴들과
자기의 손발처럼 쓰는 떠돌이 불량배들을 모아가지고 현장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정경화의 오빠인 경수와 야간도주를 하려던 자기 며느리를 끌고 자기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아들인
박 대수처럼 두 사람에게 온갖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자기 집 곳간에다 같이 가두었다.
다음날 얼마 전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된 경수 어머니와 그의 여 동생인 경화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였다. 평소에 경수의 엄마에게 음심(淫心)을 품고 있던 박 첨지는 이번 기회에 아들과
함께 새 장가를 가려고 엉뚱한 마음을 품었다. 얼굴도 지금의 마누라 보다 예쁘고 나이도 젊은 경수의 엄마를 자기의 첩으로 삼으려는 속셈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을 내가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고... 청주 댁의 아들이 내 며느리와 통정(通情)을 했기 때문이다... 곧 바로 관가에 알려서 그대의 아들을 물고(物故)를 내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한 마을에서 같이 살아 온 인정 때문에 차마 그러지를 못하고 그대를 부른 것이다...........................”
박첨지는 마치 큰 선심(善心)을 쓰는 것처럼 하더니 이내 그의 추악한 본색을 드러내었다.
“그래서... 이 일을 무마하려면 아무래도 그 쪽 집안과 혼인을 맺어야 아무런 후환이 없을 것이니... 그리들 알고... 청주 댁은 나와 혼인을 하고... 그대의 딸인 경화는 내 아들과 혼인을
하도록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집으로 돌아가 준비를 하고 있도록 해라............................”
“아니?... 박 첨지 나리!...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깜짝 놀란 경화 엄마가 박 첨지를 보며 항의를 하자 박 첨지는 보란 듯이 머슴들에게 자기 집 곳간에 가두어 두었던 경화의 오빠인 경수를 끌고 오라고 하더니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정도 두지 않고 자기가 데리고 있는 불량배들을 시켜서 경수를 두드려 패게 하였다.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것처럼 경수는 아무리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무지막지한
박 첨지는 그를 아주 잔인하게 계속하여 뚜드려 패기 시작 했다. 보다 못한 경수 엄마가 박 첨지에게 애원을 하다시피 하여서 자기 아들이 매를 맞는 것을 겨우 그치게 하였다. 이리하여
박 첨지는 경수 엄마와 자기가 혼인을 하는 날에 경수를 풀어준다는 약속을 하면서 그를 다시 곳간에 가두어 두라고 했다.
“이런... 천하에 나쁜 놈의 새끼가 다 있나?..............................”
여태 것 경화 곁에서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미주가 화를 내며 분노의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느냐?...........................”
비연맹녀가 경화에게 물었다.
“이제... 내일이면 그 짐승 같은 박첨지 댁 아들 박 대수하고 제가 결혼을 해야만 한답니다... 그래야... 우리 오빠도 살려 주고요 하지만 저는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그 놈에게 시집을
가기가 싫어서 아무도 몰래 이곳에 와서 죽으려고 그랬는데... 아가씨를 만나서 모진 목숨이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경화가 비연맹녀를 보면서 한탄에 섞인 말로 모든 이야기를 끝냈다.
“내일이면... 너희 어머니도 박 첨지하고 혼인을 하겠구나!.............................”
“네... 저희 어머니도 그런 일이 있고나서부터 밤잠을 설치시고 괴로워하고 있답니다.......................”
비연맹녀의 말에 경화가 안타까운 현실을 사실대로 말했다. 산골처녀인 경화의 이런 안타까운 사연에 비연맹녀는 부채를 든 채로 큰 소나무에 기대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옥자 낭자와 미주 낭자를 불렀다.
“너희 둘이는... 지금 이 처녀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가서... 경화 어머니를 안심 시키고... 절대로 자칫하여 자결을 한다든지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잘 지키고 있다가... 내일
아침에 박 첨지 댁 사람들이 가마를 보내어 오거든... 이 두 모녀를 가마에 태워서 보내고 곧 바로 이리로 달려서 오너라!.....................”
“네...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두 낭자가 그대로 따르겠다고 대답을 했다.
“나머지는 여기서 자리를 잡고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낸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 난 비연맹녀는 아무 영문을 몰라 멍하게 있는 처녀에게 말을 했다.
“네... 이름이 경화라고 그랬느냐?.......................................”
“네... 경화이옵니다..............................”
비연맹녀의 말에 산골처녀는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너는... 내일 박 첨지가 말한 대로 그 집 아들과 혼인예식을 하도록 해라!... 그렇다고 간악한 박 첨지와 그 아들을 내가 그냥 가만 놓아두지는 않을 것이니... 너는 나만 믿고 내 말대로
하도록 해라!..........................”
“네... 아가씨만 믿고 그대로 따르겠사옵니다...............................”
산골처녀인 경화는 감히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넘치는 비연맹녀의 말에 그대로 순종을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옥자와 미주 낭자를 산골처녀와 함께 마을로 내려 보내고 나서
비연맹녀는 자기를 둘러싼 여자들을 향해 말했다.
“참으로... 오랫동안 너희들이 갈고 닦은 솜씨를 내일은 박 첨지와 그의 악한 아들과 이들을 도우는 불량배들을 깨끗이 소탕하는데... 사용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각자 자기의 칼을
소중하게 잘 간수하도록 해라!............................”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비연맹녀의 말에 그를 따르는 여덟 명의 여자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저희는... 피곤해서 먼저 잠을 자야겠습니다..............................”
“아... 네... 그래요....................................”
밤이 아주 깊어지자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가 머리에 베개를 베면서 말을 하자 뜻밖에 자기 집에 딸과 함께 찾아 온 이들이 약간은 수상쩍었지만 지금 경화 엄마의 마음에는 그런 것들이
들어올 리가 없는지라 그냥 그러라고 대답을 했다. 오로지 경화 엄마의 마음은 이제 날이 새면 그 짐승 같은 박첨지에게 온갖 수모(受侮)를 당할 것을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귀찮아 졌다.
“엄마!... 절대로 마음 약하게 먹으면 안돼요... 오빠를 생각해서라도.......................................”
옆에서 딸 경화가 무슨 큰 요행수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자 하도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그래... 너는 산속에서 어떤 아가씨를 만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지금 우리가 이런 험한 꼴을 당하게 되었는데... 너는 아무 걱정이 안 되니?.....................”
“엄마는... 그 분을 만나보지 않아서 그래요... 나는 그 분을 정말 믿어요............................”
경화가 자기 엄마에게 끝까지 용기를 가지라고 설득을 하고 있었다.
“글쎄... 너는 그 아가씨를 믿는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그런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그냥 네가 목숨을 끊어 죽으려고 하니까... 그 아가씨가 너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 말처럼
밖에 들리지를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 박첨지의 말대로 가마를 타고... 그 집에 가서 혼인예식을 올리라는 것 아니냐?... 그러면... 일단은 자결을 하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이... 엄마는 그 분을 직접 보지를 않아서 그래요... 나는 그 분에게서 분명히 보았어요... 이 세상 사람에게는 없는 놀라운 기품(氣品)과 능력(能力)이 그 분에게는 있었어요........”
“그래... 너는 그렇게라도 위로를 가져라 나는 내일 박첨지 댁 혼인예식 자리에서 네 오빠를 풀어주라 하고서 너의 아버지를 따라서 갈란다.....................”
“아이... 엄마는 자꾸 약한 마음을 갖지 말라니까요................................”
두 모녀가 이렇게 서로 상반된 마음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날이 밝아지자 일찍 잠을 잔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가 일찍 일어나 새벽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든 두 모녀를 위하여 아침 밥을
짓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준비했다. 해가 동녘에서 환하게 떠올라 올 때에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는 잠을 자고 있는 두 모녀를 깨우고 아침을 먹게 하였다. 그리고 두 모녀를 아주 곱게
단장(丹粧)을 시키고 박첨지 댁에서 이들을 태우고 갈 가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박첨지 댁에서 보낸 가마가 집 앞에 당도를 하자 조심스럽게 두 모녀를 가마에 태워 보낸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는 한 걸음에 선아 아가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박첨지는 자기 집 마당에서 하인들이 혼인 잔치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을 보면서 이제 자기의 두 번째 마누라로 맞이하게 될 예쁜 청주 댁을 머 리 속으로 떠올리며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 동안 먼발치에서 예쁜 청주 댁을 볼 때마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는데 이제야 자기의 그 소원을 시원하게 풀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시기심이 아주 많은
자기의 본처는 불평스런 말을 마구 끄집어내었지만 서슬이 시퍼런 박첨지가 으름장을 놓는 소리에 끽 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조용해 졌다. 이런 여자들이 본래 남편의 말에는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를 못하고 그저 남편의 말에 오로지 순종이다.
박첨지의 하는 꼴을 보니 이제 순서가 뒤 바뀌어 청주 댁이 본처가 되고 자기 아들과 결혼을 하는 경화라는 어린 계집년이 온 집안에 귀여움을 독차지를 할 지경이다. 속으로는 불이
붙어서 미치고 환장을 할 노릇이지만 그 동안 남편과 한통속으로 온갖 나쁜 짓을 다한 처지에 이제야 자기 위치를 찾으려고 하니 그게 통할 리가 없다. 자기 아들 조차도 자기 엄마의
이런 심정은 조금도 헤아려 주는 것도 없이 오로지 자기 아내로 맞이하게 될 경화라는 어린 계집에게 홀랑 빠져 있었다.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더니.............................”
혼자서 방안을 서성거리며 중얼거려보지만 어느 누구 한 사람 자기를 위해서 위로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꽃가마가 집안에 도착을 하고 아주 예쁘게 단장을 한 두 신부(新婦)가
박첨지 댁의 하녀들에게 이끌려 가마에서 내렸다. 온 동네 사람들이 박첨지 댁에 모여 오늘 일어나는 이상(異常)한 결혼식을 저마다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어찌
박첨지가 사람으로서 이런 인륜에서 벗어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못 마땅했지만 그러나 정작 누구 한 사람 이런 것에 대해서 바른말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전에 이 동네에서 살던 제 문호(諸文鎬)라는 사람이 큰 황소를 한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이 황소가 욕심(慾心)이 난 박첨지는 제 문호를 자기 집에 불러서 자기 집에 있는 황소와 맞
바꾸자고 제의를 했다. 그러나 이 황소를 자기 자식처럼 끔찍이 아끼는 제 문호는 웃돈을 더 얹어서 준다고 해도 자기 집의 황소와 박첨지 댁의 황소와는 바꿀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이지만 박첨지 댁의 황소는 누가 보더러도 비루먹어서 제 문호 집의 황소와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박 첨지는 자기 마누라와 머리를 맞대고 아주 악한 꾀를 내어서 자기 집에서 데리고 있는 떠돌이 불량배들을 시켜서 밤중에 제 순호 집의 황소를 몰래 훔쳐서 오게 하고 그 집의
식구들이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집에 불을 질러서 모두를 죽게 하였다. 그리고는 제 순호 가족이 갑작스런 화재(火災)로 인하여 온 가족이 다 죽었다고 관가(官家)에다 보고를 하였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런 박첨지의 악행을 다 알고 있었지만 서로가 쉬쉬하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루는 같은 마을에 사는 정 동영(鄭東榮)이라는 사람이 술이 취하여
주막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고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억울하게 죽은 제 문호의 귀신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정작 박첨지는 모르고 있더라고?... 그리고... 훔쳐간 제문호의 황소가 박첨지 마구칸의 기둥에 고삐를 칭칭
감아서 죽었는데... 그 얼마나 원한(怨恨)이 깊을까?.........................”
물론 술이 취해서 정동영이가 자기도 모르게 해 버린 말이었지만 이 말이 박 첨지의 귀에 안 들릴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박첨지는 또다시 자기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악한 꾀를 내어서
정동영이가 술이 취해 돌아오는 길목에 자기 집에서 데리고 있던 불량배들을 숨기고 있다가 강도(强盜)를 만난 것처럼 위장을 하여 죽였다. 이 사건도 정동영이가 술이 취해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강도를 만나서 살해(殺害)를 당했다고 박첨지는 관가에 허위(虛僞) 보고를 하였다.
관가에서도 평소에 박첨지에게 자주 뇌물을 먹는지라 포졸들을 보내어 대충 마무리를 하였다. 이러다 보니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박첨지가 하는 일에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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